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전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 | 양장본 Hardcover)

이승만 평전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 | 양장본 Hardcover)

$21.75
Description
한때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선각자로서 촉망받으며 지도자로 부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과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까지 된 이승만!
그런데 그는 왜 ‘건국의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권력을 좇는 기회주의자,
독재자, 헌법과 민주주의 파괴자, ‘타매(唾罵)’의 대상이 되었나?
심산 김창숙은 이승만을 ‘독부(獨夫)’라 불렀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을 이완용과 송병준보다 더 큰 역적이라 했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한때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치가·선각자로서 촉망받던 인물이었던 이승만. 독립협회에 소속되어 개화운동에 참여하고, 만민공동회 연사와 ≪제국신문≫ 주필을 지내고, 하와이 한인학원을 운영하고 ≪태평양잡지≫를 창간하고,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등 업적을 쌓았다. 이런 명망을 바탕으로 지도자로 부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고, 끝내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수많은 과오, 아니 반민족·비민주적 행적은 이런 업적을 덮고도 남는다. 미국 망명 시절의 행적은 독립운동보다 친일에 가까운 언행이 적지 않았다. 독립운동단체를 분열시키고,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 행위라고 비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에서 두 차례나 쫓겨나는 불명예를 얻었다.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영구집권을 획책하면서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독재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친일경찰을 등용하여 독립지사들을 탄압하고 경찰국가체제를 만들었고, 총독부 판사 출신들로 사법부를 장악하게 하고 숱한 독립지사와 민주인사들을 처형했다.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하여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짓밟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말로만 북진통일을 되뇌다가, 막상 인민군이 남침하자 혼자 도망치고 한강 다리를 폭파해 서울시민을 인민군 치하에 남겨두었다. 원조물자는 특권층에게만 안겨주어 국가 경제와 국민 생계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외신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조롱했을 만큼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국격을 실추시켰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로 추앙받지 못하고 독재자, 권력을 좇는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찬양과 비난이 극단으로 갈린다. 정직한 연구가들은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공 3, 과 7’ 정도로 평가한다. 이 책은 이승만의 전력을 있는 그대로 밝혀서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보여준다. 한때 개혁정치가였고 촉망받던 선각자였으나,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승만의 망명 생활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해방 당시 그의 행적이 얼마나 사대적이고 반민족적이었는지, 집권기간의 전제정치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었는지, ‘영웅’의 가면을 벗긴 이승만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가 왜 ‘건국의 아버지’이기는커녕 ‘타매(唾罵)’의 대상인지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이 책은 『독부 이승만 평전: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책보세, 2012)의 개정판이다.
저자

김삼웅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대한매일신보》(지금의《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자문위원,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위원등을맡아바른역사찾기에부단히노력하고있다.
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의많은저서를집필했다.주요저서로『한국필화사』,『백범김구평전』,『을사늑약1905그끝나지않은백년』,『단재신채호평전』,『만해한용운평전』,『안중근평전』,『이회영평전』,『노무현평전』,『김대중평전』,『안창호평전』,『빨치산대장홍범도평전』,『김근태평전』,『안두희,그죄를어찌할까』,『10대와통하는독립운동가이야기』,『몽양여운형평전』,『우사김규식평전』,『위당정인보평전』,『김영삼평전』,『보재이상설평전』,『의암손병희평전』,『조소앙평전』,『백암박은식평전』,『나는박열이다』,『박정희평전』,『신영복평전』,『현민유진오평전』,『송건호평전』,『외솔최현배평전』,『매천황현평전』,『3·1혁명과임시정부』,『장일순평전』,『의열단,항일의불꽃』,『꺼지지않는오월의불꽃:5·18광주혈사』,『운암김성숙』,『김재규장군평전』등이있다.

