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폭력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시각의 폭력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15.00
Description
가장 고귀했던 감각은 어떻게 가장 타락한 감각이 되었나
n번방, 웰컴투비디오, 딥페이크물, 웹하드 카르텔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는 기술’이 빛을 발할수록 ‘보는 폭력’의 그늘은 깊어간다. 불법 촬영과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말 그대로 ‘영원한 고통’을 안기지만 단속과 처벌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이 폭력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이 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까?
이 책이 쥔 무기는 철학이다. 디지털 기기와 통신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듯 보이는 이 ‘새로운 폭력’은, 사실 플라톤부터 데카르트와 하이데거에 이르는 시각중심주의 철학에 깊이 뿌리내린 ‘오래된 폭력’이다. 시각을 다른 감각들보다 특권화하고 ‘관조’를 중시함으로써 대상이 품은 시간성을 배제하는 서구의 철학적 전통은 근대의 시각중심주의로 이어졌고, 오늘날 온갖 시각의 폭력은 이러한 토양에서 자라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의 시각중심주의를 ‘근대의 광기’라고 본다. 이는 관음증적 욕망, 렌즈의 발달, 여성혐오와 결합해 점차 힘을 키웠고,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되었다.
출구는 없을까? 이 책은 ‘광기’에 맞서는 또 다른 ‘광기’를 제시한다.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히스테리 환자’의 굴레가 씌워진 근대의 여성들부터 ‘렌즈를 부수는 송곳’을 든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스트들까지 ‘여성 광인’의 역사는 짧지 않다. 또한 촉각이라는 대안을 통해 시각 중심으로 치우친 우리의 감각 체계를 돌아본다.
저자

유서연

이화여자대학교철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파리4대학철학사과DEA과정을이수하고,파리1대학철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수원대학교와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교양철학과여성주의미학을가르쳤다.지은책으로는《공포의철학》이있고,《고양이십자수》와《20세기서양철학의흐름》을비롯해논문과영화리뷰몇편을우리말과프랑스어로옮겼다.다큐멘터리〈여자의몸으로글쓰기:허난설헌〉,〈당신의나이는몇살입니까?〉를연출했다.

목차

들어가는말:이시대가장낯익은폭력

제1장보는폭력에대하여
새로운여성살해
디지털시대의성폭력
n번방과시각의광기

제2장시각이라는특권
가장고귀한감각의타락
정신의눈,고대그리스의전통
빛의은유에물든서양철학
‘지금,여기’만을향한눈길
시각은어떻게권력이되는가

제3장관음증의탄생
모든것을보고싶어하는광기
관음증과망원경
전부를보지만아무것도보지못하는

제4장카메라가가져온것들
원근법,카메라시각의근원
‘어두운방’부터카메라발명까지
사진과관음증,그리고페티시
영화의탄생
관음증에서사디즘으로

제5장디지털시대의남성들
지금,여기,시간이사라진몸
인기척이사라지고수치심도사라졌다
남성의우정과연대의방식

제6장렌즈를깨는여성광인
나는미쳤다,나는존재한다
히스테리,보이는자의광기
선지자이자광인이었던여성들
송곳을쥐고나타나다

제7장새로운시각은가능한가
평면거울을깨부수고오목거울로보기
문턱,통로,입술로서의촉각
비대면시대에필요한감각
촉각적빛,촉각적시각을향하여
당신이나를볼때,난누구를보겠어요?

출판사 서평

고전적관음증부터디지털성폭력까지
철학으로추적한‘보는폭력’의뿌리

디지털시대에‘이미지’를만들고전달하는기술이눈부시게발달할수록,이미지를기반으로한다양한성범죄는‘진화’를거듭한다.버닝썬과정준영일당의집단성폭력과단톡방유포사건은많은사람들을경악시켰고,웹하드카르텔은디지털성착취가산업화되고있음을보여주었으며,텔레그램n번방사건은피해영상이지금도계속퍼지면서끝나지않고있다.성착취물은한번이라도유포가되면가해자가무한증식될수있기때문에피해자들의고통은끝이없다.피해경험이없는여성들도공중화장실벽에구멍이있으면불법촬영을의심하는노이로제에걸린지오래다.
물론제대로된단속과수사,처벌이가장시급할것이다.하지만한가지문제가남는다.바로디지털기술은진화의속도를더욱높이고있다는점이다.예컨대딥페이크성착취물의경우,사용되는기술은나날이교묘해지는데,법은여전히제작자만처벌하는데그치는등‘사후대책’의속도는기술의속도를따라가지못한다.그렇다면좀더다른방향의접근도필요한게아닐까?“대상화되고객체화된이미지들이난립하는시각의폭력에물든이사회에서근본적변혁이일어나지않는한디지털성폭력이근절되기힘들것”이라고보는저자가,‘보는폭력’과이를둘러싼사회와문화를근본적으로짚어보기위해선택한방식은철학이다.
이책은21세기에새로등장한범죄처럼보이는디지털성폭력의저변에고대그리스부터이어져온시각중심의철학전통이깔려있다고본다.따라서여성의시각적대상화와시각중심주의라는아주오래된‘전통’을먼저이야기해야한다는것이다.이러한근대의시각중심주의는여성을비롯한타자와소수자를시각적으로대상화하고통제하려는‘이성’에근거한다.더거슬러올라가면시각의특권화,그리고대상의시간성맥락을제거하는‘현전성’이라는서구의형이상학전통이있다.저자는시각중심주의가관음증의역사,망원경·카메라·영화의탄생으로이어지는렌즈의발달,그리고여성혐오와결합되어어떻게‘모든것을보고싶어하는광기’로나아가는지보여준다.그리고이러한광기는“인기척이없고수치심도사라진”디지털시대의‘모니터앞’공간에서더욱극대화된다.

