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

묵묵

$12.10
Description
-희망도 절망도 없이 걸을 때 보이고 들리는 것들에 대하여
고병권의 에세이집 『묵묵』이 출간됐다. 니체, 스피노자, 마르크스 등의 철학을 소개하며 함께 읽어보자고 제안해왔던 고병권이 이번에는 자신의 일상과 강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노들장애인야학과 광화문 거리, 수용시설 그리고 미술관과 대학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시간에서 얻은 배움을 기록했다.
책 제목 ‘묵묵’에는 두 가지가 담겼다. 하나는 ‘묵묵하다’의 사전적 정의인 ‘말없이 잠잠히 자신의 길을 간다’는 뜻으로, 고병권이 그간의 삶을 돌아보며 지향하게 된 마음가짐과 자세를 나타낸다. 또 하나는 먹으로 소리 나지 않는 것들을 최대한 써나가겠다는 다짐이다. 이는 한자 ‘묵默’이 어두운 밤(‘흑黑’), 개(‘견犬’)가 잠잠 히 사람을 따르는 모습을 본 딴 상형문자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곁에 있는 줄도 모른 채 지나쳐왔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묵묵히 걸어가 기록하겠다는 그의 작은 외침은 길을 헤매며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울림 있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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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병권

서울대에서화학을공부했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사회학을공부했다.책읽기를좋아하고사회사상과사회운동에늘관심을기울이며살아왔다.오랫동안연구공동체‘수유너머’에서생활했고지금은노들장애학궁리소회원이다.그동안『화폐,마법의사중주』,『언더그라운드니체』,『다이너마이트니체』,『생각한다는것』,『점거,새로운거번먼트』등여러권의책을썼다.그는마르크스의『자본』을1991년에처음...

목차

프롤로그_아득한동쪽하늘

1희망없는인문학
노들야학의철학교사
말의한계,특히‘옳은말’의한계에대하여
‘생각많은둘째언니’와철학의성숙
목소리와책임
사유하는인간과고통받는인간

2개가짖지않는밤
보는눈과보이는눈
감히해외여행을떠난기초생활수급권자를위하여
자선가의무례
말과한숨사이에서
납득할수없는‘그러므로’
어느소년수용소
쓸모없는사람
약속
말하는침팬지
생명쓰레기
‘내일’이오지않는4000일
고통을일깨워준고통
피살자는면해도살인자를면할수는없다

3빈자리를가꾼다는것
기억이란빈자리를마련하고지키는것
김순석열사,그사후의삶에대하여


4이운명과춤을출수있을까
불가능한코끼리
장애인,슈퍼맨,위버멘쉬
배낭이없는사람
햇빛,그것뿐
재판이전에내려진판결
어느탈시설장애인의해방의경제학
내친구피터의인생담

에필로그_끝이미완인이유

출판사 서평

“이정표를잃은곳에서길이보인다.아,나는이런길위에있구나.”
인문학과지식인의자리를되묻는비평적에세이


『묵묵』에는고병권이지난4년여간발표했던글과신문칼럼이수록되어있다.의도했던것은아니지만모아놓고보니,한동안그는길을잃으며자신의지난시절을돌아보고있었다.‘수유너머’에서짧지않은시간을공부하고가르치며제도권을벗어난인문학공동체의가능성을실험했고,배움의기회를놓친이들에게인문학이지닌효용성과가치를전하는데앞장섰던고병권을떠올리는독자라면이런모습이다소낯설지도모른다.그는한껏높였던목소리를낮추고이렇게고백한다.“나는무엇을위해서,무엇때문에걸었던가.목적과이유를잃고오래허둥댔다”(「프롤로그」).
『묵묵』에는왜자신에게이런변화가생겼는지보다무엇이변화했고새로운무엇을다시고민하게됐는지가더비중있게서술된다.인문학뿐아니라지식,앎에과도한의미가부여됐던것은아닌지회의하고옳은말,분명한목표,책임등에짓눌려또다른폭력을만들어낸적이있음을반성한다.무엇보다인문학자와지식인이자신이말하고쓴글에떳떳한지묻는다.그는2014년에독자를향해썼던‘옳은말은옳은말일뿐이다’라는문장이자신에게고스란히되돌아온경험을적으며,옳은말의범람과한계를비판한다(「말의한계,특히‘옳은말’의한계에대하여」).그렇다면이것은비단고병권에게만해당하는일일까.연일열렸던인문학강연들이어느순간사그라들었고,고된일상을짊어진이들에게인문학이희망이되지못한다는것을우리는거듭확인하지않았던가.현장인문학의전선에뛰어들었던한철학자의자기반성은현재한국사회에서인문학이어디에있는지다시질문하게할것이다.

