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문명의 통로, 연행로를 걷다

600년 문명의 통로, 연행로를 걷다

$37.10
Description
이 책은 연행로(燕行路)에 대한 보고서이다. 연행로란 무엇인가? 연행에 이용했던 길이다. 연행은 뭘까? 연경행(燕京行)의 줄임말로, 연경에 간다는 뜻이다. 연경은 어디인가?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수도, 즉 오늘날의 북경 지역이다. 연경엔 누가 언제 왜 갔을까? 근대 이전 외교는 사행으로 실천되었고, 원명청 시기 그들의 수도가 지금의 북경이었기에 정기적으로 사신이 파견되었다. 하여 연경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람을 연행사(燕行使),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행록(燕行錄)이라 한다. 연행로는 오랜 세월 사행로이자 교역로였으며 문명로였다. 군사로였고 망명로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 오랜 길을 찾아 나서고, 그 길을 걷고, 거기 서서 옛 사연을 떠올린 사연들이 담겨 있다.
연행의 역사는, 원나라의 북경 도읍 시점인 1267년부터 1894년까지 셈하면 627년이 된다. 여기서 그 사이 남경 사행이 이루어진 53년을 빼면 574년이 남는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은 그 이전의 국제관계, 그리고 기록만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그 이후의 한중관계 속 북경과의 교류를 고려하면, 연행의 역사는 단순 수치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가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저들이 그 땅을 떠나지 않는 한, 이 관계는 일종의 운명이다. 그 길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무슨 사연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런 몇몇 질문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다. 이 답변은 나아가, 앞으로 연행로를 어떻게 닦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순전히 옛길에 대한 고증이다. 이 책의 언어는 시종 ‘길’을 넘지 않는다. 정치와 문명을 말하기엔 식견이 모자랐고, 길만 얘기하기에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길이 멀리 이어지다가 사라졌고, 그 위에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홀린 듯이 그 흔적들을 따라나섰다. 현대화 가운데 끊어진 옛길을 이어 붙여도 보았고, 세월 속에서 사라진 길을 끝내 찾지 못해 아쉬움 가득 돌아서기도 했다. 이 책은 그 ‘길’을 다닌 보고서일 뿐이다.
저자

이승수

사림문로(史林文路)의산책자이며,디스토피아를떠도는지하생활자이다.사마천·연개소문·정몽주·김시습·이항복·김성탄·박문수등역사상의몇인물,송화강과패수,심하와영고탑등북방의여러강과장소에관한약간의글을발표했다.시대와국가에얽매이지않고다양한서사의강을따라여행하며,강가의풍경과함께이런저런물줄기들이만나고헤어지는양상을즐겨살핀다.한양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한국어와한국문학의바다를학생들과함께항행하는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수록된글의원제목과출전

제1장 서설,연행을떠나며
역사를밟아가며풍속을살피다-홍경모의행인의식과중국인식

제2장 압록강의증언,봉황산의대관
압록강명칭의기원과갈래
압록강국경표상의형성
원나라의등장과교통로의생성,동팔참
봉황산성과고대사에대한관심-안시성설의제기와반론

제3장 요동벌의횡단,자아의발견
광야의답보,한점자아의성찰-요양?~?우가장?~?광녕
호곡장,지리감각의갱신과신흥왕조의체험-석문령?~?요양?~?심양
대청사행과형가의형상-태자하의심상지리
하사의통찰과허자의각성-심양?~?요하?~?의무려산

제4장 북경,근대이전세계문명의심장
백전벌판의횡단과역사변동의목격-광녕?~?영원성?~?산해관
문명중심으로의근접,그흥분과기대-산해관?~?영평?~?통주
연경입성,조양문의어제와오늘-통주?~?조양문?~?옥하관
18세기후반북경우정의허실-박제가의마음속출로,연경의우정

제5장 오래전떠나온곳,북방의기운과풍물
1345년이곡의상도행로-북경?~?거용관?~?토목참?~?난경
잠결의진경,꿈결의웅변-1780년연암박지원의열하행로
「야출고북구기」의산문미
심세,변방에서천하형세를보다-연암박지원의열하행보와문심
구외의풍물과조양관제묘의밤-1790년유득공일행의열하행로

