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09

산책,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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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2년 단편소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로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한 이근자의 두 번째 소설집 『산책, 109』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간 군상들을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서 우리가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폭력이 날로 입지를 넓히는 세상에 발 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일상이 된 탓에 다시 보기가 피로함에도 소설이 일상화한 폭력을 다루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준은 늘 상대적이고 가변적이기에 폭력의 주체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 수 없고, 현실에서 대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일어난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의 타자와 그들을 향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마주하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이야기는 대체로 어떤 교훈적인 메시지를 포함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결말을 기대하고 예상한다. 우리는 불청객들이 뒤흔들어 한층 더 생경해진 세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어렴풋하나마 이 낯설고 섬뜩하며 피로한 불편함은 형형히 빛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관성으로 유지되어 온 모순을 벗겨 내고 우리 안에 숨죽인 채 은거하였던 부정적인 측면들, 그래서 한층 본능에 가까운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제 이근자의 손과 혀를 따라 그가 직조한 기이하고 소박한 윤리의 세계로 갈 시간이다.
-강민희(문학평론가. 대구한의대 교수)

이근자는 진실은 손등과 손바닥처럼 일상과 비일상의 공간을 오가며 수성못에 누워있는 진실 「기유 이야기」, 집에 속해 있지만 다른 곳과 달리 사방이 뚫려있는 옥상 「대기맨」. 때로는 다락에서 내려가기 위해 섬으로 가는 길에 마주한 공간들 「무인도 랩소디」, 집과 작업실 그리고 산책길 위에서 나와 여강이 마주한 순간들 「산책, 109」. 요양원 6층의 구석진 곳에 있는 병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대리모 요양원 굿케어 「저기 소수가 있다」를 찾은 이들과 떠난 이들, 그리고 미인의 뒤를 밟으며 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눈빛 「한밤의 세마젠」등을 동원해 일상의 왜곡이라는 새로운 소설적 진실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구축해 온 세계가 사실은 모순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괴한 양가성의 민낯은 이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불청객들이 뒤흔들어 한층 더 생경해진 세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어렴풋하나마 이 낯설고 섬뜩하며 피로한 불편함은 형형히 빛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관성으로 유지되어 온 모순을 벗겨 내고 우리 안에 숨죽인 채 은거하였던 부정적인 측면들, 그래서 한층 본능에 가까운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근자는 적나라함을 무기 삼아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모순이 덜어진 자리에 응원을 채워 넣는다. 어쩌면 작가는 ‘해 본 적 없어 할 수 없다’의 안일한 대답에도 이제부터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남식은 왜 미인을 따라갔을까. 나는 처음 슬러시를 우리 손에 쥐여주던 때와 조금도 변함없는 남식의 눈빛을 보았다. 얼굴은 검게 익었고 셔츠와 모자가 땀에 젖어 후줄근했지만, 눈동자는 변함없이 번들거렸다. 남식의 저 눈, 흰자위가 푸른 광기에 휩싸이고 검은 구슬이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은 영목을 잃은 후 몇 달간 우리 모두의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 눈빛을 가진 친구는 남식뿐이었다. 뭔가?
-본문중에서
저자

이근자

2011년〈경남신문〉신춘문예「바닷가에고양이의자가있었다」당선.
2019년단편「옥시모론의시계」가창작극으로공연.
2020년소설집『히포가말씀하시길』출간.소설집으로대구문학상수상.
2022년단편「아침은함부르크로온다」현진건문학상본상수상.

목차

작가노트

아침은함부르크로온다……11
산책,109……45
저기소수가있다……73
기유이야기……107
대기맨……135
한밤의세마젠……173
法그릇……203
무인도랩소디……233

◇작품해설
함께가요,기이하고다정한세계에/강민희……263

출판사 서평

작품내용(아침은함부르크로온다.산책,109.기유이야기.대기맨)

아침은함부르크로온다

아버지의졸음운전이후우리가족은여러가지일을겪은후에장례식장이내려다보이는요양원7층의구석진곳에있는병실에서살게된다.어려서부터몸이서서히마비되는병을앓아서른살부터는목위쪽에만감각이살아남은,그러나터치펜을입에문채,그것으로노트북의화면을조정하는동생병우와졸음운전으로교통사고를내고엄마가돌아가시자정신줄을놓쳐버린아버지가전부다.좀처럼변화가없을것처럼보이는일상을뒤흔든것은대학시절에보았던안젤라다.그녀는‘아버지와동생과나까지사내셋만살고있는우리의대기권’,좀처럼포장할수없는가족사에거의무단으로진입하여전에없던변화를이끌어낸다.안젤라가알려준병우의비밀덕분에나는야간경비일을그만두었고,요양원근처에빌라를샀으며,요양원이정한날짜이전에병실을비울수있었다.

산책,109

여강은작업실과계곡마을인적동을오가는인물이다.그리고‘나’는‘여강’의산책이몇회인지를헤아릴수있고,그녀의육체는물론,감정변화마저포착할수있는그녀의태아다.여강이무거운몸을이끌고산책을반복하는이유는그녀가만철과살고있는적동의재개발로두사람의의견차가좁힐수없는수준에이르렀고,속마음을나눌수있었던친구‘수’에대한그리움이가볍지않아서이다.나의생각이여강에게거의영향을미치지못하는것과달리,여강은나에게거의절대적인영향력을행사한다.이영향력은나의방대한기억이티끌처럼흩어져버릴미래즉,자궁을벗어나는순간에야멈출것이다.문제는여강과나에게이순간은그다지아름답지않을뿐아니라위험하기까지한형태로찾아온다는것이다.앞으로세사람은어떻게될까?

기유이야기

물이고여있는못이일상성을유지하려면쉼없는자정작용이필요하기때문이다.그런데이런못의한귀퉁이에어린이가누워있다면어떨까?내가어디에있는지,무슨일인지알고싶었다.왜고개를돌릴수없고,손과다리를굽힐수도없으며,눈을감을수없는건지도.‘엄마’는‘기유’의헤져서너덜너덜한비니조각을입에물고온강아지‘기유’를“쓰레기뒤지지마.더럽잖아.”라며혼내기까지한다.지척에서도‘기유’를발견하지못하는‘엄마아빠’.이런두사람이기에그들이한참을옥신각신한후경찰서로가는순간‘기유’는물속으로가라앉을수밖에없다.‘기유’로은유되는‘아주소중한것을잃어버려’장차후회할‘엄마아빠’의모습으로우리가잃어버린‘아주소중한것’이있지않는지…….


대기맨

사장할머니의운전기사였던아버지는경찰이마약밀매업자황씨를검거하기위해황씨의어머니인이씨의저택을급습했던날,마약견에게다리를물어뜯기는바람에수술을세번이나받았다.엄마가‘소심한남자가고용주에게과잉충성을바친’결과라고말하는이사건이후아버지는사장할머니에게다가오는낯선이를막기위해내내긴장해야했던운전수이자경호원이라는자리를잃고,저택앞골목과주변을비추는CCTV의녹화테이프를다시돌려보고얻은정보즉,저택을주시하는잠복경찰이나수상한사람의동태를살핀후에보고하는것.아버지말에의하면세상을구경하는일을얻는다.아버지는옥상에앉은채고깔모자의뾰족한꼭대기또는하늘의일부거나집의연장선으로보이는‘대기씨’가되어가는대신자신과가족의일상을지키는데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