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민 이주사 1949~1989 (분단의 벽을 넘어 또 다른 독일로 간 동독민 이야기)

동독민 이주사 1949~1989 (분단의 벽을 넘어 또 다른 독일로 간 동독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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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독일 분단사에 기록될 동독 이탈 주민의 역사!
동독사 연구자 최승완이 동독의 붕괴 원인을 밝히고자 동독 이탈 주민을 좀 더 다양한 면에서 살펴보는 『동독민 이주사 1949~1989』. 동독 이탈 주민에 대한 국내외 전문 연구 성과는 여전히 부족하고, 이들의 동독 이탈과 서독 정착을 분단 40년 역사 속에서 상세히 다룬 연구서는 더더욱 없는 상황에서, 분단사의 흐름 속에서 꼭 살펴봐야 할 동독 이탈 주민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이탈 주민 문제를 겪은 독일의 사례를 통해 동독 분단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나아가 우리가 당면한 북한 이탈 주민 문제에도 유용한 시사를 줄 수 있는 입문서가 되어준다.
저자

최승완

이화여자대학교사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독일빌레펠트대학에서역사학을전공하고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교원대,이화여대에서연구교수를지냈고,현재는중앙대학교에서강의하고있다.저서로는《단일이슈그룹에서민주화세력으로:동독의체제비판적정치그룹1978-1989(VonderDissidenzzurOpposition:DiepolitischalternativenGruppeninderDDRvon1978bis1989,1999)》가,공저로《세계화시대의서양현대사》,《역사가들:E.H.카에서하워드진까지》등이있다.번역서로《통일과역사새로쓰기》,《냉전이란무엇인가,극단의시대.1945~1991》가있다.

목차

들어가는말*4

1.독일에서또다른독일로:분단시기동독주민의이탈행렬
동독이탈주민의규모
1950년대탈동독행렬과베를린장벽
사회주의로의체제변혁과대규모동독이탈|서독으로가는길
불법탈출에서합법이주로:베를린장벽수립이후
체제안정의외피,그러나계속되는주민이탈|장벽을넘어또다른독일로가는길
동독이탈주민의사회적프로필과이탈동기
성별,연령,직업,학력으로본탈동독민|개인적이탈동기
권력을가진자의무력함:동독정부의대응
이탈주민문제에대한동독정부의기본인식|이데올로기적해결의늪으로
동독붕괴의서막:1989년의대규모동독탈출

2.동독이탈주민에서서독시민으로
동독이탈주민의수용원칙
긴급수용법,선난민후동일국적주의|희망과좌절이교차한수용심사|완화된수용기준
정착에필요한서독의제도적지원
1950년대정착지원제도|베를린장벽수립이후개선과보완
서독민간단체의정착지원활동
시민사회는의무를저버리지않았다|가장시급했던수용소설립|다양한방식으로지원한수용심사|법률전문가의도움|
정착지원제도개선을요구하다|물질적지원:성금과물품|상담,정보제공그리고계몽|
가정방문:이탈주민의목소리를직접듣다|민간단체의활동에미친반공주의의여파
동독이탈주민단체의지원활동
성공신화의빛과그림자
1950년대성공적통합의이면|베를린장벽수립이후이탈주민통합문제

3.또다른이탈행렬:서독주민의동독이주
잊힌존재:서독이탈주민
서독이탈주민의사회적프로필
서독이탈주민의규모는어느정도인가|시기별로다른이탈추이|사회적프로필
서독주민이왜동독으로이주했을까
서독원주민|동독출신귀환자|보론:성직자의서독이탈
서독주민유치를위한선전정책
대중매체를통한홍보|공개행사에동원한서독이탈주민|서독주민유치를위한견학행사
서독이탈주민의수용절차
까다로운수용심사|수용소의일상
동독정착:취업과주택마련을중심으로
쉽지않은취업|역시쉽지않은주택마련|동독주민의부정적시선|동독스파이의정착사례:기욤과바크스|
다시서독으로:재이탈

4.분단독일의가교:동독이탈주민
우편을통한동서독의대화
편지왕래|소포교류
동서독의방문교류
통일을위한노력:향우회,동향단,중부독일인연맹을중심으로
통일과동독주민의인권보장요구|동서독의일체성을강조하는문화활동|평화의교란자와통일의파수꾼사이에서

나오는말
동독이탈주민문제의연구동향

참고문헌
사진출처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동독이탈주민의역사는독일분단사의
한장으로기록될의미가충분히있다!

