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평전 (1980년 5월, 광주를 지킨 최후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삶과 죽음)

윤상원 평전 (1980년 5월, 광주를 지킨 최후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삶과 죽음)

$20.00
Description
5ㆍ18민중항쟁의
핵심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
1980년 5월, 광주. 날짜와 지역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떠올린다. 아직 제대로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가해자. 계엄군, 탱크, 시민군,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잘하면 이름 하나가 더 떠오를 수도 있다.
열사, 윤상원. 5ㆍ18 시민군 대변인으로 서른의 나이에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는 순간까지 앞의 이름과 싸운 사람. 광주시에서는 그 행적을 기려 생가를 사적지로 세우려 하고, 그의 민주화운동 한 걸음 한 걸음은 광주시 지정 ‘오월길’ 코스 안에 빠짐없이 담겼다.
윤상원의 짧은 삶은 며칠간의 5ㆍ18민중항쟁 그리고 이 항쟁의 토양이 된 사회현실과 운동 흐름 모두를 아우른다. 이 책 《윤상원 평전》은 그 불꽃같았던 삶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5ㆍ18의 전체 모습과 그 뿌리에 닿게 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5ㆍ18은 무엇인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지역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운동이며, 대한민국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그리고 문민정권 수립의 핵심이 된 항쟁이다. 5·18의 핵심은 “광주를 비롯한 전남 전 지역의 무기고를 열어 군부 쿠데타에 항거한 전라 민중 무장봉기”(5쪽)였다는 것, 민중의 항쟁이었다는 것이다. 이 항쟁의 한복판에서 계엄군과 결사항전을 결의하고 이끌었던 민주 인사들은 1970년대에 이미 숱한 옥고를 치르면서 노동·농민·빈민·청년학생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이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들어 진상을 밝히고 재평가하기까지, 이 사건은 오랫동안 ‘불순분자들의 반동’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폭력 시위’로 왜곡되었다.
《윤상원 평전》은 1980년 5월 27일 5ㆍ18민중항쟁의 마지막 날, 즉 결사항전의 날로부터 시작한다. 유신체제가 몰락한 뒤 다시금 몰아닥치는 군부의 폭력에 광주의 시민군은 총을 들고 맞섰지만, 애초 계엄군과의 전투가 승산이 있을 리 없었다. “시민군과 지도부인 민주투쟁위는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자리를 지켰을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의연히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11쪽)
이 책은 이 물음에 답하는 여정이다. 그 온전한 답은 5ㆍ18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항전의 주역들이 1970년대부터 각 부문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 이들의 노력으로 성장한 광주전남 지역의 운동 역량이 “어떻게 죽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결사항전이라는 초인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7쪽) 더듬어보아야만 찾을 수 있다. 저자인 김상집은 윤상원과 끝까지 함께 싸운 동지로서 윤상원을 둘러싼 기존의 논의를 넘어 5ㆍ18을 광주지역의 민주화운동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계엄군에 더해 투항파와도 맞서야 했던 결사항전파의 시각에서 항쟁의 긴박한 며칠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자

김상집

1956년전남장성군필암에서태어나광주제일고등학교를졸업하고전남대학교수의대를나와동물병원을운영했다.1980년5월민중항쟁당시녹두서점에서윤상원과함께화염병을제작하고투사회보를만들어시민들에게배포했으며전남대스쿨버스를타고가두방송을했다.5월23일부터열린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에서는대학생과예비군을시민군으로편성·배치하는일을했다.저서로는《필암서원》(공저,2018),《녹두서점의오월》(공저,2019)등이있다.현재(사)광주전남6월항쟁이사장으로일하며(사)윤상원기념사업회이사도겸하고있다.

