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예정] 우봉 조희룡 19세기 묵장의 영수

[출간예정] 우봉 조희룡 19세기 묵장의 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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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봉 조희룡』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전문 예술가의 삶을 살다간 우봉 조희룡(1789~1866)의 독특한 생애와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19세기라는 변화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인 예술가의 모델을 창시한 선구적 개인으로서 조희룡을 재조명한다.
저자

이선옥

이선옥은전남대학교를졸업하고,서울대대학원에서미술사로석사를,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회화사에관심을갖고사군자화를비롯한문인들의그림을주로연구하고있다.대우재단연구원을지냈으며,아주대,명지대등여러대학강사를거쳐전남대학교호남학연구원HK교수를역임하였다.현재는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호남서화연구에매진하면서,전남국제수묵프레비엔날레큐레이터로활동하고있다.대표저서로는『호남의감성으로그리다』(전남대학교출판부,2014),『사군자,매란국죽으로피어난선비의마음』(돌베개,2011),?선비의벗사군자?(보림출판사,2005),『한국의미술가』(공저,사회평론,2006)등이있다.

목차

새시대를개척한예술혼|저자의말
TheArtisticSoulPioneersaNewGeneration|Preface
1부조희룡의삶
1조희룡의시대,19세기
변화와역동의시대를살다|동요하는신분제,떠오르는중인계급|청나라학문과문물의수용|서화계에분새로운바람
2여항문인이자전문예술가
명문가의후손,그러나여항인|물가에살며뱃놀이를즐기다|자호字號에담긴삶과철학|당호堂號와인장印章에새긴서화예술의지향점|장수의비결은매화와난|붉은난이뜰에가득한꿈|서화와골동을수집하는취미|명산대천에서문필의기氣를구하다|헌종임금과정치적운명을같이하다
3유배,일생의가장큰시련
김정희의복심腹心으로임자도에유배되다|고뇌와적막함의나날들|임자도의삼절을즐기다|제자들과나눈각별한정|운하雲霞와같이찬란한괴석에빠지다|자화상으로나를대신하오
4문文과예藝로써사귄이들
청년시절의벗들|평생의지기,벽오사동인들|소치허련과밤새그림을논하다|고람전기,나이를뛰어넘은망년지교忘年之交|당대문인사대부들과의사귐
5먹을다루는세계의우두머리
추사의제자로수련하다|우봉,추사와쌍벽으로나아가다
2부조희룡의예술
1화단畵壇을물들인매화
매화벽梅花癖,매화를향한지극한사랑|조희룡만의매화가탄생하기까지|미친듯이칠하고어지럽게긋다|단두번의붓질로살아움직이다|신선의단약을삼키고피어난꽃,홍매|여러폭병풍에펼쳐진기굴한홍매화
2먹을흩뿌려풀처럼자유로운난
난을칠때는글씨쓰듯이하라|천하의수고하는이를위로하고자|기쁜듯난을그리다|흙기운이깊어아름다운난
3분방하고기세당당한대나무
성난기운으로묵죽을그리다|빈산의만그루대나무가모두나의스승이니|8구름위로치솟는듯한필치로그리다|먹으로그린가을색
4은일隱逸의이상을추구한산수
산수화를읽는것은산수를보는것과같은경지다|나는법이아닌가슴속의뜻을그린다|종횡으로붓을휘둘러외로움을쏟아내다|서옥의주인처럼살고싶다|눈같은꽃향기의바다에빠지다
5추하고괴이하게그린돌
괴석의기이함이눈을즐겁게한다|묵점을흩뿌려흉억胸臆을그려내다|고목과죽석으로수壽를기원하다|장수를기원하는나비
6조희룡회화미의양면성
담淡의미감|격동激動의미감
3부조희룡의글과생각
1그림에대한생각과기록
화가와화적畵籍에대한인식|그림의가치는뜻을기탁하는데있다|시·문·서·화는이치가하나이다|신분이아니라타고난재능이중요하다|수예론手藝論,재능은손끝에있다|그림재능은천예天倪에따른다|나는누구에게도속한바없다|명성에매달리지말고조예造詣를보라
2조희룡이남긴시문詩文
살아온길을기록한시詩와문文|벽오사동인들과의모임을기록하다|중인들의전기,『호산외기』|『일석산방소고』와『화구암난묵』|『한와헌제화잡존』과『우해악암고』|『수경재해외적독』과회인시
예술가로서의자부심이넘쳤던,근대적시각의여항문인화가
-조희룡연구와평가
부록

