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홍대용의 북경 기행 새로 읽기)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홍대용의 북경 기행 새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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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근대화의 여명기에 홍대용의 북경 기행이 있었다
홍대용의 북경 기행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조선 선비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장장 6개월에 걸친 북경 여행길에 오른다. 일평생 조선을 벗어나지 못했던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 세계 문명의 중심지 북경을 관광한다는 것은 이루기 힘든 꿈이었다. 홍대용은 천금 같은 기회를 얻어 북경을 다녀왔고, 자신의 진기한 견문을 『연기』(燕記), 『간정필담』(乾淨筆譚), 『을병연행록』이라는 3부작의 여행기에 담아 세상에 전했다.
북경 여행기를 통해 홍대용은 전성기를 누리던 건륭제 치하 청 제국의 발전상을 꼼꼼히 관찰하고 생생하게 보고했다. 아울러 항주(杭州, 현 저장성 항저우시) 출신의 비범한 세 명의 선비인 엄성(嚴誠)·반정균(潘庭筠)·육비(陸飛)와 나눈 학문적 대화를 『간정필담』에 소개했다. 그리하여 그의 여행기는 당대는 물론 19세기 이후에도 널리 읽혔고, 김창업의 『연행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연행록(燕行錄)으로 손꼽혔다.
홍대용의 북경 여행은 그의 삶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그의 주위에 모여든 박지원·이덕무·박제가 등 오늘날 ‘북학파’(北學派)라 일컫는 인사들에게도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쳐 ‘북학사상’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북학파 인사들은 홍대용의 여행기를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자극받아 잇달아 북경 여행에 나섰고 『북학의』 『열하일기』 등의 빼어난 저술을 통해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고 역설했다.
이렇게 볼 때, 홍대용의 북경 여행기를 새로 읽는다는 것은 홍대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물론이요, 조선이 근대문명을 접하고 근대화로 서서히 첫발을 내딛던 시기 일군의 학자들 사이에서 구가되던 북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 된다. 하지만 종래의 연구에서는 홍대용의 사상 발전에 북경 여행이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정작 그의 여행기는 제대로 연구되지 못하고 피상적인 논의에만 머물렀다. 이 책은 3부작 여행기 전부를 대상으로 하며(이본 포함) 면밀한 텍스트 연구를 기초로 해서 홍대용의 북경 여행기를 완전히 새롭게 읽었다.
한국사에서 근대를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250여 년 전 홍대용의 북경 여행은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청나라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굴기하고 서양 열강이 선교사를 앞세워 동아시아 침략을 개시하던 그 무렵, 조선에는 거대한 시대적 전환을 예감하고 그 대책으로 사회 개혁과 사상적 혁신을 고민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홍대용은 이 시기의 선각자 중 한 사람이다. 근대화의 여명기로부터 오랜 암중모색과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의 한국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본다면, 홍대용의 북경 여행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현대 한국 사회의 형성 과정을 살피는 작업이 될 것이다.
저자

김명호

1953년부산에서출생했다.서울대국문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덕성여대국문과와성균관대한문학과의교수를거쳐서울대국문과교수를역임했다.정년퇴임후필생의과제인연암박지원평전과환재박규수연구의완성에힘쓰고있다.저서로『열하일기연구』,『박지원문학연구』,『초기한미관계의재조명』,『환재박규수연구』,『연암문학의심층탐구』,『홍대용과항주의세선비』등이있으며,국역서로『연암집』(전3권,신호열공역)과『지금조선의시를쓰라』(편역)가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서론

1부여행에나서기까지
1장가문과학업
남양홍씨명문가의자제/성리학자김원행의애제자
2장부친홍역의임지에서
부친의지방관활동/부친의유배와은거
3장농수각의혼천의
노학자나경적과의만남/혼천의제작과개량/수촌은거시절

2부청제국의수도에서
1장을유년동지사행
친지와우인들의송별/압록강너머북경까지
2장천주당과서양천문학수용
천주교남당방문/천주교동당과관상대탐방/천주교탐문
3장유리창과당금연주법습득
흠천감관원장경의점포방문/태상시악관유생의점포방문

