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 평전 (민족종교 동학의 교조 | 양장본 Hardcover)

수운 최제우 평전 (민족종교 동학의 교조 | 양장본 Hardcover)

$19.49
Description
『수운 최제우 평전』은 민족종교로 우뚝 서서 갑오 동학혁명과 3·1 혁명을 주도했던 동학(천도교)이 세워진 지 160주년이 되는 지금, 수운 최제우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뜻깊은 책이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장 공정하게 ‘인간 최제우’의 삶과 사상 등 모든 것을 들려준다.
저자

김삼웅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대한매일신보》(지금의《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자문위원,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위원등을맡아바른역사찾기에부단히노력하고있다.
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의많은저서를집필했다.주요저서로『한국필화사』,『백범김구평전』,『을사늑약1905그끝나지않은백년』,『단재신채호평전』,『만해한용운평전』,『안중근평전』,『이회영평전』,『노무현평전』,『김대중평전』,『안창호평전』,『빨치산대장홍범도평전』,『김근태평전』,『안두희,그죄를어찌할까』,『10대와통하는독립운동가이야기』,『몽양여운형평전』,『우사김규식평전』,『위당정인보평전』,『김영삼평전』,『보재이상설평전』,『의암손병희평전』,『조소앙평전』,『백암박은식평전』,『나는박열이다』,『박정희평전』,『신영복평전』,『현민유진오평전』,『송건호평전』,『외솔최현배평전』,『매천황현평전』,『3·1혁명과임시정부』,『장일순평전』,『의열단,항일의불꽃』등이있다.

목차

추천하는글:가장객관적입장에서가장공정하게쓴최제우평전
1.동학사상의현재적의미와가치
2.출생과성장기
3.세상을찾아서장삿길에나서다
4.수행과득도
5.사회비판과동학선포
6.동학의경전『용담유사』짓다
7.포덕에나서다
8.남원은적암에서6개월
9.경주에서본격포교나서
10.수난의시기에임하여
11.최후를앞두고대비하다
12.최후에남긴글
13.포교3년만에다시체포되다
14.41살에‘좌도난정’죄목으로순교
15.교조순도이후의동학
16.후계자최시형과손병희
지은이후기/수운최제우연보/주(註)

출판사 서평

한국근대사의대표적인지성인이자사상가이며,
민족사적대사건인동학혁명(1894)과3·1혁명(1919)을주도한
동학(나중에천도교로이름이바뀜)을세운‘수운최제우’!
가장객관적입장에서가장공정하게쓴최제우평전

조선봉건사회의부정과부패척결,반외세의기치를내걸었던민중항쟁이자,피지배층을중심으로아래로부터진행된대규모농민대중에의한혁명이었던‘동학농민혁명’(1894).그리고일제식민통치를거부한민족의자주독립선언이며,봉건군주체제를끝내고민주공화주의를지향하는근대의횃불이자대한민국임시정부가수립하게된결정적계기였던‘3·1혁명’(1919).이두사건은우리근현대사에엄청난영향을끼친민족사의대사건이었다.
이두사건에서결정적이고중추적인역할을한민족종교가‘동학(훗날천도교)’이다.그리고이렇게조선말기와일제강점기때민족종교로거듭난동학을세운이가바로‘수운최제우(水雲崔濟愚,1824~1864)’이다.자랑스러운우리근현대사를돌이켜볼때동학을창도한최제우의역할은그야말로실로지대했다고볼수밖에없다.
수운최제우는민족종교였던동학을창도(1860)하고,그것을세상에펴다가1864년에성리학이외의어지러운학문으로세상을현혹했다(사문난적)는죄목으로참수형을받았다.그가없었다면우리의근대가결코자랑스럽지않았을것이다.우리의근대는동학의출현으로시작되었기때문이다.
1894년의동학혁명은왜일어났을까?동학군들이꿈꾸었던개벽된세상은어떤세상이었을까?이런질문들의출발은수운최제우이다.그를이해하는것은곧19세기민중의염원을이해하는방법이다.
많은학자는수운최제우를왜근대한국의대표적인지성인이자사상가로평가하는가?왜그는다른선비들과달리책상물림에서벗어나민중속으로들어가서그들의염원이무엇인지를파악하고그것을해결해줄방도를고민했는가?왜조선말기부터민족종교라는새로운세력이생겼고,그들이모두시조로꼽는인물이수운최제우인가?이모든해답은이책속에담겨있다.