목차

서문윤상원평전을쓰면서
프롤로그최후의항전

1장한국사회의현실에눈뜨다
2장1970년대활동가들과의교류
3장본격적인활동에나서다
4장녹두서점
5장짧은은행원생활
6장노동현장으로
7장들불야학
8장부문운동의분화와폭발적인성장
9장꿈틀거리는노동현장
10장유신의몰락
11장새로운군부독재의풍랑속에서
12장1980년,전열을가다듬다
13장불타오르는5월
14장작전명령‘화려한휴가’
15장국민연합의전국동시다발시위
16장전라민중,무기를들다
17장총기회수와재무장
18장우리가광주를지키겠다
19장마지막밤
20장5월,그후

에필로그임을위한행진곡
윤상원연보
참고문헌,도판저작권

출판사 서평

“형님어쩌실라요?”
직접적인표현은아니지만이미지도부몇사람이도청을빠져나간것같으니우리도나가야하지않느냐는것이었다.이양현이말했다.
“아까궐기대회때분수대에올라가서‘최후의일인,최후의일각까지투쟁하겠다고말해놓고어쩌겠는가?나는여기남을라네.”
이양현의굳은결심을확인한윤강옥은소파에드러누우며“나도형님뜻에따를라요”하곤머리에이불을뒤집어썼다.(13쪽)

당시광주전남권의운동상황은아직은여전히과도기적인형태였다.(…)들불야학을통해학생운동과노동운동,나아가주민운동까지발전하면서학생운동의폭이넓어졌고많은운동가들이성장했다.동시에1977년광주앰네스티가창립되면서재야인사들이공개적·합법적으로시국강연을개최하고양심수들을후원하기시작했다.이에힘입어송백회가결성되고광주양서협동조합이조직되자,그동안대학가와개신교·천주교중심으로전개되던민주화운동에교사등일반시민과고등학생까지참여하게되었다.(114쪽)


〈임을위한행진곡〉의주인공윤상원,
그‘탄생’부터결사항전까지

이책의전반부가평범한외교관지망생이던윤상원이어떻게투사로변모하고김상집ㆍ이양현ㆍ정상용ㆍ김영철ㆍ윤한봉등항쟁의주역들과만나는지를그린다면,후반부는연이은군부독재의야만속에서태동하고폭발한항쟁을증언한다.
1975년.군에서제대한윤상원은전남대정치외교학과에복학해외무고시패스를꿈꾸던학생이었다.그는긴급조치9호가발효된상황이었음에도김상윤이라는걸출한운동가를만나기전까지민청학련사건부터가까운광주일고학생들의무더기제적사태까지피상적으로만알았을뿐한국사회의현실에제대로눈뜨지못했다.

의식화학습을강조한사람이김남주였다면,이를체계화한사람은김상윤이었다.김상윤은체계적인커리큘럼의필요성을느끼고,분야별로필요한책들을정해서한권한권독파해나갔다.책은김상윤이직접헌책방과도서관을뒤져구해왔고,모두함께정독하며공부했다.아마‘의식화학습커리큘럼’이최초로만들어졌다고보아도무방할것이다.(32쪽)

윤상원은김상윤을만나민청학련선배들과교류하며운동가로서성숙해갔다.그과정에서만난이들과인연을맺은단체들은실로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의산증인또는역사그자체였다.특히그는청계피복노조가운영하는노동교실에서활동하다수배되어있던이양현을통해노동운동의꿈을키웠다.짧은은행원생활을마치고노동현장과들불야학에투신하는동안윤상원은이양현과이태복을통해YH투쟁,호남전기및일신방직의임금투쟁등커다란파장을몰고왔던투쟁현장과연결되었다.

들불야학은윤상원이서울에서은행을그만두고고향에내려와한남플라스틱에입사한1978년후반부터애정을쏟아활동한터전이다.윤상원은야학의한계도잘알았지만가능성도믿었다.들불야학에몸담는과정에서새로이관계를다지게된동지들도많았다.언제나물심양면으로윤상원의곁을지킨김상윤과이양현외에김영철과들불야학교사들,학생들이그러했다.(96쪽)

유신의마지막해인1979년한해의인권운동은이대회로부터우렁찬서막을올렸다.전국어디에서도양심수인을위한행사가불가능하던때,앰네스티광주지부의활약으로개최된광주문학의밤행사는다른지역으로전파되기도했다.(125쪽)