출판사 서평

매화화가이자‘19세기묵장墨場의영수領袖’라불린조희룡
조선회화의근대를연자유와격정激情의예술세계
19세기여항문화계의리더,
조희룡의삶과작품그리고문학세계
이책은뛰어난문장가이자전문예술가의삶을살다간우봉又峰조희룡趙熙龍(1789~1866)의독특한생애와예술세계를소개한다.19세기라는변화의시대를맞아새로운문인예술가의모델을창시한선구적개인으로서조희룡을재조명한다.그는19세기중인들의전기집(『호산외기壺山外記』)을최초로엮어냄으로써여항인으로서의역사의식과정체성을...
매화화가이자‘19세기묵장墨場의영수領袖’라불린조희룡
조선회화의근대를연자유와격정激情의예술세계
19세기여항문화계의리더,
조희룡의삶과작품그리고문학세계
이책은뛰어난문장가이자전문예술가의삶을살다간우봉又峰조희룡趙熙龍(1789~1866)의독특한생애와예술세계를소개한다.19세기라는변화의시대를맞아새로운문인예술가의모델을창시한선구적개인으로서조희룡을재조명한다.그는19세기중인들의전기집(『호산외기壺山外記』)을최초로엮어냄으로써여항인으로서의역사의식과정체성을드러냈으며,다수의시와문장을통해내면세계를가감없이표출하였고,‘수예론手藝論’등기존에없던독보적인서화관을선보였다.서화가로서그는사군자와괴석그림에특히능했는데그가운데서도‘매화화가’로불릴만큼매화를좋아하고잘그렸으며,파격적인매화그림으로당대를풍미함은물론매화그림의역사를새로썼다.
조희룡은추사김정희에게서화를배운것으로알려져있고,김정희의복심腹心으로억울한유배를다녀오기도했으며,말년에는김정희의복고적이고전통적이며보수적인성향과대비되는매우새롭고독창적인예술관으로중인층의문예계를주도했다.19세기문예계에서그의영향력과위치를가늠할수있는기록으로,조선시대서화가들의인명사전『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쓴오세창吳世昌은그를“묵장의영수”즉“먹을다루는세계의우두머리”라고표현하였다.하지만19세기를선도한문인예술가로서우리가조희룡을기억해야하는또다른중요한이유는그가‘그림의독창성’과‘화가의개성’을중시하고스스로예술가로서의자부심이넘쳤던,최초의근대적시각의전문예술가였다는점이다.
조희룡이매화화가라면이책을쓴저자이선옥은매화그림전문가다.「조선시대매화도연구」(2004)로박사학위를받았고,돌베개테마한국문화사시리즈중하나로매화를포함한사군자를다룬『사군자,매란국죽으로피어난선비의마음』(2011)을펴낸바있다.또한오랫동안호남지역에머물며그지역의예술에집중했던그는전남신안임자도에유배되었던조희룡에게더깊이빠져들수밖에없었을것이다.19세기문인예술가로서조희룡에대한연구와인식은그간김정희라는한계,조희룡이가졌던신분의한계,일제강점기라는문화단절이가져온시대적한계에부딪혀제대로조명되지못하였다.이책은1980~1990년대중인문학과조희룡회화에대한연구,1999년번역출간된조희룡전집등의성과위에매화,사군자그림,조희룡,남도예술에천착했던필자의오랜연구성과가집적되어이루어졌다.조희룡을좀더깊이,좀더종합적으로들여다본이책을통해,19세기서화계를이끌었으며자유와파격의새로운회화세계를이룩한근대회화의개조開祖조희룡에대한진정한다시보기와바로보기가이루어지기를기대한다.
들학이가을구름을타고펄펄나는듯하다-우봉조희룡
