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평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 | 양장본 Hardcover)

우당 이회영 평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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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독립운동가들의 안식처이자 영원한 벗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은 나라가 망하자 가족들을 설득하여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 정도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그 돈으로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신민회 창립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주도,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통한 독립군 양성 등 뤼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숨을 거둘때까지 불꽃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님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로 큰 일을 한 독립운동가 입니다. 아마 전 세계를 뒤져봐도 그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당 이회영 평전〉을 통해 그의 삶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길 바랍니다.
저자

김삼웅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대한매일신보≫(지금의≪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자문위원,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위원등을맡아바른역사찾기에부단히노력하고있다.
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의많은저서를집필했다.주요저서로「한국필화사」,「백범김구평전」,「을사늑약1905그끝나지않은백년」,「단재신채호평전」,「만해한용운평전」,「안중근평전」,「김대중평전」,「안창호평전」,「빨치산대장홍범도평전」,「김근태평전」,「10대와통하는독립운동가이야기」,「몽양여운형평전」,「우사김규식평전」,「위당정인보평전」,「김영삼평전」,「보재이상설평전」,「의암손병희평전」,「조소앙평전」,「백암박은식평전」,「나는박열이다」,「박정희평전」,「신영복평전」,「현민유진오평전」,「외솔최현배평전」,「3·1혁명과임시정부」,「장일순평전」,「의열단,항일의불꽃」,「수운최제우평전」,「꺼지지않는오월의불꽃:5·18광주혈사」,「운암김성숙」,「나철평전」,「정의의길,역사의길」,「광이불요의지도자:성재이시영선생평전」,「개남,새세상을열다」,「이승만평전」,「김재규장군평전」등이있다.

목차

추천하는말:사람을신뢰하고,행동하는실천가우당이회영선생5
재간에즈음하여9
책머리에:삼한갑족의노블레스로오블리주를실천한아나키스트11
1.봉건질서를부정하고자유사상을키우다19
2.청년구국민족운동가로성장하다39
3.일가60여명과기약없는망명길에오르다69
4.독립군양성소신흥무관학교를건립하다93
5.고종황제의망명을추진하다123
6.임시‘정부’가아니라독립운동‘총본부’를주창하다153
7.아나키즘에서독립운동과미래사회의길을찾다179
8.의열단에바친열정그리고이상촌의꿈203
9.아나키즘의사상적연원과우당의활동235
10.다물단을지휘하고밀정을처단하다267
11.아내를서울로보내고톈진에서의나날285
12.‘동방연맹’결성그리고풍찬노숙의일월309
13.좌절을모르는불굴의도전정신335
14.항일구국연맹과흑색공포단을지도하다357
15.마지막불꽃을사르러가는길에순국하다381
닫는글:“무서운깊이의아름다운표면”413
[부록]남편영전에바치는이은숙의조사421
우관이정규의「추모우당이회영선생」426
우당이회영연보438
주註444

출판사 서평

신흥무관학교를설립해항일무장투쟁을이끈거대한자유인이자,
독립운동가들의따뜻한안식처이자편안한벗이며,
우리나라‘노블레스오블리주’의표상,우당이회영의불꽃같은삶!

타락한시대에순결한모습을간직한채산화한독립운동가
을사늑약반대운동과을사오적척살운동,신민회창립과헤이그만국평화회의특사파견주도,신흥무관학교설립과독립군지도자양성,고종망명계획추진,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참여,아나키스트독립운동과일제의간담을서늘케한의열투쟁,그리고한·중연합군의항일투쟁…….
을사늑약이체결되던해부터예순여섯의나이에도관동군사령관을처단하고침체된독립투쟁을되살리기위해만주로가다가밀정의밀고로붙잡혀일제에의해뤼순감옥에서고문끝에숨을거둘때까지불꽃같은삶을살았던우당이회영!일제와친일세력들에의해나라가망하자모든기득권을버리고,형제들과모든재산을처분한뒤일가60여명을이끌고만주로망명해신흥무관학교를세워독립운동가들을양성하는등남은삶을독립운동에바친그는일제강점기에‘노블레스오블리주’를실천하며스스로가시밭길을선택한독립운동가의표상이다.
반강권과반권위주의,자유와자주,자치주의를추구했던이회영은독립운동과해방뒤새로운국가건설의방략으로아나키즘을택했으며,무장독립투쟁을활발히전개했다.그러나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를비롯해많은독립운동단체를조직하고중심적인역할을하고도자신은높은자리에는앉은적이없을만큼감투를싫어했다.
이회영은자신의호인‘우당(友堂)’처럼이념과노선을뛰어넘어독립운동가들의영원한벗이고따듯하고든든한안식처였다.갖은고난속에서도여유를즐길줄아는풍류객이었다.자신을내세우지않고,공적을포장하지않고,자신을낮추어살아가는지도자였으며,민족의설움과동지들의아픔을다독이며,목숨을건투쟁을마다하지않는그는매국노와친일파들에게부끄러움을안기고,‘망국노(亡國奴,나라가망하여침략자에게예속되어있는국민)’의자존과명예를지킨독립운동가의본보기였다.
「우당이회영평전」은타락한시대,강권주의시대에치열하게저항하다가순결한모습그대로를간직하면서조국의독립을위해싸우다산화한이회영의“한점의오류도,한올의삿됨도보이지않는”삶을,인물평전의대가이자독립운동사연구가인김삼웅전독립기념관장이오롯이들려준다.