1980년.위세가꺾이지않을듯했던유신은느닷없이균열해박정희의암살로몰락했지만군부독재는얼굴만바꾸어계속,또새로이시민들을위협했다.박정희의양자임을자처한전두환이5ㆍ16군사쿠데타즈음하여간첩단사건등을조작해핑계를대며비상계엄을전국으로확대해정권을탈취하리라는것은너무도분명히예측가능한시나리오였다.대학가의시위가가두시위로전환되는와중에,‘군부에탄압의빌미를주어선안된다’는지도부의판단으로투쟁의열기를꺼트리고15만명을해산시킨서울역회군사건이벌어져도리어짧았던서울의봄을끝내고광주학살의여건을조성하고말았다.
광주가일촉즉발에서아비규환으로이행한것은순식간이었다.하룻밤사이녹두서점의김상윤이예비검속돼합수부로잡혀가고,계엄령철폐와독재타도를외치는전남대학생들을전경들은최루탄과곤봉으로무자비하게탄압했다.시위대는자동차를불태워가며공수와맞섰다.윤상원은이모든현장을지키며상황을파악하고녹두서점에서상세한일지를작성하게해시민들에게알렸으며,한편으로는김상집과화염병을만들었다.

공수들의만행에분노한윤상원은녹두서점으로전화를걸어화염병을만들자고했다.(…)윤상원이김상집에게화염병을만들줄아느냐고묻자,김상집은정상용·이양현선배들이박정희암살을계획하고있을때소총으로는불가능할테고폭탄을터트려야겠다고해서화염병부터만들어본적이있는데그때곁에서배웠노라고했다.(223쪽)

무차별적으로폭행과살해를자행하는공수들과맞서시민들은무기고를털어무장했고,시민군은이후군부만이아니라투항파와도싸워야했다.민주화운동의동지들과연락이닿지않던며칠간분투하며시민군을이끌었던윤상원은한순간도총기를회수하고투항해야한다는목소리에이끌리지않았다.계엄군이시내로진입해백주대낮에시민을향해발포하고드디어수습위를민주투쟁위로세워결사항전의결의를기자회견으로알리던순간,총에맞아쓰러진그순간까지.5ㆍ18시민군대변인윤상원의마지막모습은외신기자들이송고한기사로남았다.

그침착함속에서나는다시한번그가죽고말것이라는예감을뚜렷하게받았다.그의눈길은부드러웠으나운명에대한체념과결단이숨겨져있다고생각되었다.그는나의눈을뚫어지게바라보면서거의눈길을돌리지않았다.(…)나에게강한충격을준것은바로그의눈이었다.바로코앞에임박한죽음을분명히인식하고있으면서도부드러움과상냥함을잃지않는그의눈길은너무나인상적이었다.(335쪽)

왜지금우리는5ㆍ18광주와윤상원을
기억해야하는가?

윤상원은죽고,살아남은시민군지도부는전남도청의함락으로잡혀가고초를겪고옥살이를했다.그뒤로한동안군부독재는시퍼렇게살아있었지만윤상원을주인공으로한〈임을위한행진곡〉은민주화를열망하는모든시민들의노래가되고,죽음을이겨낸많은시민군을만들어내‘6월민주항쟁’을승리로이끌었다.
순간순간승리했고벌써40년도더훌쩍지났지만5ㆍ18은우리에게끝난일일수없고,끝난적도없다.당시광주에서공수와계엄군을동원해시민들을잔인하게학살했던사건의책임자들,특히보안사령관이었던전두환전대통령은광주시민들에게사과하거나제대로된처벌을받기는커녕발포명령을내렸다는사실마저여지껏부인하고있다.광주지역에서며칠간벌어진부정할수없는사건조차아직까지해결되지않았을진대,더욱이민주주의는시민들이새롭게쌓아가고바라고추구하지않으면희미해질수있는체제라는것을우리는끊임없이배운다.정권의변화에따라기본권은더많이침해당했고,차별과혐오는더욱고삐풀리고무자비해졌다.정부는때로주민들의터전을빼앗으려하거나노동자들을부당하게해고하는자본가의편에서폭력을행사했다.이럴때약자들은고립된다.우리만이아니다.2021년2월쿠데타를일으킨군부에대항해민주주의를되찾고자하는미얀마의시민들도폭력속에고립되어있다.
어디에서도,5ㆍ18은끝나지않았다.이것이지금윤상원을읽어야하는,5ㆍ18을기억해야하는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