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연구 (비밀에 부쳐진 말들, 삭제된 존재의 배회, 트라우마의 체현)

유령 연구 (비밀에 부쳐진 말들, 삭제된 존재의 배회, 트라우마의 체현)

$25.00
Description
말해지지 못한 것을 번역하고, 삭제되고 조각난 존재를 복원하기
사회적 존재로서의 유령을 탐구하는 대담하고 아름다운 시도
죽은 자의 존재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살아 있는 사람임에도 희미하고 투명한 배경 같다는 느낌, 혹은 죽은 사람의 무언가가 내 곁을 떠돈다는 느낌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한국계 미국인 학자 그레이스 M. 조는 자라는 내내 가족 안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는 어머니를 느꼈고, 그것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을 자기 삶의 과제로 삼는다. 그의 또 다른 책 《전쟁 같은 맛》이 어머니의 삶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회고록이었다면, 저자의 첫 책인 이 연구는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탐구가 어머니와 유사하게 유령적 존재가 된 이들로 확장되고, 그들의 전말을 온전히 추적하고자 한 분투의 결과물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유령이 된 양공주를 탐구하는 이 책은 다음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당사자가 지각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신 보고 들을 수 있는가? 어떻게 삭제된 기억을 복원해 역사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가? 유령적 존재가 연구의 대상이 될 때, 그 탐구와 기록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양공주가 한국전쟁, 기지촌 생활, 미국 이주를 거치며 어떻게 등장해 어떤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어떻게 삭제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삭제가 어떻게 유령을 생성했는지, 유령이 어떻게 산 자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밝힌다. 저자는 배회하던 유령이 산 자의 몸을 빌려 말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몸들이 경험하는 환시나 환청을 비정상적 광기가 아니라 유령의 존재를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로서 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유령 연구가 트라우마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지각을 짜맞추는 창의적인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유령의 배회를 삭제된 존재가 기억되는 역사의 한 양식으로 위치시키고, 미결된 역사에 윤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현재적 장소로 설정하고자 한다. 유령에게 배회당하며 정동적 유대를 형성한 몸들은 그들과 비슷한 몸/유령들을 찾아내는 정치적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공주는 위안부, 환향녀뿐 아니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해 싸우는 이들과도 동시대적으로 연결된다.
유령을 목격하기 위해 시도한 연구 방법론 또한 흥미롭고 새롭다. 유령을 목격하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이미지, 감정, 목소리들 속에서 트라우마의 흔적을 읽어내야 한다는 관점 아래, 저자는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구술사, 문학, 공연/전시, 꿈, 자문화기술지 등 다양한 양식에 흩어져 있는 유령의 상흔들을 그러모은다. 그리고 실제와 허구, 자기와 타자, 언어와 비언어, 의식과 무의식,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글쓰기를 펼쳐 보인다. 미학자 양효실은 이 책을 “동시대 페미니즘·퀴어·장애학의 실천으로 부상 중인 자기이론의 전범”이라고 평했고, 출간 당시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학회인 미국사회학회(ASA)에서 ‘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인’ 부문 우수도서상을 수상했다.