“‘테크네’,즉기술이라는낱말은플라톤시대에이르기까지‘에피스테메’,즉앎이라는말과같이사용되어왔다.이두낱말은넓은의미에서인식을지칭한다.그것들은무엇에정통하거나통달해있다는뜻이다.이와같은맥락으로고대그리스철학에서부터시작된앎과기술의공모관계는,근대적인식이론에기반을둔현대과학기술문명에서그극단에이른다.무사심하게여겨지는고대그리스의관조적시선에서비롯된근대적인식이론이가장한객관적·가치중립적시선의배후에는,내눈앞에현전하는“존재자를확실하게알아내어그것을자유자재로다루고구사하려는의지가꿈틀대고”있다.”(69쪽)

“디지털시대의남성들은더이상신비화된팜므파탈적인여성스타에게열광하지않는듯하다.그들에게는더이상페티시가필요하지않아서,아름답게치장한젊은여성들이속옷을내리고변기에앉을때드러나는혐오스러운‘상처’를화장실몰카로보며희열과쾌감을느낀다.정작여성자신에게는상처도뭣도아닌그저존재하는그러한생식기를바라보며,그토록아름답게꾸며봤자너희들은여신이아니라그저갈라진생식기로존재하는혐오스러운존재이자조롱당하고능욕당하는존재라고말한다.이처럼도처에서관음증적시선에노출된디지털시대의여성은자신의갈라진생식기로인해,혹은자신이지닌섹슈얼리티에의해여전히사디즘적으로처벌받고단죄받으며상징적인사형선고를받는다.”(144쪽)


‘보는것’은왜그토록중요한가?
견고한시각중심의세계에던지는질문

그렇다면시각의폭력은몇몇범죄,일부가해자에게만해당되는이야기일까?오늘날우리는SNS에서습관적으로타인의일상을엿보고,나의일상도습관적으로노출한다.저자는“관음증과노출증은종이한장차이”라고분석한프로이트를인용해SNS속보여주기를관음증이일상화된사례로들며,SNS속의멋진이미지들이“21세기의새로운페티시”라고본다.
또한사람들이다른어떤감각기관보다눈이손상되는것을두려워하는것에서도실마리를찾을수있다.‘본다는것’은단순히대상을확인하는감각을넘어‘아는감각’,‘통제하는감각’이기도해서다.저자는360도로펼쳐보는‘파노라마’의발명과수감자들에게시선의감시를내재화하는‘파놉티콘’의예를통해,‘그저보는것’이어떻게그자체로권력이되는지설명한다.이렇듯신처럼모든것을한눈에보려는경향에대해“모든것을객체화해통제할수있으며시선의권력에서벗어나려는타자의움직임이보이면시각적으로폭력을행사할수있다는자만심”이깃들어있다고도진단한다.그러므로‘보지못하는것’에대한우리의공포는‘보는권력을잃는것’에대한공포이기도할것이다.
누구나사진을찍고찍히며공유하는것에익숙해진이시대는,이처럼언제라도권력이되고폭력이될수있는시각의메커니즘에익숙해진시대다.즉,대상을“거리를두면서직접개입하지않고,눈앞에고정되어시간의흐름이제거된무시간적존재”로바라보는방식에서누구도자유롭지않다.그러나저자는‘모든것’을보려할수록,중요한그어떤것도보지못할뿐이라고단언한다.
아울러시각이오랫동안‘으뜸감각’의지위에있는동안촉각,후각,미각등다른놀라운감각들이얼마나폄하되어왔는지설명한다.이러한시각중심의감각체계,나아가시각중심의세계를넘어설대안으로저자가제시하는것은‘촉각적시각’이다.수평적평등을기반으로한이러한‘시각’이“새로운형태의관계망을갖게하는계기”가될수있음을이리가레를비롯한연구자들의분석과여러예술가들의작품을통해보여준다.

“관음증적인남근적시각은‘(여성의)모든것을응시한다’고착각하지만,사실‘모든것을본다’는것은‘아무것도보지못하는것’이다.그래서나타나엘의‘망원경’을통한여성훔쳐보기는어둠속비밀스러운실체가드러났을때,즉올림피아가실은자동기계인형이었다는비밀에직면했을때파열되고,관음증적인남근적시각은산산조각이난다.결국나타나엘은망원경을통한남근적시각이포착해낼수없었던과잉적인실체앞에서광기로미쳐간다.이런광기는근대시각중심주의가내포한관음증적주체가귀결할수밖에없는결과이다.”(100쪽)

“철학은평면거울을통해세계의빛을비추고,그러한시각이미지를통해세계를설명하려한다.그러나이러한세계는남성주체가거울을통해자신을반사하고시각적으로나르시시즘적인자기동일성을재확인하며구축한남근시각중심적인세계이다.여기서여성은자기자신을시각적으로재현할도구가없기때문에나르시시즘적인남성주체와자기를동일시하며,그러한‘남성적반사구조’속에갇히게된다.”(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