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한국문학의가장현대적이면서도첨예한작가들을선정,신작시와소설을수록하는월간『현대문학』의특집지면<현대문학핀시리즈>의첫번째소설선,편혜영의『죽은자로하여금』이출간되었다.2017년7월호『현대문학』에발표한소설에200여매를더해장편소설로재탄생한이번소설은2년만에발표되는편혜영의다섯번째장편소설이다.
발표하는소설마다묵직한무게감과강한메시지로사회에큰울림을주는편혜영은이번소설에서도지방도시의한종합병원을배경으로자본주의사회의경제논리속에서본성과욕망사이에고뇌하는인물의심리를세밀하게그려내며,위태로운오늘의시대,문학이희망에관여하는방식을보여주고있다.
이석은병원에서가장평판이좋은직원이다.서울의한병원에서근무하다불미스런일에휘말려선도병원으로내려온무주는이석덕택에병원에안정적으로적응한다.조선업의발달로성장해나가던이인시는그러나조선업의몰락과함께병원의존폐위기에놓이고,병원은새로운수익원을찾아새로운프로젝트팀을꾸린다.새팀에투입된무주는생각지못한이석의비리들을맞닥뜨리게되고,그이면에아픈이석의아이가있다는것을알게된다.이석의비리앞에고민하던무주는,때마침아내의임신으로,태어날자신의아이에게당당한아버지로서기위해이석의비리들을비밀리에고발한다.
이석의갑작스런사직을무주의탓으로돌리며동료들은무주를멀리하고,무주는자기임무에서배제된채전혀다른보직으로밀려난다.힘들어하는남편에게불안한아이의상태를말하지못한무주의아내는결국유산하고,남편에게위로받지못한무주의아내는무주를떠나서울로향한다.
아내에게도,동료들에게도모두버림받은무주앞에이석은다시병원의요직으로당당하게복직하고,그런무주를보며이석은과연정의가무엇인지,윤리가무엇인지를고민한다.
달라질것도없고,달리기대할것도없는것이바로지금,이세상이라는결론에도달한다.
하나의거미줄에두마리의거미가함께있는것이힘들듯,공존이불가능한공간으로서의병원에서진정한공존이란다른거미줄을넘보지않는것이라는결론내리며평범한사람들이조직에서살아남는방법은“타락”밖에없다고이석은주장한다.“죽은자로하여금죽은자를장사하게하라”는성경속예수의말을순응주의로해석하고,무주에게도내심동조하기를요구한다.
그러나과거,상사의지시로불법을저질렀다선도병원으로좌천된무주는사회적권위에순정적인사람이었으나,동료들과아내에게철저히버림받고혼자남겨지며그의앞에놓인불안과공포로부터벗어날길을찾아헤매게된다.과연이석의해석처럼성경속예수의말이순응하라는것이냐에의문을제기하며…….
사람은알고보면누구나선하다?
메디컬드라마서사의전복,자본주의의묵시록
지방의한병원내사무조직안에서은밀하게벌어지는비리를폭로하는것으로시작하는이소설은그러나정의를향해나아간주인공무주가오히려내부고발자로지목되며조직안에서철저히외면당하고,정작비리를저지른이석이다시병원의요직으로복귀하는것을그려내며그들이맞닥뜨리게되는씁쓸한,충격일수밖에없는아이러니에주목한다.
손상된자의식을복구하고자하는,선의를회복하려는주인공무주의윤리적인희망의한가닥을보여주는것으로매듭짓는이소설은흡사현대인이라면누구나가공통으로느낄법한희망과절망,기대와불안,기쁨과슬픔이복합적으로투영되어,이글을읽는독자들에게내가살고있는이사회의진정한모습이무엇인지,지금을살아내고있는나자신이나아갈바는무엇인지를심오하게,어지러운정념의격류에휘말려질문하게한다.
과연오늘날이모순의환경을견디며살고있는우리가문제를풀어낼진정한탈출구는어디인가?과연우리가살고있는이시대에우리가추구해야하는진정한정의란무엇인가?옳은것이란무엇인가?
희망을기억하고,양육하고,전파한다
위태로운오늘의시대,문학이희망에관여하는방식!
