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독(書三讀)! 우리 시대의 고전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에 발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입니다.
진정한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_ 신영복, 「서삼독」
신영복
우리시대대표적인진보지식인.1941년경상남도밀양에서출생했다.서울대경제학과와대학원을졸업한후숙명여대와육군사관학교에서경제학을가르쳤다.육사에서교관으로있던엘리트지식인이었던신영복교수는1968년통일혁명당사건으로무기징역형을받고대전·전주교도소에서20년간복역하다가1988년8·15특별가석방으로출소했다.
1976년부터1988년까지감옥에서휴지와봉함엽서...
초판서문
영인본『엽서』서문
증보판서문
고성(古城)밑에서띄우는글[남한산성육군교도소1969년1월~1970년9월]
나의숨결로나를데우며/사랑은경작되는것/고독한풍화(風化)/단상메모/초목같은사람들/독방에앉아서/청구회추억/니토(泥土)위에쓰는글/70년대의벽두/고성밑에서띄우는글
독방의영토[안양교도소1970년9월~1971년2월]
객관적달성보다주관적지향을
한포기키작은풀로서서[대전교도소1971년2월~1986년2월]
형님의결혼/공장출역/잎새보다가지를/염려보다이해를/고시(古詩)와처칠/부모님의일생/아버님의건필을기원하며/겨울꼭대기에핀꽃/이방지대에도봄이/아버님의사명당연구/한권으로묶어서/하정일엽(賀正一葉)/눈은녹아못에고이고/생각을높이고자/아름다운여자/엄지의굳은살/어머님의염려를염려하며/좋은시어머님/이웃의체온/봄철에뛰어든겨울/수신제가치국평천하/간고한경험/비행기와속력/인도(人道)와예도(藝道)/신행기념여행을기뻐하며/사삼(史森)의미아(迷兒)/봄볕한장등에지고/봄은창문가득히/서도의관계론(關係論)/첩경을찾는낭비/꽃과나비/버림과키움/할머님이되신어머님께/바깥은언제나봄날/우공(愚公)이산을옮기듯/두개의종소리/매직펜과붓/민중의얼굴짧은1년,긴하루/거두망창월(擧頭望窓月)/옥창(獄窓)속의역마(驛馬)/창랑의물가에서/10월점묘(點描)/이사간집을찾으며/세모에드리는엽서/새해에드리는엽서/자신을가리키는손가락/더위는도시에만있습니다/한가위달/옥창의풀씨한알/동굴의우상/손님/인디언의편지/엽서한장에는못다담을봄/쌀을얻기위해서는벼를심어야/방안으로날아든민들레씨/슬픔도사람을키웁니다/피서(避書)의계절/강물에발담그고/참새소리와국수바람/추성만정충즉즉(秋聲滿庭蟲??)/눈오는날/겨울은역시겨울/서도/우수,경칩넘기면/꿈마저징역살이/더이상잃을것없이/속눈썹에무지개만들며/한송이팬지꽃/햇볕속에서고싶은여름/널찍한응달에서/메리골드/저녁에등불을켜는것은바다로열린시냇물처럼/창살너머하늘/흙내/창고의공허속에서/어머님앞에서는/신발한켤레의토지에서서/영원한탯줄의끈/낮은곳/떠남과보냄/어머님의붓글씨/새벽참새/동방의마음/산수화같은접견/세월의아픈채찍/침묵과요설(饒舌)/초승달을키워서/불꽃/피고지고1년/없음[無]이곧쓰임[用]/봄싹/악수/나막신에우산한자루/보따리에고인세월/창문에벽오동가지/한그릇의물에보름달을담듯이/보리밭언덕/풀냄새,흙냄새/고난의바닥에한톨인정의씨앗/땅에누운새의슬픔/할아버님의추억/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글씨속에들어있는인생/창백한손/밤을빼앗긴국화/생각의껍질/교(巧)와고(固)/낙엽을떨구어거름으로묻고/발밑에느껴지는두꺼운땅/창문과문/헤어져산다는것/더큰아픔에눈뜨고자/눈록색의작은풀싹/정향(靜香)선생님/어둠이일깨우는소리/담넘어날아든나비한마리/서도와필재(筆才)/따순등불로켜지는어머님의사랑/감옥속의닭‘쨔보’/바다에서파도를만나듯