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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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푸순의 기적’이란 무엇인가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중국의 동북 3성(옛 만주)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돼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1950년 7월 중국에 인도돼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 이들이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 침략전쟁의 선봉에 섰던 군인들, 괴뢰 만주국에서 수탈정책 입안과 항일세력 탄압 등 치안 헌병 정보 분야에서 종사하던 일본인 전범이다. 1000명에 가까운 이들 외에도 패전 후 일본제국 부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며 중국 산시성에 남아 국공내전에서 팔로군에 저항하다가 체포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타이위안전범관리소에 수감됐다.
뼛속까지 황국신민 정신과 군국주의 교육에 물들었던 이들은 신중국의 전범 개조정책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침략 정책의 충실한 입안자와 집행자였던 이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국의 일관된 정책과 처우에 감복해 엄청난 고뇌를 거쳐 서서히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일본으로 귀환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죄행을 반성하고 침략전쟁의 진실을 증언하며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섰다. 이들은 푸순전범관리소에 있지 않았다면 전장에서 저질렀던 행위를 기억에서 지운 채 입을 닫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60여 년 전 푸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푸순의 기적’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유례없는 중국의 전범 처리 방식이 어떻게 일본인 전범들을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바꾸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범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기록을 통해 침략전쟁의 참혹한 실상- 민간인 학살, 약탈과 방화, 생체해부, 전시 성폭행, 세균전 실험 등등-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 후 ‘중국귀환자연락회’(약칭 중귀련) 단체를 결성해 어떻게 반전평화를 위한 외길을 걸었는지, 생의 마지막까지 일본의 수구 우익진영과 어떻게 정면으로 맞서 싸워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의 행적과 증언을 담은 최초의 책이다.
저자

김효순

1974년서울대정치학과를나왔다.〈동양통신〉〈경향신문〉을거쳐〈한겨레〉창간에간여해도쿄특파원,편집국장,편집인을지냈다.2007년부터취재현장에서대기자로활동하다가퇴직했고,‘포럼진실과정의’공동대표등을맡고있다.한일관계,동아시아의평화,화해,시민운동등을테마로글을쓰고있으며,역사에버림받은사람들에대해관심이많다.저서에《조국이버린사람들》(2015),《간도특설대》(2014),《역사가에게묻다》(2011),《나는일본군,인민군,국군이었다》(2009),《가까운나라모르는나라》(1996)가있다.

목차

들어가는글

1전범개조
“살인귀”에서“선한사람”으로

‘마지막전범’의귀환
‘전범포로’를넘겨받다,푸순전범관리소출범
‘화물’에서사람으로,놀라운처우에맞닥뜨린수감생활
학습운동의파장,감방안의울음소리
산시성에남은일본패잔군의운명
전범개조의주역,조선족3인과만주국총리아들

2재판그리고관대함
“한사람도처형하지않는다”

동북공작단출범과충격적인전범의고백
교류의물꼬를튼중국홍십자회와전범명부
양형을둘러싼논란과단호한저우언라이총리
특별군사법정재판열리다,관대한처리

3푸순의기적
“두번다시침략전쟁에총을들지않겠다”

중국귀환자연락회결성과수기집발간
귀환자와중귀련의시련
마지막까지인죄의길을간사람들

나가는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중국은전범들의마음의빗장을어떻게열었을까

1전범개조:“살인귀”에서“선한사람”으로
1964년4월귀국한마지막전범3인중의하나인사이토요시오전만주국헌병훈련처처장은훗날수기에서“중국대륙에서전쟁범죄를거듭한12년4개월동안‘귀신’이었다면,패전후복역기간을거쳐마침내‘선한사람(善人)’으로다시태어났다“고밝혔다.중국은어떻게일본인전범의마음을열수있었을까?