김삼웅전독립기념관장이들려주는이회영의삶과사상
이책을쓴김삼웅전독립기념관장은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특히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을50여권집필한말그대로인물평전전문가이자대가로손꼽힌다.
저자는‘우당이회영’을다음과같이요약한다.“이회영의생애는오로지항일투쟁이라는일직선형이었다.평생을곁눈팔지않고독립운동이라는일직선을우직하게걸었다.그의신념과사상적지향이컴퍼스의바늘이나정삼각형의날카로운직선형이라면,다정다감하고섬세한성품은계란과같은타원형이었다.행동철학은혁명가적이고전사의기질을품었고,품성은낭만주의적이고사색형이며예술과시문을즐기는풍류아였다.망명지에서배를곯으면서도난을치고퉁소를부는취향과여유를갖는풍류묵객이었다.공적으로는신념과대의를위해서릿발과같은준열함을보이면서도,사적으로는마을정자앞에우뚝선한그루의거목처럼여유있고흔들리지않아서이념·출신·노유를가리지않고그의그늘을찾는사람이많았다.그런가하면아나키스트의담백함과초연함은계산을모르는경륜가였다.”
이책은2011년에출간되었다가절판된「이회영평전:항일무장투쟁의전위,자유정신의아나키스트」(책보세)의내용을일부수정·보완하고사진자료를교체해서새로펴낸개정판이다.‘우당기념사업회’에서제공해준이회영과관련한소중한자료들은독자들이이회영의삶을더생생하게느낄수있게해줄것이다.

우리나라‘노블레스오블리주’의표상
이회영가문은우리나라에서‘노블레스오블리주’를말할때빼놓을수없는대표적인집안이다.나라가망하자이회영6형제는모든재산을처분하고만주로망명했는데,이때재산을팔아만든돈이40만원(지금의화폐가치로따지면무려약600억원에서수조원에이르는큰돈)이다.이돈은경학사,신흥강습소(훗날신흥무관학교로개칭)등을설립·운영하면서독립운동가들을양성하고,독립운동가들의뒷바라지를하는데쓰였다.이들이세운신흥무관학교는독립군양성소였으며,졸업생3,500여명은만주지역과중국관내에서항일독립운동의핵심이되고항일투쟁의선봉대역할을했다.의열단,서로군정서,통의부,참의부,신민부,국민부등만주일대의무장투쟁단체에는어김없이신흥무관학교출신들이참여하고중심이되었다.봉오동전투와청산리전투같은항일대첩도신흥무관학교교관출신들이주도했고,임시정부의광복군을창설하는데에도핵심역할을했다.신흥무관학교는무장독립운동의사관학교였다.
그러나모든재산과기득권을버리고독립운동을위해헌신한이회영6형제중조국이해방된모습을보거나조국땅을다시밟은이는다섯째이시영뿐이었다.둘째이석영은아사했고,이회영집안의많은이들이타국땅에서쓸쓸하고고통스럽게세상을떠났다.이렇듯이회영형제는물론그후손들까지대부분독립운동에혼을쏟고고초를겪고비참하게죽음을맞이했다.그러므로이회영일가는우리나라에서보기드물게사회적·도덕적책무를다한‘노블레스오블리주’의표상이다.

이념과사상을넘어선독립지사들의사랑방,우당(友堂)
삼한갑족(옛적부터대대로문벌이높은집안을일컫는말)의기득권을버리고택한망명가의삶,망국노(亡國奴)의삶은궁핍하기그지없었다.현재가치로수백억원이나되는독립운동자금은경학사,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전신)등을운영하느라금세바닥나고,그뒤로는입에풀칠하기도어려운간난신고의나날이계속되었다.가장많은독립자금을내놨던둘째형이석영은심지어굶어죽을만큼비참했다.
그러나중국과만주는물론국내에서활동하는독립지사들은베이징에오면이회영의집을찾았다.그집에모인사람들은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아나키스트등등다양했지만,이회영은이념과노선을모두포용했고,그의집은사랑방구실을했다.누추한전셋집은독립지사들의집합소가되었다.“이회영의집에모인이들은그대로우리나라독립운동노선의역사가된다.김규식,김창숙,안창호,조소앙등은민족주의를고수했고,홍남표와성주식등은공산주의자가되었다.유자명,이을규,이정규,정현섭,김종진등은아나키스트가되었으며,김원봉과유석현등은일제를공포에떨게한행동가였으니우리나라독립운동사의모든노선이이회영의베이징거처를중심으로나뉜셈이다.달리말하면모든노선의독립운동세력이이회영을중심으로모이고흩어지면서인연을쌓아갔다.”
우당내외는궁핍한형편속에서도독립운동가들을흔연히대접하고,부인이은숙은몇차례나비밀리에고국에입국해자금을구해와남편과독립운동가들의뒷바라지를했다.사는것이차라리죽는것보다못할정도였으나이회영은궁한기색없이독립지사들과독립운동의방략을논의했다.이회영의집은‘우당(友堂)’이라는호에어울리는그야말로‘벗들의집’이었다.

