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앤 포터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캐서린 앤 포터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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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자 단편소설의 여왕, 캐서린 앤 포터의 출발점과 정수를 만나다!
세상이 부여한 한계를 깨고 ‘여류 작가’라는 호칭마저 거부한 채 자신의 삶과 시대를 소설이라는 형태로 치열하게 기록했던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집이다. 약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 전쟁과 질병이 만연한 현실을 파고들어 20세기 미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가로,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캐서린 앤 포터는 1890년 태어나 1980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격동의 세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자기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적 작품들을 주로 썼다.

식민 지배하에서 착취당해 온 토착민들과 남부의 가혹한 노예제에 얽매여 살아온 흑인들, 공동체에서 외면받는 장애인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온갖 형태의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일상을 들추어 보이며 약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에 문제를 제기했는데, 저자가 던지는 삶과 존엄에 관한 질문들은 당대 미국 문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명의 시기를 거쳐 문단의 스타이자 권위자로 인정받기까지 다섯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이국땅을 전전하며 질병에 시달리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저자는 남부에서 보낸 고통스러웠던 유년 시절과 불행한 결혼 생활로부터 벗어나고자 평생 애썼으나, 한편으로 그러한 경험과 기억은 자신의 시대와 인간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고 당대의 현실을 세밀하게 포착해 낼 수 있는 중대한 토양을 제공했다. 또한 자신의 삶과 작품에 있어 더 넓은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저자

캐서린앤포터

저자캐서린앤포터는1890년미국텍사스주인디언크리크에서칼리러셀이라는이름으로태어난캐서린앤포터는지극히보수적이고남성중심적인남부사회에서불우한유년기를보냈다.열여섯살에남부출신의존헨리쿤츠와결혼하지만,8년여에걸쳐그로부터극심한육체적,정신적학대를당한다.남편모르게시와소설을쓰며작가를꿈꾸던포터는남편의폭력으로뼈가부러지는부상을입고아이까지유산한뒤,당시로서는쉽지않았던이혼을감행하고,과거와의결별을위해자신을길러준조모의이름을따‘캐서린앤포터’로개명한다.이후남부를떠나저널리스트와평론가로활동하다가1922년《센추리매거진》에단편「마리아콘셉시온」을발표하며소설가로데뷔했다.멕시코,프랑스,스페인등세계각지를여행하고,유도라웰티,어니스트헤밍웨이,거트루드스타인,디에고리베라등당대미국과유럽의수많은예술가들과교유하며「웨더롤할머니가버림받다」「밧줄」「꽃피는유다나무」「창백한말,창백한기수」등굵직한단편을연이어발표해문단에서확고부동한명성을쌓았다.1962년발표한유일한장편『바보들의배ShipofFools』가그해베스트셀러에오르며상업적으로큰성공을거두었으나,포터의진가가가장빛을발한것은자신의고통스러운경험을기반으로쓴단편들이었다.다섯번의결혼에실패하고이국땅을전전하다가스페인독감에걸려죽을고비를넘기는등파란만장한삶을살았던포터는남부에서보낸외롭고고통스러웠던유년시절과불행한결혼생활로부터벗어나고자평생애썼으나,역설적이게도그러한경험과기억은자신의시대와인간사회를깊이들여다보고약자에대한차별과억압,전쟁,질병으로신음하던당대의현실을세밀하게포착해낼수있는원동력이되었다.포터는1980년90세로세상을떠나기까지채30편이안되는소설을남겼지만,“동시대미국문단에서거의유일하게순수성과정확성을갖춘언어로글을쓰는일류예술가”(에드먼드윌슨)라는찬사를받았고,『캐서린앤포터소설집』(1965)으로1966년퓰리처상과전미도서상을수상했다.