한국전쟁발발직후인1950년7월일본인전범을넘겨받은중국은일본이만주국시절주로항일운동가들을투옥하려고세운푸순감옥을푸순전범관리소로바꿔이들을수감했다.사단장인육군중장다섯명을포함한일본전범들은첫날부터시베리아억류시절과는전혀딴판의처우에놀랐다.이들은세끼밥을꼬박꼬박먹으며수감생활에조금씩익숙해지면서정작전범관리소직원들이수수밥을,그것도하루두끼만먹는것을알고충격을받았다.
마음의동요를겪은것은직원들도마찬가지였다.직원의상당수는일가친척이나이웃이일본군의잔혹한군사작전으로학살되고온마을이불타버리는것을체험한침략전쟁의피해당사자였다.일본전범개조정책을지휘한저우언라이총리는‘전범의인격을존중하라’‘절대로구타하거나욕하지마라’‘일본인의습관을존중하라’고엄명을내렸다.무기를놓고항복한적의절대다수는개조할수있다는마오쩌둥의사상이중국이인수한일본인전범에게도그대로적용된것이다.
이들을개조시키기위한학습운동은놀라운결과를가져왔다.전혀미지의세계였던신중국의정책에호기심이발동한전범들은토론을통해점진적으로일본군국주의의실체를깨닫게된계기를맞은것이다.스스로의처지를객관적으로보게되면서,감방안에서는울음소리가터져나오기시작했다.이런과정을거쳐진심으로반성하고죄를인정하는‘인죄’의길을가야한다는인식을공유하게됐다.
푸순전범관리소에서전범개조의실무주역이라고할수있는이는조선족3인(김원,오호연,최인걸)과만주국총리장징후이의아들(장멍스)이었다.일본어를능숙하게구사했던이들은전범들과솔직한대화를끈질기게나누면서신뢰를얻었다.김원,오호연등은일본패전후재개된국공내전에서동북민주연군(인민해방군전신)에가담한공안군장교였고,장멍스는1940년대일본유학시절항일유학생비밀조직에게참여했다.전범들이귀국후낸수기에는이들에게진심어린감화를받았다는회고담이자주눈에띈다.“중국의인도주의대우에일본인전범이시대에뒤떨어진파시즘의외투를벗어던진것”이라고한사병은비유하기도했다.푸순전범관리소소장을맡았던김원역시‘전범개조가나스스로를개조하는과정이기도했다’고훗날밝혔다.

2재판그리고관대함:“한사람도처형하지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정부와인민은‘죄는미워하더라도사람은미워하지않는다’는인도주의에따라나를처리했다.죄를심리하는데아주신중했고,줄곧진리추구로일관하면서관대한정책처리로임해나는중국인민으로부터생명을받았다.”

1954년일본인전범처리를위한‘동북공작단’이만들어졌다.전범에대한인죄탄백운동이폭풍처럼진행됐다.탄백(坦白)이란자신의잘못을숨김없이털어놓는것으로,전범개조과정에서일상적구호처럼사용됐다.“죄를인정하기를거부하는자는엄하게다스리고죄를인정하는자는관대히처분한다”는정책에따른것이었다.몇몇전범이공개된집회에서자신이저지른잔혹한전쟁범죄행위를생생하게고백하기시작하자그저모든것을감추기에급급했던다른전범들은충격에빠졌다.일부는정신적갈등을극복하지못하고자살을시도하기도했지만,대부분은부끄러운과거와대면해어떻게그런짓을저지르게됐는지,그럴수밖에없었던배경이무엇인지성찰의계기로삼았다.전범들은“처음으로내과거와인생에대해진지하게생각해보게됐다”“황군의정체에대해회의가들었다”고고백했다.

신중국이전범재판을시작한것은1956년6월이다.특별군사법정에서대부분의전범은불기소처분으로풀려났고,45명만이기소돼유죄판결을받았다.신중국이벌인전범재판의특징가운데하나는사형수가한명도나오지않았다는점이다.무기형도없었다.유죄가선고된사람은금고8년에서20년의형을받았다.극형을받아처형된사람이전혀없었다는점은다른전승국의일본인전범재판과크게다른점이다.
일본인전범을관대하게처리한다는기본방침을정할때내부의진통은심각했다.사형이나무기형은선고하지않는다는중앙의방침이전해지자전범들을직접조사했던검찰단이나전범관리소의지휘부는동요했다.이들은그런조치로는중국인민의분노를도저히가라앉힐수없다며저우언라이총리에게대표단을보내재고를요청했다.하지만저우총리는이들의항변을듣고나서는단호하게말했다.“20년뒤에는당중앙의결정이현명했다는것을깨닫게될것이다.”전범처리를중일관계의미래와연계해대국적으로생각한것이다.

3푸순의기적:“두번다시침략전쟁에총을들지않겠다”
“우리의후회는결코단순한참회가아니다.중국인에대한일본인으로서의책임을느꼈을뿐만아니고,이같은전쟁을일으킨자에대한증오이고전쟁책임자에대한분노이기도하다.그리고두번다시전쟁을일으키지않도록한다는바람으로도연결된다.”

