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16.04
Description
한국문단의 거목, 한승원 산문집
22년 전, 서울에서 고향 장흥으로 내려간 작가는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해산토굴’이라 이름 짓는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을 가둔 채 오롯이 인간 성찰의 도구로써 글을 써왔다. 안과 밖, 세상과 자연의 경계에서 작가는 소박한 일상과 우주적인 사유를 오가며 겸허한 인간론을 펼쳐왔다. 이제 땅의 끝이자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다다른 작가는 인생의 말년을 냉철하게 목도하며 지난 삶을 반추,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그의 현재적 고뇌는 죽음마저도 삶으로써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며, 그 치열한 능동적 삶의 태도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부록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는 바로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치열한 삶으로의 권유, 바로 그것이다.

저자

한승원

저자_한승원
1939년전남장흥에서태어났다.서라벌예술대학문예창작과에서스승김동리에게문학에대해배웠고,1968년《대한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목선」이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본격적으로시작했다.이후50년작가생활동안고향인장흥바다를시원(始原)으로한작품들을꾸준히써오면서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이상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한국해양문학상,한국불교문학상,미국기리야마환태평양도서상,김동리문학상등유수의문학상들을수상했다.
중단편집으로『목선』,『아리랑별곡』,『누이와늑대』,『해변의길손』,『내고향남쪽바다』,『검은댕기두루미』,『잠수거미』,『희망사진관』등이,장편소설로『아제아제바라아제』,『우리들의돌탑』,『시인의잠』,『동학제』,『아버지를위하여』,『까마』,『연꽃바다』,『해산가는길』,『포구』,『꿈』,『사랑』,『화사』,『멍텅구리배』,『물보라』,『초의』,『흑산도하늘길』,『원효』,『키조개』,『추사』,『다산』,『보리닷되』,『피플붓다』,『항항포포』,『겨울잠,봄꿈』,『사랑아,피를토하라』,『사람의맨발』,『물에잠긴아버지』등이,산문집으로『허무의바다에외로운등불하나』,『키작은인간의마을에서』,『푸른산흰구름』,『바닷가학교』,『시방여그가그꽃자리여』,『이세상을다녀가는것가운데바람아닌것이있으랴』,『차한잔의깨달음』,『강은이야기하며흐른다』등이,시집으로『열애일기』,『사랑은늘혼자깨어있게하고』,『노을아래서파도를줍다』,『달긷는집』,『사랑하는나그네당신』,『이별연습하는시간』등이있다.

목차

작가의말:내가하늘을보는까닭은7
서문:늙은감나무와의대담12

1나의눈빛이하늘의별을만든다
어둠속에나를묻어놓는것도,거기에서나를꺼내는것도나이다
수방청당숙의바보같은마음
시인의얼굴
나를늘강하게만드는슬픈음화같은기억
절대자의사랑이내게로날아들었다
과거혹은고정관념이라는감옥에서졸업하기
물은도전적으로흐르고꽃은공격적으로핀다
겨울나목앞에서옷깃을가다듬다
삶은산보다무겁고사랑은새털보다가볍다

2모래의시간을생각하다
파도를보고모래의시간을생각한다
나의삶은지금어느계절인가
봄꽃은순간이고여름은길게출렁거린다
친구여,내가얼마나부자인지말해주겠다
내얼굴은하나의새콤한관념이다
여신의영육과의깊은만남
신화적인바다의실제상황중개하는리포터

3꽃향기를귀로듣다
꽃들의사업
철없는나의몸은봄을노래하는한편의시
한마리의벌이되어
향기를귀로듣다
나멀리떠나고난뒤토굴마당에는
사랑하는나의여름신부
바람이불자여신의달빛옷자락이날리고

4태양은언제나문밖에있다
마음에거울하나지니고살아간다
해야,김칫국에밥말아묵고얼릉얼릉나오너라
섣달그믐밤에잠자면굼벵이가된다
새아침의기도
우리는모두한개한개의섬이다
행운과액운은동전의양면
경계에는꽃이피지않는다

5풀베고책읽고글쓰고명상하고
하늘의마음을가지고살다
갇혀살기와자기풀어놓기의묘
그오솔길양쪽에전혀다른향기로운삶이놓여있다
꽃샘바람속에서세한도를읽다
차와깨달음의색깔
흐물흐물해진삶을성난얼굴로돌아보다
모두취해있지만나혼자깨어있네

6차는식었지만맛은달다
늙어가지만낡아지지않는다
생각의가지치기
오는님을숨어서반기는여인처럼_산유화처럼사는ㄱ스님에게
우리집꾀꼬리는장흥안양의사투리로운다
흰,그게시(詩)이다
꽃지면열매있고달지면흔적없어라
백팔톤바위로백팔번뇌눌러놓고

