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는청소년의눈높이에맞춰원문을새로번역하고쉬운해설을넣어재정리한‘청소년철학창고’의서른다섯번째고전으로,고려후기에살았던승려일연이고조선이후부터통일신라시대까지의일들을기록해놓은역사서다.
이책은현재남아있는역사서들중단군신화가수록된최초의책이라는점에서그가치가크며,신라인의노래라할수있는14수의향가와자칫묻힐뻔했던가야역사를되살려놓은점에서큰의미를가진다.또한삼국특히신라사회의모습을생생하게엿볼수있는귀중한자료로서,《삼국사기》와비교했을때더빛이난다.‘유사(遺事,남아있는일)’라는말에서알수있듯이《삼국유사》에는《삼국사기》가황당무계하다고여겨기록하지않은이야기들이담겨있기때문이다.
유학자김부식이왕명을받아편찬한《삼국사기》와달리《삼국유사》는일연개인의역사의식을바탕으로사사로이저술된책이어서표현이나내용면에서한결자유롭다.그래서일연은오래전부터전해내려오는수많은신화,전설,민담등을우리역사로받아들여소개하였다.거기엔우리나라의건국신화는물론이고민간에서널리전해지던설화들,특히불교신앙과관련된고승이야기와사찰?불상?석탑등에얽힌신비롭고신령한이야기들이가득하다.
무신정권과원(몽골)의침략이라는내우외환의혼란기를겪었던일연은민족의자주의식을추구함과동시에불교의가르침이세상에널리펼쳐지기를염원하였다.그리고그바람을담아말년에인각사에서《삼국유사》를썼다.오늘날우리는일연이왜설화와전설을우리역사로받아들여기록해놓았는지,또그안에깃든역사적진실은무엇인지고민해보아야한다.합리적,과학적연구를통해고대사회의모습을뚜렷이밝혀내는일은이제우리모두의과제일것이다.
-이책의특징
■전체구성
《삼국유사》원문은5권9편으로구성되어있다.그가운데전반부의1~2권(1~2편)은역사와관련된내용으로,그리고후반부의3~5권(3~9편)은불교와관련된내용으로채워져있다.이런《삼국유사》를해제를곁들여풀어쓴이책《삼국유사,우리역사로되살아난신화와전설》은총2부로구성되어있으며,각부아래에2~3개의장을넣어원문을이해하기쉽게재정리하였다.
먼저1부는<기이(紀異)>편의내용을중심으로하여《삼국사기》와《고기》,《향전》같은옛기록에담긴내용을함께비교하면서이야기를전개하고있다.왕들의신비롭고특이한일에대해기록해놓은〈기이〉편은고조선의단군신화부터부여와고구려의건국신화,그리고신라의왕들과그주변인물들의신이한이야기,백제와가야의왕들에대한신화등이주로쓰여있다.이를바탕으로1부에는건국영웅과시조의탄생설화,그리고비처왕?지증왕?진평왕같은신라왕들과김제상?김유신?장보고같은인물들의신통한이야기들이펼쳐져있다.
2부는《삼국유사》의후반부,즉<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편을다루고있는데,그중심엔불교가있다.일연은《삼국사기》가제대로다루지않은불교이야기를《삼국유사》에담아내려하였다.그래서2부에는사찰,고승,사상(신앙)등불교의다양한모습들이폭넓게나타나있다.특히불상과불탑,승려들의이야기가많이등장한다.2부의마지막장은노힐부득과달달박박,노비욱면등평범한사람들이보여주는감동적인이야기,즉보통사람들의효도나덕행같은미담들로꾸며져있다.
■일연은왜《삼국유사》를지었을까?
불교적신이사관으로바라본우리의역사
일연은유학자가아니라승려였다.그래서그는부처님의기적처럼,세상에는논리적으로설명되지않는신비한일들이일어날수있다고생각하였다.역사는신비롭고경이로운일들로이루어진다고보는것을‘신이사관’이라고하는데,《삼국유사》는바로불교적신이사관에입각해저술되었다.
이런관점이었으므로일연은사람들사이에서전해내려오던수많은설화들을누군가가지어낸허황된이야기라여기지않고,우리민족의정신과혼이깃든귀중한자료라보았다.단군신화를비롯해고구려,백제,신라,가야등의건국신화와불교관련설화들은일연의상상력과재해석이더해져민족의자주의식을높이는이야기로다시태어났다.
《삼국사기》를편찬한김부식과일연은관점이서로달랐다.그이유는두사람이살았던시대와관련있다.김부식이활동하던고려중기는유학이활짝피어난시기로,많은유학자들은중국(당과송)을큰나라로섬기며유교정치이념을확립하였다.당시중국은정치·군사적인측면뿐아니라학문?정신적인측면에서도동아시아세계를지배하고있었다.이같은분위기에서김부식등유학자들은사대주의,중화주의정신에동화되어《삼국사기》를편찬할수밖에없었다.
그런데일연이살던고려후기에이르러중국중심의세계질서가무너지기시작하였다.유학자들이섬기던송나라는몽골에패하였고,고려역시몽골의침략과억압을받으며큰시련을겪게되었다.이런상황에서고려의지식인들은민족의식을각성하게되었고,민족자존을지키며민족의긍지를드높이는일이당시의시대정신으로떠올랐다.《삼국유사》는바로그러한시대의산물이었다.
