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정적 (김영옥 소설집 | 양장본 Hardcover)

숲의 정적 (김영옥 소설집 | 양장본 Hardcover)

$13.00
Description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숲의 정적」으로 등단한 김영옥의 첫 소설집 『숲의 정적』.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방식에 천착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상에 치이고 인간관계에 부대끼면 사람은, 자연으로 숨어든다. 녹색은 들끓는 욕망을 다스려주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소설에서 자연은, 도피처이며 새로운 삶이 뿌리내리는 보금자리가 되어주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자연은 위안처가 되지 못한다. 외려 인간을 옥죄거나 무력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사방에서 둘러싸 옥죄는 ‘녹색’, 사람을 삼키고도 무심한 ‘늪과 저수지’, 강의 ‘물’, 천지만물과 기억마저 덮고 묻어버리는 ‘눈’, 사람을 찌르고 들어오는 ‘햇빛’은 인물들을 위협한다. 이 상황을 견디게 해주거나 구멍에서 놓여나게 해준다면 무엇이든 괜찮다. 하지만 인물들은 살기 위해 딴청을 부리고, 삶을 위한 필사적인 환상을 직조해낸다.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을 물리치려고 밤낮없이 베틀 앞에서 천을 짜내듯, 소설 속 인물들은 조각보와 양산과 사람을 닮은 모형을 만든다. 페넬로페가 밤새 짜낸 천은 아침이면 실로 풀어내야 한다. 겹겹이 쌓인 눈 아래 사물은 그대로다. 다만 덮을 뿐이다. 물을 끊어낼 순 없다. 마냥 흘러갈 뿐이다. 죽음을 지울 순 없다. 잠시 잊을 뿐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노동, 내 손끝에서 만들어진 무언가는 시간의 무자비함을 잊게 한다. 시간은 내 손길 아래, 내 식대로 모양새를 만들어간다. 권태, 불안, 고독과 고통의 그림자가 채워진다.
저자

김영옥

저자김영옥은경남사천에서태어났다.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중편「숲의정적」당선.
첫소설집으로『숲의정적』이있다.
「안경」으로천강문학상대상.
「물거울」로신라문학대상.

목차

작가의말……4
물거울……9
거인의손가락……31
안경……55
돌……76
녹색표적……102
양산……126
숲의정적……157
작품해설:죽음을짜내는페넬로페들/김나정……237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추가]



남자는어떤것에서도의미를찾지못한다.어떤일도하고싶지않고아무일도하지않는다.그는돌을모으는아버지에게,“돌에다뭔의미를그렇게집어넣으려고그래요?그래봤자결국돌이죠.돌.아무의미도없고,아무생각도없는돌!”이라고했지만,그자신은점점돌처럼살아간다.무의미의결정체가되어간다.“공부만하고있으면해가떴고,해가졌다.외로움도,불안도,결핍도,물음도없었다.그상태가나는좋았다.”졸업을하고그는고시원의둔중한평화속에잠겼다.돌처럼무심하게생각없이살아간다.소파에붙박이로살았던어머니처럼아들인그도놓인자리에그대로있기만을바란다.여자친구는그에게미래가없다며결별을선언한다.그는이해할수없다.“왜꼭밖으로나가서돈을벌어야하지.굶어죽는것도아니고,돈이없는것도아닌데.왜직장에나가야만발전을하고,사람답게산다고여기는건지.”무의미는무기력으로,권태는짜증으로이어진다.그는돌처럼살다가돌로아버지를죽이고돌처럼삶에서굴러떨어져나간다.

녹색표적

여자는지긋지긋한녹색에시달린다.그녀의“집안팎도온통녹색이었다.두툼한이끼가장독간과우물가를빽빽하고치밀하게뒤덮고있었다.녹색이끼는감나무줄기까지점령해가고있었다.”그녀는녹색에질식당하고식물들에게서파충류를떠올린다.“녹색을순수하고,원시적이고,원형적이고,생명의빛깔로느끼지못하고그녀는심한어지럼증과함께지독한권태만느꼈다.어쩌면내게허락된것은녹색뿐일지몰라.”사방의녹색은그녀를감싸주지않는다.오히려녹색은변화없음과모노톤으로물든그녀의무기력한삶을대변한다.사방을둘러싸고자신을옥죄어오는‘녹색’을향해그녀는표창을던지는미미한저항을꾀할뿐이다.산에가서피노키오를만들나무를하던여자는저수지로걸어들어가고있는남자를보게된다.여자는은어새끼처럼물속으로들어가남자를구해준다.

양산

그녀는명화속의양산들을만든다."친구로부터가게를인수해보지않겠느냐는전화가온것은그녀가권태와소외감에서위협을느낄때였다.장사를한다는기분이아니라창조를한다는기분도그녀에게는매우중요했다.그리고자신의손으로직접만들수있어야했다."손을놀려뭔가를만들면,형체가만들어진다.적어도,형체없는두려움에시달리지않아도된다.이집트의피라미드는사막의막막함을이겨내기위한산물이었다고한다.죽음충동은손을놀리는동안잊힌다.“때론가짜라도필요하잖아,라는게모형을만드는이유중하나였다.”현실이아닌환상일지언정시간을지워준다면상관없다.이상황을견디게해주거나구멍에서놓여나게해준다면무엇이든괜찮다.

숲의정적

위층아주머니는베란다에서강을내려다보며말한다.“물빛이너무좋다.난매일배를타고바다나강을항해중인것같아.가도가도보이는것은흰햇빛과흰물빛뿐인것같아.내게주어진것은자유뿐인것같아.”가까이있던사람들을모두잃은여자는어떤의미에서는얽어맨것들에게서놓여난셈이다.그러나자신을세상에비끄러매줄이유도잃어버렸다.강은여자에게‘자유’를주지만막막한자유는여자를끊임없는자살충동에밀어넣는다.그녀를삶에붙들어매줄것이남아있지않기때문이다.“눈이퍼붓는데,보이는것은전부눈뿐이었는데현실같지가않았어.이대로눈에갇혀죽어도좋겠다는생각이들었어.”내리는눈으로기억은하얗게지워진다.“모든것을덮어버렸어.남편과결혼한사실조차처음만나연애하면서데이트하고,그좋은시절만빼놓고다른건다눈속에묻어버렸어.그렇게되니까남편은도로애인이되었어.”위층아주머니는아들과소식이끊기자또북해도로갔다.“흰눈발속에서서아들을입양했던일을다묻어버렸어.아들을입양한적없다고.입양한사실을,함께살았던사실을눈으로다지워버리고,다덮어버렸지.그러니까아주편해.”눈으로눈을가린다.이런외면은위태로운생존방식이다.눈은지우지못하고,잠시덮어줄뿐이다.순백의눈이녹으면질척한물기만남는다.현실과자신에대한눈돌림은타인에대한외면으로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