/환동(還童)/욕설의리얼리즘/황소/역사란살아있는대화/저마다의진실/샘이깊은물/그흙에새솔이나서/우김질/아버님의연학(硏學)/비슷한얼굴/감옥은교실/아버님의저서『사명당실기』를읽고/뜨락에달을밟고서서/가을의사색/땅속으로들어가는것/아내와어머니/세월의흔적이주는의미/겨울새벽의기상나팔/갈근탕과춘향가/한포기키작은풀로서서/벽속의이성과감정/꿈에뵈는어머님/함께맞는비/죄명(罪名)과형기(刑期)/과거에투영된현재/아프리카민요2제(二題)/아버님의한결같으신연학/꽃순이/증오는사랑의방법/빗속에서고싶은충동/무거운흙/타락과발전/독다산(讀茶山)유감(有感)/어머님의민체(民體)/녹두씨?/보호색과문신/어머님의자리/바라볼언덕도없이/시험의무게/과거의추체험(追體驗)/사람은부모보다시대를닮는다/한발걸음/수만잠묻히고묻힌이땅에/징역보따리내려놓자/구교도소와신교도소/닫힌공간,열린정신/타락의노르마/민중의창조/온몸에부어주던따스한볕뉘/엿새간의귀휴/창녀촌의노랑머리/물은모이게마련/잡초를뽑으며/일의명인(名人)/장기망태기/무릎꿇고사는세월/벼베기/관계의최고형태/설날/나이테/지혜와용기/세들어사는인생/노소의차이/호숫가의어머님/우산없는빗속의만남/다시빈곳을채우며/아픔의낭비/여름징역살이/어머님과의일주일/우리들의갈길/작은실패/옥중열여덟번째의세모에/최후의의미/인동(忍冬)의지혜/하기는봄이올때도되었습니다
나는걷고싶다[전주교도소1986년2월~1988년8월]
새칫솔/낯선환경,새로운만남/나의이삿짐속에/새벽새떼들의합창/모악산/계수님의하소연/물머금은수목처럼/사랑은나누는것/끝나지않은죽음/수의(囚衣)에대하여/땜통미싱사/부모님의애물이되어/토끼의평화/토끼야일어나라/설날에/잔설도비에녹아사라지고/혹시이번에는/밑바닥의철학/어머님의현등(懸燈)/죄수의이빨/머슴새의꾸짖음/징역살이에이골이난꾼답게/거꾸로된이야기/뿌리뽑힌방학/장인영감대접/환절기면찾아오는감기/추석/졸가리없는잡담다발/떡신자/완산칠봉/스무번째옥중세모를맞으며/나는걷고싶다/백운대를생각하며/잘게나눈작은싸움/비록그릇은깨뜨렸을지라도/옥담밖의뻐꾸기/새끼가무엇인지,어미가무엇인지
*“오늘까지우리나라에서나온수상혹은수필문학에서내가읽어본한에서는이저서만큼탁월한저서를읽어본일이없다.마치공자의『논어』를읽는맛이고,‘파스칼’이나‘몽테뉴’의수상을읽는듯이한구절한구절이깊이있게그리고따뜻하게,동시에고도의비극미를수반한채스며드는그런글이다.이글은스타일면에서부터읽는사람을압도한다.고도의절제,속삭이는듯하면서절절하고그리고강건한정신,첫한구절을읽는순간우리는실제로태백산근처하늘높이지나가는고압선에닿은것마냥꼼짝못하고,인간살이의근원으로휘말려들어가게되는것이다.”_소설가故이호철(1988년월간중앙서평중에서)
*“벽돌담안에서벌이는무한한세계의호흡이다.그것들은살아있는어휘가되어여러가지공해에찌들어버린우리의머릿속을명쾌하게뒤흔들어놓는다.”_성공회신학대학장(현경기도교육감)이재정(1993년4월월간조선서평중에서)
*“그분의마력과매력은뜨겁고강한이야기를낮고조용하게하는데있다.그러면서도뜨거움을자각케하고정의로움을일깨우는힘을발휘한다.그건바로깊고진솔한사색의결과다.그분은웅변과글이어떻게다른지를모범적으로보여주는동시에인간의인간다운삶과길을우리앞에펼쳐보인다.또한‘민중체’로이름붙여진그분의붓글씨와함께‘신영복체’라고해야할그분의속깊고부드러우며단아한문장은누구나보고배워야할높은경지의문학이다.”_소설가조정래(추천평)
*“그의글은인생,사물,우리일상에대해따뜻한시선을가지고있으면서도많은깨우침을주기때문에,한번읽고마는글이아니라항상삶의지침서로서되새김하고싶은그런소중한글이다.”_수녀이해인(추천평)
*“봉함엽서한장분량에쏟아져있는글을읽고나면,바로다음글로넘어갈수없을정도로밀도있고감동이있는글들이다.어떤때는책장을편채로가슴에대고멍하게생각에빠진적도있었다.책한권을읽는데두달이나걸렸다.”_명지대교수유홍준(추천평)
