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퍼즐 맞추기 :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이 건넨 위로

상처 퍼즐 맞추기 :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이 건넨 위로

$14.00
Description
동녘이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
지금 가장 뜨겁고 빛나는 작가들의 편지!
동녘에서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은 마주보며 타오르는 불처럼 두 작가가 주고받는 대화가 피워내는 미덥고 빛나는 이야기들입니다. 번역가 노지양X홍한별의《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90년대생 만성질환자 안희제X이다울의 《몸이 말이 될 때》에 이어 이현정X하미나가 세 번째 맞불을 지핍니다. 우울증과 사회적 고통을 연구하는 두 여성이 세상의 고통과 자신의 상처,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돌봄에 대해 나눈 진솔한 편지들은,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왜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할 것입니다.

저자

이현정,하미나

서울대학교인류학과교수.의료인류학자로서중국과한국의자살,우울증,재난트라우마와같은정신질환및사회적고통의지역적맥락과사회문화적관련성을파악하는연구를진행해왔다.또한,국가,의료전문가및NGO의개입방식이사회의정신건강에미치는영향을연구해왔다.저서로는『펑롱현사람들』,『아프면보이는것들』(공저),『세월호가묻고사회과학이답하다』(공저),『고잔동일기』(공저)등이있다.

목차

인사말
우리가함께만든공감의무늬

1장슬픔을연구하는슬픔
깊은슬픔을지닌이를만나고돌아오는길에
마치계속해서화살을맞는사람처럼
세상과나를연결지어준여자들
이제도움받는일에익숙해져보려고해요
수치심을덜두려워하기

2장우울과고통을말하기
우울증에걸리지않기가어려운사회
제가잃어버린사람들을기억해요
안다고생각하지만사실은잘모르지요
부단히연습하며마음을전달하려애써야해요
고통의언어와치유의언어
우리서로를걱정하는것일까요?

3장나아지기위해,나아지지않더라도
고통을겪었고눈물을흘렸고괴로워했다고
저는또다른모래성을쌓고싶어요
언제부턴가비관주의자가되었어요
희망이있다는믿음을가지고싶다구요!
세상이결코나아지지않는다고해도
하지만너의상처는나의상처

4장네곁에……내가있어
나의오래된페미니스트친구들
영웅이되지않는여자들사이를헤매며
학계에서여성으로살아가는일
저는고작스무살이었어요
우리의삶은늘삶을넘어서고
서로에게반응하고응답하는것
우리는더보듬어야해

맺음말
슬퍼하는사람들과그곁에있는이들에게

출판사 서평

타인의고통을듣는두여성연구자가이야기하는우리가서로의곁에있어야하는이유

이책은의료인류학자로서자살,우울증,재난트라우마와같은사회적고통에관해연구해온이현정과,페미니스트활동가이자작가로활동하며여성우울증의사회적맥락을탐구한《미쳐있고괴상하고오만하고똑똑한여자들》을쓴하미나가,타인의고통과자신의상처를들여다보며나란히함께퍼즐을맞추듯섬세하게채워나간편지들이다.

타인의고통을유심히듣고그고통의이유를찾는이현정과하미나는,고통의서사를듣고연대하는작업의어려움과그과정에서자신을돌보는일의필요성을이야기한다.현대한국사회에서우울증이증가하는이유를되짚고자본주의·신자유주의사회에서바깥으로밀려나는사람들을상기하고,가까운이와도움을주고받은경험을공유하며상호돌봄의중요성을다시한번깨닫는다.날이갈수록고통과슬픔이늘어만가는사회의문제점을짚으며‘세상이점차나아진다’는믿음을두고토론하기도한다.