백성들의마음을사로잡은최제우
최제우는‘동학’을창도한교조이기도하지만,한국사에서전근대의낡은성벽을뚫고근대의문‘사회개혁사상가’이기도하다.동학을세웠다는종교사적인측면뿐만이아니라,그는안으로는군왕과양반위주의유교적반상체제를거부하면서사민평등사상을내세웠고,밖으로는서세동점으로밀려오는서학에대항하는민족주의사상의원동력을일깨웠기때문이다.
최제우가동학을세운목적은병든사회를구하기위함이었다.정치권력이없는위치에서백성들의정신을깨우치는일이무엇보다시급했기에,그는설법할때도이해하기쉬운말로하고,시가도이해하기쉬운한글로썼다.동학의역동적인평민주의사상은백성들의기대를모으기에모자라지않았고,‘서학’과대비되면서사람들의마음을사로잡았다.기존의틀에박힌사회구조에얽매이던조선사회의주류밖에있던사람들,사회적소외자들에게는구원과도같이들린수운의외침에수많은사람이감동하여그를찾았다.그들이답례품처럼가지고왔던곶감꽂이만으로도동네사람들이땔감을했을정도라고하니당시수운에대한관심이얼마나컸는지잘알수있다.
이렇듯수운최제우는조선왕조500년동안유학일변도의척박한풍토에서‘양반에대치할수있는’세력으로민중을내세우고각성시켰다.차츰각성된민중은주체성과민족의식을갖게되었다.수운으로인하여근대적민족주의사상이움트게된것이다.비록당시에는실패했지만최제우가펼치고자했던동학사상은우리나라에서근대적민족주의의식의선구적인자각이었다.

사람이곧하늘이다
최제우는가난한집안에서태어났지만,아버지의가르침을받고다양한책들을읽으면서당대누구못지않은학식과덕성을갖추었다.그러나입신출세의길은애초부터막혀있었기에21살의나이에먹고살기위해보부상의길을선택했다.1844년부터1854년까지10년동안전국을돌아다녔다.그런데어쩔수없이선택한길에서그는시국과세상을알게되었다.그는10년동안전국방방곡곡을돌아다니며두눈으로확인한조선사회가이대로는더이상희망이없다는것을깨달았다.
장사를그만둔이듬해한스님으로부터기이한책을받고,1856년에천성산에있는통도사내원암과적멸굴에서득도를위해노력하지만실패로끝난다.결국다시생업을위해철점을차리지만이또한2년만에문을닫고빚만남는다.빚쟁이들에게시달리다가빚을갚기위해농지를팔고집을정리하는바람에갈곳이없어진최제우는36살에고향인경주의용담으로거처를옮긴다.그때이름을‘제선’에서‘제우’로바꾼다.‘구할제(濟)’에‘어리석을우(愚)’,곧어리석은세상을구하겠다는의지의표시였다.
최제우는그렇게용담에서다시마음을가다듬고기도와수련하던1860년4월5일‘한울님의계시’로후천개벽의새원리인동학의진리를깨닫게된다.그리고1년여의수도정진끝에무극대도의길,즉새로운종교인동학을창도하고,사람들에게‘사람이곧하늘’이라는인격의존엄성과근대적민족의식을일깨워주는일에전념한다.최제우가동학을창도한이유중하나는‘서학(西學)’에대항하기위해서였다.그래서이름도‘동학(東學)’이라고지었다.

