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와 문화코드 (글로컬시대를 디자인하다)

문화콘텐츠와 문화코드 (글로컬시대를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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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화콘텐츠와 문화코드』 는 '글로컬'의 관점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문화 코드를 분석했다. 이 책은 영국,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문화코드들을 분서갛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

박치완

저자 박치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프랑스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프랑스 부르고뉴대학교에서 베르그송 전공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활발하게 학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불교신문>, <매일경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글로컬문화콘텐츠, 어떻게 그리고 왜?』(공저),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공역), 「(문화-)세계화: 동일성의 폭력인가, 차이의 배려인가?」, 「왜 글로컬문화콘텐츠인가?」, 「타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 등 다수가 있다.

목차

프롤로그/ 5

1. 문화코드를 활용한 러시아 문화콘텐츠의 이해-장정희/ 21
2. 영국의 문화코드: 전통과 혁신-김성수/ 65
3. 일본인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한류-나까무라 마유/ 101
4. 부상하는 아시아의 주연배우 인도: 인도의 문화코드-김윤희/ 133
5. 한국사회의 문화코드와 문화콘텐츠-김평수/ 169
6. 문화코드로 읽는 일본의 문화콘텐츠-박경아/ 207
7. 현대 중국의 문화코드-김형준/ 251
8.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갈등의 근원: 문화코드의 비교연구-김형인/ 293
9. EU의 문화코드와 문화정책-홍종열/ 323
10. 글로컬시대의 문화, 문화코드, 문화콘텐츠-박치완/ 363

에필로그/ 391
참고문헌/ 398
키워드/ 420
저자/ 437
찾아보기/ 440

출판사 서평

글로컬시대의 문화콘텐츠...?