“최소한10년전의나는길에대한확신이있었다.자부심이있었고희망이있었다.연구자공동체속에서비전을보았고현장인문학활동에서앎에의한구원의가능성을보았다.우리의해방은빵만이아니라장미를필요로하며,인문학이가난한사람들에게최소한장미한다발은될수있다고믿었다.물론그때의비전이환각이었다고생각하지않는다.다만지난몇년의경험으로깨달은것은희망때문에하는일이절망에취약하다는것이다.희망이희망으로만남아시간이지나면어느날사람들은누렇게변색된그두글자를절망이라고읽는다.”(5~6쪽)

“나는앎을통한삶의구원을믿을수없었다.누구보다인문학자자신에게그랬다.가난한사람들은고사하고인문학자신은앎에서구원을얻었는가.그때나는‘옳은말은그저옳은말일뿐’이라는걸깨달았다.정확하고올바른말이라고해도그것은유통되는정보이상이아니었다.옳은말들은기어가빠져공회전하는엔진처럼헛돌았다.”(36~37쪽)

“어두운밤길,내곁에는언제나개한마리가소리없이걷고있었다.”
목소리없는자들의이야기를듣는것에대하여


『묵묵』은역설적으로아무것도보이지않기에만져졌고,말할수없기에들을수있었던것들에대한기록이다.고병권은섣부르게품었던희망과절망을내려놓자아무도없는줄알았던곳에늘누군가가있었음을깨달았다고말한다.그들은목소리를내지못했던게아니었다.언제나그의손을붙들고말건넸는데자신의귀가닫혀있었기에듣지못했을뿐이다.이와관련해책에‘목소리’,‘침묵’,‘빈자리’,‘쓸모없다’,‘듣다’,‘보다’등의단어와서술어가빈번하게쓰이고짧고길었던사람들과의인연이자주묘사되는것도이때문이다.2장‘개가짖지않는밤’에는노들장애인야학에서만났던여러학생들,그리고기초생활수급권자,후원하는자와후원받는자,대학과그곳의학생들,성소수자,시설및수용소에강제수용된사람들,노동자들,(성폭행을당한)여성,난민뿐아니라약물실험의대상이된동물과인간에의해버려진동물들까지등장한다.
또한책에는세월호로,장애인투쟁으로세상을떠난영정속고인에대한자리도짧지않은분량으로마련되어있다(3장).이는고병권이자신의듣지못하는무능을상대방의말하지못하는무능으로성급하게바꿔치기하는일의위험성을강조했던것과연결된다.빈자리를채우기보다그곳을그대로둔채물끄러미오랫동안지켜보는행위는떠난이가못다한이야기를들어주는방식일수있다.고병권은다시한번말한다.“우리가던져야할질문은‘그들은말할수있는가’가아니라‘우리는들을수있는가’이다.