타인의고통을연구하는두여성은세상의고통에대해이야기하다,자신의내밀한상처를드러내는데이른다.그리고,서로의경험이꼭닮았다는사실을깨닫는다.남성중심적인일터에서자기자리를찾으려분투해온여성으로서,일상적인차별과폭력을경험하며동시대를살아가는여성으로서둘은공명한다.편지를통해두사람은연결된퍼즐조각처럼손을맞잡고위로를건네며,고통이라는중력에발을딛고고통과함께살아가는방법을찾자고다짐한다.어떤고통은절대로이해해낼수없지만,우리는그상처를기반으로서로를이해하고함께연대하며관계맺을수있다.이책은고통과슬픔그리고애도로둘러싸인세상에서,우리가서로의곁에서서로를보듬어야하는분명한이유를알려준다.

“우리서로를걱정하는것일까요?”슬픔과괴로움에연대하는여자들이나눈우울과돌봄에관한고민들

하미나가띄운첫편지는‘동지이현정선생님께’라는말로시작된다.타인의고통을연구하고,고통의이야기를듣고기록하는사람으로서“오랫동안남몰래연대감을느꼈던”이현정에게,하미나는2030여성우울증을취재하며그들의고통을가까이마주하는일의어려움에대해고백한다.작업이힘에부칠때자신은프리다이빙을하면서일상의호흡을찾는다며자기돌봄의노하우도묻는다.그에화답해이현정은자신은“고통의이야기를들으며자신을어떻게돌보아야하는지,방법을전혀몰랐다”고솔직히털어놓으며“우리는자신을스스로돌봐야만남을돌볼수있다”고선언한다.

이현정이던진‘동지’의의미에대한질문에,하미나는2016년강남역여성표적살인사건이후일어난페미니즘의불길을계기로여성들과연결되었던경험을말하며“글을쓰는여성,또그중에서도타인의고통을보고쓰기로마음먹은여성”에게느끼는다정한연대감을드러낸다.이현정은강남역살인사건당시여전히여성에게행해지는폭력에대한분노와더불어젊은여성들에게미안함과자책감을느꼈다며,다른세대와어떻게연대하고함께싸워나갈지고민하지못했던‘영페미’세대를돌아보는동시에“‘동지’가되는이과정이제겐매우가슴떨리는일”이라며편지를주고받는기쁨을전한다.

돌봄의중요성과사회적고통의원인에대한이야기도오고갔다.이현정은친구에게서생활의도움을받은경험을이야기하며,타인의고통을들여다보는작업을하면서도“자신은도움을받는일과무관한것처럼”생각했던건아닌지반성한다.하미나는우울증이심한친구를돌본경험을말하며,현대한국사회에서젊은사람들의우울증이증가한이유를고민한다.둘은타인의돌봄을받기를수치스러워하는사람들,끝없이발전해야한다는사회의압박속에밀려나는사람들의괴로움을하나하나짚어본다.그리고사회적고통과그이유를언어화하는사람으로서,고통을말하는언어와마음을치유하는언어에대해서도이야기를나눈다.“부단히연습하며마음을전하려애써야”하는이유,고통에대해잘말하고설명하는것의어려움,타인의고통을듣기위해필요한“이해의지평”과위험을감당할결심”에대해탐구하고이해를넓혀간다.

편지가오가며우정이쌓일수록두사람은서로를궁금해하고,또서로에게서자신의모습을찾았다.첫책《미쳐있고괴상하고오만하고똑똑한여자들》의집필을끝마친하미나를격려하며이현정이“작가님의우울에대해서는우리가어떻게이해할수있을까요?”라고질문을던지면,하미나는“저는사실선생님이걱정이돼요.우리서로를걱정하는것일까요?”하고상대방을더욱염려하기도했다.

“세상이나아질거라고생각하지않아요”vs.“희망이있다는이야기를듣고싶어요”
세대가다른페미니스트들의치열한담판,따뜻한화해

2022년초,대선을앞두고“젊은세대남녀간의적대와싸움을부채질하는”정치인들을보며이현정은현실정치에대한실망을드러낸다.하지만하미나는뉴미디어언론〈닷페이스〉에출연해이재명후보와대담했던일화를들려주며,“세상은점점나아진다”고믿으며작은희망을보려고노력한다.하미나는조금씩천천히일어나는변화와젊은여성정치인들의행보에주목하지만,이현정은사회적변화는정치인이아닌수많은보통사람들의실천에서비롯된다고단언한다.세상을보는관점이다른둘은,잠시간서로의생각에반박한다.이현정이“현실정치에어떤기대나희망을갖고있지않다”고,“세상이나아질것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고거침없이말하면,하미나는자신이세상이나아질거라고믿는건“그믿음이유용하기때문”이고,앞서연구자의길을걸어간이에게“노력하는한희망이있다는이야기”를듣고싶다며받아친다.

