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제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마무리할 단계가 왔다. 머리말에서도 적었듯이, 이 책은 예술의 융합을 지향하는 공학자로서의 시선으로 쓴 예술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공학자이지만 수필가로서, 이런저런 책들, 특히 소설책들을 읽으며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거나 영화를 보더라도, 주로 클래식과 관련된 작품들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 클래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소설책, 그림, 또는 영화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나만의 클래식이란 관점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필자의 다른 저서, 『공학자, 예술의 융합을 이야기하다』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문학과 미술, 그리고 영화를 클래식과 연관하는 시도를 했었지만,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그 저서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머리말에서도 강조했듯이,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전문서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예술 애호가, 특히 클래식 애호가로서, 문학 작품과 미술, 영화들을 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 예술작품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듣고자 한 것이다. 독자들도 가볍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예술의 오솔길을 필자와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문학, 미술, 영화, 그리고 음악, 각 예술 장르별로 전문가들이 해설한 책이나 영상 자료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가벼운 예술 관련 에세이집을 발간하는 까닭은, 이런저런 대중 강연을 통해 필자처럼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해도, 뭔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좋아하고, 특히 클래식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 장르의 각자 독자적인 시각에서만 그 예술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필자처럼 융합적 시각으로 예술작품을 보게 되면 훨씬 더 재미있고, 그 예술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깃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별로 없다. 음악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으며 클래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필자의 이해도를 넘어선, 너무 전문적인 해설을 듣다 보면, 오히려 클래식에 대한 거부감에 부딪힐 때도 없지 않았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경험이다. 더구나, (작곡가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라도, 전 악장의 곡이 다 익숙한 게 아니라, 특정한 한 악장의 선율들만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등은 매우 훌륭한 곡이지만, 〈“템페스트” 소나타〉 경우 3악장만, 〈고향곡 5번〉 경우 4악장 아다지에토만 들어도 충분한 감동이 오기 때문에 그 악장들만 즐겨 듣는다.
이 책의 제목을 〈문학, 미술, 영화에서 듣는 나만의 클래식〉이라고 한 이유도 그래서다. 머리말에서도 적었듯이, 정말 그런 예술작품들에서 ‘필자만의 감각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식으로’ 클래식을 듣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작품번호 46〉 1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 그만 빠져 버렸다. 과외 교습으로 번 월급으로 당시 유행하던 휴대용 전축과 멘델스존의 그 곡이 담긴 LP 레코드판을 구입하였다. 내 재산 1호였다. 백 번도 넘게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곡만큼은 전 악장의 선율들을 머릿속에 꿰뚫고 있다. 이처럼 많은 곡은 아니지만, 필자에게도 규모가 큰 관현악곡의 전 악장에 익숙한 곡도 더러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전곡을 익히든, 아니면 특정 악장만 익히든, 이렇게라도 클래식을 나의 생활 주변에서 친구처럼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모든 악장을 다 듣고 싶고, 마치 말러리안처럼 말러의 모든 교향곡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 모든 작곡가들의 모든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필자는 클래식을 듣는다.
공학자이지만 수필가로서, 이런저런 책들, 특히 소설책들을 읽으며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거나 영화를 보더라도, 주로 클래식과 관련된 작품들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 클래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소설책, 그림, 또는 영화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나만의 클래식이란 관점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필자의 다른 저서, 『공학자, 예술의 융합을 이야기하다』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문학과 미술, 그리고 영화를 클래식과 연관하는 시도를 했었지만,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그 저서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머리말에서도 강조했듯이,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전문서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예술 애호가, 특히 클래식 애호가로서, 문학 작품과 미술, 영화들을 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 예술작품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듣고자 한 것이다. 독자들도 가볍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예술의 오솔길을 필자와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문학, 미술, 영화, 그리고 음악, 각 예술 장르별로 전문가들이 해설한 책이나 영상 자료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가벼운 예술 관련 에세이집을 발간하는 까닭은, 이런저런 대중 강연을 통해 필자처럼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해도, 뭔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좋아하고, 특히 클래식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 장르의 각자 독자적인 시각에서만 그 예술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필자처럼 융합적 시각으로 예술작품을 보게 되면 훨씬 더 재미있고, 그 예술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깃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별로 없다. 음악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으며 클래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필자의 이해도를 넘어선, 너무 전문적인 해설을 듣다 보면, 오히려 클래식에 대한 거부감에 부딪힐 때도 없지 않았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경험이다. 더구나, (작곡가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라도, 전 악장의 곡이 다 익숙한 게 아니라, 특정한 한 악장의 선율들만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등은 매우 훌륭한 곡이지만, 〈“템페스트” 소나타〉 경우 3악장만, 〈고향곡 5번〉 경우 4악장 아다지에토만 들어도 충분한 감동이 오기 때문에 그 악장들만 즐겨 듣는다.
이 책의 제목을 〈문학, 미술, 영화에서 듣는 나만의 클래식〉이라고 한 이유도 그래서다. 머리말에서도 적었듯이, 정말 그런 예술작품들에서 ‘필자만의 감각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식으로’ 클래식을 듣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작품번호 46〉 1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 그만 빠져 버렸다. 과외 교습으로 번 월급으로 당시 유행하던 휴대용 전축과 멘델스존의 그 곡이 담긴 LP 레코드판을 구입하였다. 내 재산 1호였다. 백 번도 넘게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곡만큼은 전 악장의 선율들을 머릿속에 꿰뚫고 있다. 이처럼 많은 곡은 아니지만, 필자에게도 규모가 큰 관현악곡의 전 악장에 익숙한 곡도 더러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전곡을 익히든, 아니면 특정 악장만 익히든, 이렇게라도 클래식을 나의 생활 주변에서 친구처럼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모든 악장을 다 듣고 싶고, 마치 말러리안처럼 말러의 모든 교향곡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 모든 작곡가들의 모든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필자는 클래식을 듣는다.
문학, 미술, 영화에서 듣는 나만의 클래식 (공학자가 이야기하는 예술의 융합 시리즈 네 번째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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