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난중일기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14.92
Description
이순신이 임진왜란의 한복판에서 써내려간 고뇌와 결단의 기록 〈난중일기〉. 이 책에서는 많이 듣고 배워왔던 '영웅 이순신'의 모습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 이순신은 단순히 군사를 호령하고 함대를 이끌고 왜적을 쳐부순 무패의 장수가 아니었다. 그는 부하였던 이의 궁핍한 사정에 기꺼이 옷을 벗어 주고,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고, 부하가 다른 장수를 욕하는 것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오랜 싸움에 몸져눕기도 하는 인간이었다. 이순신이 남긴 짧은 문장과 서정적인 시구를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저자

이순신

- 이순신(1545-1598)은 본관이 덕수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곤궁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이순신은 1576년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하였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중 그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내면서 중요한 해전을 치렀다.


- 송찬섭 서울대학교 인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이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1862년 농민항쟁』 (공저, 1988, 동녘출판사),『우리 역사를 찾아서』1-3 (공저, 1994, 심지출판사),『농민전쟁 100년의 인식과 쟁점』 (공저, 1994, 거름출판사), 『한국사의 이해』 (공저, 1998, 한국방송대학교 출판부), 『길은 사이에 있다_역사의 창으로 본 우리의 현재와 미래』(공저, 한국방송대학교 출판부),『조선후기 환곡제 개혁 연구』 (2002, 서울대학교 출판부),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_1890년 한말 함창고을의 농민항쟁을 찾아서』 (2004, 서해문집) 등이 있다.

목차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하여
- 일러두기
. 1592 년 왜적의 침략이 시작되다 _ 021
. 1593 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_ 077
. 1594 년 명·일 간에 강화가 진행되다 _ 135
. 1595 년 휴전 상태가 계속되는 속에서 _ 211
. 1596 년 왜적이 드디어 철수하다 _ 263
. 1597 년 백의종군에 나서다 _ 329
. 1598 년 마지막 싸움에 나서다 _ 409
- 임진왜란 주요 사건 연표
-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 임진년 4월 13일 아침 이순신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그날 무얼 하고 있었을까? [난중일기]에 따르면 전날과 같이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이순신은 전라 좌수사로 그의 관할 구역을 지키고 있었고, 경상 좌수사 박홍과 경상 우수사 원균이 부산에서 왜적을 맞아 대패하고 도망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임진왜란의 명장으로 일컫는 ‘이순신’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
“무인 속에 있어서 이름과 칭찬이 드러나지 않다가, 신묘년에 서애 유성룡이 정승이 되어 그를 쓸 만한 인재라고 하여 정읍 현감에서 차례를 뛰어넘어 전라 좌수사를 제수하니, 드디어 중흥의 제일 명장이 되었다. 아아, 지금 세상엔들 어찌 또한 이와 같은 인물이 없겠는가. 다만 인재를 알아 추천하는 자가 없을 뿐이다.”
-
지봉 이수광은 그의 책 [지봉유설]에 이순신을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순신은 어떤 인재였을까? 사실 그간 우리가 이순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구국의 영웅’ 그 자체였다. 이것은 1960년대 군사 정권이 영웅사관을 통하여 그들의 권력을 더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순신에 대한 책이 발간되고 각종 기념비와 동상, 기념관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이순신을 제대로 알리기보다는 정권 강화, 유지를 위한 이용에 치중되었다. 때문에 우리가 이순신에 대해 받은 교육은 다소 왜곡되어 있었다.
[난중일기]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거기에 이 책의 참 의미가 있다. [난중일기] 속의 이순신은 단순히 군사를 호령하고 함대를 이끌고 왜적을 쳐부순 무패의 장수가 아니었다. 이순신은 부하였던 이의 궁핍한 사정에 기꺼이 옷을 벗어 주고,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고, 부하가 다른 장수를 욕하는 것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오랜 싸움에 몸져눕기도 하는 인간이었다.
-
-
◆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을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을까?
-
[난중일기] 하면 누구나 기대하는 것이 익히 들은 당포해전, 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이다. 일기는 그 전쟁 상황을 얼마나 박진감 있게 그리고 있을까? 그러나 [난중일기] 속 해전은 대개 생략되어 있거나 너무나 간략하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큰 싸움을 앞둔 장수에게 일기를 자세히 쓸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_ 난중일기]는 주요 해전 부분, 일기가 오랜 기간 빠져 있는 부분에 이순신의 장계를 넣었다. 왕께 올린 이순신의 장계에는 각 싸움의 시작과 진행 상황, 싸움에서 공을 세운 이와 잘못을 한 이, 적의 움직임 등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새롭게 옮긴 송찬섭은 벌써 10여 년 전 일간신문을 통해 [난중일기]를 소개한 바 있다. 그때 송찬섭은 [난중일기]를 찾아 읽으면서, 뜻밖에 대중이 즐겨 읽을 수 있을 만큼 [난중일기]의 번역본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1960년대 이은상 씨가 중심이 되어 국역본 [난중일기]를 간행했고 이를 답습한 책들도 여러 권 출판되기는 했다. 이은상 씨의 번역본은 상당히 잘 된 것이기는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수정하거나 통일시켜야 할 부분도 있고 책의 중요성이나 자료적 성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그래서 [난중일기]를 새롭게 내 보자는 생각에 일기 초본을 직접 간행한 [난중일기 친필초본](1977년)을 구하여 작업을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_ 난중일기]는 대중이 좀더 쉽게 읽도록 월별로 주요한 사건을 잡아 제목을 붙여 주었으며 사진이나 해전 상황 지도 자료를 넣었다. 또 큰 싸움을 앞두었을 때나, 싸움 중에 이순신이 장기간 일기를 쓰지 못한 때에는 장계와 주를 적절히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
-
[난중일기]의 첫 번째 가치, 사료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일기로서, 전란 전반을 살피는 사료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군사상뿐 아니라 조선 수군 연구와 전략, 전술에 대한 기록이다. 중앙과 감영, 수영, 읍진을 잇는 통치 체계, 체찰사, 순찰사, 순변사, 수사, 만호 등의 군령 체계, 그 밖에 각종 어사, 선전관, 의금부도사 등 중앙 관리가 파견되어 통제하는 실상이 기록되어 있고, 이를 통해 당시 국방 운영 체계와 그러한 일을 책임진 유성룡, 이원익, 이수광, 유몽인, 윤두수, 남이공, 박홍로 등의 전쟁 중 활동도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반 병사의 활동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