3부항주세선비와의교유
1장절강향시의급제자
항주선비와의운명적만남/을유년절강향시와세선비의주권
2장호탕한선비육비
불우한시인이자화가/주자학파에비판적인학자
3장고결한선비엄성
짧은생애와폭넓은교유/다재다능한문인학자
4장명랑한선비반정균
입신출세를지향한재사/시서화와불교심취
5장문제적인물오영방
명나라유민의기풍을계승한학자/옛항주의고상한선비들

4부존명의식과우정론
1장『감구집』과김상헌의한시
『감구집』을통해깊어진우정/김상헌의시가『감구집』에실린사연/왕사정과『감구집』에대한뜨거운관심
2장만촌여유량에대한관심
여유량과그의저술탐문/여유량에대한국내의관심고조/여유량과홍대용의사상적영향관계
3장명나라의관제도계승론
청나라의관제도관찰/의관제도에관한토론/조선여성의복식개혁추구
4장화이차별을초월한우정
존명의리에대한공감/세선비의처신에대한충언/최후의작별편지
5장청황족과의특이한사귐
왕자‘양혼’의정체/청나라왕자의각별한환대/빈번한서신교환과서양시계선물/만주인과우정을맺게된이유

5부사상적변화
1장청제국의발전상관찰
강희제와청조통치예찬/시장·수레·선박/건물·도로·성곽·벽돌/편리한일용기물들/청나라의무기와악기
2장북학사상의태동
청문물의공통특징/‘대규모세심법’과『주례』/청문물수용의논리
3장조선에서온‘성리학대가’
청나라학풍탐색/육비와의양명학토론/엄성과의주자학토론
4장새로운고증학풍의충격
건륭시대고증학의한중심지,항주/주자의시경학에대한비판과반론/최종토론과홍대용의총평/주자의주역관에대한이견
5장고증학풍에대한반향
귀국후홍대용의대응/이덕무의적극적관심/박지원의개방적자세/고증학수용의한계

결론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홍대용과항주의세선비,고도의지적대화를나누다
한중일학계를통틀어항주세선비의가계와학맥에대한최초의연구

조선후기실학사상과실학자들에대한연구는학계의레드오션이라할정도로많은학자와연구성과들이축적되어있다.홍대용과박지원이대표적인연구대상인데,그간홍대용을연구한국내대다수의학자들은항주세선비의존재를알지만연구대상에서제외하거나혹은수준낮은시골선비정도로여기기도했다.하지만이들이나고자란항주는당시중국에서경제적으로나문화적으로나가장발달한강남지방의대도회였으며,양명학과고증학,금석학,문자학,서지학등다양한학문이만개한곳이었다.더구나이들은치열한경쟁을뚫고절강향시를통과해북경으로올라온엘리트지식인이었다.1만수천명에달하는수험생중94명을선발하는절강향시에서육비는1등으로합격하여‘해원’이되었고,반정균은21등,엄성은69등으로합격했다.홍대용이이들과가까워진계기는실력있는학자이면서동시에이들이과거급제에결코연연하지않으며청조치하에서도옛명나라를잊지않고존모하는고결한인품의소유자였다는점때문이었다.홍대용은이와같이비범한중국선비들과깊은우정을맺고당대유행한최신학문까지도두루대화를나누었다.이책에서는육비와의양명학토론,엄성과의주자학토론을집중적으로다루었고,주자의시경학에대한세선비의비판과홍대용의옹호,주자의주역관에대한견해등을정리했다.
홍대용과항주세선비의교유는북경여행의하이라이트이면서동시에홍대용의사상적변화를해명하는관건이된다.이책의저자는홍대용의3부작여행기중항주의세선비와의교유및이들과나눈필담을주로기록한『간정필담』을집중연구해이들과의고도의지적인만남을다루었다.뿐만아니라세선비의가계와인맥,스승및학문의연원등을살펴정리했다.항주세선비에대한이처럼자세한연구는이책이처음이다.
북경에서귀국한직후부터거의말년까지홍대용이청조문인들과주고받은서신은100여편이상이현전하지만,아직제대로연구되지못하고있다.이러한왕복서신들을주된자료로삼아홍대용이엄성·육비·손유의·등사민등청조문인들과나눈일련의학술토론을고찰해본다면,홍대용의후반기생애에지속된사상적모색과정을규명할수있을것이다.

