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의 팔월

열여섯 번의 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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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난설헌』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최문희 장편소설 『열여섯 번의 팔월』이 오랜만에 출간되었다. ‘바윗돌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는 마음으로 글을 쓴 최명희의 작가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은 최문희 작가는 『난설헌』, 『이중섭』, 『정약용의 여인들』을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작가는 『열여섯 번의 팔월』에서는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달리 ‘조안’이라는 인물을 통해 용서와 사랑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받은 것만큼 되돌려 준다? 그 앙칼진 정서에는 두고 볼게, 어떻게 사는지 지켜볼 거야 하는 따위의 앙갚음의 비수를 호주머니 속에 숨겨둔 채 밥도 먹고 차도 마신다. 복수는 칼이나 도구로 목숨을 앗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의 단어, 한마디 말로도 피를 흘리고 속살을 태우며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법이 더 잔혹하다. 육체의 도살은 잠깐이지만 영혼의 착즙은 갈기갈기 찢거나 부수뜨리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쌍돈 마을에 살았던 두 자매는 빼어난 미모로 주목받는다. 조순숙이 전교 수석은 물론 전국 글짓기 대회 나가서 대상을 받는다. 그녀들은 미싱공이었던 이모가 만들어 둔 조각보 스커트를 입고 다닌다. 동네 키잡이 남학생들이 체크니스트, 사팔뜨기라고 놀리면서 졸졸 따라다닌다. 16세의 악동 강문혁과 순결의 아이콘인 순숙이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할키면서도 얽히고 설 킨다. 강문혁의 친구 모경인이 순숙을 향한 순애보적인 사랑을 하면서도 강문혁의 이기적 사랑을 피해 비실댄다. 순숙이 경인을 가슴에 품는다. 그랬음에도 모경인의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가난을 미워했고, 노골적으로 가난이라면 이가 갈린다며 직구를 날린다.


조안은 열여섯 번의 팔월 곧 16년을 기다려왔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물리적 복수는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날이면 날마다 부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처연한 인간다움에 녹아내린 복수의 알갱이, 그녀는 손을 넣어 그 암 덩이를 꺼내 멀리 집어 던진다. 복수는 암이다. 16년 동안 그것을 품고 살았던 자신의 악바리를 그녀는 한줌 머리카락을 잘라 미운 세월과 함께 떠내려 보낸다.


길고 벼린 서른 고비에서 그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존재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떠난다. 죽음은 깊은 잠.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의 긴 노정의 삶이 내용이라면, 죽음은 수만 개의 쉼표를 매단 서늘하고 고독한 수면일 터. 목숨 그 이전, 그 이후에도 멈춤은 존재한다. 죽음은 본래의 것이고 영원한 것. 삶은 일시적인 것. 내 존재, 내 삶의 이전부터 죽음은 거기 서 있다.
-본문 중에서

저자

최문희

저자:최문희
경남산청군남사리출생.
1988년월간문학「돌무지」로등단.
출간한작품은장편소설『서로가침묵할때』,『율리시즈의초상』,『난설헌』,『이중섭(전2권)』,『정약용의여인들』,『열여섯번의팔월』이있으며,소설집『크리스털속의도요새』,『백년보다긴하루』,『나비눈물』과산문집『내인생에부끄럽지않도록』이있다.
국민일보문학상,작가세계문학상,혼불문학상,유주현문학상수상.

목차


푸름이연두를지우고7
대필작가?22
라벨1호34
저마다다른외로움47
그러지마67
그만큼의흔적97
같은얼굴다른표정123
어긋난만남145
처음이야176
강산문원188
바람그늘나무203
휘어져도구부러지지않아241
누가대필작가를죽였을까?261
용서하지마277
그때,그어름에서286
여름끝자락311

마침표를찍고318

출판사 서평

줄거리

강문혁교수의유고집출판기념행사후나주연대표가모경인에게대필작가인주제에,겨우그거면서,모욕적인말을하는데도경인은웃기만한다,그웃음뒤에가려진그늘이조안의가슴에작은물이랑을만든다.위로해주고싶어서어제저녁,양평에있는경인의작업실인이곳에왔었다.서른이넘은지금까지그는지난날저질렀던잘못을가슴에새긴채자책하고있었다.

