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탄생,산문의맛
떨림,기대,우울,슬픔,자기혐오,사라지고싶은충동,외로움,질투,갈망,답답함,폭력,치기,우정,첫사랑,상실,알수없는미열….우리가교실에서보냈던시간이있다.지금,우리는그때꿈꾸던어른이되었을까?교실창가쪽세번째줄에앉던그아이는지금어디에서무엇을하고있을까?우리가사랑하는열두명의시인들(김승일,김행숙,김현,배수연,서윤후,서효인,신철규,신해욱,오은,유진목,임솔아,황인찬)이그시절과지금,시와산문을겹쳐쓴이상한테마시×산문집『교실의시』가출간되었다.
이책은‘교실’이라는이미지를중심으로,아이가어른이된다는것에관해,그리고지금도여전히남아있는십대시절의기억?감각?감정,그것들과함께살아가는법에관해들려준다.비성년의시간을담아낸열두편의시,시를구체화하며다른어른과시의탄생에대해이야기하는열두편의산문을엮었다.또한예술비평에서활발히활동하고있는평론가양효실의비평에세이를발문으로덧붙여,문학평론과는조금다른관점과맥락에서이책을더잘읽을수있는법을안내한다.
『교실의시』는교실과십대시절,비성년의시간에관해시를쓴시인들에게기존에썼던시한편을고르고,그시가자아내는정서나감각을바탕으로하고싶은이야기를산문형식으로자유롭게써달라는제안에서시작되었다.이때,시인들은다음과같은질문들에답해야했다.‘지금도남아있는십대시절의기억,또는감각이나감정이있다면,그것은무엇인가요?그때생각하던어른과세상은어떤것이었고,아이는어떻게어른이되었나요?또는어른이되지못했나요/않았나요?스무살이지났지만여전히어른이되고싶지않은사람들과어떻게어른이되어야할지모르는사람들이가득한시대입니다.우리가십대시절과비성년의시간,그러니까‘어른’의경계나바깥에서삶을더잘꾸릴수있는감성을발견할수있을까요?그리고그것을가능케하는시는어떻게탄생하는것인가요?’
이질문에대해시인들이시와산문을엮어들려주는사려깊은대답에서,우리는먼저,시인들이왜이시를썼는지,시라는것이어떻게탄생하는지,어떤마음들이시가되는지에관한비하인드스토리를엿볼수있다.그럼으로써우리는우리삶과시의언어가서로어떻게스며드는지에관해,가장접근하기쉬울이야기를듣는다.한편,“산문은시를보충하도록,암시적인시를이해가능하게만들임무가있었을것같지만,꼭그렇지도않다.그래서이책의시와산문은보충적이라기보다는병렬적이다.굳이시를이해하기위해서가아니라도산문은따로읽을만한재미가있다는말이다.”(양효실,「발문」)실제로,이책에참여한시인들은대부분탁월한산문가이거나소설가이거나평론가이다.자전적이고담백한글부터단편소설처럼읽히는글,산문시같은글,비평에세이,이모든것을하나로뒤섞은글에이르기까지저마다의고유한스타일을선보여독자들은다양한산문의맛을느낄수있다.
비슷한테마나결을가진글들을네개의부로묶었는데,1부에는시인들이십대시절과현재를교차시키며시쓰기와성장에관해이야기하는글들을,2부에는죽음과삶,세월호,상징적죽음에관한글들을,3부에는몽환적이고부조리한기억을담아낸글들을,4부에는여러시간들,또는여럿의‘나’와함께살아가는법을말하는글들을실었다.
교실의의미,다른어른의탄생?
교실은칠판과교탁,책상과의자,사물함,교복을입은학생들과교사가존재하는물리적공간이다.또한우리가학교와가정에속해있어야했던십대시절,즉어른의바깥에존재하는시간인동시에,아이가처음접하는사회의축소판이기도하다(‘교실’이라고할때,우리는어쩔수없이2014년세월호의아이들과단원고의교실을떠올리게되기도한다.이집단기억과‘집단적외상’으로인해이책에는세월호와직간접적으로관련된두편의시와산문이실려있다).그안에서아이들은배움,훈육과폭력,권력관계,우정,사랑,그리고온갖감정과상처들을경험하면서,또그것을긍정하거나부정·단절하면서‘어른’또는‘비성년’,아니‘나’가되어간다.교실은지금의우리를만든어떤감성과태도의원형·기원이존재하는곳이다.『교실의시』가주목하는곳은바로이지점이다.이책은시인들의예민한감각과언어를통해,그때의교실과지금우리삶을겹쳐다른풍경을발견해내고자했다.어른과성장과성숙에관해,‘어른’의타자로여겨지는‘아이’,그리고그시절의감성과경험에서무언가실마리를찾고다른어른을상상하고자했다.우리는어떻게지금-여기까지왔을까?진부한어른이되지않고어떻게다르게잘살수있을까?