‘대규모세심법’,북학파의청문물수용논리를마련하다
북학사상논리의기반

홍대용은여행전에자신보다40~50년앞서북경을다녀온김창업과이기지의연행록을숙지했으며,여행중에도휴대했다.중국도처에서김창업의『연행일기』를여행안내서삼아꺼내보았고,이기지의『일암연기』도초록해서지니고다녔다.노론계의학통과인맥을감안하면,홍대용이이두사람의연행록을익히보았을뿐만아니라,이이두사람의연행록과홍대용의여행기가많은공통점을보여주는것은당연하다고하겠다.
당시조선에서는반청(反淸)감정이여전해서연행을간조선인이청나라관원이나문사들과사적으로접촉하는것을좋지않게여기는풍조가있었고,홍대용은여행을다녀온뒤에도이문제로산림학자김종후와반목하는등시달림을당했지만,그럴때홍대용은김창업의선례를들었다.자제군관신분으로여행에나선김창업도이원영이나마유병같이황제의시위(侍衛)벼슬을한만주인들과거리낌없이교제했는데,마찬가지로자제군관의신분인자신이중국인들과사적으로교유하는것이무슨문제냐고반문했다.
홍대용은박지원을상대로북경천주당의파이프오르간에대해논하면서,선배김창업과이기지가탁월한식견으로중국을잘관찰하기는했지만이들의연행록중천주당에관한기록만큼은미흡한점이있다고비판한바있다.청나라의발전상과강희제의업적을예찬한두선배의견해를계승한홍대용은여기서한발더나아가강희제와비교하여옹정제와건륭제의사치를비판했다.저자는청나라의실정에대한관찰에서홍대용의북경여행기가김창업ㆍ이기지의여행기와뚜렷한공통점과아울러그보다진일보한인식을보여준다고말한다.
홍대용은청문물을한마디로‘대규모세심법’이라정의한다.물론,홍대용의북경여행전후에도청문물의광대하거나정밀한특징을통찰한사람들이없지않았지만,홍대용은풍부하고다양한견문을바탕으로청문물의근본특징을‘대규모세심법’이란명제로명확하게요약했다.그이후‘대규모세심법’은북학파에게청문물을파악하는기본틀로받아들여졌다.『열하일기』에서박지원은압록강을막건너당도한국경의작은고을인책문의번화함을보자마자홍대용이말한‘대규모세심법’을상기했다고한다.
홍대용은청문물이실은중화문물이며,『주례』에구현된‘대규모세심법’을계승했다고보았다.중화문물을중국의특정왕조의소산이아니라,고대의성현들이제작한이상적인문물제도로인식한것이다.이와같이고대의중화문물을보편적인이상으로설정하고청문물을청왕조와분리하여사고함으로써,홍대용은당시조선의지배적이념이던존명배청주의(尊明排淸主義)와충돌을피하면서조심스럽게청문물수용의논리를마련할수있었다.이후‘대규모세심법’은실학을추구하던이들에게주요한논리로받아들여지게되고,북학사상을조선땅에전파할단단한기반이되었다.

연암의길에서홍대용을만나다

이책의저자김명호교수는연암박지원연구의최고권위자로손꼽히는학자다.정년퇴직을즈음하여저자가필생의과제로삼은‘연암박지원평전’을집필하던중‘홍대용’이라는큰산을만났다.박지원이삼십대중반에홍대용과처음우정을맺고그의영향으로북학사상을품게되는대목에이르러그만집필을멈출수밖에없었다.집필을시작할당시에는홍대용에관한그간의선행연구를바탕으로이부분을순조롭게쓸것이라예상했지만,홍대용에관한많은부분이여전히연구되지않았음을알게되었다.박지원만큼홍대용을정확하게파악하지못한다면,더이상의집필이어렵다고판단한저자는잠시평전집필을멈추고홍대용연구에매진하기시작했다.2015년부터시작된홍대용연구는5년의시간을기울인뒤에야결실을맺게되었다.
홍대용의생애에서북경여행은가장중요한사건이었다.이여행을분기점으로해서그의생애는두시기로나뉘는데,전반기가북경여행을위한오랜준비기간이었다면,후반기는여행체험을충실히기록하고주위에전파하는한편여행당시교분을맺은청나라지식인들과서신교류를지속하면서사상적전환을모색한시기라할수있다.
이책은홍대용의가계부터조부와부친의행적,초년시절의홍대용부터노년의홍대용까지전생애를정리했다.특히부친홍역이환곡의가분문제로유배형에처해진것을두고탐관오리였다는주장에대해서는,사건의전말을자세히살펴해명했다.연암과담헌의관계를왜곡하는주장에대해서도북경여행이후북학사상의형성에서서로에게영향을주었던부분을별도의장으로정리했다.북학파와북학사상,그리고후세대사람들에미친근대화의영향까지모두한책에서다루었다.
이렇게보면이책은홍대용의평전같이여겨지지만,홍대용의북경여행이그만큼전생애에걸쳐가장중요한사건이었음을증명하기위해서는젊은시절혼천의등천문기구를만들고존명배청에철두철미했던젊은홍대용을설명해야했고,귀국후집필작업과이덕무박지원등북학파학자들의반향을설명해야했다.이처럼저자는홍대용의북경여행과이시기항주의세선비와의만남의중요성을설명하기위해홍대용의모든것을다루는대작업을했다.
이책의구성
이책은전체5부21장으로구성되어있다.본문500여쪽에미주만250여쪽에달하고1300여개의미주가달렸다.매우정치한학술서지만,일반독자가쉽게읽을수있도록평전의글쓰기방식을취했다.

