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어장

상상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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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건축가이자 빼어난 에세이스트인 이일훈의 『상상어장』. 절규하는 간판, 속삭이는 그림말, 현판은 으스대고, 현수막은 읍소한다. 전단지는 애걸복걸, 안내문은 통보, 주의 표시는 명령, 표지판은 지시한다. 이렇게 하나 같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맘껏 상상한다. 같은 글자를 달리 읽는 이유는 펄펄 날리는 눈처럼 분분하다. 어지러운 말들은 다양하고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상책이다. 그들의 속내와 다르게, 짐짓 모른 척하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그렇게 낚아 올린 말들, 찰나에 만난 문장, 무심히 스치던 것과 대수롭지 않게 흘러가는 말의 풍경.... 그렇게 본 세상이다.
저자

이일훈

저자이일훈은‘식물성의사유를지닌철학적’건축가이자빼어난글쟁이.글맛과입담좋기로유명해서여러분야에서자주강연자로초대된다.불편하게살기/밖에살기/늘려살기의철학을권유하는설계방법론‘채나눔’을주창한다.건축가로서<자비의침묵수도원>,<성안드레아병원성당>,<도피안사향적당>,<가가불이>,<기찻길옆공부방>,<우리안의미래연수원>,<밝맑도서관><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등을지었다.책으로는《사물과사람사이》,《나는다르게생각한다》,《뒷산이하하하》,《모형속을걷다》,건축백서《불편을위하여》등을펴냈다.특히건축가와건축주가집짓기를위해2년간주고받은이메일을모은책《제가살고싶은집은…》을내면서,건축에대한대중적이해와소통에한몫한다는평을듣는다.

목차

낚는글
건물주/겨자씨교회/경인조치/고객님의마음을중개합니다/고구려농장/고해성사/골목떡볶이/공사중/이사하기좋은날/구경하는집/구루마집구루마짐/기분전환/김중업박물관/꽃세요/끓인라면/나는오늘/나보기가역겨워가실때에는/나의도시,나의성심당/낮술/내멋대로/너는나다나도너다/농약종묘/다섯평/Down!Up!Zero!/닭다리/담배를피우지않는사람에게/당신이있어참다행입니다/WM/도민의자전거/독도는우리땅/돈까스/돈방석/동수가간다/떡/뚝떡/뛰는길/식후경/신굉기업/신숙주/십十(자가)/싱싱(은어디에나안성맞춤)/CCTV촬영중/아는집/I·SEOUL·U/야구장가는길/얘들아놀자/XXO/열매상회/영어는공부가아니고훈련이다/오늘끝/늘마실술을내일로미루지마라/오만가지/오소리감투/오시날개/50년전통/588/OPEN&CLOSE/옳소/옷의생명은세탁/왕의식탁/용궁주택/웃기는짬뽕/월하독작月下獨酌/위험합니다들어가지마세요/유리구두/의료민영화반대합니다/이쁜이모/24시간열쇠점/인생은맵다/일등복권방/일심/일심식당/마지막기회/막걸리전문점井/맥주도둑짝태/맹세합니다/문전선수옷/문짝&짝문/물기/물음표(?)/민들레/바람이분다살아야겠다/밝은세상안경/밥/밥이보약/배꼽시계/배다리시낭송회/배달의민족/배회로/100년짜장/180~20/100%진짜참기름/BEST10/보물찾기/비상창유리/삶과죽음은/삼겹살/3.3제곱미터당(눈가리고아웅)/상상하라우리들의대한민국/상중常中/△모/소성주/소크라테스(의변명)/손님구함/수상한포차/시施/시골순대/시인의잡곡/자!오늘기서나를찾고싶다/자전거주차장/잘가르치는것이답이다/저런게하나있음으로해서/(군대가기전에)전쟁나라1/(군대가기전에)전쟁나라2/주는교회/주주총회/즐거운관광/지난63年동안/지물포/그러진곳복원/창문에붙은신화/책/최저속도제한/축지법과비행술/취한건바다/708090/콜롬아보도육교/타이소/튀기리/펄럭이는문자/평화반점/한(약방)/한국은행/할수있습니다/행복을주는교회/헤어지지마/화살표1/화살표2/회바라기/회통령

출판사 서평

세상은가히메시지의바다,어부가황금어장을찾듯
나는간판의숲을어장(語場)으로여기니바로상상어장이다.
상상어장에는오늘(내일)도말의꽃이달뜨게피어난(날것이)다.
그꽃을볼때마다나는어부(語夫)가된다.
글꽃·말꽃과노니는어부에겐얽매일일이없더라.
자유롭더라.글을쓰는내내그자유를스스로물었다.
평화도함께._낚는글중에서

간판의숲에서당신이무엇을상상하든

건축가이자빼어난에세이스트인이일훈이길가다보았다.무수한간판·광고·공고·안내문·표지판·현수막.내용·형태·크기·색상·재료는제각각이지만목적은다같다.절규하는간판,속삭이는그림말,현판은으스대고,현수막은읍소한다.전단지는애걸복걸,안내문은통보,주의표시는명령,표지판은지시한다.이렇게하나같이자기하고싶은말만하지만,그걸보는사람은맘껏상상한다.같은글자를달리읽는이유는펄펄날리는눈처럼분분하다.어지러운말들은다양하고재미있게즐기는것이상책이다.그들의속내와다르게,짐짓모른척하는건얼마나재미있는일인가.그렇게낚아올린말들,찰나에만난문장,무심히스치던것과대수롭지않게흘러가는말의풍경....그렇게본세상이다.