모경인이약속장소에나타나지않는다.교보문고앞에서만나자고했는데,전화기도꺼져있다.조안이배우정과경인이살고있는양평강산문원으로찾아간다.

조안이방문을열고들어가는순간목을맨경인의늘어진시신과마주한다.두사람은어처구니없는현실에망연자실한다.자살이아니다.배우정이단칼에토해낸말이다.배우정이모경인을피붙이처럼의지하고존경하면서룸메이트로같이살아왔다.장르작가인배우정의직감을누구도부정할수없다.

16년전그들의고향인경기도양평쌍돈마을에서모경인은조순숙을사랑했고조순숙은임신을하게된다.모경인은시골에가서아이를출산하고야간대학을다니자고하지만그녀는단숨에뿌리친다.모경인의자존감은일시에바닥으로추락한다.더구나형제처럼아끼고소중하게의지했던친구강문혁이마을뒷산벼랑바위에서순숙이와함께있다는배우정의말을듣고올라간다.순숙이강문혁에게네가내겐처음이야.엿듣게된모경인이전율한다.순숙이바로어제자신에게했던말이다.

비가추적대고흔들바위는미끄덩거린다.갑자기모경인의등장으로분위기는살벌해진다.감정이격해진셋은손바닥만한흔들바위위에서순숙이미끄러져바위끝에매달린다.강문혁이순숙의손을잡았고모경이이한손으로문혁을다른한손으로순숙의손을잡지만기울어진바위에서그들은더이상버티지못한다.손을놓친순숙이벼랑아래로곤두박질친다.

그렇게16년이지나고,조안이이모에게입양되고간호대학을졸업한다.그녀는악전고투끝에한의대편입한다.그들이다니는K대학에.양평중·고등학교동창인그들은몰려다닌다.도서관에서조안은모경인을만난다.언니순숙이사랑한남자이면서도,순숙의손을놓고친구의손을잡았던모경인.조안이그들이속하고있는문학동아리에입성한다.조안이오롯이가슴에품고있는복수라는비수를감춘채그들의일상속으로들어간다.

그들은행복한것같지않다.문학동아리강산문방의수장격인강문혁이유학다녀온후모교의전임교수로임용되지만,그의얼굴에드리워진그림자는짙고무겁다.1년열두달,검은슈트에검정타이를매고다닌다.제손으로떨어뜨린조순숙에대한깊은애도의뜻이다.한편모경인은외모에비해유약한외골수에소심한성품이다.빈농의장남인그의아래로일곱명의동생이있다.친구강문혁덕에서울에서공부하는특혜를누리지만,두사람은과거의한지점에묶여있다.순숙의손을놓친건의도적인기피이었을까?그날밤,비가내렸고흔들바위는미끄러웠지만,결사적인노력을했더라면,살려달라고애원하는소녀의손을놓칠수있었을까?바로그지점에서두사람은묵계라는종이사슬에묶인채침묵한다.그러면서도두사람은저마다다른모습으로조순숙의죽음을애도한다.
강문혁은16년동안상복을걸친채하루한끼니로연명한다.

19개월동안식물상태로누워있던문혁이서른셋생일날숨을거둔다.이비의지팡이로얻어터진그의서른은만신창이로망가지고쪼개진다.강회장은설마몰랐을까?아들문혁에게빌붙어사는비렁뱅이모경인이라고착각한횡포였을까?문혁이경인을깔고앉아어둠속에서날아오는지팡이세례를고스란히받아낸다.왜목을맸을까?어린날,벼랑바위에서손을놓친순숙에대한죄책감으로?예기치않은모경인의죽음이조안의가슴에쇠사설이돼친친감긴다.어젯밤,그가사랑한다고조안의무릎을싸안고속삭였다.하지만,그가사랑한대상은언니순숙이었다.모경인이아니조안이유도했는지도모른다.젊은두사람은깊숙이다져둔열정의고리를풀어헤친다.

조안이그들에게어떤물리적인복수는하지않는다.그들스스로날이면날마다부스러져가는모습을지켜보면서그처연한인간다움에녹아내린복수의알갱이,그녀는손을넣어그암덩이를꺼내멀리집어던진다.복수는암이다.16년동안그것을품고살았던자신의악바리를그녀는한줌머리카락을잘라미운세월과함께떠내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