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이 될 때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

몸이 말이 될 때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

$13.50
Description
동녘이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
노지양X홍한별, 안희제X이다울, 이라영X전범선, 이현정X하미나…
지금 가장 뜨겁고 빛나는 작가들의 편지!
동녘에서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은 마주보며 타오르는 불처럼 두 작가가 주고받는 대화가 피워내는 미덥고 빛나는 이야기들입니다. 번역가 노지양X홍한별이 지핀 첫 번째 맞불,《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2022년 3월 출간)에 이어 안희제X이다울이《몸이 말이 될 때》를 펴내며 두 번째 맞불을 지핍니다. 90년대생 만성질환자들의 호쾌한 대화가 질병과 장애, 몸을 대하는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넓힐 것입니다.
저자

안희제

문화인류학을공부하며,질병과장애를중심으로자신과타인의몸,그리고사회를고민하려노력한다.《비마이너》,《시사IN》,《홈리스뉴스》등에글을쓴다.《난치의상상력》,《식물의시간》,《아픈몸,무대에서다》(공저),《우리는이어져있다》(공저)등을지었다.

목차

인사말:실패할수밖에없어서재미있는일

1.발견되는말들
복권에당첨된다면_이다울
여전히살아있다면_안희제
아픈언어들의백일장을열고싶어요_이다울
‘당신’에게초점을맞추겠습니다_안희제
타인의신발을신어보는것처럼요?_이다울

22인칭의말들
아픈척을하기도어려워졌습니다_안희제
매끄러워야한다는강박에시달립니다_이다울
우리는계속미끄러지고있습니다_안희제
피고와원고는모두저입니다_이다울
그들에게한방을날릴수있을겁니다_안희제

3.넓어지는말들
병원방문의고수가되었습니다_이다울
저는‘착한’환자입니다_안희제
청순가련을꿈꾸는천하장사소녀였지요_이다울
가련한모습을들키고말았습니다_안희제
각종진통제를삼킬수밖에없잖아요_이다울

4.다시태어나는말들
조금다른구원과희망을상상합니다_안희제
춤을춘뒤근육통으로일어나지못할겁니다_이다울
불일치에대하여_안희제
우리가최애캐릭터만다르겠습니까!_이다울
병신,게으름뱅이,꾀병같은말을들으면서도_안희제

맺음말:어쩌면성공한지도모르는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어그로꾼이되고싶었는데너무짖궂나요?”
90년대생만성질환자들의호쾌한질병대화
이책은《난치의상상력》으로주목을받은안희제와《천장의무늬》로‘우리시대의버지니아울프’라고불린이다울이‘몸’이라는언어로쓴편지다.완치를기대할수없는만성질환자,90년대생,질병과사회에관해꾸준히글을써왔다는것까지.공통점이더많을것이라여기고호기롭게시작한편지는그러나단지‘아픈사람’으로뭉뚱그릴수없는서로의무수한차이점들을발견하게되면서이해보다는오해를,공감보다는치열한대결로나아가며곳곳에서충돌한다.
시종일관다정한인사말로시작해살뜰한맺음말로끝나지만,한편으로날카롭고정확하게도발하는이다울과각종논문과책등을인용하며막힘없이맞받아치는안희제의반격은애정이기반인기존의서간문의문법을뒤집어엎고,급기야편지를중도에그만두는사태가일어날정도로극렬한위기를맞는다.
그러나두저자는그‘불일치’를고대해온것만같다.과학기술이몸을대하는방식에대한대립부터약자를타자화하는것에대한우려,질병의당사자성이갖는한계까지격렬한논쟁을벌일때마다사유는더욱새롭게확장되기때문이다.그런격렬한논쟁속에서도둘은‘덕질’로신나게수다를떨기도,서로의책에밑줄을긋기도하며슬그머니다정함을전한다.걱정이많은이다울을대책없는낙관으로이끄는안희제의편지는명랑하기까지하다.상대에게얼얼한카운터펀치를날리고도후환을두려워하기는커녕답장이언제올까두근거리는것이서로꼭닮아독자를웃기기도한다.우리가‘아픈사람’에게흔히기대하는연대와위로같은게으르고순진한편견을사이좋게배반하는이90년대생만성질환자들의호쾌한대화가질병과장애,몸을대하는우리의세계를더욱넓힐것이다.

“통증에이름을붙이는백일장을열고싶어요”
아픔이언어가된다면세계는터져버릴것이다
섬유근육통은“첫증상을경험한뒤제대로된병명을진단받기까지평균2~3년이걸리고,치료를시작하기까지평균3.7명의의사를”거쳐야만한다.그런탓에다울역시1년6개월을까닭없는고통에시달려야했는데,그이유를설명하지못해말문이막히거나횡설수설했다.여러병원을전전한끝에받은진단명,즉의학적인인정을받은후에야다울은제대로말을할수있게된다.