조선의19세기는문예부흥기라불리는18세기와서구문물이들어오고일제에의한식민지를경험한20세기초사이에서강한변화의회오리가몰아친시기였다.조선사회의근간이었던엄격한신분제가동요하고청의학문과문물이서학과함께유입됨과동시에,상업자본주의발전,상품화폐경제확대,소비문화확산등중세적신분사회에서근대적시민사회로옮겨가는과도기였다고할수있다.이러한변화의19세기를살았던조희룡은사대부가문출신의문인화가이면서신분이낮은중인계층의여항인이라는이중성을지니고있었다.이와함께신분적한계와불평등에따른잠재된내면의울분,60대초반에겪은유배라는사건은그의문학과예술의정체성과방향성에절대적인영향을미쳤다.
조희룡의50대이전기록즉성장과정이나화가로서의입문등청,장년기에대한기록은거의없다.하지만단편적으로남아있는그의모습은어려서부터창백하고말랐으며키가컸다고한다.그는14세에어떤집안과혼담이오갔는데허약하게생겨오래살지못할것같다고하여퇴짜를맞았다.그때부터그에겐‘장수’에대한트라우마가생긴듯하다.이후그는건강을특별히챙겼으며유배간임자도섬에서는열악한환경에서도3년간닭을몇백마리나먹었다는기록도있다.그가유배갔다가서울로돌아온것은63세때였는데,60대이후의기록에서그는매우유쾌하고활달한인물로보인다.그가중심이되어활동했으며평생뜻을함께했던지기들과의모임인벽오사碧梧社모임관련기록에“얼굴을돌리고수염을쓰다듬으며마구떠드는사람”으로묘사되기도하였으며,모임을기록한『오로회첩』에는“선선하게흥이나서한폭을펼쳐난을그리고시를쓰는자”로묘사되어있다.
연지빛홍매화를그리며도교의불사약不死藥을뜻하는단약丹藥과연결시키고,매화한송이한송이를부처의현신이라했던그의작품에는도교와불교의영향이강하게드러난다.말년에그는날마다향을피우고『유마경』을외우며마치불가에서수행하는것처럼지냈다고한다.그와절친했던벗나기羅岐는노년의그의모습을“늙을수록더욱건강한조단로趙丹老는마치들학이가을구름을타고펄펄나는듯하다.”고도하였다.유배라는굴곡을겪기는했지만그이후의삶은늘새로움과자유로움의추구였으며맑게수양하고서화를즐기며신선처럼살았던듯하다.그는78세로장수하였는데,“모든잡념을끊고득실을한결같이보고영예와모욕을잊은채,여유있고한가롭게애오라지한생애를마쳤다.”고하였다.
추사의제자에서당대의쌍벽으로-조희룡과김정희
조희룡은헌종의총애를받아임금으로부터금강산실경을그려오라는명을받기도했고,궁궐누각에문향실이라는편액을썼으며,매화시를지어올린적도있다.또한회갑에헌종으로부터벼루와책을하사받기도하였다.그런왕의총애는헌종의요절과철종즉위로새로운국면을맞게된다.당시의예송논쟁에서김정희와권돈인이탄핵되자,김정희의복심腹心으로지목된조희룡도덩달아유배를가게된것이다.이사건과관련하여실록에적힌조희룡의죄목에는“장래의화禍가반드시요원燎原을이룰것이니어찌미천한기슬??(서캐와이)의유類라하여미세한때에방지하여조짐을막는도리를소홀히하겠습니까?”라한부분이있다.신분제가동요하고는있었으나당대조정대신들은조희룡과같은중인들을천시했고,그럼에도역설적으로날로성장해가는여향인의세를두려워하여그싹을제거하려는어떤의도도엿보인다.
조희룡은당대문예계를주도했던추사김정희와긴밀한관계를맺고그의예술세계로부터많은영향을받았다.그림을배우던청장년시절에는김정희의영향을받아전통적인문인들의미의식을그림에적용하였고,중국과빈번히교류했던김정희를통해중국의앞선문물과지식,새로운화풍을접할수있었다.김정희의복심으로유배갈정도로각별한사이였으나이들이언제어떻게만나어떤관계에있었는지더구체적인기록은없다.두사람각각의문집에도의외로상대방에대한언급은미미하다.다만조희룡의글을통해그가젊은날김정희로부터가르침을받았고,김정희가제주도유배를다녀온후에는여항의서화가들을이끌고김정희에게나아가서화평을받았다는사실만이알려져있을뿐이다.
조희룡과김정희는몸담고있는신분배경뿐아니라타고난기질도달라예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