분단40여년간동독을이탈한동독인은많게는약457만명,적게는약357만명에달했다.이들의다수는젊고,전문직업교육을받은숙련인력이었다.이책은1949년부터1989년까지서독으로넘어온동독이탈주민을다루고있다.우리와달리분단상황에서이렇게많은동독인이서독으로넘어가서독사회에통합되었다는사실이놀랍기만하다.

더불어많은궁금증이꼬리를문다.동독이탈주민은왜위험을무릅쓰고서독으로갔을까?서독은도대체그많은이탈주민을어떻게다받아들이고정착시킬수있었을까?수백만명에달하는동독이탈주민은독일분단사에어떠한영향을미쳤을까?동독이탈주민이분단국의이주민으로갖는특수성은무엇인가?

우리의현실또한마찬가지다.북한이탈주민의남한사회정착은대부분순탄치못하다.북한의사회주의체제에서성장한이들이남한의자본주의체제에적응하기가결코쉽지않기때문이다.또남한정부의북한이탈주민수용정책도이들을신속하게안정된상황으로이끌기에는여전히부족한점이많다.북한이탈주민을바라보는남한사회의편견혹은무관심의벽도만만찮다.앞으로남한으로유입되는북한이탈주민은더욱늘어날것이다.우리와마찬가지로,아니우리와는비교할수없을정도로심각하게이탈주민문제를겪은독일의사례가궁금해진다.

이책은바로이러한질문들에대한답을찾아보려는시도의결과물이다.동독이탈주민에대한국내외전문연구성과는여전히부족하고,이들의동독이탈과서독정착을분단40년역사속에서상세히다룬연구서는더더욱없는상황이다.독일현대사연구자인저자가이점에주목해동독이탈주민을역사적관점에서총체적으로살펴본다.

독일에서또다른독일로:동독주민의이탈행렬

1950년대동독이탈은주로베를린을통해이루어졌다.제2차세계대전후연합국4개국공동관리지역이라는특수성에힘입어동서베를린간에지하철과도시고속전철이운행되고주민왕래도가능했다.이에따라동독인은일일방문을가장해서베를린으로넘어올수있었다.이러한이탈행렬이1950년대에연평균약30만명이라는대규모로지속되자국가존립의위기에처한동독정권은결국최후의수단으로1961년베를린장벽을축조했다.

장벽으로인해베를린이더이상탈출구역할을할수없게되자동독이탈주민은땅굴,여권위조,열기구등다양한방법을동원해탈출을감행했다.그러나1970년대이후에는인권보장(특히거주이전의자유)의의무를내세워서독으로이주를신청해합법적으로동독을떠났다.

1989년후반다시1950년대와같은대규모이탈사태가발생했다.동독정권의정치적경직성과동독이처한심각한경제위기등에실망하고등을돌린동독인들이1989년여름이후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등을통해대대적으로탈출했다.

1989년걷잡을수없이커진대규모탈출행렬은남아있는자에게더이상보고있을수만은없다는위기의식을불러일으켰고,나아가이를동독정권에대한저항으로결집시켜대규모민주화시위를이끌어내는주요동인으로작용했다.탈출자들은단지서독으로가려고했을뿐통사당지배체제에저항하거나정권붕괴를목표로삼지않았다.그럼에도이들의대규모동독이탈은불안하게소용돌이치는동독의정치적위기를폭발시키는기폭제역할을했고,동독붕괴로이어지는정치적대변혁의시발점이되었다.