목차

서문ㆍ잘가렴,작은책아……

꽃피는유다나무
마리아콘셉시온
처녀비올레타
순교자
마법
밧줄
그애
절도
그나무
웨더롤할머니가버림받다
꽃피는유다나무
금이간거울
아시엔다

창백한말,창백한기수
오랜죽음의운명
정오의와인
창백한말,창백한기수

기울어진탑
옛질서
지혜로가는내리막길
하루의일
휴가
기울어진탑

옮긴이의말ㆍ남부에서그리고남부너머로
캐서린앤포터연보

출판사 서평

아름답게직조된이야기속에
시대의어둠과개인의불행을날카롭게담아낸
미국단편소설의여왕캐서린앤포터

-아주사소한문장하나에도세밀한기억을담아글을쓰는작가.-
_유도라웰티

포터는플래너리오코너,유도라웰티,카슨매컬러스등과함께대표적인남부작가로분류되지만,남부에국한되지않고뉴욕과멕시코,독일등다양한시공간을배경으로작품을썼다.이는상당부분한곳에정착하지못하고세계각지를떠돌며살았던그녀자신의삶에서비롯된것이었다.
미국텍사스주의허름한농장에서‘칼리러셀’이라는이름으로태어난포터는일찍이셰익스피어의희곡과소네트를섭렵하고여성참정권을옹호하는에세이를쓸만큼영민한소녀였으나,지극히보수적이고남성중심적인남부사회에서외롭고고통스러운유년시절을보냈다.열여섯살에텍사스출신남성존헨리쿤츠를만나결혼하지만,8년여에걸쳐그로부터극심한육체적,정신적학대를당한다.남편모르게시와소설을쓰며작가를꿈꾸던포터는,계단에서떠밀려발목이부러지는심각한부상을입고아이까지유산한뒤당시로서는상상하기도어려웠던이혼을감행하고,과거와의결별을선언하듯자신을길러준조모의이름을따‘캐서린앤’으로개명한다.포터의자전적소설로알려진1936년작「오랜죽음의운명」에는당시그녀가느꼈을법한감정들이고스란히녹아있다.

-친척이라면이제진절머리가났다.이집안하고는더이상아무런관계도맺고싶지않았다.떠나버릴것이다.그렇다고시댁으로돌아가지도않을것이다.그녀에게사랑과증오를온통쏟아붓는사람들에게더이상은속박되지않을것이다.이제야미란다는자신이결혼으로도망친이유를깨달았고,바야흐로결혼에서도도망치려한다는것을깨달았다.그녀스스로무언가를발견하지못하게끔가로막는,그녀에게“안돼”라고말하는모든종류의장소와사람으로부터벗어날작정이었다.

이후남부를떠나콜로라도주덴버와멕시코를오가면서저널리스트로활동하던그녀는1922년《센추리매거진》에단편「마리아콘셉시온」을발표하며소설가로등단했다.미국전역과멕시코,유럽을종횡무진여행하고,거트루드스타인,어니스트헤밍웨이,셔우드앤더슨등당대의수많은예술가들과교유하며,멕시코혁명이면의허위와부조리를파헤친「아시엔다」와「그나무」,디에고리베라와의만남에서영감을얻어집필한「순교자」,뉴욕에사는독신여성의하루를건조하게그려낸「절도」,제2차세계대전을불과몇년앞두고아슬아슬한긴장상태에놓여있던국제정세를함축적으로보여주는「기울어진탑」등저널리스트로서의예리한면모가돋보이는걸작들을연이어발표했다.특히식민지배하에서착취당해온토착민들과남부의가혹한노예제에얽매여살아온흑인들,공동체에서외면받는장애인들,남성중심사회에서온갖형태의억압과폭력에시달리는여성들의일상을들추어보이며약자에게가해지는사회적차별에문제를제기했는데,그러한부조리의피해자이자목격자로서포터가던지는삶과존엄에관한질문들은당대미국문단에서큰반향을일으켰다.
하지만포터가늘사실주의에기반을둔작품만쓴것은아니었다.그녀는꿈과현실,과거와현재,등장인물간대화와의식의구획을허무는방식으로다양한문학적실험을했고,이러한시도는포터가‘죽음’에대해이야기할때가장빛을발했다.포터는1918년미국과유럽전역에서무수한희생자를낸스페인독감에걸려구사일생으로살아남았는데,자신의삶을송두리째뒤흔든이때의경험을바탕으로대표작「창백한말,창백한기수」와「웨더롤할머니가버림받다」를썼다.죽음에가까이다가갈수록주인공을덮쳐오는환각과환청,흔히‘주마등’이라불리는기억의파노라마,고통을넘어서황홀경에이르는과정을묘사한포터의압도적문장은독자마저도삶과죽음의경계까지몰아넣으며역설적으로그끝에서삶의본질을마주하게한다.
무명의시기를거쳐문단의스타이자권위자로인정받기까지다섯번의결혼에실패하고이국땅을전전하며질병에시달리는등파란만장한삶을살았던포터는남부에서보낸고통스러웠던유년시절과불행한결혼생활로부터벗어나고자평생애썼으나,한편으로그러한경험과기억은포터가자신의시대와인간사회를깊이들여다보고당대의현실을세밀하게포착해낼수있는중대한토양을제공했다.또한자신의삶과작품에있어더넓은곳으로끊임없이나아갈수있는동력이되었다.세상이부여한한계를깨고‘여류작가’라는호칭마저거부한채자신의삶과시대를소설이라는형태로치열하게기록했던포터는평생을독립적인직업인으로살다가말년에동부메릴랜드주에정착해남편도자식도없이생을마감했다.그리고그녀가세상을떠난지6년후인1986년미국공영방송PBS의다큐멘터리시리즈[미국의거장들AmericanMasters]은[캐서린앤포터:기억의눈KatherineAnnePorter:EyeofMemory]을제작해포터의삶과예술세계를기렸다.