“진단명을얻는데는3분도걸리지않았습니다.하지만그3분의권위는크기가꽤컸고이는저의병을설명할든든한언어가되었습니다.새로운약물치료를시도해볼수있었고,질병휴학을신청하기위해대학교에진단서를제출할수있었으며,보다단순한절차로저의몸상태를설명할수있었습니다.”(이다울)

그래서희제가알려준“파이(π)만큼아프다”,‘페인솜니아(Painsomia)’같은단어가반가웠다.그가외국의만성질환자커뮤니티에서만든“파이만큼아프다”는통증의강도가낮아질뿐끝나지는않는만성질환의특징을,‘페인솜니아’는통증으로인한불면증을가리킨다.만성질환자들이자신들의몸을설명하기위해스스로창조한질병의언어는그렇게희제와다울,아픈몸들에게이어진다.
다울은“고통에이름을붙이는백일장”을열고싶다.백일장에서태어난재치있는언어들이“자신이미치지않았다는것을증명하느라무진애를”쓰는이들의“외로움을줄여”줄것이다.희제는비슷한질병이라도각자의삶은고유하다는점에착안해여럿이함께이야기하는‘집담회’를꿈꾼다.“건강하세요”,“건강을잃으면모든것을잃는다”등의말들만자격을얻는세상에서우리가잃어버렸을지도모를절반의언어를상상하게한다.

“어디가왜아프냐는물음이따뜻한담요같았습니다”
고통을‘2인칭’으로말하고쓰는법
‘너’라고시작되는소설을읽던다울에게도착한희제의편지는놀랍게도고통을‘2인칭’으로말하고듣는법이었다.크론병과섬유근육통이라는진단명은희제와다울의몸에서자주미끄러졌다.한쪽에서는정말아픈것이맞느냐며의심하고한쪽에서는각종정보를근거로그들을중증환자로과장했다.이렇게당사자의말이튕겨나오거나실종되는이유는무엇일까.희제는이것이‘1인칭’과‘3인칭‘이기때문이라고썼다.‘1인칭’은“당사자의언어를생산”할수있어아픈사람이직접자신의질병서사를만들어내는게가능하지만,그삶을잘알지못하는타인에게가닿기어렵고‘3인칭’은의사의진단처럼객관적이지만당사자를배제하여타자화하는우려가있다.아픈몸들이의사소통과사회에서겪는불화를해결할수있는방법이바로‘2인칭’이었다.
문학에나사용되는인칭을일상에서실천하는것이가능한가.다울은바로납득하기보다희제의주장을예리하게파고들며또다른논의를이끈다.다울은희제의말을‘풀어헤치기’위해며칠밤낮을편지를붙잡고끙끙대고,마침내희제가쓴전작에서그실마리를얻는다.

“인터뷰가깊어지면서녹음기를켜둔사실을잊은채아저씨와희제님이서로의이야기에몰입하게되었지요.그날희제님은“존엄이서로를존엄하게대하는상호작용을통해구성된다는”것을떠올리며‘우리가서로주고받은건존엄,좀더정확히말하면호혜적인존엄이었을지도모르겠다”고하셨습니다.“(이다울)

다울은2인칭의화법은일방적인것이아니라서로를향한초점의문제임을깨닫고시혜가아닌호혜적인존엄의의미를새롭게발견한다.둘의편지는이렇게논쟁을통해충돌하고그결과,전에없던독특한사유의장을탄생시킨다.

“아픈척을하기도어려워졌습니다”
과학기술에사라진몸은어디로가는가
희제는아픈몸이일상에서살아가기위해필요한것들을‘이음새’에,과학기술을‘매끄러움에’대응시키며학교를가거나일을할때필요한수많은이음새를과학기술이매끄럽게건너뛸수있게해준다고말한다.그래서대면으로돌아가야한다는주장을반박하며나아가“‘화상회의프로그램에서분명얼굴을마주한다는점에착안하여”코로나19로촉발된’비대면‘을‘새로운대면’으로정정한다.
반면다울은희제가말한‘매끄러움’에장점만있지않다는걸지적한다.대학교의인터넷강의에서작년에사용한것이명백한동영상을발견하고“서로가동시대에연결되어있다는믿음”이깨진것이다.온라인을이용할수밖에없는이들은온오프라인의사용이자유롭고주도권을쥐고있는이들에비해상대적으로취약한위치에놓인다.
희제역시비대면의역설을몸소느끼고있던차였다.비대면덕분에타인에게몸을설명해야한다는부담은적어졌지만‘아픈사람’이라는자신의중요한정체성중하나가부정당하는것같았다.질병과장애,서로다른몸들의부딪음이소거되고‘건강한신체’만이남는사회에서는‘타인의질병이라는경험에휘말릴일’조차없어진다는걸수시로마주쳤다.

“다른몸,타인의아픔을인지하고그것에관해묻는일,자신의몸을설명함으로써응답하는일은우리에게일상적인대화를시작하는과정이기도했습니다.아픔으로인한불편과불쾌들이어쩌면우리가서로에게말을건네도록만들어온아주중요한매개일지도모르겠습니다.”(안희제)

과학기술을바라보는둘의닮은듯다른시각은비대면의세계가“다른몸들의부딪음이일으키는난기류,그안에서우리가서로에게다가갈수있는가능성”이결여된세계임을상기시키며,우리에게‘몸’이라는언어를새롭게감각하게한다.

