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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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레비가 수용소에서 풀려난 지 40년,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 지 38년 만에 쓴 책으로,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나치의 폭력성과 수용소 현상을 분석한 탁월한 에세이다. 특히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 해 전에 쓰고, 생환자로서 그의 삶의 핵심 주제였던 아우슈비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유서遺書와도 같은 작품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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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리모레비

저자:프리모레비PrimoLevi
현대이탈리아를대표하는작가다.1919년이탈리아의토리노에서태어났고,1941년토리노대학교화학과를최우등으로졸업했다.유대계였던그는제2차세계대전말파시즘에저항하?는지하운동에참여하다체포당해아우슈비츠로이송되었고,제3수용소에서노예의삶보다못한나날을지냈다.1945년아우슈비츠에서살아남아토리노로돌아왔고1977년까지니스공장에서관리자로일하며작품들을발표했다.1987년토리노의자택에서돌연한자살로생을마감했다.
1947년처녀작이자대표작『이것이인간인가』를발표했다.『휴전』은그가수용소에서해방되어집으로돌아오기까지의기나긴여정을주제로한두번째책으로1963년출간후제1회캄피엘로상을수상했다.1975년세번째회고록인『주기율표』를발표했고,1978년『멍키스패너』를출간해스트레가상을받았다.‘인간다운노동’혹은‘노동하는인간’을주제로한이책은출간후곧바로여러언어로번역되었으며인류학자클로드레비스트로스에게찬사를받았다.아우슈비츠의경험을다룬또하나의소설『지금아니면언제?』는1982년비아레조상과캄피엘로상을동시에수상했다.1986년에는아우슈비츠의경험에대한철저한사유와성찰을집대성한역작『가라앉은자와구조된자』를출간했다.그밖에도시와소설등다양한작품들을남겼다.

역자:이소영

목차

서문
1.상처의기억
2.회색지대
3.수치
4.소통하기
5.쓸데없는폭력
6.아우슈비츠의지식인
7.고정관념들
8.독일인들의편지
결론

부록1프리모레비와라스탐파지의인터뷰
부록2프리모레비작가연보
부록3작품해설_서경식

출판사 서평

▶억압이만들어내는회색지대-인간은어떻게권력에현혹되는가?

출간당시가장논란을일으킨부분이2장「회색지대」이다.여기에는수용소의포로들이자신보다약한희생자에게권력을행사하는것에대한분석이담겨있다.레비는흔히영웅의귀환으로표현되는생환자들에대한수사修辭에저항하면서,그이면에감추어진그들의수동적이고폭력적인세계를적나라하게드러낸다.신입포로들은불행을같이하는동료들의연대감을기대하며입소했지만,최초의폭력은특권을지닌동료포로로부터온것이었다.이들은“최종해결책”(가스실)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또는죽한그릇을더먹기위해당국에협력함으로써크고작은특권을손에쥔자들이었다.특권층포로는수용소전체인구중에서소수였지만생존자들가운데서는압도적다수를차지했다.
레비는우치게토의위원장하임룸코프스키의이야기를통해,억압의체제속에서한인간이어떻게그체제와닮아가는지생생하게묘사한다.실패한기업가이자유대인자선단체들의책임자로알려진룸코프스키는사악한나치식의조롱에의해게토위원장에오른다.그는절대왕정의군주를흉내내기시작한다.화폐를만들고,자신의친위대를세우는한편,뛰어난예술가들과장인들을시켜자신의초상을넣은우표를인쇄한다.또학생들에게는자신을칭송하는작문과제를내주기도했다.그와중에그는점점자신이메시아이자자기민족의구원자라고확신하게된다.그러나1944년9월,러시아전선이가까워오자나치는우치게토를해산하기시작했다.수만명의포로들이아우슈비츠로강제이송되었다.“겁쟁이든영웅이든,겸손하든오만하든독일의수중에있던유대인들의운명은오직하나였다.”유대인의왕룸코프스키의운명도이들과다를바가없었다.
룸코프스키는권력과위신에쉽게현혹되는우리인간의나약함을표상한다.레비가보기에이것은역사속에서되풀이되는광경이다.레비는제2차세계대전막바지에히틀러의궁정에서,살로공화국의장관들사이에서벌어진피비린내나는암투를떠올린다.그들역시회색인간들로,처음에는맹목적이었다가나중에는범죄자가되었고,죽어가는사악한한줌의권력을나눠가지려고맹렬히싸웠다.레비는룸코프스키의이야기가곧우리들의이야기임을강조한다.

