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0월 항쟁, 그 잊지 못할 항거와 희생
1946년 10월 1일 정오경 대구역 광장에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노동자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튿날 10월 2일에 죽은 한 사람의 시신을 싣고 학생과 시민들이 대구 도심 전역에서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해방된 새 나라를 건설하자”, “친일 경찰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또 다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었고,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총을 맞고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10ㆍ1폭동’, ‘대구 10월 사건’으로 알려진 ‘10월 항쟁’의 서막이었다.
『10월 항쟁』의 저자 김상숙은 ‘10월 사건(폭동, 소요)’이 아닌 민중 항쟁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10월 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제주도의 4ㆍ3항쟁이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공식 인정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데 비해, 대구ㆍ경북 지역의 10월 항쟁은 학계에서도 본격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으로 한국인의 무의식중에 살아 있다. 이제 봉인된 시간 속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2016년 10월 1일은 항쟁 70주년이다.
『10월 항쟁』의 저자 김상숙은 ‘10월 사건(폭동, 소요)’이 아닌 민중 항쟁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10월 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제주도의 4ㆍ3항쟁이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공식 인정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데 비해, 대구ㆍ경북 지역의 10월 항쟁은 학계에서도 본격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으로 한국인의 무의식중에 살아 있다. 이제 봉인된 시간 속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2016년 10월 1일은 항쟁 70주년이다.
10월 항쟁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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