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일기 (세계의 중심, 북경을 가다)

조천일기 (세계의 중심, 북경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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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천일기]는 선조宣祖 대 문인 관료였던 조헌이 1574년 명나라에 다녀오며 쓴 기행문이다. 선조 7년(1574) 조선에선 명나라 만력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인 ‘성절사聖節使’를 파견했다. 이때 총책임자인 정사正使에는 박희립朴希立, 사절단의 감찰을 위해 파견되는 서장관書狀官에는 허봉許? 그리고 질정관質正官으로 조헌이 선발되어 북경에 가게 된다. 약 5개월에 걸친 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조헌이 남긴 글이 바로 《조천일기》다.
저자

조헌

저자조헌趙憲[1544(중종39)~1592(선조25)].본관은백천白川,자는여식汝式,호는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시호는문열文烈이다.경기도김포에서태어났다.1565년성균관에입학,1567년에문과에급제해관직생활을시작했다.동문들에게조차강경하다는평가를받았고,그런성격으로인해정치적부침을거듭했다.성균관재학시절왕실의불교관행을비판하는상소를올렸다가삭직되었고,정여립에대한비판,시무時務의폐단을지적,일본과의통교通交를반대하는상소에서주도적으로앞장서다가선조의미움을받기도했다.1574년북경으로가는사절단에참여해얻은특별한경험을조선의제도개혁을위한근거로삼아《동환봉사東還封事》로구체화시켰다.1592년임진왜란이일어나자위기에빠진나라를구하고자옥천에서문인들과의병을모아청주성등을수복했다.이어왜군을막기위해금산에서700명의의병과분전했지만모두전사했다.이이·성혼·이지함의문인이며특히이이의학문을계승했다.1754년(영조30)영의정에추증,1883년(고종20)문묘에배향되었다.표충사表忠祠,우저서원牛渚書院,문회서원文會書院,성곡서원聖谷書院,상현서원象賢書院등에제향되었다.문집에《중봉집》이있다.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조천일기에대하여
발문

1.연행의시작과작별-한양에서의주까지(5월11일~6월15일)
2.중국에서의여정-의주에서북경까지(6월16일~8월4일)
3.북경도착과공식행사-북경회동관(8월5일~9월5일)
4.조선으로의귀국길-북경에서의주까지(9월6일~10월10일)

후략

출판사 서평

조선중기를대표하는기행문
‘오래된책방’시리즈의17번째로출간된《조천일기朝天日記》는선조宣祖대문인관료였던조헌이1574년명나라에다녀오며쓴기행문이다.조헌은조선중기를대표하는학자이자,임진왜란중금산전투에서전사한의병장으로잘알려져있다.그의숭고한희생정신을기리는것과아울러조헌이16세기조선이라는시공간속에서살아간지식인이라는점에눈길을돌리면이제껏우리가잘알지못한조헌의새로운모습이보일것이다.

조선시대유일한해외여행,사행
조선과명나라가외교관계를수립한이후,명나라의엄격한통제아래국가에서허락한경우를제외하고는어떤국가적이동도불법이었다.민간의교류는당연히금지되었고,사적으로국경을넘을경우심하면사형에처하기도했다.오직공식임무를부여받은외교사절만이상대방국가에갈수있었고,이것이유일한교류이자여행의통로였다.이여행을가리켜명나라때는‘천자를배알한다’는뜻으로‘조천’이라했고,청나라때는‘연경에간다’는뜻으로‘연행燕行’이라고했다.
선조7년(1574)조선에선명나라만력제의생일을축하하기위한사신인‘성절사聖節使’를파견했다.이때총책임자인정사正使에는박희립朴希立,사절단의감찰을위해파견되는서장관書狀官에는허봉許?그리고질정관質正官으로조헌이선발되어북경에가게된다.약5개월에걸친이여행경험을바탕으로조헌이남긴글이바로《조천일기》다.

이상과현실의중국,그리고조헌의임무
조헌이사행에서맡게된질정관이라는직책은당시의조선과명나라사이에존재하던또다른역사적상황을보여준다.질정관의첫번째임무는불명확한한자의뜻과음을정확하게파악하는것이다.질정관은요동또는북경으로파견되어바른뜻(정훈正訓)과바른음(정음正音)을조사하고이를정리해조정에보고서로올렸다.이에조헌은북경에도착해문묘文廟와관련된국가적사항뿐만아니라세세한한자의음과단어뜻에이르기까지중국지식인들에게끊임없이질문하고조사했다.
질정관이수행해야할임무중에는중국현지의학문경향을살피는일도포함되어있다.서장관허봉은중국지식인들과의대화를통한사상동향탐색을시도했다.조헌은이런대화의내용을상세히기록했고,이후당시의기록을근거로삼아《동환봉사》에서개혁안을구상했다.
또질정관은중국의정치현실을구체적으로파악하는임무도맡았다.명나라의주요한현안은무엇인지,그중조선과관련되는사항은없는지,무엇보다명나라의최고통치자인황제는어떠한인품을지녔는지를조헌은지속적으로탐문했다.이처럼이상향으로서의중국과현실의중국에대한치열한모색이질정관조헌을통해《조천일기》로구체화된것이다.

여행의기록,만남과이별
한편《조천일기》는여행에관한기록이기도하다.사행은조선을떠나북경으로가는긴여행임과동시에교류의장이었다.서울에서동료들과친우들의전송으로시작된조헌의여정은개성,평양을거쳐정주,의주로이어졌다.
조헌이가진호방한기질때문인지,그가전별식에서보인술에대한애착은유독각별했다.사현沙峴에서취기를이기지못하고쓰러져있다가뒤늦게서장관이출발했다는소식을듣고부랴부랴쫓아가는모습,취한상태로강물에비친자기그림자에놀라는상황,취기로인해넘어지고자빠져멍든몸을추스르는기록들이《조천일기》곳곳에서술되어있다.
그런가하면,사행단이잠시머문정주定州는눈물의공간이었다.조헌을만나기위해정주까지온외삼촌과는고작사흘밖에함께하지못했기에아쉽고그리운마음을시를지어서라도달래야했다.또한정주에서관직생활을할때인연을맺은기생과그사이에난아들충근忠勤과의짧은만남은조헌의발걸음을더욱무겁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