동학혁명과3·1혁명을주도한동학
최제우는종교를창도한다른성인들과다른길을걸었다.동학의경전인『용담유사』를직접지은것이다.석가,예수,마호메트등성인들은종교를창도할때글이아닌‘말씀’을제자와신도들에게남겼지만최제우는이들과달리경전을직접지어남겼다.
백성이주인이되는후천개벽의새시대상을제시하고,다른종교창도자들과달리‘광제창생,제폭구민,보국안민’등현세론을제기한동학이점점백성들사이에서널리퍼지고,이를따르는사람들이늘어나자음해와탄압도심해졌다.1862년9월에는관아에체포되어경주감영에갇혔다가6일만에풀려난다.그러다마침내1863년10월부터조정에서최제우의동학을탄압할방도를논의하고,선전관정운구를내려보내12월10일에최제우를체포한다.최제우가도를깨닫고포덕을펼친지4년만의일이었다.조정에서그에게씌운죄목은유학을문란시킨‘사문난적’과서학이라는사술로백성들을기망했다는것이었다.서학에대응하기위해창도학동학을서학으로치죄하는얼토당토않은일이었다.
최제우는동학을세운지4년만인1864년3월10일,41살에대구감영에서효수형을받고순교했다.그를이어해월최시형(2세)과의암손병희(3세)이교주의자리를이어받아동학세력을확장한다.
교조가혹세무민의누명을쓰고죽자동학도들은관으로부터갖은탄압과수탈을당했다.그러나1870년에들어서면서동학세력은더욱강화되고,1892년에동학도들이모여동학탄압중지와교조(최제우)의신원운동을벌인다.교조신원운동은마침내1894년전봉준,김개남,손화중이이끄는동학혁명으로폭발하게된다.그리고동학은손병희에의해천도교로이름을바꾸고(1905),1919년3·1혁명을주도한다.
수운최제우는자신의뜻을미처펼치지못하고안타깝게생을마감했다.그러나그가남긴유산은우리나라근현대의역사를바꾸는큰물줄기가되었다.오늘날우리가수운최제우를알아야하는이유도이때문이다.

수운최제우연보
1824년10월28일(음력),경상북도경주군현곡면가정리에서아버지최옥과어머니한씨사이에서태어남.처음이름은제선(濟宣),자는도언(道彦).
1842년울산의밀양박씨와결혼함.
1843년집이불타용담정으로이사함.
1844년주유천하에나섬.
1854년주유천하를마치고울산유곡동(일명여시바윗골)에초가삼간을짓고구도의수행에들어감.
1855년3월,을묘천서를받음.
1856년양산천성산통도사의내원암에서수행하다가숙부의사망을직관하고47일만에하산함.
1857년천성산적멸굴에서다시49일간의기도를마침.
1859년10월,경영하던철점이파산되어집과땅을채권자에게넘기고용담으로돌아옴.
1860년2월,입춘시를지으며구도의결의를다짐.
이름을제선에서제우(濟愚)로,자를도언에서성묵(性?)으로,호를수운(水雲)으로고침.
4월5일,용담에서한울님으로부터무극대도를받음.
5월,「용담가」를지음.
1861년6월부터포덕을시작하자어진선비들과민중들이구름처럼모여듦.
7월에「포덕문」,8월에「안심가」를지음.
11월에유생들이서학으로몰아관으로부터탄압이있자제자최중희를데리고남정길에오름.
12월,호남지방남원교룡산성은적암에은거함.
1862년1월에「권학가」와「논학문」을,6월에「수덕문」과「몽중노소문답가」를지음.
7월에남원의은적암을떠나경주부청송으로돌아와백사길과박대여의집에머무름.
9월,최제우가체포되어경주감영에갇히고,이소식을들은도인들이몰려들어항의하자6일만에최제우를석방함.
10월14일,제자들에게처신을신중히하라는통문을띄움.
11월9일,포항흥해읍매산리손봉조의집으로옮김.
12월26일,연원의효시가되는접주(接主)를최초로임명함.
1863년3월9일,용담정으로돌아와필법을지음.
4월,좌잠을지어강수에게줌.
6월,개접(開接)하여많은도인들에게가르침을베풂.
7월23일,파접(罷接)함.이날최경상(최시형)에게해월(海月)의도호를지어주고,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임명함.
7월하순에「도덕가」를지음.
8월초순에「흥비가」를지음.
8월14일,최시형에게도통(道統)을전수함.
11월,「팔절」과「불연기연」을지음.
12월10일,조정에서파견한선전관정운구에게붙잡힘.최제우와이내겸은서울로압송되고,나머지30명은경주관아에갇힘.
12월20일,서울로압송되던중과천에서철종이서거하여대구감영으로돌아감.
1864년1월6일,대구감영에수감됨.
3월10일,좌도난정률의누명을쓰고대구관덕당에서참형을받아순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