목차

여는글:왜?독재자이승만’평전인가5

1.젊은날의이승만,출생과성장
격동기에태어나서구사상의세례를받다17/언론인및개혁정치가로성장하다30

2.일신의영달을앞세운‘겉치레’독립운동
초기외교활동의실패그리고미국유학59/짧은귀향,긴미국생활79/일신의영달에기운교포사회의‘문제아’이승만88

3.분열을부른야망,순진한외교주의
탄핵당한임시정부대통령,현실성없는외교독립론109/태평양전쟁기의외교활동과독선에따른과오138

4.자주독립민족통일을외면한권력의화신
해방정국의주역으로등장,분단정부수립에올인161/권력에눈멀어‘민족’을외면한‘또다른반역’189

5.실질없는허세만일삼다가전쟁을부른무능대통령
반민주폭압체제구축하면서민족민주세력제거211/백범의암살배후,‘보이지않는손’이승만226/6·25전쟁,피난수도에서민주주의압살257

6.상상을뛰어넘는정치의모든악행,그리고파멸
기발한꼼수정치로권력연장291/막장으로치닫는정권,망령들어가는독재자320/정치보복의극치‘조봉암처형’의내력352

7.‘검은머리미국인’이승만의슬픈귀거래사歸去來辭
파멸의무덤을판늙은독재자의권력욕375/혁명의불길에‘껍데기’로사그라진독재자392

에필로그:‘독부’이승만이민족반역자이자민주반역자인증거411/이승만연보418/주註424

출판사 서평

언론과사회운동으로일제와싸우다

이승만은5살때천자문을뗄만큼명석했으나,13살때부터응시한과거시험에는번번이낙방했다.과거제가이미부패해질대로부패해져돈과권력의배경이없던이승만이급제하는건불가능해보였다.1894년에과거제도가폐지되면서이승만은신학문에눈을돌려영어를배웠다.그리고1895년에배재학당에입학하면서그의삶에서가장중요한두가지를얻는다.즉,기독교를접하고미국과깊은인연을맺는다.또서재필의강의에감명을받게되고,협성회를조직하는데에도참여한다.배재학당졸업식에서는한국역사상최초의영어연설로일약서울장안의주목받는청년으로명성을얻었다.이승만은이렇게서구식재능과사고를갖추고사회에진출한다.
그는1898년1월에≪협성회보≫를창간하며언론활동을시작하는데,이때사회개혁과국민계몽을내용으로하는논설을쓰며사회의식을깨친다(≪협성회보≫는≪매일신문≫으로이름을바꿈).≪매일신문≫이종간되자이승만과동지들은≪제국신문≫을창간하고,이승만은주필로활약했다.이승만의정치활동은독립협회와긴밀하게연계되어있었다.협성회활동을바탕으로독립협회의신진소장파일원으로주목받고,반외세·반침략운동에적극참여했다.이승만은이렇게언론과사회운동으로항일투쟁을벌이며두각을나타냈다.

6년여의감옥생활,그리고미국으로떠나다

이승만의왕조에대한반감과저항의식이더강화될때,고종은민심을달래기위해이승만등독립협회간부17명을중추원의관에임명한다.그러나1898년1월에중추원의관활동이끝나고며칠뒤,이승만은정부전복음모혐의로구속되면서새로운전기를맞는다.이승만은6년여의감옥생활에서학문과사상적으로도약하고,영어에능통하게된다.스스로“감옥생활에서내가받았던축복에대해나는평생감사할것”이라고말할정도였다.
출옥한이승만은상동청년학원교장으로3주지내다가돌연미국으로떠난다.일본의침략이가속화되면서믿을수있는길은미국의도움밖에없다고믿었기때문이다.이승만의외교활동의시작이었다.이승만은미상원의원,국무장관,그리고루스벨트대통령까지만나는데에는성공했으나,‘독립유지외교’는실패로돌아갔다.다만,이일로인해이승만의대내외명성은높아졌고,그가대미외교일변도의외교노선을형성하는데큰영향을미친다.이승만은구국외교활동이실패하자귀국을단념하고공부하기로작정한다.결국1910년에프린스턴대학에서박사학위를,하버드대학에서석학위를동시에받으면서,‘이박사’로불리게된다.