이에대한시인들의대답은저마다다르지만,우리는그안에서어떤일관된흐름을발견해낼수있을지도모른다.황인찬은“그모든미숙함과흉함과어리석음의시간”을,서윤후는“나도모르게부모에게흠집이되어선안된다고다짐했던애어른의마음”을부정하지않는다.황인찬은“여전히학창시절의나에게사로잡혀있으며,그로부터벗어나고싶어”하고,서윤후는“그것이내것이아닐수없다는절망감을순순히껴안”는다.배수연은“내가가진고통이부끄러워스스로를은폐하지도,다른사람의고통을함부로대하지도않는일”이“더이상몸이자라지않는사람안에서도일어날수있는성장”이라고쓴다.
그러므로김현은“어른이란어디서든울음을터뜨릴줄아는이”이자“어디서든웃음을터뜨릴줄아는이”이며,“타인의얼굴에서시간을,시간에힘입어온기쁨과슬픔을읽어내려고노력하는사람”이라고‘어른’을다르게정의한다.신철규는학교교육이어른이라고가르치는것이“타인의고통에무감각해지는것”이라고생각하며,“나또한누군가에게상처를주는존재임을조금씩받아들이기시작했을때,슬픔이어디에서오는지오래생각”한후,다른어른이되었을것이다.유진목역시“나는나대로내가정한방식대로행복하게살고싶었”기때문에“내가원래있던곳으로는돌아가고싶지않았”고,십대시절에함께했던어른들과멀어져“내삶”을살게되었을것이다.
한편,임솔아와김승일은산문에서도비성년화자를불러내마음의원형을드러내고,그것이어떻게시가되었는지를보여준다.임솔아는아이가동네와학교와운동장을떠돌게하고,김승일은여러장소와시간과목소리들을겹쳐놓는다.서효인은기억에서거의다지웠던중학교시절의이야기를꺼내며,그교실의흔적이“이제사회곳곳으로나아가밥벌이하”고사는동년배들에게여전히남아있기때문에그들은“혐오가혐오인지모르고,폭력이폭력인지모르는무뢰배”가됐을지도모른다고쓴다.
그렇다면우리는이수많은기억및목소리들과함께어떻게잘살아갈수있을까?오은은“나는무수한척을거쳐어른이되었”고,“보이는나의가짓수가늘어날수록진짜나는상대적으로희미해질수밖에없”지만,‘척하는일’이진짜나와완전히괴리되는것은아니라고말한다.신해욱은“다큰사람이되었는데도나를의탁할수있는‘어른’을간절히원했”던마음을고백하며“‘진정한어른’같은것은평생될수없”지만,“누가나를지켜주거나가만히지켜봐주는듯한기분”으로“혼자이면서혼자가아닐”수있는방법을이야기한다.김행숙은초등학교6학년시절에잘이해할수없었던슬픔에관한기억을끄집어내고,‘왜울었을까?’라고오랫동안남아있던물음에대해대답한다.그러면서‘투명인간’조차되지못하고“불편하게자꾸거슬리는존재”,즉‘소수자’였던그아이를발견해낸다.그리고그렇게기억속을헤매며,시와함께“내슬픔에대해충분히응대하고항의하고끌어안으려고하는사람이되”(서윤후)면서,무수한‘나’를만나면서기존의어른이라는관념자체를무용하게만드는이들이탄생하는중일까?
공통의마음풍경,시인들의시간제조법
시인들의십대시절과교실에관한이야기로부터출발하는『교실의시』는여전히그시기를떠나지못하는,또는그시기를서서히잊어가는사람들을가슴시린교실로초대한다.2010년대에활발히활동한,대부분1980년대생인시인들은이산문들을자신의경험과기억으로써내려갔으며,한때나였을아이와그시절을함께한친구들의안부를묻는다.그렇기에이책은시인개인의내밀한마음풍경인동시에,우리가통과했고통과중인바로그시간에관한낯설지않은이야기,2010년대를지나는이들이공유하는공통의마음풍경이기도하다.
이때,과거를쉽사리낭만화하지않으며노스탤지어에빠지지않는다는것이이책의미덕이다.그것은“한때아이였거나계속아이인사람들은어른들의세계에서수인으로,약자로,생존가능성이희박한존재로살아”가며,“불완전한자기자신을견디면서지금-여기까지왔다는것은기적이거나악몽”이기때문일것이다.기억속교실은빛보다어둠이더짙다.하지만더중요한이유는,이책이“그때를지금으로감각하는시인들,그때를떠나지못하는시인들의지금에대한이야기”이기때문이다.“지나간시간과지금의시간이중첩되고각자의논리적자리에상호간섭하는시와산문을읽으면서우리는지나간것은단한번도지나가지않았다는것,계속돌아오는과거를잊지않고기억하고살을부여하는일의무의미한가치를생각하게된다.”(양효실,「발문」)이책은그때와지금,그리고여러시간들과함께살아가는법을이야기한다.꿈같은기억들,기억속의타인들,내안의어른아닌존재들과함께살아가는법을이야기한다.우리는여기서시간을끌어안는시인들의용감한태도,또는세심한윤리를배우게된다.그렇게진부한어른이아닌다른존재의탄생을본다.또한시와산문에서과거와현재를겹치며새로운시간을만들어내는시인들의시간제조법을들여다보는일은그자체로아름다운체험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