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청(소)년노동자의삶과죽음
프로그래머가되고싶은한아이가있었다.일찌감치진로를정해취업에유리하다는마이스터고에진학했고,졸업전에문화산업으로유명한대기업에서현장실습생으로사회생활을시작했다.그리고하게된일은식품공장에서소시지를포장하는일.장시간노동과사내폭력을견디지못한아이는2014년1월,스스로목숨을끊었다.그전날밤,그는트위터에이렇게적었다.“너무두렵습니다.내일난제정신으로회사를다닐수있을까요?”그아이의이름은김동준,동아마이스터고3학년,현장실습생.
그이전에도이후에도현장실습생들에게는비슷한죽음이이어져왔다.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재학생들이학생겸노동자신분으로일을배우게하는제도인현장실습제도는청(소)년노동자들의무덤이되었다.2017년11월,제주지역생수공장에서일하던현장실습생이민호군이적재프레스에몸이끼어숨졌고,같은해1월엔전주지역고객서비스센터해지방어팀현장실습생홍수연양이업무스트레스로자살하는사건,그리고창원지역에서공고를졸업하고현장실습생을거쳐산업기능요원으로일하던김군이숨진채발견되는사건이있었다.2016년5월구의역에서스크린도어를고치다숨진청년노동자김군도현장실습생으로일을시작했다.비슷한시기,성남지역외식업체에서수프끓이기업무를담당하다가사내괴롭힘으로생을마감한김동균군도마찬가지였다.‘어느청년노동자의삶과죽음’을기록하고증언한『전태일평전』이출간된지수십년이지났지만,일을막배우기시작한아이들의사고와죽음은오늘날에도끊이지않는다.“지하철을고치다가,자동차를만들다가,뷔페음식점에서수프를끓이다가,콜센터에서전화를받다가,생수를포장·운반하다가,햄을만들다가,승강기를수리하다가….그러니까우리가먹고마시고이용하는모든일상영역에‘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의흔적이남아있다.”(17쪽)
『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은이처럼김동준군과수많은김동준군들,제대로알려지지못하고애도되지못한청(소)년노동자들의죽음을규명·애도하고그들의죽음을사회적죽음으로기억하고자한다.나아가,그상실이후를살아가는유가족들의슬픔을함께나누고자한다(이책의말미에실린현장실습생유가족모임은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다시는’이만들어지는데작은불씨가되었다).이책은“죽음을통해서야겨우비운의현장실습생으로박제되”고“죽어서도비슷한사건이발생할때마다○○군,○○양으로불려나오”는아이들을“현장실습생김군혹은이군이아니라오롯한존재,저마다고유한관계속에서경험과기억을쌓아갔던복잡하고다채로운한사람으로기억하”(11쪽)고자하는작업이다.그리고그것은이아이들이왜죽을수밖에없었는가에대한물음,그리고그들이어떤사람이었고어떤삶을살고싶었는가에대한물음으로부터출발한다.
일하고꿈꾸고절망하고,다시꿈꾸는사람들의이야기
『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은산업재해로세상을뜨고나서야겨우보이는청(소)년노동자,그리고대학입시중심의교육에서보이지않게된특성화고학생들의목소리에귀기울이는동시에,지금여기서일하고살아가는우리모두의안부를묻는다.이책은김동준군이노트와SNS에남긴기록으로부터출발해,떠난이의삶을추적해재구성하는한편,그죽음이후를살아가는사람들의삶을그곳에포개고겹쳐본다.김동준군의어머니,이사건을언론에알린이모,사건담당노무사부터,2017년제주에서사고로목숨을잃은현장실습생이민호군의아버지,특성화고교사,청(소)년노동자이며특성화고재학생또는졸업생인이들까지다양한사람들의이야기가이어진다.
그러므로이책은김동준군의죽음에대한추모,또는청(소)년노동자들의억울한죽음이도처에일어나고있다는현실고발에그치지않는다.기계정비전문가가되고싶다는속깊은고등학생임현지,공부하기싫고빨리돈이벌고싶었다는졸업생서동현,얼떨결에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위원장을맡게되었다는스물한살이은아는자신들의꿈을이야기하는동시에미래를불안해하기도,특성화고학생들에대한편견과차별을토로하기도한다.나아가,어떻게어떤일이부당하고위험한일인지알수있을지,인간다운노동은어떻게가능하겠냐고되묻는다.이들이맞이할미래,어른의시간은우리가꿈꾸는것,또는우리가절망하는것과맞닿아있다.이책에서아들을잃은어머니가,사회운동을했던이모가,동준군사건을담당했던노무사가,마찬가지로아들을잃은아버지가,노동인권교육에관심을가진특성화고교사가자신의삶에관한이야기를들려줄때,그이야기들과우리삶의접점은좀더명확해진다.이들이있는가정과일터와학교는,우리가지나온곳이자지금존재하는곳일지도모르며,우리아이들이있을지도모르는곳이다.김동준군과직간접적으로얽힌사람들의이야기는,청(소)년노동자에게위험노동과죽음이집중되는사회뿐만아니라,일상의연쇄적폭력에무감각한사회,너나없이몸이부서져라일하며자신을지키지못하는삶,일하고꿈꾸고절망했던보편적인경험들,그리고우리가어떻게살고싶으며어떤세상을꿈꾸고있었는지를강력하게환기시킨다.은유의섬세한글쓰기는이들이붙들려있는슬픔·분노·무기력·희망을생생하게담아내며,이격렬하고깊은감정의풍경을포착한임진실의사진이울림을증폭시킨다.
‘겸손한목격자’은유의섬세한르포르타주에세이
은유작가는글쓰기에세이집『글쓰기의최전선』『쓰기의말들』과“따뜻하면서도날카로운일상밀착형글쓰기”를보여준『싸울때마다투명해진다』『다가오는말들』로독자들의폭넓은찬사를받았지만,간첩조작사건피해자인터뷰집『폭력과존엄사이』,책만들고알리는사람들인터뷰집『출판하는마음』등을쓴탁월한인터뷰어이자르포르타주작가이기도하다.『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은“세상을바꿔야할이유가없는자들의언어”가아니라,“자기목소리를내지못하는이들”,“언어를갖지못한사람들”의삶을솔직하게담아내는언어,그리고사람들의마음을움직이는감응의글쓰기에대한고민이전면화된책으로,이책에서은유는‘겸손한목격자’로서의면모를보여준다.
2년여에걸친인터뷰와집필작업에대해은유는“큰아픔을겪는사람들의이야기를듣는”“작업이힘들기는했지만힘들지만은않았다”(31쪽)고적었다.“두세배분량의인터뷰원본에서무엇을남기고무엇을지울것인가는글쓰는사람의선택”이며,“자주주춤”했고“지식이부족한건아닌지,두렵고혼란스러워문든도망치고싶었”(32쪽)지만,은유는기꺼이인터뷰이들의곁에서,그들의목소리를받아쓰며,그들을사로잡는감정들을섬세하게드러내는데성공했다.그리고그것은은유가‘겸손한목격자’의자리에있었기때문이다.“매순간생각과감각이달라지는유동적이고틀리기쉬운취약하고불완전한한존재가또다른약한존재의삶의이야기를보고듣고기록한다는마음으로임했다.나의최선이결과의최선이되도록노력했다.어떤문학적재능이나사회학적지식보다는자기판단을내려놓는겸손함과듣고또듣는성실함으로할수있는작업이었기에가능했다.”(33쪽)우리는은유가남긴이겹겹의이야기덕분에,작지만큰사람들의목소리를듣고,알지못했던,그리고보지못했던아이들을지금이나마만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