*“신영복선생의옥중서간집『감옥으로부터의사색』을만난것은여간큰축복이아니다.감옥에서20년20일을복역하시는동안불신과절망과증오가한이되고도남았을법한데,용케도선생은그독초들을뽑아내고믿음과바람과사랑의씨앗을가꾸셨다.내주변여러친지들가운데선생의글을읽고울지않은이가없고,한국의노신이라고주장하는분도있으니이보다더한찬사가어디있겠는가.”_신부정양모(추천평)
*“그세월자체로도우리의가슴을저미는20년징역살이동안땅에묻은살이삭고삭아하얗게빛나는뼛섬을꺼내놓듯이한젊음이삭고녹아내려키워낸반짝이는사색의기록이바로이『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다.이것은책의모습을띤무량한깊이를지닌삶의초상이다.”_문학평론가김명인(1988년12월2일<여성신문>창간호서평중에서)
*“그의옥중20년은한국사회에서민주화운동이가장치열하던시기였다.가족과동료재소자그리고한국사회에대한관심과애정이곳곳에배어있는그의글은사람들이치열한실천에몰두하다가때때로잊곤하는사실,즉‘나는왜이길을가고있는가’에대한근본적문제의식을다시일깨워줬다.민주화에성공했든실패했든,지역구도를타파하든못하든,세계화를하든안하든,더중요한것은모든사람은직간접적으로인연맺는타자들과의관계속에서완성돼간다는사실,그리고그런‘관계’속에서사회와역사가만들어진다는사실이다.”_고려대철학과교수김형찬(2005년9월동아일보기사중에서)
*“생각과실천이일치하는것이쉽지않은데,신영복선생은지행합일,언행일치의예를보여주셨습니다.감옥이란삭막한곳에서인간의체온이느껴지는글을쓰셨지요.깊은사색과성찰이돋보였습니다.……이책에실린글은그냥지나치기쉬운인간문제를차분하고깊이있게파고들어사물의본질에도달한것입니다.무엇보다사람과사람의관계를신뢰와애정을갖고분석했습니다.……전연령층이다볼수있지만특히고등학생과대학생,갓사회에나온젊은이들이읽어보았으면합니다.사회첫발을내딛고자신의힘으로인생을설계해야하는시점에서방향타역학을할수있으니까요.”_故노회찬의원(2008년주간한국기사중에서)
*“책밖의나는가진것에심드렁했고갖지못한것에초조해했다.책속에들어있는인생은내게비교를요구했다.나의어두운시간은사치스럽고과분했다.나는내게주어진단한번의20대를넥타이매고출근하여출근부에사인하며보내지는않겠다고결심했다.제대후나는좀더자유로운길을선택했다.연봉은3분의1이었고해야할일은거칠었다.그선택은이어지는사건들의진폭을훨씬크게부풀렸다.예측하지못했던변수들이속속등장했다.선택이요구되었고그결과들이꼼꼼하게내인생에개입했다.그러나내게는흔들리지않는기준이하나있었다.나는항상어떤선택이미래의나를더자유롭게할지를가늠했다.다시시간을되돌려도나는같은선택을할것이다.바로처음처럼.”_건축가서현(2014년7월경향신문‘서현의내인생의책’중에서)
*“‘신영복의감옥’은오늘을사는우리에게숙제를안겨준다.우리스스로가만든‘닫힌감옥’에서벗어나라고말이다.우리는사람을사랑하는가?욕심과이기심에매몰된우리는과연열린삶을살고있는가?어쩌면우리는지금그가경험했던'여름징역'에갇혀있는지모른다.바로옆사람을단지섭씨37도의열덩어리로만느끼고증오하게만드는감옥말이다.옆사람의체온으로추위를이기는겨울철의원시적우정이라도필요한때가아닐까.”_논설위원박종률(2016년1월17일노컷뉴스칼럼중에서)
*“『감옥으로부터의사색』은감옥의사상이다.1968년부터20년20일동안‘엘리트사상범’은‘밑바닥인생들’과살면서,그들과자신의같음과다름에대해끊임없이고민했다.때문에그는생각없이살아도되는남성의‘특권’은누릴수없었지만,타자를만들지않고도남성이된드문인간이되었다.천만번의외로움끝에다다를수있는경지다.”_평화학연구자정희진(2017년6월한겨레‘정희진의어떤메모’중에서)
높은품격과견결성,명문장의탄생
이책은통혁당사건으로20년20일영어의몸을살았던무기수가가족들에게보낸편지를모아만든책이다.폐쇄된공간속에살면서도감정의동요없이차분하게자신과세계를성찰하는신영복선생의모습에서우리는오히려담밖에있는이시대일상인들의안락이얼마나공허하고부끄러운것인가를역설적으로확인할수있었다.