거대한자유인,아나키스트이회영
이회영은영원한자유인이자행동하는아나키스트였다.그는의도적으로무정부주의자가되거나갑자기무정부주의사상으로전환한것이아니다.스스로밝혔듯이,독립운동의방향과방법이무정부주의자들의주장과상통하기때문에아나키스트가되었다.그는또독립된나라의미래상인민족구성원전체가평등하고자유로운생활을누리기위해서는아나키즘을실현하는것이유일한길이라고주장했다.
저자는이회영의내면에일찍이아나키즘이자리잡고있었다고평한다.즉,정통유학인성리학을버리고양명학을택하고,과거시험을거부하고,헤이그특사파견을구상하고,신민회를발기하고,삼한갑족의기득권을포기하고망명을택했으며,자치기관인경학사와신흥무관학교를설립하고,고종황제의망명을추진하고,임시정부보다는자유연합성격의독립운동총본부구성을제의하고,숱한단체·기관을조직하고도높은자리를사양했던모습등에서저자는이회영의아나키스트적인성향이나타난다고보았다.
이회영은반강권과반권위주의,자유와자주,자치주의를추구했기에아나키즘을수용했고,아나키스트들과어울리면서이를독립운동과해방뒤새로운국가건설의방략으로택하게되었다.일제강점기에는이회영뿐만아니라많은독립운동가가항일투쟁의이데올로기를아나키즘에서찾았고,궁극적으로는해방된조국의미래상으로강제·강권·독점이없는민주사회건설을꿈꾸었다.이것은곧이회영과신채호,유자명등이그리는이상사회이기도했다.

독립운동이라는일직선을걸어간사람
젊은시절에동문수학하던이들이과거에급제하여관직에나설때이회영은달랐다.집안의노비를해방하여내보내고,나이많은노비에게경어를쓰고,남편과일찍사별한여동생을비밀리에재가시키는등불평등한봉건적인습과계급적구속을타파하려노력했다.양명학을실천이념으로받아들인영향이컸다.을미사변이후에는상동교회를중심으로전개되는반일민족운동의중심에서고,안창호와신채호·양기탁등과신민회를조직한다.구국투쟁을위한자금을모으기위해인삼밭을일구고제재소를운영하기도한다.을사늑약이체결되자을사오적을처단하기위해암살단을조직하고,헤이그특사파견을주도했으나뜻을이루지는못했다.나라가망하기전까지이회영은구국운동에전념했다.
경술국치가있던해겨울에중국으로망명한뒤부터삶을마감하는순간까지는오로지독립운동이라는일직선을걸어갔다.그길을따라가면다음과같다.
경학사를조직하고,경학사를기반으로신흥강습소(이후신흥중학,신흥무관학교로이름이바뀜)를설립한다.신흥무관학교는1920년까지독립군을양성하고,이들은무장독립투쟁의중심역할을한다.고종망명계획을추진하다가고종의서거로계획은좌절된다.1922년에아나키즘을받아들인뒤‘행동하는자유주의’아나키스트운동의일환으로이상촌건립을추진하기도한다.의열단을후원하고,아나키스트운동의중심이될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무련’)을결성하고기관지≪정의공보≫를발간하고,신흥무관학교출신들을모아‘신흥학우단’을강화한다.신흥학우단이중심이된다물단을조직·지도하고,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재만무련’)과남화한인연맹을결성한다.한·중·일아나키스트들과항일구국연맹을결성하고,비밀행동조직흑색공포단을조직해일제의간담을서늘하게만든다.66살의나이에도침체된무장독립투쟁을다시일으키기위해만주에항일의용군의결성과독립운동기지를건설하려고만주로떠났다가밀정의밀고로다롄에서검거되어뤼순감옥에서모진고문을당한끝에순국한다.
이회영의목표는오로지조국의독립이었다.어려서부터익혀온시·서·화는일가를이룰만큼뛰어나,독립운동자금이떨어지면흥선대원군(석파이하응)이그린난(석파란)을위조·판매하기도했다.또식량이떨어지거나괴로울때면손수만든퉁소를불면서마음을달래고젊은독립운동가들의향수를달래주기도했다.그의곁으로는사람이몰렸고,그의삶은겨레의사표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