평범한사람들이조직에서살아남는방법은“타락”밖에없다는이석의주장에반해정의를지켜내고자한무주는그러나동료들에게공명심에눈이멀어동료를고발했다손가락질받으며철저히외면당한다.거대한사회의기만에맞서싸우고자했던자신의행동이생각지못한방향으로흐르자무주는결국자기앞에놓인삶에타협하는듯한제스처를보인다.그러나그나마도견디지못한무주는결국자아와세계의강요된화해의유혹에끌려가지않고홀로자신의침몰을조용히견디는쪽을선택한다.사회로부터,가족으로부터철저히외면당했으나,그난국을헤쳐나가려애쓰는대신스스로를차단시켜버리는삶.
그렇다고해서이작품이도덕적으로애매한무주의삶을옹호하는작품은아니다.윤리학을제창하려는포부와무관한작품이지만,정직하려했던무주의용기만큼은일깨우기를주저치않는다.경제적인간이패권을잡은세계를그리면서그곳어딘가에아직남아있는윤리적인간에대한희망을보여준다고할수있다.
소설의마지막,아이를보호하려고두손을복부에포개고어색하게걸음을옮기던아내를떠올리며,단절된아내와의연결을시도하는무주의모습은불안과공포를벗어나바야흐로희망을향한선회의시작으로,위태로운오늘의시대에문학이희망에관여하는방식으로볼수있다.
[해설]
편혜영이『죽은자로하여금』에그려놓은이인시는아마도김승옥의무진,박완서의현저동,조세희의행복동,신경숙의구로동등과함께한국문학독자들에게오래도록기억될것이다.그곳에는한세대이상의한국인의혼란과격동의연대를지나는동안공통으로느꼈을법한희망과절망,기대와불안,기쁨과슬픔이복합적으로투영되어있고,그래서그곳은한국인에게자신이누구였는가,누구인가를심오하게어지러운정념의격류에휘말려질문하게하기때문이다.
편혜영은개인이나집단의운명을좌우하는동등하게유력한도덕적가치들이나원칙들의싸움에관심이없다.그러한싸움은그녀가보기에아마도한국사회의진실이아닐것이다.그녀는한국인의도덕적경험을지금도여전히가능할지가불확실한비극의형식으로가아니라플로베르와헨리제임스와나쓰메소세키이후의소설형식으로이야기한다.(……)『죽은자로하여금』은도덕적으로애매한삶의옹호는아니다.윤리학을제창하려는포부와무관한작품이지만,정직하려는용기만큼은일깨우기를주저치않는다.(……)경제적인간이패권을잡은세계를그리면서그곳어딘가에아직남아있는윤리적인간에대한희망을보존한다.―황종연,「작품해설」중에서
[책속으로추가]
이석의월급을생각했다.경력은많지만학력과직급이낮은걸고려하면대략의액수를짐작할수있는,언제나부족하고보잘것없는그액수에대해서.그돈으로이석은삶에드는온갖비용을지불해왔다.아이의병원비,아이를간병하느라서울의고시원에머무는아내의생활비,면송리에사는자신과부모를위한얼마간의부식비,주유비,각종공과금과세금,과태료,경조사비용같은것을.
진작팔아치운주택으로아이수술비와병원비를댔는데,치료기간이길어지면서이제는마이너스통장으로,그런게없다면은행대출로초과지출을감당할것이다.그래서아마도여분의돈이,월급말고다른식으로통장에들어와야할돈이,매달꾸준히얼마라도필요했을것이다.수입을초과하는지출과매월갚아야하는대출이자,일정한간격으로돌아오는대출금상환의압박을충분히짐작할수있었다.
-pp.28-29
아이를보호하려고불편함을감수하는아내의뒷모습을보며무주는때아닌수치심을느꼈다.오래전벌인일의의미를이제야깨달았다.한때무주는태연히불법을저질러왔다.다른사람의비리를묵인했다.들통났을때는부끄럽기보다억울했다.왜자신만대가를치러야하는지화가났다
아이에게그런모습을들킨다고생각하니모골이송연해졌다.자신이살아갈곳이라면어떤세계라도견딜수있었다.위험과불안,폭력과거짓말,비리와관행,변명과회유에사로잡힌곳이어도괜찮았다.
아이가살아갈곳이라고생각하면달라졌다.아이가자신을닮아간다면,자신같은어른이된다면,자신이아이를부끄럽게만든다면,참기힘들었다.아이만큼은바르고선량하고착실하게자라주었으면했다.자신에게서비롯되었지만자신과전혀다른인격으로.그순간무주는과거의자신과완전히결별하기로마음먹었다.