하지만《삼국유사》는편찬된당시에는큰주목을끌지못하였다.조선시대에도마찬가지였는데,성리학자들은‘허황된책’이라며신랄하게비판하였다.유학자들의관점에서《삼국유사》속많은이야기들은너무도비현실적이었기때문이다.물론《세종실록지리지》나《동국여지승람》같은인문지리서는《삼국유사》의내용을많이인용하였다.지명이나유적,전설등에관해이야기할때는《삼국유사》만한자료가없었다.정약용도고대우리나라지리와관련해서는《삼국유사》를보아야한다고말할정도였다.그러한정약용조차도《삼국유사》의전반적내용에대해서는“황당하고경전에맞지않아믿을바가못된다.”라고혹평하였으며,대다수실학자들도같은의견이었다.
《삼국유사》가재조명된시기는20세기초였다.1927년,최남선은일본유학때처음접한《삼국유사》임신본을<계명>이라는잡지에소개하였는데,사람들의반응이아주좋았다.오랫동안외면받던《삼국유사》의진가가마침내세상에드러나는순간이었다.
몽골의침략과간섭을받던13세기와일본의식민지배를받던20세기초는여러모로시대적분위기가비슷하였다.일본의침입에저항하면서민족의자주의식이높아져갔고,이렇게고조된민족의식을바탕으로국어학?민속학?국사학등을연구하는민족주의자들의정서는고려후기에《삼국유사》를편찬하던일연과어쩌면일맥상통할수있었을것이다.이렇게되어《삼국유사》는《삼국사기》와더불어우리민족의고대사를밝히는중요한역사서로자리매김하게되었다.
보각국사,일연의생애
고려후기에살았던일연은100여권의책을저술한학자이자시인이었으며,만년에는불교계의최고명예직인‘국사(國師)’의자리에오른덕망높은승려였다.아쉽게도현재까지전해지는그의책은역사서인《삼국유사》와불교서인《중편조동오위》밖에없다.
일연은최씨무신정권이고려를다스리던시절에태어나성장했다.그리고스물두살때승려들이보는과거시험인승과에장원으로합격한뒤로근20여년간을홀로수행에힘쓴그는마흔네살때비로소세상으로나왔다.그당시고려는수도를강화도로옮기고몽골에맞서던시기였다.일연은남해정림사,포산인흥사,청도운문사주지로있으면서왕실또는최씨정권과직간접으로인연을맺을만큼학식과명망이높았다.하지만정치권력과엮이는걸별로좋아하지않았던성격탓에정치사회적인문제나불교계의폐단앞에서목소리를크게내지는않았다.
일흔여덟살때그는나라의정신적지도자인국사로추대받았지만,곧노모를모셔야한다는이유를들어고향으로내려갔다.노모가세상을떠난뒤엔군위인각사에머물면서오랫동안수집한자료들을바탕으로《삼국유사》를편찬하였다.여든네살때세상을떠나자충렬왕은그에게‘보각’이라는시호를내렸다.
■《삼국유사》의문화적가치
일연의《삼국유사》는신라중심으로구성되어있다.제목만봤을때는당연히고구려,백제,신라삼국의이야기가고루들어있을것같지만,140여개의항목중대다수는신라와관련된내용이고,이야기의중심무대또한경주(서라벌)다.그이유는아마도일연이경주와가까운경산지방출신인데다그인근지역에서오랫동안승려생활을했기때문인것같다.
또한일연은《삼국유사》를쓰면서130여종이넘는국내외서적들을인용하였는데,그중에는《고기》와《향전》처럼지금은전해지지않는서적들도상당수있다.아울러《삼국유사》에는일연이쓴47편의시가소개되어있다.그는어떤의미있는역사적사실이나감동적인설화를소개한다음,글끝부분에“찬양(찬미)한다.”라는말과함께자신의느낌을시로표현해놓았다.
이처럼《삼국유사》의가치와특징은손으로꼽을수없을정도로많지만,그중에서특히다음의세가지는아주중요하다.이세가지가치만으로도《삼국유사》를우리고대문화유산의보물창고이며,영원히보존해야할귀중한고전이라고장담할수있다.
첫째,단군신화다.《삼국유사》는현존하는역사서들중단군신화가수록된최초의책이며,다른책에등장하는단군신화는《삼국유사》의내용을인용했거나변형한것이다.원의침략과지배를받으며살았던일연은책첫머리에단군신화를내세워우리역사의유구함과민족의자긍심을드높였다.
둘째,14수의향가다.신라인들은한자를이용해‘이두’또는‘향찰’이라는독자적인기록방식을만들었는데,향가는이향찰로쓴신라인들의노래를말한다.하지만현재까지남아있는향가는모두25수밖에안되고,그중《삼국유사》에실린게14수나된다.오늘날우리는일연이남겨준<헌화가>,<처용가>,<서동요>같은아름다운향가들을통해신라인들의정신세계뿐만아니라신라인들의언어체계,즉우리말의원형을더깊이연구할수있게되었다.
셋째,《가락국기》의내용이다.지금은세상어디에도없는《가락국기》의내용을요약해실은일연덕분에우리는500년가야역사를부분적으로나마알수있게되었다.뿐만아니라일연은몇개의가야관련기록들도함께소개함으로써자칫잊힐뻔했던가야이야기를되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