선생의글은찬새벽공기의신선함과같은감동이있다.또한문체에서배어나오는맑은샘물과같은그의영혼의모습은불의한물리적억압이한개인의곧은신념과품성을훼손할수없음을보여준다.그리고글곳곳에는여지없이따듯함과넉넉함이배어있다.초판출간이후현재까지인구에회자된이책의명문을뽑아보았다.
*그러나이모든사색이머릿속의관념으로서만시종(始終)하는것이고보면,앞뒤도없고선후도없어전체적으로는공허한것이되고맙니다.그렇지만나는나의내부에한그루나무를키우려합니다.숲이아님은물론이고,정정한상록수가못됨도사실입니다.비옥한토양도못되고거두어줄손길도창백합니다.염천과폭우,엄동한설을어떻게견뎌나갈지아직은걱정입니다.그러나단하나,이나무는나의내부에심은나무이지만언젠가는나의가슴을헤치고외부를향하여가지뻗어야할나무입니다._1969년1월~1970년9월중남한산성육군교도소,「고성밑에서띄우는글」중에서
*제비가날아오니봄이되는것이아니라봄이기때문에제비가날아오는터입니다._1976년5월3일「수신제가치국평천하」중에서
*이번이사때가장두고오기아까웠던것은‘창문’이었습니다.부드러운능선과오뉴월보리밭언덕이내다보이는창은우리들의메마른시선을적셔주는맑은샘이었습니다.그러나생각해보면‘창문’보다는역시‘문’이더낫습니다.창문이고요한관조의세계라면문은힘찬실천의현장으로열리는것입니다.그앞에조용히서서먼곳에착목(着目)하여스스로의생각을여미는창문이귀중한‘명상의양지(陽地)’임을부인할수는없지만,그것은결연히문을열고온몸이나아가는진보(進步)그자체와는구별되지않을수없습니다._1981년세모「창문과문」중에서
*사람들은누구나어제저녁에덮고잔이불속에서오늘아침을맞이하는법이지만어제와오늘의중간에‘밤’이존재한다는사실은큼직한가능성,하나의희망을마련해두는것이나마찬가지라생각됩니다._1982년3월9일「어둠이일깨우는소리」중에서
*각각다른골목을살아서각각다른경험을가진사람들이한방에서혼거하게되면대화는흔히심한우김질로나타납니다.……섬사람에게해는바다에서떠서바다로지며,산골사람에게해는산봉우리에서떠서산봉우리로지며,서울사람에게있어서해는빌딩에서떠서빌딩으로지는것입니다.이것은섬사람이산골사람을,서울사람이섬사람을설득할수없는확고한‘사실’이됩니다._1982년7월13일「저마다의진실」중에서
*사람은스스로를도울수있을뿐이며,남을돕는다는것은그‘스스로도우는일’을도울수있음에불과한지도모릅니다.그래서저는“가르친다는것은다만희망을말하는것이다”라는아라공의시구를좋아합니다.돕는다는것은우산을들어주는것이아니라함께비를맞으며함께걸어가는공감과연대의확인이라생각됩니다._1983년3월29일「함께맞는비」중에서
*수많은공간과그것의지극히작은일부를채우는64kg의무게,높은옥담과그것으로는가둘수없는저푸른하늘의자유로움을내면화하려는의지…….한마디로닫힌공간과열린정신의불편한대응에기초하고있는이러한관계는교도소의구금(拘禁)공간과제가맺어야할역설적관계의본질을선명하게밝혀줍니다.그것은길들여지는것과는반대방향을겨냥하는이른바긴장과갈등의관계입니다.그것은관계이전의어떤것,관계그자체의모색이라해야할것입니다.(중략)비단갇혀있는사람들뿐만아니라우리들이많은사람들속에존재하고있다는튼튼한연대감이야말로닫힌공간을열고,저푸른하늘을숨쉬게하며……,그리하여긴장과갈등마저넉넉히포용하는거대한대륙에발딛게하는우람한힘이라믿고있습니다.관계를맺는다는것은‘아픔’을공유하는것에서부터시작하는것인가봅니다._1984년4월26일「닫힌공간,열린정신」중에서