다시인생이주어진기분이었다.이제까지의인생은아무의미가없다고단정했다.그기분때문에과거의자신과지금의자신이같은사람임을실감하기어려웠다.
-pp.52-53
“환자들은병원에서병이낫기도하고더나빠지기도합니다.아무리치료를받아도,의료진이최선을다해도,의사나간호사가늘가까이있어도그렇게됩니다.”(……)“가족들이보기에는비교적멀쩡해서입원했지만점차로의식을잃어가다가사망하기도합니다.좋은일은아니지만어쨌든그런일이일어납니다.그게다여기가병원이기때문이아닙니까.여기가휴양집니까?침대에서빈둥거리며쉬다가얼굴좋아져서돌아가는곳입니까?병원이그런곳이에요?살기도하고죽기도하는곳,그게병원아닙니까?환자들이죽었습니까?그냥쇼크를일으킨겁니다.그것도우리의료진이다정상으로돌려놨습니다.이제괜찮아졌어요.두환자모두정상이되었죠.”(……)“병원에서이런실수는끔찍하게도종종일어나지않습니까?병원에서사람이아프고의식을잃고죽을뻔한게이상합니까?”
-pp.66-67
아내가유산을했다.의사는최근들어아이와산모의상태가불안정하다고자주경고했다.아내는그얘기를무주에게하지못했다.무주는이석의일로압박감을느끼고있었고집에돌아가서도숨기지않았다.집에가면오히려더생각났다.연약한아이를보호하려고매사조심하는아내를보면,언제나한손을배에대고있는아내를보면기쁘고안심되기보다이석의죽은아이가떠올랐다.죄책감이들어아내를피했다.
-pp.89-90
무주는그모든가능성을지닌아이를잃었다.질서와명분을잃었다.선하고바르려는의지를잃었다.이석도아이를잃었다.삶을다바쳐살리려던아이를잃었다.그런생각을하노라면병원은차라리거대한장례식장이었다.가족을잃게되리라는소식을듣는곳이었다.사무장말이맞았다.병원에서는누군가죽기마련이었다.
-p.93
아내는자주무주를묵묵히바라보았는데,무슨말인가건네기를원하지는않는것같았다.그래서인지다알고있는것처럼보이기도했다.무주와눈이마주치면그래도웃어주려했다.무주도아내를보고웃었다.그럴때면딱히말을나누지않았지만무엇인가나눈느낌이었다.아내가다정한연민을느낀다는걸침묵속에서도알수있었다.
그게아니었다.무주의착각이었다.어느날무주는밥을먹으며무심코젓가락을내려다보다가기이한불쾌감에사로잡혔다.아이때문에젓가락질을바꿔보려던게떠올랐다.그는화들짝놀라젓가락을내려놓고숟가락으로밥을퍼먹었다.시금치나물이나무생채도숟가락으로펐다.생선도숟가락으로발라먹었다.아내가눈에띄게인상을썼다.
무주는기다렸다.아내가그렇게하지말라고말해주기를.그렇다면그만둘작정이었다.아내는인상을펴지않았지만싫다는말도하지않았다.오래전젓가락질을못한다고머리통을때리는아버지에게반기를들며무주가굶기를선택한것처럼,아내는무주와함께먹기를관두고조용히수저를내려놓았다.
-pp.98-99
“병원이거미줄이라고요?”
“거미줄하나에두마리의거미가함께있기는힘들잖아.”
“그러면한마리는죽죠.”
“잘알고있군.”
“그렇지만거미줄이라고해도두마리,세마리가함께있으면안됩니까?왜있잖아요,공존.여기서는안됩니까?”
“거미줄하나에거미두마리가함께있는게공존이아니야.그건자연계를무시한처사지.한거미줄에한마리씩의거미가여러개늘어서있는것,그게공존이야.다른거미줄을넘보지않는상태가공존인거라고.”
“넘보긴요,누가…….”
-pp.133-134
『마태복음』8장에이런구절이있어.‘죽은자로하여금죽은자를장사하게하라.’무슨소린지모르겠어서계속곱씹었어.예수는인자하고자비롭다면서죽은사람한테왜이러나,사람이죽었는데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