7내콧구멍속어둠밝히기
그냥웃지만마음은한가롭네
콧구멍속의어둠에대하여
바다를심호흡하다
개의눈에는바람은보이는데눈〔雪〕은보이지않는다
내피속에시끄러움이들어있다
손은부처님손인데왜다리는나귀다리인가
강아지풀,얼마나대단한경전인가
도끼문자
어버이나선생이아이들을바보로만든다
세상의모든것은흘러야한다

8빈그릇흔들기
검은구름장이하얀흰눈을토해내듯
스님의사업(事業)과소설가의사업
매화향을먹고살다
나의낙화시기를점쳐보다
꽃을쳐내고먼산을보네
‘달긷는집’에서
사람들은속이텅빈그릇하나를흔들고있다
순백으로돌아가기

9내영혼에드리운그윽한그림자들
절하고싶어절에갑니다
부처님의맨발
파란허공을쳐다보며_열반에든법정스님께
바보성자,혹은이땅의빛과소금_선종하신김수환추기경님께
새벽바람벽을기어가는화사와마주치다
여가수의아버지찾기
나를기다리는두여인

부록병상일기_사랑하는아들딸에게주는편지

출판사 서평

혹독한겨울을지나피어나는
새봄의꽃같은산문들
한국문단에서문인들에게존경과찬사를받는,‘작가들의스승’한승원.그를향한존경은등단52년이라는세월의무게때문만은아니다.작가로서의치열함과스스로를냉혹하게다스리며변화하는자기갱신에있다.해마다한권꼴로장편소설.중단편집.시집.산문집을펴내는놀라운생산력(生産力)은바로그러한한승원특유의작가정신에서비롯된다.
2018년새봄과함께찾아온신작산문집《꽃을꺾어집으로돌아오다》역시작가의성실함과치열함이꼿꼿하게살아있다.이번산문들은‘아버지의의지와상반되는쪽으로황소처럼나아가던아들’의나날에서자꾸만‘슬픈눈이되어버리는늙은아비’의시간까지작가가통과해온세월을아우르고있다.‘풀베고책읽고글쓰고명상하고……’‘땅끝바닷가토굴’의소소한일상을따라가노라면‘이쯤해서자신을성찰해보라’는작가의은근한권유를받기에이른다.

“나의호‘해산(海山)’은바닷가에있는가시적인산이아니다.짙푸른심해속에암초처럼발달한숨어있는산이다.바다속에내(산)가있고,나는날마다꾸준히그나(산)를탐색하며오르곤하는것인데,그등산으로인하여부처님의사리같은각성이나의모래밭에깔리고나는그것들을헤아리며삶을엮는다.”(227쪽)

등단52년,어느덧작가는생의말년을지나고있다.문득화장실거울속에비친‘부스스한반백의늙은’얼굴에놀라고,이유없이몸살을자주앓고,‘하느님이나를솎아내려고한다’고직감하기도한다.그러나오랫동안사유와성찰의습(習)을익힌작가는곧‘하느님이솎는대로솎아지지않겠다’며‘아직은버팅기겠다’,‘폴발레리처럼살려고분투하겠다’고다짐한다.‘원래존재하지않았던우리’이지만분명하게존재해있는지금이순간은최선을다해살아내겠다는것이다.어쩌면삶이란,온전하게살지못하도록이끄는수많은‘유혹’과의싸움이아닐는지!

살기위해글을쓰다
유혹을이기고버티는힘에관하여
작가는22년전서울에서땅의끝,고향장흥으로내려왔다.포기하고,버리고,안에서밖으로중심에서변방으로벗어나겠다는선택이었다.덜컹거리는심장을달래기위해서라고했지만이는‘글쓰기’를방해하는것들을차단하기위해벽을쌓고스스로를유폐시키겠다는선언이었다.돌아보면그의삶은수많은벽쌓기였다.가령,친일이력이있는재벌회장의전기를써주면3억원을주겠다는제의를거절하거나,유‘약하고게으른성격’을극복하기위해아내와자녀들에게“이번방학에는《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을반드시읽을거야!”“올해장편하나와단편2개를꼭쓸거야!”선언하고기필코해낸일등.‘무력한목’에스스로‘멍에’를걸었다는작가의솔직한고백은소박한감동으로다가온다.자기를끝까지밀어붙이는치열함,작가의글쓰기와삶의동력이여기있다.그에게‘글쓰기’는곧삶을제대로살기위한방편이다.그렇다면우리는또스스로묻게된다.나는무엇에매달려있고과연얼마나치열하게살고있는지를.