길가다보았다.「이곳에주차시경인조치합니다」

경인(京人):서울사람/이곳에주차하면서울사람이된다는말인가.
경인(庚寅):육십갑자,갑자·을축·병인…나가다가27번째가경인이다/이곳에주차하면경인생팔자로바뀐단말인가.
경인(經印):도장을찍음/이곳에주차하면차에무슨도장을찍겠다는말인가.
경인(驚人):사람을놀라게함/이곳에주차하면놀라게해주겠다는경고인가.
경인(敬人):남을공경하는일/이곳에주차하면운전자를공경하겠다는말인가.
경인(京仁):서울과인천을아울러이르는말/이곳에주차하면차를경인지방에갖다버리겠다는엄포인가.
경인조치는견인조치일것을뻔히알면서‘경인’을찾아본다.잘못쓴글씨하나가사전을찾게하니나름글자구실한번한셈이다(주차하려다‘경인조치’를본것이아니라걸어가다보았음을적어둔다).

길가다보았다.「오늘끝」

장사에도이동식장사가있다.…사람이붐비는곳에임시로자리를빌리거나,주인이바뀌는점포를며칠쓰다가사라진다(간혹주인은바뀌지않고업종변경을위해내부공사를준비하느라잠시노는점포를이용하기도하는데그럴때마다어떻게그틈을알고활용하는지그정보력과민첩성에놀란다).
동네에들어온유랑상단을보았다.상가입구바닥에물건을진열하고큼직하게‘정리끝’을써붙였다(시작하자마자정리한다는게좀이상하지만그들은경험상정리효과를믿는게틀림없다).그다음날은‘폐업끝’으로바뀌었다.그다음날은‘내일끝’이라고써붙였다.마침내「오늘끝」이왔다.하지만오늘은끝이아니었다.그다음날붙은말은‘짐싸요’였다.정리에서시작하고,폐업과내일을거치고,「오늘끝」에짐싸기까지닷새동안-나흘을예상했다가하루가더늘어난것인지도모를일,유랑하는존재는떠나는기일을예측할수없으니-장사하고아무일없다는듯그들은떠났다.떠나면서언제다시올지도모른다는듯‘신월동엄마들안녕’이라고인사를잊지않는다(그들이파는물건들은주로엄마들이구매하는물건이었다).「오늘끝」이오늘이아닌그이동상단식구들은오늘어느동네엄마들과작별인사를나누고있을까.

길가다보았다.「50년전통」

허름한옛자취가남아있는종로통뒷골목,오래되고소문난칼국수집담벼락에서보았다.「50년전통(1965년20원부터~)」…1965년,서울에서바지락칼국수한그릇이20원이었구나(짜장면가격은25원,라면은10원이었다).1965년에태어난사람은지금몇살이런가.‘하늘의명을안다’는지천명,50년넘게바지락을만지고국수를썰었다면그야말로조개의마음과밀가루의성질이손에잡히겠구나.그동안이집을거쳐간손님들은얼마나될까.어림잡아50년×365일×100~150명/하루=1,825,000~2,737,500명쯤된다(180만명이면충청북도인구(약160만)보다많고,270만명이면인천광역시인구(약300만)와엇비슷하다).문지방이열번도더닳았을발걸음이다.과연맛국물을내기위해쓰인바지락은얼마쯤될까.칼국수한그릇에바지락50여마리가들어간다면50년동안쓰인바지락은91,250,000~136,875,000여마리.가히조개더미를이룰양이다.김수영은시-거대한뿌리-에서‘전통은아무리더러운전통이라도좋다’하며‘우울한시대를파라다이스처럼생각’했는데나는겨우「50년전통」앞에서사라진패총(貝塚)을그려보고있다.

길가다보았다.「물음표(?)」

길가다말없는간판을보았다.아니더많은말을거는간판이다.보통의간판처럼알리는것이아니라묻는간판이다.…물음에답하기곤란한경우도있다.옥신각신할때다.지하철에서아저씨둘이뭔일인지다투고있었다(자리다툼인지,발을밟고미안하단말을하지않았는지,서로부딪쳤는지…).처음엔서로경우를따지는듯하더니,“당신몇살이야”-나이는왜물어.“사람이경우가있어야지!”-경우없긴당신도마찬가지야.“왜반말이야!”-반말은당신이먼저했잖아.이런말싸움은구경하는사람도지치는데다투는이들은오죽하랴.그러다깜짝놀랄말이나왔다.“너뭐야”-그럼,너는뭐야?싸움은끝났다.너는뭐야?당신은무엇입니까?존재를묻는심오한철학적질문에두사람은침묵에들어갔다(옆에있던나도나에게물었다.나는무엇인가,알수없었다.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