*어떠한시냇물을따라서도우리가바다로나아갈수있듯이아무리작고외로운골목의삶이라하더라도그곳에는민중의뿌리가뻗어와있는것입니다.이것이바로민중특유의민중성입니다.부족한것은당사자들의투철한시대정신과유연한예술성입니다._1984년5월22일「민중의창조」중에서
*나무의나이테가우리에게가르치는것은나무는겨울에도자란다는사실입니다.그리고겨울에자란부분일수록여름에자란부분보다훨씬단단하다는사실입니다.햇빛한줌챙겨줄단한개의잎새도없이동토(凍土)에발목박고풍설(風雪)에팔벌리고서서도나무는팔뚝을,가슴을,그리고내년의봄을키우고있습니다._1984년12월28일「나이테」중에서
*없는사람이살기는겨울보다여름이낫다고하지만교도소의우리들은없이살기는더합니다만차라리겨울을택합니다.왜냐하면여름징역의열가지스무가지장점을일시에무색케해버리는결정적인사실―여름징역은자기의바로옆사람을증오하게한다는사실때문입니다.모로누워칼잠을자야하는좁은잠자리는옆사람을단지37℃의열덩어리로만느끼게합니다.이것은옆사람의체온으로추위를이겨나가는겨울철의원시적우정과는극명한대조를이루는형벌중의형벌입니다.
자기의가장가까이에있는사람을미워한다는사실,자기의가장가까이에있는사람으로부터미움받는다는사실은매우불행한일입니다.더욱이그미움의원인이자신의고의적인소행에서연유된것이아니고자신의존재그자체때문이라는사실은그불행을매우절망적인것으로만듭니다.그러나무엇보다도우리자신을불행하게하는것은우리가미워하는대상이이성적으로옳게파악되지못하고말초감각에의하여그릇되게파악되고있다는것,그리고그것을알면서도증오의감정과대상을바로잡지못하고있다는자기혐오에있습니다._1985년8월28일「여름징역살이」중에서
*옛날에토끼와거북이가경주를했단다.걸음이빠른토끼가느림보거북이를훨씬앞섰지.그런데토끼는거북이를얕보고는도중에서풀밭에누워잠을잤다.그러다가그만거북이한테지고말았다.거북이를얕보고잠을잔토끼도나쁘지만그러나잠든토끼앞을살그머니지나가서1등을한거북이도나쁘다.……잠든토끼를깨워서함께가는거북이가되자.그런멋진친구가되자._1986년12월30일「토끼야일어나라」중에서
*눈이내리면눈뒤끝의매서운추위는죄다우리가입어야하는데도눈한번찐하게안오나,젊은친구들기다려쌓더니얼마전사흘내리눈내리는날기어이운동장구석에눈사람하나세웠습니다.옥뜰에서있는눈사람.연탄조각으로가슴에박은글귀가섬뜩합니다.
“나는걷고싶다.”
있으면서도걷지못하는우리들의다리를깨닫게하는그글귀는단단한눈뭉치가되어이마를때립니다._1988년1월30일「나는걷고싶다」중에서
가상인터뷰:선생님,질문있습니다!
감옥에서지급되는누런휴지위에철필로적혀있는정갈한선생의글씨와삽화,‘검열필’이란도장이찍혀있는봉함엽서속의사연들은어두운현대사가각인된시대의아픔을그대로간직하고있다.차디찬겨울감방에서느꼈던공포,원망에젖은글로시작해서자신이오랫동안살아가야할어두운공간속의사람들에대한이해와애정,가족에대한사랑,역사속의개인으로서운명을담담하게받아들이는모습등이오랜시간을통해나타나있다.
1988년이책의초판을출간한뒤로신영복선생은수많은언론사와인터뷰를가졌고,많은독자들에게질문을받았다.선생이살아계시다면이번30주년기념판출간뒤에도비슷한질문을받으셨으리라.그래서그동안에받은질문중가장많이궁금해하던질문과선생의답변을추려보았다.가상으로엮은질문과답변이지만,선생님의답변은수많은언론인터뷰과글에수록된선생님의말씀을추려정리한것으로약간의종결어미정도만수정하였다.
