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은‘문화의혁명’이었는가,‘혁명의문화’였는가?
시진핑이주도하는인민통제의뿌리에는마오의문화혁명이있다
중국역사학자송재윤교수가파헤치는중국의어제와오늘!
중국공산당이인정한바와같이,1966년부터1976년까지진행된문화대혁명은“건국이래당과국가와인민이겪은가장심각한후퇴이자손실”이자인류역사상유례없는자기파괴의역사이다.칼과총을든홍위병과수십만이운집한집회로상징되는이거대한정치운동은표면상인민의자발적인‘혁명’으로미화되었지만,기실마오쩌둥의사망과동시에막을내린마오최후의권력투쟁이었다.마오는중국전역에혁명의문화를퍼뜨려군중을혁명투사와인민의적으로나누었고,균열의틈을이용하여정적을제거했다.그러나중국에서마오쩌둥의권위는시진핑의인민감시및사상교육을통해오히려강화되는듯보인다.최첨단기술로무장한중국에서는보다철저한인민감시와반대자를향한탄압이행해진다.경제대국으로성장한중국의탄압은이제중국내의소수민족과다수의자치구를넘어해외의유수기업에까지손을뻗고있다.시진핑사상을주입받으며열광적애국주의로무장한청년들과시진핑의관계는마오쩌둥사상의보위를외치던홍위병과마오쩌둥의관계를연상시킨다.현대중국의어두운역사를조명하는“슬픈중국”3부작의제2권『문화대반란1964-1976』은문화혁명이대약진운동의실패를가리고정적을제거하고자했던마오의기획이었음을지적하며,중공내부의권력다툼,군중을분열시키는정치공작의관점에서문화혁명을재조명한다.중공내부와홍위병,군중조직등다양한주체들의역학관계를통해중국의“잃어버린10년”을되짚는이책을통해서독자들은마오쩌둥에서시진핑으로이어지는중국공산당일당독재의면면을살펴볼수있을것이다.
정적을제거하기위한거대한시나리오,
당내부의역학관계를통해중국의“잃어버린10년”을되짚다
대약진운동의실패이후마오쩌둥은스스로의책임을인정하고중앙정치의제2선으로물러났다.류사오치와덩샤오핑의지도하에중국의경제가안정을되찾는동안,지도자로서천명을상실한마오는자신의실정을덮고더큰권력을누릴기회를노렸다.마오가가장먼저제거하고자한사람은국가주석류사오치였다.1962년“절대로계급투쟁을잊지말자”며정치운동을재개한그는언론을통제하고인민을격동시켜본격적으로류사오치를공격하기시작했다.야오원위안,치번위등의지식인들을통한정치공작은마오쩌둥사상에경도된인민들이스스로국가주석류사오치와그측근을차례로제거하게만들었다.각대학에공작조를보내문화혁명의질서를잡고혼란을수습하고자했던류사오치는결국혁명을억압한반동분자로서생을마감했다.
1969년류사오치가사망한뒤에도정적을제거하고자하는마오쩌둥의혁명시나리오는계속되었다.군부의실력자였던린뱌오와마오쩌둥사상의이론가천보다는물론,극좌파지식분자였던왕리,관펑,치번위역시인민을이용한마오의공작에따라서차례로제거되었다.『문화대반란1964-1976』은당대권력자들의최후와마오쩌둥의관계를추적하면서문화혁명의모든과정이마오쩌둥의권력투쟁과연관되어있음을보여준다.
문화혁명을실행한두개의축,홍위병과군중조직
문화혁명초기혁명의불씨를댕김으로써무장투쟁의주축으로활동했으나,마오의상산하향운동으로오지에버려진홍위병은중국역사의모순을드러낸상징적인존재이다.이들은스스로의이념성을드러내기위해서누구보다과격하게혁명에참여했지만경제적혼란을수습하지못한정부와기성세대에의해오지에서젊음을보내며중국의대표적인“잃어버린세대”가되었다.그러나문화혁명의확산과정을면밀히살피기위해서는홍위병에게자극을받은군중조직에도주목해야한다.『문화대반란1964-1976』은문화혁명의실행주체로홍위병과군중조직을동시에살핌으로써홍위병에게만집중되어있던그간의논의를넓히고자시도한다.노동자를주축으로했던군중조직은마오쩌둥이주문한“권력탈취”를실행함으로써시정부와주요언론을전복하고혁명정부를수립했다.당시생산성저하를이유로단체행동권조차인정받지못했던이들의권력탈취는진정한아래로부터의혁명처럼보였으나,군부에의해권력을빼앗기면서오래지속되지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