유령 연구란 무엇인가?
언어, 의식, 실증 바깥의 존재가 탐구의 대상이 될 때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인 그레이스 M. 조는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 머무른 미국 상선의 선원이었던 미국인 아버지, 그리고 그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자라면서 몇 가지 경험을 한다. 어머니의 희미한 존재감과 그의 과거에 대한 집안의 침묵, 저자의 십 대 시절 발병한 어머니의 조현병, 그리고 스물세 살에 처음으로 알게 된 ‘양공주’라는 단어. 그 순간 “나라는 사람을 있게 한 폭력의 역사와 난데없이 마주”친 저자는 “가족에 관한, 그리고 내가 태어난 나라와 나를 받아준 나라, 그리고 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적 여정을 시작한다.
저자는 대학원에 입학해 한국전쟁 당시의 일들과 미군 기지촌의 노동자들, 미국으로 이주한 ‘전쟁 신부’들의 경험을 연구하고자 했지만 이 작업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는 너무 고통스럽거나 위험해 입 밖에 내기 어려울 때가 많았고, 기지촌의 매춘부로 일했던 경험은 당사자 개인과 그들의 가족, 한국 정부에게도 숨기고 싶은 역사였기 때문이다. 전직 기지촌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숨기거나 속였고, 심지어는 저자의 어머니처럼 정신질환으로 인해 온전한 서사를 구사하지 못했다. 이들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적 담론 또한 부재했다. 실증주의적 전통의 사회과학계에 속하던 저자는 실증의 렌즈로는 이들의 존재를 포착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를 계기로 그의 연구 질문은 다음의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겹겹이 삭제된 층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트라우마의 주체도 지각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보고 들을 것인가?”
저자는 트라우마 당사자와 정서적으로 깊게 연결된 몸, 바로 그들의 자녀들로부터 활로를 찾는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자녀들에 관한 연구가 보여주듯, 한국전쟁 생존자 자녀들 역시 부모가 숨긴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해 지속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은 손에 잡히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힘의 형태를 한 침묵이 자신을 배회하고 있다고 느끼고, 배회하는 것들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며, 가족 내의 침묵에 집착하거나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 없는 트라우마를 지각한다. 라캉에 의하면 ‘불충분한 애도’ 때문에 생겨나, 데리다에 의하면 ‘계속해서 돌아오는 것’이 유령이라고 했다. 그렇게 저자는 실증주의의 관점을 벗어던지고 ‘유령 연구’를 시도한다.
유령 연구란 무엇인가? 비이성을 일축하는 전통적 사회과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 승인받지 못한 것, 얼핏 봤을 땐 부재하지만 숨 막히는 존재감을 가지고 현실에 작용하는 것, 현재 안에 들어 있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다. 유령은 단순히 죽거나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며, 이들을 연구하는 일은 사회와 망자의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령에 관한 탐구는 잊힌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는 한 양식이자, 그것에 윤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현재적 장소가 된다.
저자

그레이스M.조

뉴욕시립대학교스태튼아일랜드칼리지사회학·인류학교수.브라운대학교졸업후하버드대학교에서교육학석사학위,뉴욕시립대학교에서사회학·여성학박사학위를받았고,현재는사회학·젠더연구·장애학·비판적범죄학·음식학을가르친다.한국전쟁이후한반도에머무른미국상선의선원이었던미국인아버지와한국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나미국에서자랐다.열다섯살무렵,어머니의조현병발병을계기로어머니의존재와생애가개인적·학문적인생의중대지표가되었다.국가폭력과역사적트라우마의흔적이현재의친밀한공간속에어떻게스미는지를탐구하며,학제간연구와창의적논픽션이교차하는작업에관심이있다.동료한인디아스포라연구자·예술가들과함께한국전쟁과트라우마,디아스포라에관한공연과전시를올리기도했다.그러한작업을종합한박사학위논문을단행본으로출간한이책은미국사회학회(ASA)‘아시아및아시아계미국인’부문우수도서상을받았다.이후출간한《전쟁같은맛》은전미도서상논픽션부문최종후보작에올랐고,‘아시아·태평양미국인도서상’을수상했으며《타임》이꼽은‘올해의100대도서’로선정되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9
감사의말15

프롤로그삭제의짜임21
1장유령에살붙이기61
2장트라우마의계보99
3장사라진양공주를찾아서161
4장명예백인이라는판타지225
5장디아스포라의비전:트라우마를보는방법들279
에필로그추모하며339