“우리는‘목소리없는자들의목소리’를‘목소리없는자들을위한목소리’로덮지않도록조심해야한다.‘목소리없는자들을위한목소리’를내는사람들은종종자신들의‘목소리듣지못함’을그들의‘목소리내지못함’으로바꾸어버리고,자신들목소리를그들의것으로만듦으로써그들의목소리에덮어쓰기를실행한다.이것은그들을이중침묵에가두는것이다.”(52쪽)

“우리에게는평소잠복성질병처럼영혼밑바닥에자리하고있다가일이터지면삼단논법의대전제처럼기능하는인식이있다.대부분근거없는선입견인지라보통때입밖으로나오는일은드물다.그러나위기감을불러일으키는사건이터지면해당인식이자극을받는다.우리의이후생각과행동은모두거기서도출된다.이를테면영혼밑바닥에‘이방인은적이다’는인식을가진사람은어떤두려운사건을겪을때이방인들을가둘죽음의수용소를쉽게추론해낸다.사건의충격파가그인식의나뭇가지를잠시흔들기만하면된다.”(94~95쪽)

“지금제가말하고싶은것은사라진자리로서,상실된자리로서빈자리가아닙니다.저는우리가만들어내야하는,우리가마련해야하는자리로서빈자리를말하고싶습니다.저는기억한다는것이그런것이라고생각합니다.”(146쪽)

“그냥걷자.요란떨지말고.”
내안의영리함을버리고걷기위한고병권의묵묵선언


고병권은책을준비하는동안지금처럼나아갈길이보이지않고,내세울게없으며,무엇을하자고제안하기어려운때가없었다는말을여러번했다.그렇게텅비어버린것같은순간,그가택한방법은그저묵묵히걷는일이었다.「프롤로그」에서“그냥걷자.요란떨지말고”라고썼던그는「에필로그」에서도“생이란평가하는것이아니고살아내는것이다.(…)우리는끝을관통하는방식으로만끝에이를것이다”라고또쓴다.덧붙여루쉰의마지막글이미완인것도그가‘계속’쓰는사람으로살아가려고했기때문이라고말한다.그래서일까.그는이번책이어디로가는지알수없어의심이생기고,자신감이떨어진누군가에게나도별반다르지않지만계속걷자고말해주는역할을하기를바란다.
여기서잊지말아야할것은고병권의묵묵선언이본격적인춤을추기위한일종의준비운동이라는점이다.그는4장에수록된글들에서한걸음더나아가맹학교노들장애인야학의신경수,(故)김호식학생등덕분에발견하게된인식의전환과니체가말했던위버멘쉬의가능성을찾아낸다.가령시각장애인학생들이손으로만지고작업한,한번도본적이없는코끼리들과초현실주의작가들이발표한익숙한일상을흔드는작품들에서유사성을발견한부분이대표적이다(「불가능한코끼리」).그렇다면이렇게책에마침표를찍은그는이미곁에있는사람들과함께‘이운명과춤을추기’시작한게아닐까.

“이제장애인에대한그의규정을다시음미해보자.그가말한‘배낭이없는삶’이란자율적이지못한삶,누군가에게예속된채살아야만하는삶,자기삶을지배할수없는삶,자기단련이없는삶,타인을돌볼수없는삶,무엇보다주권자로서투쟁할수없는삶을의미한다.디오게네스가중시한것은누군가에게정신적·신체적손상이있는지여부가아니라그가과연주권자의삶을사는가였다.”(192쪽)

“왜그의글은마지막글은미완인가.그것은그들이끝까지쓰기때문일것이다.끝내는글을쓰는것이아니라,마지막순간까지글을쓰고있기때문이다.”(233쪽)

“영애씨는지난루쉰읽기를회고하며「행인」이가장기억에남는다고했다.그러고보니이작품은‘끝’에대한루쉰의시각을잘담은글이기도하다.어디서왜왔는지도모르고어디로가는지도모르면서계속해서걸어가는행인.그작품속에서행인은어느노인에게길앞쪽에무엇이있는지를묻는다.그러자노인은그앞쪽에는무덤이있을뿐이라고답한다.”(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