세계문학을바라보는새로운관점[세계문학단편선]
세계문학을바라보는장편소설위주의관습에서벗어나단편소설에초점을맞춘[세계문학단편선]시리즈는그동안단편이라는이유만으로우리에게제대로소개되지않았던거장들의주옥같은작품들과단편소설이라는장르의형성과발전에불가결한대표작가들을소개할것이다.아울러지구촌시대에걸맞게지금까지우리에게는문학의변방으로여겨져왔던나라들의대표적단편작가들도활발히소개해단편소설의발전이문화의중심지에국한된것이아니라도처에서이루어져왔음을독자들이확인할수있게할것이다.현대대중문화의성장은전세계적으로미스터리,호러,SF등문학장르의분화를촉진했는데이러한장르문학의형성에도단편소설은결정적인역할을했다.그러한장르문학의형성과발전에크게기여한작가들의단편역시새롭게조명할것이다.
21세기인현재에이르기까지단편소설은그리스신화가그러했듯이삶의불변하는단면을촌철살인의관찰력과응축된예술적형식으로꾸준히생산해왔다.작가들이저마다의개성으로그린칼로베어낸듯날카로운인생의다양한단면들은시공을초월해오늘의우리에게도깊은감동을준다.새로운문학적기법과실험의도입을통해단편소설은현재도계속진화,확장되고있다.작가의예술적열정이가장뜨겁게투영된다양한개성의다채로운단편들을통해문학이제공할수있는최고의통찰과재미를느낄수있을것이다.에드거앨런포는문학작품은독자가앉은자리에서다읽을수있을정도로짧아야한다고말했다.바쁜일상의삶을사는현대인들에게[세계문학단편선]은중심을잃지않고삶과사회,나아가세계를바라볼수있는더할나위없이좋은친구가될것이라믿는다.

[책속으로추가]

후스티노를데려가려면2,000페소를내놓으라는판사의요구는그대로였다.빈센테도예상했던대답이었으리라.빈센테는그날오후내내벽에기대앉아,무릎을턱아래당겨모으고,모자를깊이눌러쓰고,너덜너덜한샌들을신은양쪽발을비스듬히늘어뜨린채시간을보냈다.돈헤나로가가져온나쁜소식은불과반시간만에용설란밭전체에퍼졌다.식탁에서돈헤나로는자기생사가걸린문제로마지막기차를잡아타야하는사람처럼급하게허겁지겁말없이먹고마셨다.“도저히못해먹겠습니다.”그가접시옆을탕내리치면서내뱉었다.“그얼간이판사가나한테뭐랬는지아십니까?고작농노한명가지고왜그리걱정하느냐더군요.그래서내가뭘걱정하고말고는댁이상관할바아니라고대꾸했더니그자가하는말이,우리아시엔다에서총쏘는영화를찍고있다고들었다면서,총살예정인죄수들이야감옥에한무더기있으니필요하다면기꺼이보내주겠다지뭡니까.진짜사람을죽여도되는상황에서왜굳이죽이는척만하려는건지이해가안된다면서요.그는후스티노도총살감이라고생각해요.어디한번해보라지요!아무리그래도2,000페소는절대로못주니까!”
_293쪽,「아시엔다」