해제유령이배회하는역사_김은주347
주357
찾아보기391

출판사 서평

“극복의서사를새로운발견으로전환시키는공부와글쓰기.”-정희진
“자기이론의전범이고,내게는올해의책이다.”-양효실

미국사회학회‘아시아및아시아계미국인부문’우수도서상수상작
《전쟁같은맛》그레이스M.조의첫책

한국사뒤편에묻혀있던
양공주의유령화과정을추적하기

그렇다면누가왜,어떻게유령이되는가?저자는트라우마가은폐되고침묵당해제대로해소되지못했을때유령이생성된다고말한다.이책의2~4장을통해그는양공주의유령화과정을추적한다.2장은먼저그최초의트라우마가생겨난현장인한국전쟁초기로되돌아가미군에의한학살의참상을생생히보여주고,이러한전쟁의트라우마가양공주라는유령의토대가된다는점을드러낸다.양공주는한국의분단과미국에의종속을고통스럽게상기시키는존재가되고,한국인들이전쟁기간경험한공포,비통함,수치심,분노,감사,갈망과같은혼란을투사하는스크린이된다.
3장은한국전쟁전후기지촌매춘의역사적·정치적조건들을개괄하며양공주가군사화된실천들에종속되어있는한편,한국의트라우마적역사에의해구성됨을보여준다.그리고한미관계의특정한국면에따라양공주의몸이가시화되었다비가시화되었다를반복하며한국의민족주의이데올로기들이경합하는전장이된과정을다룬다.이과정에서기지촌여성이경험한실제폭력과트라우마는단단히함구됨으로써유령이생성된다.
4장은미군과의결혼으로미국에이주한10만여명의양공주들로시선을옮긴다.미국의이민자연구는미국내한인들이아시아계를통틀어가장동화가잘된‘모범소수인종’이라고평가하지만,‘명예백인’이되는일은디아스포라의역사에내장된트라우마적기억들을삭제할것을요구한다.또저자는군인신부로서한인여성들의결혼생활이가족으로부터의배척,생활고,가정폭력,정신질환으로점철돼있다는점을짚고,이모든트라우마가‘아메리칸드림’이라는미국의공적담론에의해부정됨으로써그들이더욱더유령같은존재가되었음을보여준다.

광기를재사유하고역사를현재화하는
정치적행위자로서의유령

이렇게유령이된존재는무엇을하는가?그는자신이말하지못하는것을대신말해줄몸을찾아시공간을가로질러퍼져나간다.유령은독자적인행위자성을갖고서자신에게정동적으로연결된몸주위를배회하고,그몸들에게트라우마적이미지와목소리를퍼뜨린다.트라우마를체현한이몸들은종종그것을조현병적환시와환청으로경험하는데,저자는이러한광기를정신병리적비정상성으로만여기는해석을거부하고,삭제된것을독해하는생산적인수단으로새롭게의미화한다.서평가정희진이말하듯저자는“극복(re-covery)의서사를새로운발견(dis-covery)으로전환”시킨다.
또한이책은트라우마를체현한몸들이보고듣는이미지와목소리를‘무대에올려’보여줌으로써유령의영향을개인적인영역에서사회적인영역으로끌어낸다.이러한시도는유령에정치적인힘을불어넣는데,비슷한트라우마와취약성을공유하는몸들과유령들이서로를찾아내고정동적인유대를빚어내게하기때문이다.이렇게양공주의유령은청나라에끌려갔다돌아온조선의환향녀부터일제시대의위안부,미군기지촌에서일하는각국의이주노동자여성들과연결되고,지금동두천의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해싸우는이들,더나아가전쟁과국가폭력에희생된모든이들과연결됨으로써이유령이지금우리의주변또한배회하고있음을느끼게한다.이로써우리는특정한역사를과거만이아닌현재의순간으로,이곳만이아닌저곳의장면으로확장하여감각하고연대할수있다.

유령을어떻게기록하고재현하는가?
삭제의잔해를더듬어기워낸혼종적글쓰기실험

저자는이책에서유령을탐구하는것만큼이나독특한또한가지과제를수행하는데,그것은바로유령을기록하는글쓰기이다.트라우마경험은한줄의정돈된서사로설명되기어렵고,폭력의피해자에게일관된서사를요구하는것자체가인식론적폭력임을책전반에걸쳐보여주면서,저자는선형적인서사의형식이아닌회귀적이고다층적인형식의글쓰기를시도한다.이책의본문곳곳에는(검은색바탕의)픽션이섞인짧은삽화(揷話)가들어있는데,이는한국전쟁생존자,미군과결혼한한인여성의구술사,군인을대상으로성을판매하는한국인과생존위안부와의인터뷰,양공주가주요한등장인물인대중매체의언설들,디아스포라한인들이양공주를다룬문학과영상과공연/전시,저자자신의꿈과자문화기술지등을바탕으로한텍스트이다.이삽화에서저자는서로다른사람들의목소리를중첩시키고,목소리들간의경계를의식적으로흐리고,실제와허구를얼기설기엮는다.이러한글쓰기는“다른서사들을엮어낼수있는파편들을모으고,선택적인용과이연구에관련이있는사안들의증폭을통해증언의외관을훼손하고뒤틂으로써그대상혹은근원과연결시키는강력한기억의형태”이다.저자가이러한시도를감행하는이유는이것이공식기록에남아있지않은역사를기록하는거의유일한방법이기때문이다.평론가신형철의말처럼‘알고자하는대상의진실을가장정확하게표현하고자하는것이글쓰는이의사랑’이라면,이대담하고시적인글쓰기실험은저자자신의어머니를향한,트라우마로얼룩진자신들의역사를용기있게이야기한여성들을향한,삭제되고추방되고조각난모든이들을향한치열한사랑의결실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