“병신,게으름뱅이,꾀병같은말을들으면서도”
우리가계속몸을말하고쓰는이유
마지막편지,희제는크리스마스이브를맞아다울에게아름다운연말인사를전하고다울도따뜻한화해의손길을건네며…훈훈하게끝났을까?악마와신의싸움을주제로한영화〈사바하〉에서사람들을구하는“천적은정돈되지않은머리,온몸에가득한긴털,길고날카롭고더러운손톱,온통충혈된눈,비참한울음소리”를가졌다.희제는현실에서는“모든걸초월한강력한존재도,선하고깨끗한약자도”없기에“더럽고혐오스러운괴물이우리의희망이고구원”일지도모른다고말한다.
그런데희제에게다울이누구도예상치못한강펀치를날리며편지는새로운국면을맞는다.

”‘더럽고혐오스러운괴물이우리의희망이고,구원이라고말하는듯했다’는희제님의문장은‘우리’와다른괴물freak을다소영웅화하는것으로보입니다.”(이다울)

희제의문장이자칫‘괴물’을‘희망과구원,크리스마스의아기예수’로단순화하고,역설적으로“더럽고혐오스러운자리에계속해서매어놓는”위험이있음을날카롭게지적한것이다.결국다른몸들사이에이해란결국불가능함을증명하며결별하게되는걸까.그러나편지는혼자쓰는글이아니라상대의답장으로비로소완성된다는기묘하고아름다운전통에따라희제는‘불일치’라는제목의뜨거운경고장을보내기로결심한다.

“구원이란모든문제가일거에해결되는데우스엑스마키나같은것이아닙니다.우리에게가능한유일한구원은우리를혐오스럽다고규정하는세계에맞서서로를존엄하게대하는것,그럼으로써실제로존엄한존재가되어가는구원이아닐까요?”(인희제)

서로를포기하지않고상대의이야기를들으며,충돌까지껴안는희제의사려깊은편지를받은다울은과연어떤답장을쓰게될까.마치소크라테스의산파술처럼짝을이뤄질문을주고받으며깊고신선한사유로서로를이끄는이편지들을통해우리는그동안미처알지못했던구원과희망의의미를낯설게통찰할수있고,서로가서로의구원과희망이될수있다는가능성까지믿을수있게된다.
이흥미진진한편지가끝난뒤둘은이해란공통점으로뭉쳐쉽게공감하고그치는게아니라“내가아무리노력해도이해할수없고닿을수없는무엇이존재한다는것을”힘껏감내하면서도“그것과적극적으로연루되려고분투하는”것임을깨닫는다.

짓궂은전략가이다울
X논리로무장한안희제의갈등에서탄생한우정
“하지만저는이편지기획에서일종의‘어그로꾼’역할을하고싶었는데,어쩐지성공한것같아조금기쁘다면너무짓궂나요.”서로를응원하고우정을다질수있겠지만,안희제와이다울은그런해피엔딩대신좁힐수없는차이를남겨둔다.두저자는그렇게‘아픈사람’으로납작해지길거부하며자신들의삶의고유성을보존한다.
“오드리로드는자신과파트너사이의‘서로의차이를뭉개거나흡수하지않고도하나가될수있는’관계가‘쉽고단순하며받아들이기편한것들에만안주하지않고오랜세월힘써노력하고서로대결하면서다져진것’이라고”말한다.오드리로드와파트너의관계처럼어떤우정은갈등과차이속에서도탄생할수있다는걸두저자가증명한다.
다울의소원처럼이편지는문학인동시에사회서이자일종의실용서가될것이다.두저자가쓰고내뱉고창조한말들이“누군가자신의병에관해인정을받는계기가”되고,이들이자신과서로의몸을도구삼아질병의언어를“발굴하고발견하며확장해나간”것처럼독자들도일상에서몸에관한말을발화할수있을것이다.

“편지란무엇인지물으셨죠.그게무엇인지잘은몰라도이번기회에큰매력을느끼게되었어요.서로가불일치로혼란스러울때조차우리는오랜편지쓰기의관습탓에,다정히안부를묻고날씨를말하며작은애정을나누게됩니다.그러니이번에도역시날씨이야기와함께안부를묻습니다.추위가조금누그러졌어요.건강은어떠신가요?부디숙면의신이함께하시길빕니다.그럼,안녕히계세요.”(이다울)

동녘의‘맞불’시리즈는계속타오릅니다
에코페미니즘과동물권을종횡무진사유하는이라영X전범선,수면아래잠긴여성의우울과자살을건져올리는서울대의료인류학과이현정X《미쳐있고괴상하며우울하고똑똑한여자들》을쓴하미나의편지가타오를예정입니다.이그치지않는대화들이독자와사회를끓게하는작은불티가되길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