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생활(서문문고 97)
Description
결코 은자나 도피자가 아니라 자기의 이상을 실천한 행동가였던 소로우의 숲속의 생활 은 단순한 수필이 아니다. 이는 경제적 속박이 없는 순수한 자연생활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인생관의 실험보고이며 그의 심오한 사상을 생생한 체험을 통해 피력한 것이며 오늘날 미국문학의 주류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차지한 위대한 고전작가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숲속의 생활 은 19세기를 대변한 세계의 고전으로 더욱 메아리치고 있다.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콩코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첼름스퍼드에서, 하버드 대학 4년 동안에는 인근 케임브리지에서, 1843년 후반부에 스태튼섬에서 보낸 몇 달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콩코드에서 살았다. 어릴 적부터 자연 사랑이 남달랐으며, 특히 동식물에 비상한 관심이 있어, 어떤 꽃이 어느 때 피는지, 어떤 벌레가 어느 나무 밑에서 서식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1837년 초월주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을 만나면서 문학 활동에서 큰 전기를 맞는다. 에머슨은 두 번이나 그의 집에 집사로 취직시켜 현실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이 기간, 에머슨의 서재에 있던 많은 책을 읽었고 그 덕분에 중국 철학과 인도 철학에도 눈을 뜬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19세기 미국 문학의 주요 사건인 초월주의 운동을 이끌어나갔다. 콩코드에서 잠시 교사 노릇을 했으나, 형 존과 함께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교사직은 적성에 맞지 않고 자연을 탐구하는 시인이 어울림을 확신하게 된다. 하버드 동창생 찰스 스턴스 휠러와 플린츠 호수에서 캠핑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1837년, 휠러가 지은 오두막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의 생활을 따라 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콩코드에서 남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빙하호 월든 호수 옆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숲속 생활에 들어갔다.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2년 2개월 동안 호숫가에 살면서 『월든』 초고를 쓰고, 매일 일기를 썼으며, 호수 주변의 동식물과 자연을 관찰했다. 1847년 문명 생활로 돌아온 이후 초월주의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면서 점점 더 행동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도망 노예들을 캐나다로 탈출시키는 “지하 철도”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월든』과 비슷한 시기에 쓴 「시민 불복종」에는 이러한 삶에 관한 정신적 기초가 충분히 녹아들어 가 있으며, 따라서 두 책은 하나로 읽힌다. 추운 겨울에 숲속에 들어가 나무들을 관찰하다가 기관지염에 걸렸고 이후 폐병으로 악화해 1862년, 사망에 이르렀다.

목차

해설
경제생활
독서
소리
고독
방문객
콩밭
마을
호수
봄
결론

출판사 서평

인간은 그릇된 생각으로 인해 고생을 하고 있다. 인간들 대부분은 죽으면 흙 속에 깔려서 비료가 되고 만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대개 필연성이라고 불리는 가짜 운명에 따라, 성서(聖書)에서 말하고 있듯이, 좀이 파먹고 녹이 슬어서 썩으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갈 재물들을 쌓아올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이란 미리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인생의 종말에 이르러 알게 되듯이 우인(愚人)의 생활이다.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돌을 머리 뒤에 던져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윌터 로리는 그 사실을 유창한 운율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은 돌과 같아서 근심 걱정을 참으며
인간의 육체 또한 돌과 같이 탄탄함을 증명하느니라.

어리석은 신탁(神託)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여 돌이 떨어지는 곳도 보지 않고 멋대로 머리 뒤로 내던졌으니 고작 이런 결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스런 이 나라에서도 단지 무지하고 오해로 인하여 부질없는 근심과 불필요하고 조잡한 노고에 너무나도 사로잡혀 있으니, 그들은 인생의 훌륭한 열매를 딸 수가 없다. 그들의 열 손가락은 지나친 노동으로 인해서 열매를 따기에는 너무나도 떨린다. 사실 노동자는 하루의 참다운 고결(高潔)을 보전할 틈도 없으며 인간다운 대인관계를 유지할 여유도 가질 수 없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