우리는 이제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넘는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 글로벌의 징후는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지만, 현재 널리 사용되는 ‘글로벌’ 개념은 경제 강국의 이해타산에 의해 만들어졌다. 글로벌은 경제적 일방주의를 낳았고, 그 영향으로 심지어 문화까지도 경제블록으로 편입되려 하는 중이다. 글로벌은 시장경제의 세계화라는 모습으로 현실이 되었고, 이 현실을 압도하는 방임적 시장주의와 금융경제의 세계화는 국가 내적으로 경제적 양극화는 물론, 국가 간의 양극화도 심화시켰다. 1997년 한국의 IMF 구제금융 사례에서 잘 드러났듯이, 세계화는 국가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금융자본주의의 국제기준을 강제로 이식하고 있다. 결국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금융자본주의는 더 이상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안정적인 시스템이 될 수 없다는 면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시스템이 세계경제구조를 재편했던 것처럼, 미국 중심으로의 세계적 재편은 문화 분야로 전이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국의 문화자본은 이미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은 세계 각국의 교역 협상에서 자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개방을 교역 조건으로 추가하거나 해당국가의 문화보호정책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미국 문화의 강제이식을 관철시켰다. 이러한 상황에 반발해 2001년 프랑스 파리의 제31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164개 회원국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로 위험에 처하게 된 나라와 지역의 문화적 고유성 및 다양성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는 바에 따르면, 강요되거나 이식되는 문화는 잠시 동안의 반짝임일 뿐이지 생명력이 오래도록 지속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독자적 문화들이 생성되었고 소멸되기도 하였지만,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했던 문화는 강요나 이식이 아닌 이문화(異文化)를 포용하고 새롭게 융합하는 혼종성을 가진 것이었다.―일견 미국 문화 자체의 강점이 바로 이런 혼종성에 있다는 면도 있다. 세계의 문화는 미국의 문화가 아니라 세계인들 모두의 이문화다. 본래부터 문화는 고유의 독자성만으로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는 것이 아니었던 바, 미국의 문화의 독자성이 세계 문화의 정답은 아니다. 문화의 역사는 혼종과 융합의 드라마였으며, 문화의 생명력은 바로 혼종을 위한 융합 능력에 달려 있다. 그래서 세계의 문화를 위해서는 이문화와의 혼종과 융합이 절대적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문화 몇 가지를 그냥 뒤섞는다고 혼종과 융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문화의 융합은 한 문화와 다른 문화의 소통이며, 이질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재배치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문화의 융합과 지속은 대중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면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대중에 의해 선택받지 못하는 문화는 문화로서의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이제 세계는 수동적인 대중의 시대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유목인(neo-nomadism)들의 시대이다. 디지털기술과 네트워크의 발전은 인간이 필요한 것을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바일(mobile) 시대를 열었으며, 자본과 상품과 사람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신-유목인들의 시대에 국가가 자국민들에게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자국의 상품만을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이런 상품의 무국적성은 문화 분야로까지 확장된다. 비록 전통적인 문화상품들도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 현재의 문화상품들은 그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물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혼종성을 지닌 문화상품들이 지역과 무관하게 획일적인 문화상품으로 단순히 소비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민들의 기호와 지역 문화의 차이에 따르는 소비 패턴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학자는 ‘민족’이란 개념이 국가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간들의 공동체, 즉 국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국민성이나 국가정체성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무의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면은 분명히 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코드(culture code)라 할 수 있다.―베네딕트적 시각으로 본다면, 국가적 상상에 의해 무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 문화코드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국가 정체성은 국민성으로부터 시작되며, 국민성은 문화코드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문화코드는 그 나라 국민들이 통시적, 공시적으로 공유해 온 역사, 문화, 관습 속에서 형성된다. 그렇기에 엄밀하게 말해서 문화코드는 근대에 형성된 국민성이나 국가정체성보다도 더 깊은 뿌리를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근대 국가가 국민성이나 국가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해준 일종의 문화적 자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 국가의 존망은 바로 세계적 경제구조 속에서의 생존능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그 생존능력은 상품을 제작해서 외국에 파는 마케팅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기술이 평준화되어가는 상황에서 국가생존능력의 차별화는 마케팅에서 결정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기호와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코드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화코드를 단순하게 다른 국가에 대한 교역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을 위한 요소 등의 범위로 한정지어 버리는 도구적 해석은 경계해야한다. 다른 국가의 문화코드를 이해하는 일이 경제교역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코드를 단순히 마케팅전략요소로 환원시켜서는 곤란하다. 문화코드에 대한 이해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 교류와 인류공영을 위한 전제이자 이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상대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행위가 제대로 이루어 질 리 없으며, 상대의 생존방식과 특수성을 무시하는 처사가 지속가능성을 가진 교역 행위가 될 수 있을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문화코드는 단순한 경제적 목적성을 넘어서는 이문화에 대한 심층적 이해방식이다. 또 문화적 융합은 문화코드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문화요소들의 재배치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의 상품들도 국경을 ‘잘’ 넘기 위해 현지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맥도날드도 KFC도 국경을 넘으면 그 나라의 코드에 맞게 변화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 로컬’, 즉 글로컬(glocalisation)이다. 범용화 되기 쉬운 일반적인 소비 상품들도 현지의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상례다. 따라서 오랜 관습으로 자기 것에 길들여져 있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문화’와 ‘문화콘텐츠’가 어떤 태도를 지향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한류의 사례를 보자. 지난 10여 년간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가 현대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각광받는 문화콘텐츠가 되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바로 동아시아 지역의 국민들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리 없고,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리 없는 것처럼, 자신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 문화에 열광할 리 없다. 그러자 아시아 사회에서의 ‘한류’라고 지칭되어진 트렌드에 대해 한국 사회는 흥분했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렸으며 정부, 민간, 재계, 문화계 따질 것 없이 모두 적극적으로 이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려 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이 현상으로 인해 우리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도 충분히‘글로벌화(globalisation)’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까지 낳았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과 상대 문화 및 문화코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일방적인 유행은 순간에 그치게 될 뿐이다. 입맛이 변하면 대중은 새로운 기대를 찾아 언제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일본·중국의 일부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반한류나 혐한류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동질적 요소나 기대 부응 여부 때문에 많은 각광을 받았던 한류가 이제 반감을 주는 문화로도 취급받게 된 것이다. ‘글로벌화’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한류가 현지화 되지 못했거나, 현지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확장전략만을 추구했던 결과만은 아닐지에 대해 깊이 자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현재의 상황이 한국 문화콘텐츠산업계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문화콘텐츠 상품은 반드시 글로컬화해야 상존할 수 있다”는 교훈이 아닐까? 즉 문화콘텐츠산업에서 ‘글로컬화’가 중심 키워드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글로컬문화콘텐츠’는 자국의 문화산업을 어떻게 육성하고 콘텐츠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이론적 지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상국가의 ‘문화코드’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연구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러시아의 문화코드를 연구한 장정희는 문화콘텐츠를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측면의 문화코드, 즉 러시아의 정치·경제, 종교와 생활문화, 그리고 현대 러시아의 대중문화와 그 속의 문화코드로 크게 항목을 나누어 살펴보았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문화적 측면에서, 거대한 영토를 지닌 러시아 특유의 자연환경은 물론, 이민족의 침입, 고립의 역사 등을 극복하기 위한 ‘집단주의’와 ‘절대권력’ 지향이 러시아를 이끄는 힘이라는 면, 그리고 이와 관련 러시아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 ‘천연자원’과 ‘올리가르히’의 문화코드를 설명했다. 보편적인 일상 문화에서는 민중을 지탱하는 뿌리이자 지배하는 권력으로서의 종교인 ‘러시아정교’의 영향력, 그리고 20세기말 자본주의화에 따른 식생활의 변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주거생활과 이것에 내포된 문화코드를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장정희는 러시아 문화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위한 현대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