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평전 (개정판 | 양장본 Hardcover)

도산 안창호 평전 (개정판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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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도산 때문에 다시 든 펜
1984년 늦봄,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지은이 이태복은 단식투쟁 끝에 담당검사에게 볼펜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안창호 평전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태복은 도산을 사표로 삼고 민주화운동을 했다. 그런 지은이에게 같이 갇혀 있던 양심수들은 도산 안창호를 개량주의자, 부르주아민족주의자로 치부하면서 연구할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지은이는 일방적인 찬양이나 비난을 넘어, 치열한 실천으로 독립운동과 공화국 건설, 인물 키우기 사업을 펼쳤던 도산의 삶을 온전히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8.15 기념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볼펜을 다시 빼앗기고 말았고, 그 뒤 1988년 10월 석방될 때까지 펜을 잡을 수 없었다. 석방된 뒤에는 노동자언론을 세우고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평전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학교 강의를 하는 지금 틈을 내지 않으면 도산에 대한 잘못된 초상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에 20여 년 만에 집필을 다시 이었다.
저자

이태복

민주화운동의전설적인물이로,날카로운정세분석과몸을던지는실천으로민주화운동에서독보적인지도력을발휘했다.청와대복지노동수석과보건복지부장관을지냈다.

1960년충남보령시천북에서태어남.
1966년흥사단고등학생아카데미활동,대학생서울아카데미회장.
1971년대학2학년때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제적돼강제입영.
1977년도서출판광민사(光民社)설립.
1981년전두환정권의탄압을받아,사형구형에무기형을언도받음.(8년옥고)
1986년엠네스티인터내셔널이‘세계의양심수'로선정,국제적인석방운동이일어남.
1988년10월석방되고12월특별사면복권됨.
1996년사회복지단체‘인간의대지’설립.
2001년청와대복지노동수석.
2002년보건복지부장관취임.
2003년한서대노인복지학과초빙교수.
◇사)인간의대지이사장
◇사)5대운동이사장
◇사)매헌윤봉길월진회회장
◇사)윤상원기념사업회이사장
◇국민에너지(주)대표이사

저서로『세상의문앞에서(옥중서한집)』(1990),『노동자의논리와희망의노래』(1992),『전환기의노동운동』(1995),『우리시대의희망찾기』(1996),『기백이있어야희망이보인다』(2000),『쓰러져도멈추지않는다』(2002),『대한민국은침몰하는가』(2004),『사회복지정책론』(2006),『윤봉길평전』(2019)등이있다.

목차

개정판에부쳐
머리말
1막|먹장구름속에서싹튼새싹
2막|한양에서신학문을배우다
3막|구국운동에뛰어들다
4막|미국에서한인노동자를조직하다
5막|공화국의꿈을안고조국으로돌아오다
6막|해외독립운동기지개척과흥사단창단
7막|통합임시정부의틀을세우다
8막|흥사단원동위원부와독립운동근거지건설사업
9막|민족유일당,좌우통일운동
10막|낙심마오!
맺음말
도산안창호연보

출판사 서평

지금,도산을다시부르는까닭

도산이세상을떠난지68년이지났다.그시간동안도산은제대로조명되지못했고,일제정책에이용당했다는오명을쓰기도했다.하지만지은이는도산으로부터나라와겨레에대한사랑이‘공허한말’이아니라‘온전한함’에있다는사실을,자신을끊임없이혁신해가는인간만이자유로운세계의주인이될수있다는가르침을배웠기에그를다시역사의광장으로불러내야한다고말한다.그까닭은다음과같다.
첫째는도산의삶이그자체로서아름답기때문이다.굶어죽는독립운동이아니라싸워이기는독립운동,공리공론을일삼는독립운동이아니라구체적인방안을무실역행하는운동,말과행동이일치하는독립운동을호소하고몸소실천하였던인간이바로도산안창호였다.자리를탐하고,명예욕에빠지며변절한몇몇독립운동가와다르게오로지독립운동이라는대의에철저했다.

둘째는도산의풍부한독립운동방략에배울점이많아서다.구체적인실천방안을끊임없이제시하는인물들이없으면독립운동도,독립후에도나라꼴이제대로되지않는다며‘인물기르기’를강조했던도산의문제의식은한국사회의현실에서여전히유효한교훈이다.목소리만요란할뿐현실에근거한실천방안이없는개혁파들,언행이일치하지않는지도층,국민을위해헌신하고희생할생각보다안일과골프에여념이없는고위공직자들,국가와국민의밥그릇보다자기밥그릇만욕심내는사회각집단들,남북의통일단결보다정치적으로서로이용하기에바쁜게우리의현실이다.이를해결하기위해서는대한민국의중심축을떠받칠인물들을기르고그인물들이결집해야한다는점에서도산의가르침은지금도유효하다.

셋째는분열과갈등의소용돌이에빠져있는한국사회에서통일단결과통합의리더십이절실한탓이다.서로감정이쌓인사람들에게아무리통합과단결을강조해도마이동풍일뿐이다.분열적언어와행동을삼가고통일단결의큰길을지향하며민주적인공론을모아가는리더십을도산은이미독립운동과정에서보여줬다.


