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백석 시에 대한 논문을 학계 최초로 발표했고, 지금까지 25년 이상 백석 시세계에 천착해온 ‘백석 시 전문가’ 고려대 고형진 교수의 백석 시 해설서 『백석 시 바로읽기』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한국 시사에서 백석 시인이 갖는 의미는 독특하다. 그는 서양사조와 서양문학이 봇물처럼 휩쓸려 들어온 현대문학 태동기에 작품활동을 시작했음에도 유행에 편향하지도, 그렇다고 식상한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지도 않았다. 그는 향토색 짙은 소재를 모던하게 재구성한 감각적인 시인으로, 한국 시의 새로운 전형을 개척해냈다. 그럼에도 북한에서 활동한 작가라는 이유로 거론이 금지됐다가 80년대 들어 해금이 되고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특히 90년대 들어 그의 독특한 시세계가 각별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수백 편을 넘어서는 연구논문들이 이를 입증한다. 이처럼 활발한 연구의 전개는 ‘대중적인 호응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백석은 일반인과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문제는 백석에 관한 수많은 연구서와 해설서가 발표, 출간되고 있음에도 백석 시세계를 명확히 밝히며 감상을 돕는 책이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서들이 선행 연구를 답습하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석 시는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런 답보 상태를 벗어나 백석의 ‘예술적 자질을 새롭게 규명’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인 고형진 교수는 백석 시의 ‘언어 속에 내장된’ 의미의 진폭을 계측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두었다.
이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고, 백석의 발표작 97편 가운데 60편의 대표작을 선하여 전문을 수록하고, 작품 하단에는 각 작품에 쓰인 평북 방언에 대한 풀이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 뒤에 상세한 작품해설을 하고 있다.
백석 시를 대할 때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난관은 시어이다. 그가 시에 동원하고 있는 ‘날기멍석’ ‘니차떡’ ‘곱새담’…… 등의 평북 방언은 의미파악부터 어렵다. 방언뿐 아니라 우리 전통생활 속의 언어들인 ‘함지’ ‘풍구재’ ‘보십’ ‘예데가리밭’…… 등의 표현 역시 어렵기 한가지다. 일단 시를 읽기 위해서는 말뜻의 풀이가 필수가 된다. 저자는 100여 권에 달하는 방언용례를 참고하고 숙고하여 각 작품에 사용된 방언과 전통어에 대한 풀이를 하였다. 예를 들자면 백석 문제작 중 하나인 「여우난골족」에 쓰인 “말수와 같이”는 ‘말할 때마다’란 뜻이고, “숨굴막질”은 ‘숨박꼭질’, “화디”는 ‘등잔걸이’란 뜻이다. 시어의 뜻을 모른다면 도저히 시 작품 감상이 불가능한 정도의 시편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어 풀이는 물론이고 백석이 고의적으로 맞춤법을 어긋나 표현한 시구들과 백석이 만들어 사용한 조어들도 놓치지 않고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즈랑집」에 쓰인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에서 ‘지나는’은 ‘지나가다’의 뜻이 아니라 ‘지내다’라는 뜻으로, 당시엔 ‘애’ 음이 ‘아’ 음으로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다른 작품 「정문촌」의 “주홍칠이 날은 정문이 하나”에서 ‘날은’은 ‘낡은’이란 뜻이 아니라 ‘바랜’이란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그 까닭은, 백석 시에서 “‘낡은’이라는 의미로 쓰였을 때에는 현대어 표기법 그대로 ‘낡은’이라고 표기되거나 또는 ‘날근’으로 표기”되었다며 근거를 제시한다.
작품해설은 작품이 가진 의미를 충실하게 드러내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데, 저자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시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역할까지 맡는다. 「국수」라는 작품해설을 보면, 시에 그려지고 있는 표면 정경은 물론 시 속에 숨겨진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까지 찾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백석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현대의 시인들의 작품도 꼽고 있는데, 이 작품은 박목월의 「적막한 식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를 적는다. ‘시상의 전개와 이미지의 구사, 사투리 구사’ 면에서, 그리고 생에 대한 깊은 관조를 보이는 서정의 경지가 맞닿는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고 밝힌다. 이밖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우리 연시 전통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허준」은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파격적인 작품으로, 분단 직전에 발표했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백석의 절창으로 평가, 해석하고 있다.
이 책은 백석 시 연구자와 애호가들에게 여러 가지 특성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백석 시 해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해설서가 될 것이다. 백석 시에 대한 연구는 분단국가가 지닌 특수성 중 하나인 ‘언어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시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백석이 남긴 아름다운 토속어와 방언들을 복원하고 새롭게 즐기는 것, 그것은 이 책 본래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가는 우리의 작은 실천이 되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