Q.선생님의엽서를보면,틀린글자가거의없고단정하고깔끔하게씌어졌습니다.어떻게그런엽서를쓰실수있는지요?
A.감옥에서편지를쓸때는검열관이보는앞에서제한된시간안에써야합니다.그러므로편지내용에대해골똘하게생각할틈이없습니다.그래서저는틈틈이머릿속에서편지를쓰고,지우고또쓰고하여펜을쥐기전에머릿속에한장의편지를항상간결하게만들어놓았습니다.이미머릿속에서무수한퇴고를거친셈입니다.
Q.엽서에서보통제가,나는등의표현대신‘우리’라는표현을특히많이쓰십니다.가족에게보내는편지에나대신우리라고쓰신이유가궁금합니다.
A.대개의정치범들은독방에은거하며독서계획표를짜는데비해저는일반재소자들과함께공장에출역하면서밑바닥인생을배우고,또그들이바로나자신의모습임을깨달았습니다.그래서제편지에는‘나’라는말대신‘우리’라는말이등장합니다.그들이바로나이기도합니다.
Q.엽서의수신인을보면부모님과형,동생도있지만,형수님과계수님께보낸글들이많습니다.바깥세상에서라면형수님과계수님이그렇게편한수신대상은아닌듯합니다만...
A.계수님이나형수님께서옥바라지를많이해주셨습니다.편지도자주보내주셨고요.계수씨는남편이야기,아이이야기,일상생활에서의느낌을썼고,저는이성에대한생각,재소자생활,갇힌자의사물과생명에대한글을썼습니다.그리고당시에는연좌제가시퍼런칼날처럼살아있었습니다.행여나형님과동생에게누를끼칠까염려가되기도했습니다.
“계수님께서보낸정육면체의작은소포꾸러미는주사위처럼궁금했습니다.양말세켤레.추석이었습니다.먼저손에다신어보았습니다.설빔신발을신고연신골목으로나가고싶던예의그역마벽(驛馬癖)이짜릿하게동하여옵니다.나더러역마살이들었다던친구들이생각납니다.역마살은떠돌이광대넋이들린거라고도하고길신[道神]이씌운거라고도하지만,아직도꿈을버리지않은사람이꿈찾아나서는방랑이란풀이를나는좋아합니다.하늘높이바람찬연을띄워놓으면얼레가쉴수없는법.안거(安居)란기실꿈의상실이기쉬우며도리어방황의인고속에상당한분량의꿈이추구되고있다고생각합니다.”_1977년10월4일「옥창(獄窓)속의역마(驛馬)」중에서
Q.이책은어떻게세상에나오게되었나요?
A.원래제가보낸편지들을집에서보관하고있었는데,그것이양심수석방을위해뛰고있던후배들의눈에우연히띄게되었죠.그래서이묶음이88년당시평화신문에‘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라는제목으로4회동안연재되었고,이것이매우좋은반응을얻어책으로출판되게된것입니다.원래는제가석방과함께책으로나올예정이었으나,혹시가석방결정에영향을줄수있다는염려때문에한달쯤묶여있다가‘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라는이름으로발간되었습니다.
Q.이책이출간되었을때의소감은어떠셨나요?
A.책이름의‘사색’이라는단어가참으로부끄러웠습니다.제가출소했을때는이미책제목도내용도다정해진상태이고,제가한일이라곤책의제호를붓글씨로썼을따름입니다.그리고저는이책이름을‘다시쓰고싶은편지’로붙이고싶었습니다.이책의글들은겹겹의검열때문에못다쓴편지들입니다.교도관의입회하에서필기구를빌려서썼고,작성된편지는교도소장의검열필도장을받아야했습니다.수신자인가족들을심려시키지말아야한다는자기검열도펜을자주멈칫거리게했습니다.
그리고앞으로이편지를바탕으로새로운글(책)을쓸생각입니다.일체의집필이허락되지않는감옥에서생각의실마리를남겨둘수있는것은편지밖에없었습니다.그래서저는검열을거친편지에실린단어하나에서책한권을연상해낼수있습니다.
(*실제로신영복선생의이후의책들은모두이책『감옥으로부터의사색』에서단초가되어나온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