아무런전조도없이그녀는어둠속으로떨어져내렸다.그의손을잡은채잠아닌잠속으로,선명한저녁햇살이비치는작은숲으로떨어졌다.그숲은분노에휩싸인위험천만한곳이었다.어디서나는지알수없는,인간의음성같지않은노랫소리들이숲속가득히울려퍼졌다.쌩날아가는화살처럼날카로운음색이었다.그런데그노래의화살촉들중하나가애덤에게날아와맞았다.화살은그의심장을관통한뒤그뒤편의나뭇잎들을베어내며맹렬히날아갔고,애덤은그녀의눈앞에서쓰러져버렸다.하지만이내그는멀쩡해진몸으로다시일어섰다.그러자보이지않는누군가가쏜화살이또다시그에게명중했고,그는쓰러졌다가또다시살아났다.끊임없이반복되는죽음과부활속에서그는그렇게온전히남아있었다.미란다는화가치밀어올라,이기심을주체못하고그의앞에불쑥뛰어들어화살을막아섰다.“안돼,이런게어딨어?”놀이터에서반칙을당한아이처럼그녀는분통을터뜨렸다.“이번엔내차례란말이야.왜항상너만죽는쪽이야?”그때화살이그녀의심장을직격으로꿰뚫고,그의몸까지날아가명중했다.그러자그는죽었고,그녀는여전히살아있었다.숲이휘파람을불고노래를부르고고함을쳐댔다.가지하나,잎사귀하나,풀잎하나가모조리각자의목소리로그녀를비난하고있었다.그녀는달음질을쳤다.그러자뒤따라뛰어온애덤이방한가운데에서그녀를따라잡고말했다.“미란다,나도깜빡잠들었나봐.왜그래?왜그렇게비명을질러?”
_522~523쪽,「창백한말,창백한기수」

“여기오는길에배에서만난독일인들도내내그렇게이야기하더군요.하지만사실,저는평생동안전쟁에대한이야기를들었어도기억이잘나지않아요.솔직히말하자면별로생각도안하고살았습니다.만약생각을했더라면애초에여기오지도않았을거예요.”
“생각할필요가없었으니까그랬겠지요.우리는전쟁말고는생각할게아무것도없어요.”로자가검은색함을열었다.그안에는지폐가가득들어차있었다.큰은행에서철창너머직원의팔꿈치사이로나언뜻볼수있었던어마어마한양의지폐가,한뭉치씩고무줄로묶인채로수북이쌓여있었다.로자가돈다발하나를집어들었다.
“이건아무것도아니에요.”그녀는짐짓대수롭지않은투로말했다.“고작10만마르크짜리지폐들일뿐이죠……잠깐만요.”그녀는또다른돈다발을집어들고손끝으로낱장을훑었다.“이건50만마르크짜리예요.또이건……”그녀의목소리가가늘게떨렸다.“이건100만마르크짜리지폐다발이고요.”그녀는테이블위에지폐뭉치들을하나씩떨어트리면서,내내시선을내려뜨린채그렇게말했다.잠깐이나마그돈의가치가예전처럼느껴지는지,그녀의얼굴에는공포와경외심이서려있었다.“500만마르크짜리지폐,본적이나있나요?여기그지폐가백장이나있어요.이런광경은평생다시는못볼거예요.그런데,오!”그녀는일순비탄에북받친듯소리를내지르며,그기만적인종잇조각들을두손으로움켰다.“이걸다가져가서어디빵한덩이라도살수있나해보세요.해봐요,해보라고요!”
그녀는부끄러움도없이,얼굴을가리지도않고큰소리로흐느껴울었다.그녀가두팔을맥없이늘어뜨리자쓸모없는돈들이바닥에후드득떨어졌다.
_804~805쪽,「기울어진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