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죽어가는 언론을 다시 살리려고 했다,
새 언론을 만들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1960~70년대 언론자유수호투쟁을 이끌고,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한
정태기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이자 전 조선투위 위원장 추모문집
새 언론을 만들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1960~70년대 언론자유수호투쟁을 이끌고,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한
정태기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이자 전 조선투위 위원장 추모문집
언론인 정태기는 ‘언론암흑시대’에 언론이 권력의 탄압을 받아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언론을 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투위 기자들과 함께 일어나 단호하게 싸웠습니다.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여러 가치 중에서 언론의 가치를 지고한 가치로 알았으며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그의 분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새 시대를 열려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참다운 언론, 새 언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새 신문’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앞장서서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모금으로 만든 신문이 「한겨레신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참된 언론이 나라와 세상을 올바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나쁜 언론은 나라를 망치고 파멸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정태기는 누구인가?
정태기(1941~2020)는 1941년 2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1965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경제부 기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독재권력의 언론탄압으로 언론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구하기로 결심, 동료기자들과 함께 언론자유수호투쟁에 나섰으며, 그로 인해 32명의 기자들이 해직되었다. ‘조선투위’ 위원장으로 8년 동안 이 단체를 이끌다가 이로 말미암아 투옥되었다. 해직된 후 동양화학(주) 기획실장으로(1976~78) 일했으며, ‘도서출판 두레’를 만들어 경영했고(1978~83), 뒤이어 ‘화담기술(주)’을 창업하여 대표를 맡았다(1983~87). 그러나 그의 꿈은 진정한 언론을 이 땅에 세우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1987년부터 그가 앞장서서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 모금으로 만든 것이 「한겨레신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 상무이사로 이 신문사를 떠났다. 1992년부터 3년 동안 포스데이타(주) 부사장으로 일했으며, 1995년 10월부터는 약 5년에 걸쳐 (주)신세기이동통신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대기업을 경영했다. 그는 2005년 어려움에 처해 있던 한겨레로부터 부름을 받고 한겨레신문 대표이사로 다시 돌아왔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을 벌이는 등 한겨레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고급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2007년 한겨레를 퇴사한 뒤엔 그해부터 4년 동안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일에 열심히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강원도 평창군의 농촌으로 들어가 살았으며, 2020년 10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2020년 제8회 리영희 특별상을 받았으며, 2021년 6월엔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유공자로 선정되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그의 분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새 시대를 열려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참다운 언론, 새 언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새 신문’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앞장서서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모금으로 만든 신문이 「한겨레신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참된 언론이 나라와 세상을 올바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나쁜 언론은 나라를 망치고 파멸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정태기는 누구인가?
정태기(1941~2020)는 1941년 2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1965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경제부 기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독재권력의 언론탄압으로 언론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구하기로 결심, 동료기자들과 함께 언론자유수호투쟁에 나섰으며, 그로 인해 32명의 기자들이 해직되었다. ‘조선투위’ 위원장으로 8년 동안 이 단체를 이끌다가 이로 말미암아 투옥되었다. 해직된 후 동양화학(주) 기획실장으로(1976~78) 일했으며, ‘도서출판 두레’를 만들어 경영했고(1978~83), 뒤이어 ‘화담기술(주)’을 창업하여 대표를 맡았다(1983~87). 그러나 그의 꿈은 진정한 언론을 이 땅에 세우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1987년부터 그가 앞장서서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 모금으로 만든 것이 「한겨레신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 상무이사로 이 신문사를 떠났다. 1992년부터 3년 동안 포스데이타(주) 부사장으로 일했으며, 1995년 10월부터는 약 5년에 걸쳐 (주)신세기이동통신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대기업을 경영했다. 그는 2005년 어려움에 처해 있던 한겨레로부터 부름을 받고 한겨레신문 대표이사로 다시 돌아왔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을 벌이는 등 한겨레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고급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2007년 한겨레를 퇴사한 뒤엔 그해부터 4년 동안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일에 열심히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강원도 평창군의 농촌으로 들어가 살았으며, 2020년 10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2020년 제8회 리영희 특별상을 받았으며, 2021년 6월엔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유공자로 선정되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언론인 정태기 이야기 (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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