한체제를위해일하고그체제의죄에는자진해서눈감아버리는하위권력층들의이야기이다.서명에는돈이드는것도아니니까모든것에죄다서명을하는중간간부들의이야기이다.고개를가로젓지만묵인하는사람의이야기이며,“내가하지않으면나보다더못한다른사람이할것”이라고말하는사람의이야기이다.(……)우리모두게토안에있다는것을(……)그밖에는죽음의주인들이있으며그리멀지않은곳에기차가기다리고있다는것을잊어버린다.그렇게우리는자발적이든아니든간에권력과타협하게되는것이다.(79~80쪽)

그러나레비의관심은거대한억압기구의각층위에서어쩔수없이죄에가담한한사람한사람을단죄하는일이나용서하는일이아니었다.오히려그는그러한체제자체의범죄성을정확하게이해하고,선악의이분법으로갈라낼수없는보통사람들이억압기구의범죄에의해가담자나공범자가되어버리는메커니즘에주의를기울였다.

▶나치의폭력성의본질-‘적’은죽어야할뿐만아니라고통속에죽어야한다

레비는히틀러주의를규정하는하나의특징으로쓸데없는폭력을들고있다.살인자는보통돈때문이든,적을진압하기위해서든살인을위한분명한동기를갖고있다.전쟁또한나쁘거나사악한목표라하더라도어떤목표를겨냥한다.그자체로고통을가하는것을목표로하지않는다.그러나나치체제하에서벌어진일련의사례들은포로들에게쓸데없는잔인함을보여준다.
강제이송자들은식량,물,심지어요강까지아무준비없이열차에서태워졌다.며칠,몇주간이어진지옥여행으로미쳐버리는사람도있었다.수용소에도착한후에도매일저녁이뤄지는집계점호(죽은자도누워서나타나야했다),일상적인벌거벗겨짐,맨손으로죽먹기등포로들은자신들이동물화되는끔찍한경험을하게된다.레비는이와같은나치의잔혹함에몸서리를친다.

왜죽어가는사람들의집대문역시치고들어가야했단말인가?왜그들을머나먼곳에서,무의미한여행끝에폴란드의가스실문턱에서죽게만들려고굳이끌고가기차에태우는그고생을해야했단말인가?내가탄열차에는(……)다죽어가는아흔살노파두명이있었는데,그중한명은딸들이곁에서돌봤지만헛되이여행중에죽었다.열차안의집단적인고통속에그들의고통을보태넣기보다,그들을자신들의침대에서그냥죽게내버려두거나차라리그자리에서죽이는것이더간단하고더‘경제적’이지않았을까?(145쪽)

이와같은나치의폭력성은주로유대인들로구성된특수부대존더코만도스를통해서도확인할수있다.이들의끔찍한임무는수용소의화장터를관리하는것이다.가스실로보내야할사람들사이에질서를부여하고,가스실에서시체들을꺼내화장터로운반하고,재를꺼내없애는일련의작업을해야했다.곧“유대인을화로속에넣어야했던것도유대인이었다.”나치는이러한기관을통해서희생자들에게죄의짐을떠넘기려고시도했다.레비는특수부대의존재로부터하나의메시지를읽는다.

지배민족인우리는너희들의파괴자이지만,너희들은우리보다나은것이없다.우리가원하기만한다면(……)우리에겐너희의육신뿐만아니라영혼을파괴할능력이있다.우리가우리의영혼을파괴한것처럼.(61쪽)

레비는히틀러체제가위로부터강요한선택은포로들에게“최대한의괴로움,최대한의정신적·도덕적고통을짜내는것”이아니었을까생각한다.‘적’은죽어야할뿐만아니라고통속에죽어야하는것이다.마찬가지로레비는트레블링카전사령관프란츠슈탕글의인터뷰속에서나치의잔혹행위에담긴경악스러운진실을마주한다.

“그들을어차피다죽일것이었는데……굴욕감을주고잔혹행위를하는것이무슨의미가있었나요?”뒤셀도르프의감옥에서종신형에처해있던슈탕글에게작가가묻자그는이렇게대답했다.“실질적으로임무를수행해야했던사람들을길들이기위해서.그들에게자신들이하고있었던일을하는것이가능하도록.”(152쪽)

나치가포로들에게대하여잔혹행위를벌인기저에는죽이는자의죄책감을덜려는목적도있었다.죽이는자가제대로일을할수있게끔,희생자는죽기이전에인간이하로비하될필요가있었던것이다.