평행선을달리는듯했던불일치를끝낸것은,서로의내면을궁금해하는손내밂이었다.하미나는이현정이“현실정치에갖는큰반감이괜히생긴것이아니라고”생각해그에게“희망과낙관이없는이유가무엇인지”를궁금해하며,그의지난흔적들을되짚어본다.그리고이현정이오랫동안세월호참사를비롯한사회적고통을연구하며써내려간문장들이마치스스로의고통을담고있는것처럼읽혔다며,“너의상처는나의상처”라고이해와위로를건넨다.그리고이현정은하미나가내민손을잡으며,앞으로는“희망의근거를찾아노력하는사람들에게힘을보태”겠다고다짐한다.

“이고통의퍼즐을전부맞추지못하더라도,괜찮아”
같은상처로연결되고공명하며만들어지는새로운관계

서로가다른사람이라는것을깨닫자편지에는서로를더정확히,잘알아가고싶은마음이담기기시작했다.두사람은대학시절친구들과페미니즘운동을했던경험을들려준다.1997년이현정이‘달나라딸세포’에서,2016년하미나가‘페미당당’에서동시대페미니스트여성들과연결되고함께목소리를내고한편으로는불화했던일들은무척비슷하면서도다른경험이었다.

베를린으로유학을떠나는하미나를위해이현정이자신이학계에서여성연구자로살아가며겪었던차별에대해이야기하자,하미나는학생일때선생님과교수로부터겪은성폭력의상처를조심스레꺼내놓는다.서로가한번도꺼낸적없던상처를내보인후,이현정이보낸다음편지는‘미나에게’라는말로시작되며두사람의거리를단번에좁힌다.동지이자같은여성의입장에서마주슬퍼하고화를내며,마치오랜친구에게비밀을털어놓듯이자신이겪은성폭력경험을나눈다.그리고는때때로폭력의기억들이“깨진퍼즐조각처럼다가오지만”,그리고“우리는죽을때까지도그것을완전히이해하거나꿰어맞추지못할지도”모르지만,서로에게서로가있기에“우리는결코파괴되지않을것”이라고힘주어위로한다.

다음편지에서하미나는‘현정언니’라는살가운호칭으로답하며고마움을전한다.도저히이해해낼수없는고통을이해해보려는시도를퍼즐맞추기에비유하며,“우리는끝내퍼즐이모두맞춰진전체모습을알수없겠”지만“퍼즐조각사이의관계에대해서는알게”될거라고말한다.이제두사람은“우리의삶에가장선명하게실재하는”중력같은고통을다시바라보며,상처받은이들의곁에서그고통에발을붙이고고통과함께살아가는삶을탐색하기로결심한다.

타인의고통을연구하는두여성은세상의고통과자신의상처에대한내밀한고백을통해연결되고,자신의고통과경험을재해석하고,서로와새로운관계를맺는다.그리고결국에는고통의이야기를듣는행위로상처들이보듬어지기도한다는것을,함께새로운의미를발견하고연대하며공감의무늬가만들어진다는것을깨닫는다.누군가의고통과슬픔이선명히들려오는세상에서,이책은우리가서로를보듬고연대해야하는하나의증명이될것이다.

동녘의‘맞불’시리즈는계속타오릅니다

에코페미니즘과동물권을종횡무진사유하는이라영X전범선,성형과식이장애를중심으로여성의몸과아름다움을다시보는박지니X임소연의편지가타오를예정입니다.이그치지않는대화들이독자와사회를끓게하는작은불티가되길바랍니다.

