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정주 출생으로 최남선과 더불어 신문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문인이다. 일진회 장학생으로 도일하여 명치학원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초기에는 '무정'을 비롯하여, '개척자', '윤광호', '방황'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한 후에는 도산 안창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고 돌아왔다. 1930년대 초반까지 윤리 중심적 색채를 띤 '재생', '마의태자', '흙' 같은 장편을 집필하였고, 중반 이후에는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 '무명'등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을 창작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후, 창씨개명하고 학병 권유 연설을 하는등 친일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 납북되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고종 29년(1892)에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군 익성동에서 태어났으나 1902년 호열자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고아가 되었다. 이듬해 동학에 입도, 서기가 되었으나 일본 관헌의 탄압으로 1904년 상경, 이듬해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에서 수업한 뒤, 1919년 상해로 건너가 ‘독립신문’의 주필로 일했다. 191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소설인 「무정」을 발표하였고, 단편 「소년의 비애」등을 비롯하여 많은 소설과 논문 수필・기행문・서간문・시・시조 등을 발표하였다.
한국현대문학사를 통하여 춘원만큼 이땅의 많은 작가와 평론가에 의해서 시비의 대상이 되어온 작가도 드물 것이다. 아무튼 개화기와 식민지라는 상황에 태어나서 성장한 춘원은 근대문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선구자적 작가임에 틀림 없다. 특히 그의 업적 중 ‘무정’이 차지하는 위치는 사뭇 큰 바 있다. 그것은 이광수 개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학 최초의 장편소설이요, 최초의 한글문체(완전한 언문일치체)로 다듬어져 있고 세밀한 서술과 심도있는 심리묘사, 그리고 근대적인 자아의 각성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데서 문학사적으로 큰 위치를 차지한다.
근대소설의 특징인 등장인물의 개성의 창조가 이 작품에서는 어느만큼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 표현의 첫 시도라는 점에서 놀라운 성격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이 민족주의적 계몽주의의 성격이 잘 들어나 있다. 그래서 “춘원을 능가할만한 영향력을 지녔던 민족문학자도 없었다.”는 평판을 받게도 되나 역사의식의 모자람으로 말미암아 그 이념이 제 구실을 못한 흠도 남기게 된다.
이 작품에 보이는 그의 자유연애관, 결혼관도 상반된 애정관으로 굴절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당시의 사회구조와 초창기 작가 로서의 미숙함에서 기인된 것이리라. 즉 당시의 사회구조가 자유 연애와 결혼을 받아들여 소화할만한 정신적인, 구조적인 태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무정(서문문고 302)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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