이승만의과오,그리고반민족·비민주적행적

촉망받던개혁정치가이자선각자였던이승만은이후과오라고하기에는부족한반민족적이고비민주적인행보를거듭한다.그대표적인언행들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하와이에서한인소년병학교와대한인국민회를조직하여독립운동을한무장독립운동가박용만을내쫓는등한인사회분열을획책한일.샌프란시스코에서장인환·전명운의사가국적스티븐스를처단하고재판을받을때“예수교인으로서살인재판의통역을원치않는다”라며통역을거부한비애국적행동.이봉창·윤봉길의거를테러라며임시정부에무장투쟁중단을요구한행위.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가수립될때국무총리에추대되었으나대통령직위를주장하고자의로대통령직함을참칭한것.미국에눌러앉아위임통치론등임시정부의방침과는따로행동하다가임정대통령이되고서는의정원의불신임과탄핵을받은일.해방뒤맥아더장군의주선으로미군복을입고귀국하여좌우합작반대,미소공위활동비판,김구·김규식등의남북협상반대등통일정부수립보다단정수립노선을추구한행위.제주4·3항쟁과관련하여국무회의에서제주도민들을강력히처벌하라지시하고법에도없는계엄령을선포하여많은도민이참살당하는상황을제공한일.귀국후친일파들의정치헌금을받고,반민특위를폭력으로해체한데이어친일파를중용하여민족정기를짓밟으면서친일파재등장의계기를조성한일.아무런국방대책마련도없이말로만북진통일을외치다가경회루에서낚시하던중에북한군의남침을보고받고서울시민을버리고줄행랑한일,한강철교를폭파하여수많은인명을희생시킨무책임한결정.환도뒤에는적반하장으로피난가지못한시민들을부역자로내몰아탄압한몰염치한행위.국민방위군사건,보도연맹사건등으로전국각지에서100만명에이르는민간인이학살당하게만든일.제헌의원선거때자신의선거구에출마하려는독립운동가최능진의출마를막고나중에내란음모죄로몰아보복처형,김구암살배후,조봉암사법살인,장면부통령저격사건등정적들을제거한잔혹한행위.발췌개헌,사사오입개헌,보안법파동,3·15부정선거등권력연장을위해수단을가리지않은반민주독재행위.부정선거를규탄하는4·19시민·학생들에게발포하여186명의사망자,6,026명의부상자를내게만든일등등.

3·15부정선거와4·19혁명,그리고하야와망명

1960년3월15일은대한민국에서태양이빛을잃은날이다.이날치러진정·부통령선거는부정과폭력으로얼룩졌다.‘4할사전투표’,‘3인조,9인조공개투표’,투표함바꿔치기,개표시혼표와환표,득표수조작등의부정이버젓이자행되었다.경찰과반공청년단의부정선거활동은눈부셨고,공무원과교사들도투개표에참관인으로참여해부정선거를도왔다.이를지켜본국민은분노에치를떨었다.
남쪽에서시작되어봄바람과함께북상하기시작한반독재시위열풍이수도권에상륙했을때는거대한태풍으로변했다.마침내‘피의화요일’인4월19일,학생들의시위에시민들이가세하면서혁명의불꽃이활활타올랐다.이승만은국민의저항을계엄령선포와폭력적진압으로맞서며버텼으나,운명의4월26일오후1시에대통령직하야를녹음으로발표했다.그러나이승만은하야성명발표에서부터이화장에서의칩거,망명길을떠나기까지폭정12년과4·19학살에대해국민에게한번도사과하지않았다.
그로부터몇해를더살았던이승만은1965년7월19일에하와이마우나리니요양원에서90년4개월의긴생애를마쳤다.생전에국내로돌아오기를원했으나5·16쿠데타로집권한박정희정권은이를허락하지않았다.이승만의삶은실패했다.그러나그의실패는개인의실패로끝나지않고,대한민국정부의실패이자민주주의의실패를가져왔다는데에서큰비극이아닐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