도산의발자취

도산안창호는1878년전형적인잔반(殘班)의셋째아들로태어났다.안창호는서당에서공부하다가열여섯살에신학문을배우려고향평안남도를떠나한양으로가,예수를믿으면가르쳐주고먹여주고재워준다는말에언더우드가운영하던구세학당에들어간다.그리고그이듬해에서재필의연설을듣고나라를구하는일에일생을바치기로다짐한다.이름없는우국청년으로활동하던안창호는스무살인1898년평양에서만민공동회가개최한연설에서18개쾌재와18개불쾌로탐관오리들의학정과비리를규탄하고외세의침탈에강력대응할것을호소하여유명해진다.그러나도산의첫구국운동의무대였던만민공동회운동은실패했고,1899년에고향에돌아와근대학교인점진학교와개간사업을전개하여문명개화운동에헌신했다.1902년에미국으로건너가샌프란시스코에서한국인친목회와공립협회를조직하고,1907년1월귀국하여이갑,양기탁등과함께비밀결사인신민회를조직하였다.

도산은전국순회강연과민중운동을전개하였으며,1908년평양에대성학교를세웠다.분투노력에도불구하고통감부의탄압이계속되자1910년망명하여만주지역에독립운동의근거지건설을추진하였다.1911년다시샌프란시스코로건너가서대한인국민회중앙총회를조직하고1913년5월흥사단을조직하였다.3.1운동이후상하이로건너가임시정부에서내무총장직을맡아임시정부의기초를닦았다.1932년윤봉길폭탄의거로투옥되었고,1937년동우회사건으로흥사단동지들과붙잡혀투옥되었다가병보석중에1938년세상을떠났다.1962년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에추서되었다.2006년현재까지도산의인격과가르침을따르는흥사단활동이이어지고있다.


개정판에서달라진점

초판에서제대로다루지못했던내용이몇가지있었다.첫째는윤봉길의사의상해의거와관련된내용이다.둘째는대전감옥출옥이후해외망명시도등이다.초판에서윤의사가상해에와서몇차례이사를했는데,세곳이흥사단단우의거처였다는사실,백범이임정간부들에게보고했고,중요사항은도산과협의해왔다는점등을들어윤봉길의거를사전에알고있었다고기술하는수준에서멈췄다.하지만최근일본측의윤봉길취조기록이나독립운동가김광의『윤봉길전』의기록등으로볼때독자적으로의열투쟁을계획해이유필과협의하여4월24일칙어50주년반포기념식장에서폭탄을투척하기로했으나폭탄확보가되지않아29일의일왕생일기념식장을겨냥하게됐다는사실이분명해졌다.윤봉길의사가상해로와서도산과이유필당시민단장등흥사단원동위원부인사들을만나고대부분의거처를함께한사실,특히도산의거처였던태평촌에서윤의사는흥사단우였던김광과10개월정도함께생활한점,윤의사가주도한파업을이유필과도산의중재로마무리했다는점도주목했다.그리고윤의사가일제에체포된직후거류민단장과협의했다고진술한점,또중국측의반응이도산과흥사단사람들에게호의적이었다는사실은무슨의미인지살펴봤다.

그래서이번개정판에서도산이상해에진주한일본군에맞서한중연합군사작전을도모할필요에직면하여측근으로알려진이유필을고리로해서군사행동을시도하지않았을까.그렇지만이유필이폭탄을확보하지못하면서이시도는실패로돌아갔다.그때중국정부는남경의장개석과광동의왕정위,공산당의모택동정부로분열돼있었고장개석의상해쿠데타로상해의독립지사들은대부분장개석정부에호의적이지않았다.도산은대일한중연합전선을구축하기위해우리내부에새로운조직을만들어대처해가기로했다,중국도일본의전면적침략에대응하기위해통일정부를구성하기로1932년초에비로소양파가합의하여통합정부가출범하였다.이런배경이있었기때문에위력있는폭탄확보가쉽지않았던것이다.따라서윤봉길의사는장개석의국민당과밀착돼있던백범을찾아가2차거사를협의하여성공을거둘수있게되었던것이다.

이렇게개정판에서는최근자료를근거로윤봉길의사상해의거는윤의사가적극적으로1차시도를하였으나폭탄확보가되지않아백범을찾아가2차시도를하여성공한것이었다는점,1차시도에이유필과도산이관련될수밖에없었고,당연히2차거사에대해서도그내용을알게되었다는점을반영했다.해외망명시도는초판에서다룬내용이상의새로운자료를찾지못했다.직접관련된분들의타계로증언이더이상나올수없고건강이악화된상황에서해외망명시도가갖는동사적의미가크지않아서이번개정판에서손을대지않기로했다.그리고초판에서도산의삶과정신을본받기위해오늘의우리가무엇을해야할것인가하는문제에대한고민의일단을쓴것이있었다.그러나상황이더욱악화되고흥사단내부의변화만을기다릴수없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