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은 선물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아무것도 불만은 없이 삽니다
구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재촉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노인대학 수강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 노래를 아시는지. <학도가>의 곡조에 맞춰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우리들의 인생은 육십부터”였던 것이 숨 가쁜 고령화 속도를 반영하듯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일흔 살부터”로 바뀌었다고 한다. 회갑연은 물론 고희연마저 남세스럽다 여길 만큼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현실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팔십은 빠르고 구십에도 재촉 말라”고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당당한 노년은 아직 많지 않다. 노후대책을 말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그 뒤에는 어김없이 늙음은 쇠퇴요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시선이 깔려 있다. 그러니 이런 시선과 마주해야 하는 노년이 어찌 당당할 수 있겠는가.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 노년전문가 유 경은, ‘노인’ 하면 당연한 듯 ‘문제’를 떠올리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시선을 거부한다. 그녀는 노인이 되는 행운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아무나 노년을 맞는 건 아니다. 삶의 간난신고를 이기고 노년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이들이다. 문제는 노년이라는 ‘선물’을 흉물처럼 여기는 사회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저자 유 경은 이 책에서 노년을 고귀한 선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나이 듦을 느끼기 시작하는 중년부터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10가지와, 당당하고 행복한 노년을 위해 실천해야 할 100가지가 담겨 있는 이 책은, 가이드북의 장점과 에세이의 읽는 맛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노년서들을 뛰어넘는다.
* 당신의 젊음 속에 당신의 노년이 있다
전작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에서 책과 영화 속에 나타난 노년을 그렸던 저자는 이 책에서 시선을 중년에게로 넓히고 있다. 마흔에 아흔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마음이야말로 자신 있고 풍요로운 노년을 위한 필수조건이기에, 노년에 관한 담론은 중년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유 경은 말한다.
노화를 느끼는 시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중년으로 접어드는 마흔 무렵이면 한숨과 눈치만 느는 게 이즈음의 세태다. 세월과 함께 지혜와 경륜도 늘어간다 여겼던 옛 시절이 그립지만 어쩌랴! 그나마 유일한 위로는 젊은 너도 늙는다는 사실. 젊음은 한 때요 나이 듦은 필연이라는 평등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바람도 평등해진다. 두려움 없이 나이 들어 씩씩하게 생을 즐기는 노년,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 “천의 바람이 되기를” 우리는 꿈꾼다.
제1부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중년에 꼭 해야 할 10가지’에서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금 준비할 것들을 하나씩 점검해간다. 이 책은 ‘노후준비’ 하면 재테크, 노(老)테크만 떠올리는 세태를 비판하고, 건강·돈·직업·친구·부부·주거 등 다양한 방면에서 노년을 대비하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물질에 대한 욕심·자녀에 대한 집착·젊음에 대한 향수’라는 세 가지는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웃는 얼굴·즐겁게 일하기’라는 세 가지는 지녀라, 지금 당장 가계부에 노년준비 항목을 만들라, 최고의 노년준비는 자원봉사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미리 준비하라……등등,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한 지침들은 우리의 후반생을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나침반이다.
* 행복한 노년을 위해 배우고 실천할 100가지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노년에 대한 거부와 외면을 넘어, 노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제2부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는 바로 그 길들을 꼼꼼하게 그린, 말 그대로 노년을 위한 지도다.
길의 출발점은 노년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노년이 되면 어둠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니 밤 외출에 주의하라, 청력이 약해지고 특히 높은 목소리를 더 듣기 힘들어 한다, 신체통증에 가려진 ‘가면성 우울증’이 늘어난다, 노년의 성적 욕구를 무시하지 말라 같은 내용을 읽다보면, 노년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몰이해가 얼마나 컸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노년에 대한 앎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주위의 노년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외에도 2부에는, 함께 어울리는 따뜻한 노년을 만들기 위하여 노는 법, 대화법, 사랑법과 더불어 ‘노년 왕따 예방지침’ 10가지도 제시되고 있다. 또한 주위에서 만나는 노년들을 응석형·밑 빠진 독형·겨울나무형 등 10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스스로를 체크하고 ‘잘 익은 열매형’처럼 아름답게 나이 들 수 있도록 조언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죽음에 대한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사유다. 늘어가는 노년 인구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노년 담론이 노화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으로 이어지듯, 죽음을 공론화하기 꺼리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터부만을 낳는다. 저자는,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당연한 진실을 일깨우며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지금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을 세심하게 제시한다.
이처럼 이 책은 ‘중년-노년-죽음’이란 주제들을 삶의 완성을 향한 하나의 과정으로 조명함으로써, 이제껏 부분적으로만 다루어지던 노년학과 생사학에 새롭고 보다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 실용+성찰 = ‘유 경’식 글쓰기의 묘미
나아가, 유 경의 섬세한 필치는 이 책을 단순히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 100가지를 나열한 흔하디흔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하나하나 깊은 성찰을 담은 에세이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런 점은 제3부에 실린 수필들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이 수상들에서, 가까운 이웃에서 만나는 노년을 통해 얻은 삶의 신비와 이치를 담담히 토로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도발적 상상력(?)을 과감히 보여주기도 한다. 날로 깊고 넓어가는 유 경의 글쓰기는, 그러나 오로지 한 가지 목적에 복무한다. 모두가 행복하게 나이 드는 것, 그래서 누구도 소외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아름답고 당당하게 노년을 맞는 것. 《마흔에서 아흔까지》를 읽는 것은 이 한 목적을 위해 생을 건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