책속에서

선생님께서도깊은슬픔을가진사람들을만나오셨지요.그분들을만나고돌아오는길마다어떤생각을하셨을지궁금합니다.설거지를하다가빨래를개다가메일을보내다가문득문득떠올라내가다억울해진적이있으셨을까요.너무커다란타인의고통앞에서,나의고통에대해서는겸허해진때가있으셨을까요.돕고싶지만도울수없는순간을자주만나셨을까요.고통은결국한사람안의일이라무력해진때가있으셨을까요.함부로이입하거나공감하지않으려고거리를둔때도있으셨을까요.(22-23쪽)

저는오늘날의사회에서우울증에걸리지않기가매우어렵다고생각해요.치료를받아야할정도인가아닌가의차이가있을뿐이죠.이런사회에서살아가면서,몇몇예외적인‘초적응자’들을제외하고누가삶을편안하고안락하게느낄수있겠어요?반면세상은온통‘초적응자’들만을정상이라고간주하고있는상태죠.(64쪽)

고통의이야기들을오랫동안채록해오면서제가느낀것은,많은사람들이고통을느끼면서도그고통이무엇인지를정확히알지못하고있고,알더라도언어로표현하지못한다는사실이에요.물론느끼는것과아는것과말하는것사이에는각각간극이있겠죠.아픔을느껴도무엇때문에아픈지정확히인식하지못하는경우도있고,또정확히어디가아픈지를알더라도어휘에한계가있거나사회적으로이해되기어려운언어기에표현하기어려울수도있죠.(99쪽)

선생님,저는사실선생님이걱정이돼요.(우리서로를걱정하는것일까요?)저는당사자성이있었고,이야기하고싶었던고통이저의고통과바로맞닿아있었기에오히려이작업을하며편하게쓰거나말하거나생각할수있었던것같아요.그런데선생님이해오신작업은그렇지않았던것같거든요.(109쪽)

저는세상이나아지고있다고생각해요.변화의방식이나속도가충분하지않다고하더라도요.그변화에제가기여할수있다고믿고요.무엇보다저는그믿음이유용해서계속유지하고싶어요.등산할때봉우리만보고가면너무지치지만,앞사람뒤꿈치를보며걷다보면어느새꽤많이올라와있는것처럼,주변사람들의구체적인얼굴을떠올리며애쓰고싶어요.봉우리는여전히멀어보이더라도뒤를돌아보면올라온길이쭉보이는것처럼요.(130-131쪽)

결혼하고자녀를둔남성은성숙하고일을더잘할거라고여겨지지만,여성은가정에서의역할로인해맡은일에진지하게임하지못할거라고여겨지지요.또,학위과정을밟으며결혼해아이를둔여성대학원생은보육비마련이어려워학계에남기를포기하고다른직장을찾기가쉬워요.교수가되기전연구교수나연구원,시간강사직을맡고있을때도마찬가지예요.학계의편견과경제적인이유등으로,아이가있는여성들은교수라는목표를포기해야한다는압박감이높아져요.(204쪽)

미나야.우리는상처를받았고또상처를받았고또상처를받았지만,그리고그상처에대한기억들이한참지난다음에도우리의몸을휘두르지만,너와나는여전히살아가고있지않니?나는그점이중요하고,또우리는친구로서서로의생존을칭송해주어야한다고생각해.(234쪽)

도저히이해해낼수없는고통을이해해보려는시도는마치퍼즐을맞추는일같아.우리는끝내퍼즐이모두맞춰진전체모습을알수없겠지.하지만퍼즐조각사이의관계에대해서는알게되겠지.언니는퍼즐조각을완전히맞출수있다고말해주는대신우리에게관계가있다는걸알려주었어.(241-242쪽)

나는이렇게생각해.고통이중력이라면,우리는그중력에발을딛고삶을꾸려가야만해.중력속에서집도짓고,마을도만들고,심지어우주선도띄워야하지.인간의삶이고통에서벗어날수는없지만,우리는적어도그안에서더나은삶을상상하고만들어나갈수있지않을까?고통을단순히불행이나실패로치부하는대신에,고통과함께다르게살아가는방법을고민할수있겠지.(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