일본인전범의귀환은1956년7월을시작으로1964년4월특별군사법정에서중형을선고받고복역중인마지막전범3명이돌아오면서마무리됐다.첫귀환당시“우리는이미돌이킬수없는죄행을저질렀습니다.(....)속아서청춘의정열을잘못된목적에쏟은우리는이쓰라린체험속에서침략전쟁이야말로일부지배자의야망에의한것임을확실히알았습니다.침략전쟁은이제절대반대입니다.”라는메시지를발표했다.
피해자의입장에서침략행위를바라보고반성한다는발상은당시일본사회에존재하지않았다.고도경제성장의부푼꿈속에과거의식민지배와침략전쟁의잘못을까맣게잊고있던일본사회에이들의등장은불편하고성가신존재였다.수구보수세력은말할것도없고일본의주요언론들은이들에게중국공산주의자들에게세뇌된‘빨갱이’라는딱지를서슴없이붙였다.
이들에게공안기관의철저한감시가시작됐고일본사회의멸시와냉소가쏟아졌다.하지만이들은기본적인생계조차꾸려가기어려운상황에서도침략전쟁에가담한것을철저히반성하고남은인생을전쟁반대와평화를위해살겠다고다짐하며중국귀환자연락회를결성했다.아울러1957년‘중국에서의일본인전쟁범죄의고백’이라는부제가붙은수기집《삼광》을출판해일본사회에엄청난충격과이례적인선풍을불러왔다.
이후중귀련회원은책자발간이나공개강연을통해중국인포로와민간인학살,약탈과방화,생체해부,전시성폭행,세균전실험,노무자강제연행등의전쟁범죄를생생하게증언하는활동을벌였다.2000년12월도쿄에서성노예로동원된군‘위안부’문제를심판하기위해열린여성국제전범법정에나와위안소운영을폭로한두명의증인도중귀련회원이었다.중귀련의최대무기는회원들이전장에서직접저지르거나목격한각종전쟁범죄의생생한체험이었던것이다.
중귀련회원들은일본곳곳에서증언활동을끈질기게계속했지만,고령으로직접활동할수없게되자2002년4월공식해체됐다.이와동시에‘푸순의기적을이어가는모임’이구성됐다.시민단체활동가,학자,언론인,대학생,일반시민등이참여한이모임은푸순전범관리소에서옛전범이인간의양심을되찾고갱생한것을‘기적’으로평가하고,인류문화유산으로삼아야한다는운동을벌이고있다.

생의마지막까지인죄의길을간사람들을기억하며
“침략전쟁에가담해서많은가해행위를해버린것,그것에대한죄의식,철저한인죄의식을바탕으로피해자의용서를구하는것이중귀련정신의핵심이라는것등이적혀있었다.문서는쓰다만상태였다.”

1956년에이들이귀국하고다음해2월A급전범혐의자기시노부스케가총리가됐다.작년에한일역사갈등을다시최악의상태로돌려버린아베신조총리는기시의외손자가된다.아베는일본의메이지헌법에서의회내각제가도입된이래헌정사상최장수총리라는기록까지세웠다.중귀련사람들은기시와같은부류의사람들이지금까지정권을잡는불리한상황에서도극우반동세력의역사왜곡에맞서생의마지막까지투쟁하고증언했다.침략전쟁이란용어조차기피어가되고있는우경화분위기속에서,그리고전쟁범죄를증언하는것은목숨을거는일이었음에도불구하고.
‘피해자의용서를구하는것이핵심’이라는도미나가쇼조,자신이체포해죽인항일열사의딸을찾아가사죄한쓰치야요시오,‘우익에대한투쟁무기는우리의죄행을들이대는것’이라는미오유타카,731부대만행을증언하러미국에입국하려다거부된시노즈카요시오등생의마지막까지인죄의길을간사람들.이들의행적과증언은이제까지한국사회에서제대로조명을받지못했다.많이늦었지만,이들의삶과고뇌를기억해야할의무와책임이우리에게도있는것이아닐까하고저자는묻는다.

“중귀련회원들의피맺힌증언은일본사회에서점점묻혀가고있다.우리마저기억을이어가는작업에관심을보이지않는다면완전히망각의저편으로사라질지도모른다.그들의고백과삶의여정,일본사회의반응을분석해보는것은일본이왜갈수록보수,우경화되고한일역사갈등이이렇게까지증폭됐는지이해하는지름길이기도하다.”_들어가는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