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그리기

원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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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공계 출신으로,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며 장편소설을 쓰다가 201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문어」로 등단한 신호철의 첫 소설집 『원 그리기』가 출간되었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양자역학에 관해 관심을 가졌고, 그 속에서 문학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작가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문학 장르에서, 과학이라는 필터가 살짝 가미된 이 소설이 독자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소설집 『원 그리기』에 수록된 9편의 단편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말하며, 욕망, 타인의 시선, 자아, 중독, 타락, 아름다움, 죽음 등의 소재로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과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자문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 나름의 시선과 자의식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신호철의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드러내는 갖가지 병리적인 실태들이다.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는 그 환자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신음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고통의 소리들을 전하면서, 공감함으로써 가능한 어떤 공명共鳴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

신호철

경남김해에서태어나부산에서성장.
2017년부산일보신춘문예단편소설「문어」로등단.
작품으로첫소설집『원그리기』가있으며,『지금가장소중한것은』33인(공저)가있다.
부산소설가협회,부산작가회의회원.

목차

작가의말

관측가능한불두덩의중력장……11
슈뢰딩거고양이……38
조형물……64
모든곳에언제나……88
원그리기……113
단세포적참회……136
엔트로피증가의법칙……160
프랙탈……183
문어……209
해설_앓는자들의소리를들어낸다는것……235

출판사 서평

아픔을모르는사람은아마아무도없을것이다.누구든아팠거나아프고,또아프게될것이기때문이다.그누구도아픔을피할수는없다.그러므로아픔은삶그자체이다.신호철의소설은무엇보다바로그아픔으로서의삶에주목하였다.작가는이소설집에서그아픔을앓아내고있는사람들이내는소리를들어내는데오롯하게집중했다.그는저마다의이유와사연들로아파하는자들이내는비명,신음,울음,호소들에정성껏귀를기울였다.그러므로이제우리는들릴듯말듯더내밀하고미약한소리들까지세심하게들어낸그의다음작품들을기대하며기다려도좋지않을까.
-전성욱(문학평론가,동아대학교기초교양대학교수)


이작품집에서그리는병리적현실은개인적인문제에서부터가족이나사회적인차원에이르기까지복잡하게얽혀있다.작가는그복잡한상황속에서인물들이당하는통각을단순하고명료하게포착하고기술한다.그리고그것은구체적인병인病因을통해서인과론적으로드러나기때문에소설의문법역시대단히논리적으로전개된다.물론통각에대한명료한표현과병리적현실에대한논리적선명함은,독자들에게그사태와상황을명쾌하게파악할것을요청하는나름의소설적방법일것이다.

「원그리기」의주인공정세림은간호사이다.세림은헤어나기힘든고통에서벗어나기위해서중독에빠져든여자이다.세림의고통은유년시절에당한오빠의사고에대한죄책감이깊은트라우마로자리잡은데서발원한다.연놀이를하다가미루나무에걸려버린연을오빠가대신내리려다가추락사고를당했고,결국오빠는평생을휠체어에의존해야하는장애를입고말았다.오빠는나날이몸만비대해지면서돈먹는하마가되어버렸고,그를벗어나지못하게꼭붙들고놓아주지않았다.세림은위내시경검사후에마취에서깨어나지않는채로운전을해서거제의본가로가다결국큰사고를당한다.출혈과골절을입고온몸에통증이파고드는가운데서도그는이런생각을한다.

“보잘것없는하루하루가왜이리아프고불행한걸까.어디서부터잘못됐는지모르겠다.이유를따져보면자꾸과거로거슬러올라간다.과거로올라갈수록하나씩하나씩잘못이지워졌다.전부지워지게거꾸로돌아갔으면좋겠다.영화처럼,아무것도모르는어린아이로.아니,엄마뱃속으로……그러고보니내가예정일보다보름이나빨리태어났다고했지.열달도못채우고떠밀려나온년이바로나였네.하,그렇네.거기서부터잘못됐네.”

작가마다각자의방식이있겠지만,저는과학적개념을선택했습니다.졸업한학과가하필이공계열이기도했고,저로서는과학적개념을가미한방식이더새롭게느껴졌습니다.소설집『원그리기』에는9편의단편이수록되어있습니다.단편마다인간본연으로드러나는모습을다양하게담아내려했습니다.욕망,타인의시선,자아,중독,타락,아름다움,죽음등의소재로삶에관해이야기하고,그살아있음이과연언제까지인간의변명으로통할수있을지를자문했습니다.저나름의개념과방식으로쓴이야기들이부디독자들에게도식상하지않은낯설음이되었으면하는바람입니다.
-작가의말중에서

[줄거리]

관측가능한불두덩의중력장

‘욕망’에대한이야기다.소설에는,종교나이념,혹은가치라는근엄한이름뒤에서,실상은자신의욕망을충족시키기위해엎치락뒤치락싸우는모습이나온다.욕망이라는막강한중력에빨려드는인간과그들을생각없이따르는신도들을해학적으로담으려했다.사람이살기위해서이런짓까지하는구나,그런것들을생각해보게만든다.살기위해서몸을팔고,마음을팔고,신념을판다.내가살기위해서너를죽인다.이소설역시삶의결핍과결여에관한것으로서,사이비교단의살벌한이야기를우습게풍자한작품이다.삶의불행을현실적으로해결하기어려울때사람들은초월적인것에의지하게된다.그초월적인것마저압도하는것이불두덩,그러니까여자의성性이다.

슈뢰딩거고양이

소설에는취업에실패한청년이등장한다.그는생계를위해점차더위험한구경거리를만들어낸다.타인에겐그저한순간의눈요깃감이지만,그에게는그모든위험을감수할만큼절박한시선들이다.이소설은한국사회가겪고있는여러가지문제들이담겨있다.소설의주인공우동국은이른바공시족으로3년간고시원생활을하다가,그좁은문을통과하지못하고결국은시험을포기한청년이다.취업을포기한이취업준비생의그절박한생활과생존에대한이야기다.자존감이줄어든만큼열등감이늘어났고,열등감이늘어난만큼그의몸도점점비만해져갔다.졸음이와도잠들지못하는불면의시간속에서,그는사는것도죽은것도아닌좀비와같은자신의처지를자각한다.

조형물

상철은아버지의결여,그빈자리를대체하고있는유사아버지로서의삼촌과갈등을벌인다.요컨대이소설은그유사부권의권위와속박으로부터의탈주에대한욕망을,청년을사로잡은순수한아름다움을통해서표현하고있다.절대적이고순수한아름다움의상징체이자육체적현현인하영은결핍의형이상학이만들어낸일종의환상이다.아버지의죽음이후에삼촌을찾아왔던상철은그런공식(질서)을강요하는삼촌에게점차반발심을갖게된다.그러다가결정적으로삼촌이데려온하영의아름다움에사로잡히게되면서그갈등은더욱깊어진다.

원그리기

이소설은속박의줄을끊어내고자기가조종할수있는능동적인자율의‘줄’을얻기위해,스스로가만들어낸중독과환상이라는그지독한감옥과도같은원(동그라미)에서헤어나오는드라마틱한성장의서사이자탈출기라고할수있다.능숙한간호사는환자와연결된그줄을조종할줄알아야한다고.나도그러고싶다.하지만,줄을당기려면줄끝의중력까지견뎌야한다.나는내가딛고있는땅의무게를느껴본적이없다.이처럼줄은자기의삶을스스로조종하는능동적인역량이지만,세림은오빠의사고에대한죄책감때문에그런역량을뒷받침할‘중력’을잃어버렸다.그래서붕뜬채로부유하고있는것이이여자의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