제6장 결어,발길을거두며
문명의통로연행로,그개방성과폐쇄성-17세기초유몽인의산문읽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올해는한중수교30주년이다.하지만한국과중국의밀접관계의역사는3천년이넘는다.한국의역사에서중국이주요현안이아니었던적은드물다.한국의분단과세계의냉전으로그불가분의관계가잠시시야에서멀어진것같은착시현상이일어났을뿐이다.이오래고특별한관계를짚어보면서,미래를생각해볼수있는책이출간되었다.
이책은중국내옛연행로(燕行路)에대한보고서이다.연행로란연행에이용했던길을의미한다.연행은연경행(燕京行)의줄임이다.연경은춘주전국시대연(燕)나라의수도가있던곳,오늘날의북경지역이다.근대이전외교는사신의왕래로실천되었다.북경이명실상부중국의수도로자리잡은1270년무렵부터1895년공식사행이폐지되기까지의북경외교사행을연행이라통칭한다.연행의책임을맡았던사신들은연행사(燕行使),연행체험을담은기록은연행록(燕行錄)이라한다.연행로는600년한중외교의현장인셈이다.
오랜세월연행로의기능은외교사행에국한되지않았다.사행에는30명내외공식사절의숫자보다10배이상많은상단(商團)이따라붙는게상례였으니,이들에의해국제교역이이루어졌다.연행로는교역로였다.수많은서책이이길로수입되었고,주자의학문과서학도같은길로들어왔다.연행로는문명로였다.큰전란이있을때마다대규모군사가이길을오갔으며,그결과로포로와유이민과망명객들이그위를가기도했다.연행로는군사로였으며유이민길또는망명로이기도했다.역사는길을통해만들어져왔다.길이곧역사이다.
저자의어조는시종차분하고시선은끝까지냉담하다.이책에는과장이나흥분이없다.저자에게연행로는매우영광스러운길만도아니고,그렇다고부끄러워감춰야할길도아니다.숱한사연을안고있는역사의길일뿐이다.저자는집요하고정밀하게옛길을짚어간다.지명의변천을살피고,끊어진길을잇고,거기남은마음의자취를더듬고,오랜흔적이들려주는노래를듣는다.길이앞에펼쳐져있어그길을갔고,관련기록이있어읽었으며,지금도그길을오가는사람들과이야기를나누었다.
책에인용된호레이스부쉬넬(HoraceBushnell)과허버트레인홀드야콥슨(HerbertReinholdJacobson)의아래문장에저자가생각하는길의의미가잘담겨있다.

사회가정체되어있는지,종교가죽은형식에갇혀있는지알고싶으면대학이나도서관에가서배울수있다.성당과교회에서수행하는작업으로도어떤것들을알수도있다.하지만그것만큼이나길을관찰함으로써많은것을배울수있다.사회에모종의움직임이있으면,길이그사실을지시할것이다.길은움직임의상징이다.변동이나확장,또는해방정신이있다면,그에따른상호작용과여행이있게마련이고,이런행동은길을필요로한다.어떤진보가진행되거나,새로운사상이확장되고새희망이일어나고있다면,닦이고있는길을통해그사실을알수있을것이다.길이없이는어떤침략도일어날수없다.정부든기업이든,사상이든종교에서든,모든창조행위는길을만든다.

길은우리의실제삶과밀접한관련을맺어왔다.우리는신체의여러부위를사용하는것처럼길을생각한다.이러한동맥들은인간의상업,지식,종교등모든영역에작동한다.이러한동맥들이작동을멈추면,문명의혈액은흐르지않는다.이는우리의신체기관들이동맥에서피를공급받지못하는것과똑같은현상이다.생산자와소비자를연결하는길이없다면,소금이든고기든옷감이든모든물자는한쪽에서는넘치고다른쪽에서는없는끔찍한고통이발생할것이다.원료를가져오고완성품을내보내는길이없다면산업은너무황량해져서죽음의노래를힘겹게내며마지막숨을거둘것이다.전파되지않는지식은멍청해진다.즉길이없으면지식이란금박조롱안에서우아한깃털을자랑하며,저혼자부르고저혼자들으며매일똑같은노래를불러대는예쁜새와똑같아질것이다.어떤것도길만큼이나다양한진보의단계를거친인간의이미지를잘나타내지못할것이다.인간의모든성취중가장오래되고미묘한길은,기쁨과슬픔,사랑과미움,지식과신앙을날랐으며,사람들은그것을경험했다.인간의모든역사는세계의길들위에커다랗게씌어있지만,파괴자인시간은그비밀을여는열쇠를우리에게남기지않았다.

책은6장으로구성되어있다.압록강-요양-심양-산해관-북경-열하(상도)로이어지는노정의순서를따랐다.연경사행의가감없는실상을밝히고사신의책무를강조한홍경모(洪敬謨,1774~1851)에대한글을서설의자리에두었고,유몽인(柳夢寅,1559~1623)의연행체험을대상으로연행로의개방성과폐쇄성(의의와한계)을거론하는것으로결어를삼았다.그사이에봉황산,태자하,박제가의연경우정,고북구관련논문을배치하여입체적조형효과를만들었다.술논문이면서도문장의기세가경쾌하여잘읽히고,여행의즐거움을주되연행로사전으로활용할수있을만큼고증이정밀하고정확한것이이책의미덕이다.장자는말했다.“길은사람들이다녀만들어진다.道,行之而成.”루쉰은이말을받아소설「고향」(1921)에서말했다.“본디땅위에길이란없으니,다니는사람들이많아지면절로생기는것이다.其實地上本沒有路,走的人多了,也便成了路.”우리가이땅을버리지않는한,저들이그땅을떠나지않는한,한중관계는필할수없는운명이다.그사이에우린앞으로어떤길을닦을것인가?옛일을돌아볼필요가있다.

지금의상황이의심스러우면옛일을살피고,미래를알수없겠거든지난일을돌아봐라.
疑今者,察之古,不知來者,視之往.
_『관자』,「형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