“모든공격적인현상들을차단해주는것이벽이다.요염한여인이유혹했을때그유혹을뿌리치는마음의장치가벽이고,돈과벼슬을주겠다고했을때그것을뿌리치는강단이벽이다.바람벽을향해좌선하는것이면벽참선이라고착각하지마라.벽은사실네마음속에도있고마음밖에도있다.”(16쪽)

“바닷가에섬세하지도정교하지도못한작가실을짓고‘토굴’이라명명한것은스님들처럼수도하듯이살겠다는것이다.수도하듯이산다는것은나를그토굴속에가두고바깥바람으로부터격리시키겠다는것이다.가둔다는것은그속에서나를양생한다는것이다.양생은노자적인순리의삶을산다는것이다.책읽고,글쓰는일을하면서만살도록하겠다는것이다.과연나는글쓰기에미쳐사는사람이다.”(213쪽)

세상에서가장무서운것은무엇인가
내콧구멍속의어둠밝히기
인간의여린심성은쉽게세상탓을하게만든다.그러나작가는‘내콧구멍속의어둠’이가장무섭다고말한다.‘손톱만한콧구멍속어둠을타고들어가면광맥처럼끝도없이깊고넓다.길을잃고헤매기도하고길아닌길을따라사방팔방나돌기도하는,행복이나불행이라는것을만들기도하고사악과광기를만들기도하는콧구멍속의어둠.’그어둠을깊이읽은유마거사는해탈했고추사김정희는명작을남겼다.콧구멍속어둠은나를흔들어대는내면의어두운구석이다.그‘어둠을들여다본다’는것은다름아닌자신이누구인지알아내고분석하는성찰이다.작가의흔들리지않는정신세계는여기서또한번단련된다.날마다규칙적으로정해진만큼글을쓰고,수시로바다에눈길을주고,걷고산책하고,차를마시며마음속어둠을누그러뜨린다.꾸준한반복과마음다짐이다.

“차를마시면서생각의가지치기를한다.어떤생각은잘라없애고어떤생각은남길까?”(190쪽)

“마음을비우는순간은탐욕이그친다〔止〕는것이고,텅빈마음이흰색으로되는순간은진리를바라보는〔觀〕상태이다.마음을하얀색깔로만들기위하여차를마신다.”(200쪽)

좋은글을쓰기위해스스로를가두고다그치는치열한작가의삶은그리스신화의오디세우스를떠올리게한다.아름다운노래로선원들을홀려죽음에빠트리는바다마녀사이렌.오디세우스는선원들의귀를밀랍으로막게하고정작자신은사이렌의노래소리가얼마나아름다운지듣고싶어한다.귀를막지않은오디세우스는몸을돛대에묶고는바다를지나무사히고향집으로돌아온다.삶을방해하는수많은위기와유혹을이겨낸,‘귀는열고몸을결박한’오디세우스의현명한지혜가오늘장흥바닷가의작은토굴에살아있다.

“해님!살아있는한소설을쓰고소설을쓰는한살아있게해주십시오.제가시방아침산책길에해님을향해가면서기도하는것은먼저저의건강을더풋풋하게하려는것이고,건강을풋풋하게하려는것은소설을쓰는데몸을활용하려는것입니다.해님,당신의기를넉넉하게받음으로말미암아,저로하여금,대범하되교만하지않고,섬세하되조잡스럽지않고검소하되인색하지않고,소탈하고질박하되천박하지않도록길러주십시오.해님,저의토굴속에저를가두어저로하여금글의노예가되게하되당신의깨달음과자유자재를향유하게하도록늘풀어놓아주시고,바다와들판을건너와서제토굴처마끝에매달린풍경을간지럼먹여진저리치며웃게하는바람을제속에담아주시고,그바람과놀고당신의황금빛살과노는나뭇잎과풀잎사귀와모든꽃들을부러움없는마음으로축복하며살게하시고,그것들이제속에서도넉넉하게피어나게하여주십시오.해님,전라도장흥안양의바닷가해산토굴속에묻혀사는제가쓰는이글을늘사랑스러운마음으로읽어주시는모든사람들도내내,당신의다사로운빛살과다이아몬드같은기(氣)와지혜를가슴가득품고살게하시고,그들의하는일에행운만깃들게하십시오.”(137쪽)

●한승원작가가사랑하는아들딸에게보내는편지
-너희자신만의독특한슬픈눈빛을지녀라.그눈빛으로너희만의풍경을창조하라.
-촛불에게서배워라.제몸을태운불로어둠을살라먹는그의정신과의지!
-이념이나정의를위해글을쓰지말고진리를위해써라.
-우주의사방팔방으로뻗은감각안테나를높여라.
-변하기는하되변해서는안되는것을찾아지킬줄알아야한다.
-‘나에게는시간이있다’하고다짐하며즐겁게놀이하듯살아라.
-무엇이삶을답답하게하는가.주범은과거의영광으로인한환상이고탐욕이다.
-시를읽거나쓰는마음으로살아가라.그것은삶을긍정적낙관적으로사는것이다
-어둠속에묻어두는것도나이고,밖으로끄집어내는것도나이다.나를어둠밖으로끌어내려고분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