▶생환자가겪는수치심과죄책감-최고의사람들은모두죽었다

레비에따르면포로들에게해방이무조건기쁜것만은아니었다.그들은자유를되찾음과동시에치욕감과죄책감에휩싸였다.“어둠에서나왔을때,사람들은자기존재의일부를박탈당했다는의식을되찾고괴로워했다.”그죄의식의정체는무엇이었을까?생환자들은모든것이끝났을때,자신들이휩쓸려들어간체제에대항해서아무것도하지않았거나충분히하지않았다는데인식이미쳤다.또한연대감의실패라는측면에서도그랬다.생환자들은그때도움을베풀지않은데대해자신이유죄라고느꼈다.더약하고더서툰옆자리의동료는도움을청함으로써,또는단순히‘있다’는사실만으로집요하게괴롭혔다.보통은자신들도매우도움이필요한처지에있었지만그죄책감은해소되지않았다.그러나레비를죄의식에사로잡히게한또다른수치심이있다.레비는자신이누군가의자리를빼앗고살아남은게아닐까하는의심을떨칠수가없다.

다른사람대신에살아남았기때문에부끄러운가?특히,나보다더관대하고,더섬세하고,더현명하고,더쓸모있고,더자격있는사람대신에?(95쪽)

이와같은뿌리깊은의심,곧“다른사람을희생하여내가살아있는것일수도있다,그러니까사실상죽인것일수도있다”는의혹은바로수용소의‘구조된자’는최고의사람들이아니라,오히려최악들의사람들이었다는데서비롯한다.최고의사람들은모두죽었다.그들이못나서가아니었다.그들이가진용기라는미덕때문에죽은것이다.반면이기주의자들,회색지대의협력자와같은수용소체제에적응한자들,최악들의사람들이그자리를차지했다.그래서레비는자신이구조된사람들무리에어쩌다섞여들어간것처럼느낀다.

진짜증인들은우리생존자가아니다.우리생존자들은근소함을넘어서이례적인소수이고,권력남용이나수완이나행운덕분에바닥을치지않은사람들이다.바닥을친사람들,고르곤을본사람들은증언하러돌아오지못했고,아니면벙어리로돌아왔다.그러나그들이바로“무슬림들”,가라앉은자들,완전한증인들(……)이다.그들이원칙이고우리는예외이다.(98~99쪽)

이와함께레비는우리가운데의로운사람들이느끼는좀더광범위한수치심을이야기한다.많은이들이타인들이저지른잘못때문에,그리고자신들이거기에연루됐다는생각때문에가책과수치심이라는고통을느낀다는것이다.왜냐하면자신들의주위와눈앞,그리고내부에서일어난일이돌이킬수없는것이라고느끼기때문이다.레비는이고통은인간만이가질수있는것이라고덧붙인다.

▶사람들은사실을모르는게아니라알기를거부한다

레비는이책의마지막장을독일인들이자신에게보내온편지로장식한다.레비는한독일출판사가이것이인간인가의번역권을계약했다는소식을듣고흥분한다.이책의진정한수신자이자무기처럼겨냥하고있던사람들은바로독일인들이었기때문이다.그러나그에게보내진40여통의편지들가운데서몇몇은“나는몰랐다”,“어쩔수없었다”와같은여전한변명과기만의내용을담고있다.
이책에해설을쓴서경식의지적처럼종전이후얼마안된시기에는나치지도자들을‘광기’에사로잡힌‘악마’로지목하여설명하려는경향이지배적이었다.그러나시간이흐르고연구가심화되어갈수록그러한단순한논리는무효화되고,독일국민을비롯하여다른유럽국가의국민까지포함한일반인의적극적인동조가있었기때문에‘홀로코스트’가실현되었다는‘불편한진실’이명백하게드러났다.레비는“당시의거의모든독일인들의진정한죄는말할용기가없었다”는것이라고지적한다.

라거에대한진실을확산시키지않았다는것이야말로독일민족이저지른가장중대한집단범죄의하나이며히틀러의테러로인해독일민족이다다른비겁함을가장명백하게증명해주는것이다.관습속으로들어와버린비겁함,너무나깊어서남편이아내에게,부모가자식에게도입을열지못하게만드는비겁함이다.이비겁함이없었더라면그토록극단으로치닫지는않았을것이고유럽과세상은오늘날달라져있을것이다.(14쪽)

이책의제목“가라앉은자와구조된자”는레비가단테의신곡「지옥」편에서뽑아왔다.“가라앉은자”란수용소의전멸체제에휩쓸려버린사람들을비유적으로표현한말이다.레비는그들이야말로“완전한증인”이라고말한다.살아남은자들,곧구조된자들은그들대신증언하는것뿐이라는것이다.그러나자신의노력에도불구하고레비는인생의마지막대목에서홀로코스트의가르침이역사의일반적인잔혹한사건들가운데하나로그렇게잊힐것이라고점점확신하게되었다.레비의마지막유언과같은이책은그런점에서더욱중요한의미를갖는다.아우슈비츠란과연무엇이었는지,그사건은과연종결된것인지,현재를살아가는우리들은그것으로부터얼마나안전한지에대한물음은오늘날의한국독자들에게도적지않은고민을안겨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