1부여행에나서기까지
홍대용의북경여행에대한배경지식으로,여행에나서기까지어떠한선비로성장했는지그의전반기생애를살폈다.명문가의자제로태어난홍대용이과거공부나성리학에만몰두하지않고일찍부터‘고학’(古學:고대의실용적인유학)을지향한사실에주목했다.또한홍대용부친의관직활동과밀착해서천문관측기구인혼천의제작등젊은시절홍대용의폭넓은학문적탐구를살폈다.

2부청제국의수도에서
북경으로의출발에미쳐친지와우인들이보인반응과홍대용자신의각오를살피고북경으로여행하면서그의의식에일어난변화를추적했다.이어서북경체류중에홍대용이자주찾아간천주당과유리창을중심으로,서양의선진적인천문학을탐문하고당금의연주법을배우러다닌사실을논했다.홍대용의혼천의와거문고,천문학과음악에대해가졌던관심과조예가북경여행에서도십분발휘되었음을볼수있다.

3부항주세선비와의교유/4부존명의식과우정론
홍대용과항주세선비의교유를집중적으로고찰했다.중국절강성의향시에급제한세선비의과거답안지를통해이들이얼마나우수한선비였던가를확인하고,육비·엄성·반정균각자의생애와학문적성향을살폈다.아울러이들에게선배이자스승으로서영향을미친오영방을비롯한항주의고사(高士)들에대해서도다루었다.항주세선비에대한이와같은이해를토대로해서,홍대용이이들과교유하며사상적으로소통할수있었던지점들을밝혔다.척화파김상헌의한시를수록한『감구집』,청나라의지배에저항한주자학자여유량,조선이계승한명나라의의관제도등에대한공통관심에서드러난존명(尊明)의식을바탕으로,홍대용과항주세선비가화이(華夷:중국인과외국인)의차별을초월해우정을맺을수있었음을논증했다.또한홍대용이한인(漢人)지식인들뿐아니라청나라황족과교분을맺은특이한사건도함께살폈다.

5부사상적변화
북경여행이후나타난홍대용의사상적변화를분석했다.홍대용을비롯한인사들이청나라의눈부신번영을목도한결과북학사상이대두하게되었다는주장이통설화되기는했지만,청문물에대한홍대용의관찰을남김없이종합하고깊이있게분석한연구는찾아보기어렵다.그러므로이장에서는홍대용이청나라선진문물의공통특징을꿰뚫어보면서,존명의리와배치되지않는청문물수용의논리를모색했던사실을규명했다.청제국의발전상을목도한것과아울러,항주세선비와교유하면서청나라학계의고증학풍을처음접하게된것은홍대용의사상적변화를초래한또하나의중요한요인이었다.이는『간정필담』중의학문적대화부분을통해확인할수있는사실이지만,이러한부분은거의연구되지않았다.이장에서는홍대용이건륭시대고증학의한중심지인항주출신의세선비와주자의『시경』해석을두고벌인치열한토론을중심으로,당시이루어진높은수준의학술담론을면밀하게분석했다.또한홍대용의『간정필담』을통해소개된청조고증학이당시조선에서어떤반향을일으켰는지도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