동독이탈주민에서서독시민으로

수백만명에달하는동독이탈주민을받아들이는것은서독으로서는큰도전이었다.특히2차세계대전의후유증을극복하지못한1950년대초반에는더욱그러했다.그럼에도심각한사회적충돌없이이들을서독사회에통합시킬수있었던원동력은크게네가지다.
-기본적으로이들이같은독일인이었다는점이이탈주민수용과정착지원을놓고서독사회의합의를이끌어내는데유리하게작용했다.
-서독정부가동독이탈주민에게같은국적을부여해서독인과동등한권리를보장함으로써정착지원에따른논란의소지를차단하고,다양한정착지원제도를바탕으로능동적으로대처한것이실질적으로중요한역할을했다.다만서독정부는오랫동안동독이탈주민을정치적난민으로이미지화하며동독체제의부당성과서독체제의우위를입증하는증거로내세웠다.
-이탈주민문제를서독연방정부가전담하지않고주정부,종교단체를비롯한민간사회단체와의유기적협력과책임분담을통해효율적으로풀어간점,이탈주민특별대책을따로마련하기보다는이들을기존사회보장제도안으로흡수해정착기반을마련하는동시에서독인의반발에따른사회적갈등을최소화한점도주효했다.
-무엇보다대규모동독이탈주민이쇄도한1950년대이들의사회통합을뒷받침한핵심원동력은‘라인강의기적’으로상징되는서독의경제발전이었다.그덕분에대규모이탈주민을노동시장으로흡수하고,각종정착지원의물적토대를마련할수있었다.대규모탈동독행렬과서독경제의폭발적확장이병행된것은이탈주민과서독사회모두에게행운이었다.

성공신화의이면

이탈주민통합의성공신화이면에는이들이개인적으로겪은난관이있었다.젊고숙련된인력이다수라실제로는서독경제발전에기여했음에도서독사회가부양해야하는짐스러운존재로보는서독사회의불신과편견도만만치않았다.이들을자신의일자리를빼앗아가는경쟁자로여기는서독인도적잖았다.나아가사회주의체제에서사회화된동독이탈주민이자본주의적가치관과행동양식을익히고적응해야했던것역시어려운도전이었다.원주민사회의편견,재사회화의어려움,이탈주민의사회적고립문제는쉽게해결되지않았다.이점에서볼때이탈주민의사회적통합은경제적통합보다훨씬더오래걸리는과제였다.

또다른이탈행렬:서독주민의동독이주

분단시기서독주민역시동독으로이주한이들이약50만명에달했다.이들의약2/3는동독이탈주민이다.자본주의체제에대한부적응과서독에서직면한사회적고립,경제적어려움등으로인해서독이탈주민이되어동독으로되돌아간것이다.1/3은서독원주민출신으로,여러이유가있었지만사회주의에대한신념이동기가되는경우는낮았다.1950년대에연평균7만5000명정도가동독으로이주했지만,계속줄어들어1980년대에는약2000여명정도였다.이처럼줄어든이유는,동독정권이이탈주민을가장한서독간첩의침투에대한강박적불안감,서독이탈주민의대다수가동독정권이기대한전문인력이아닌데다범죄자까지넘어오는것에실망해철저히기준에맞는사람만선별해서받아들였기때문이다.

분단독일의가교역할을하다

동독이탈주민은비록동독을떠났지만대부분동독에두고온가족친지와편지,소포,상호방문을통해교류를이어갔다.동독이탈주민이보낸소포는주로동독에서제대로구할수없는커피,초콜릿,나일론제품,여성의류등으로구성되었다.이는이탈주민의수가워낙많아전체적으로는막대한양이라동독경제의만성적결핍을부분적으로메워주는역할도했다.심지어동독정권은이를반영해경제계획을수립했다.

나아가본격적으로동서독의관계개선이진전된1970년대이후상호방문기회가확대됨에따라동독이탈주민은동독의가족친지와직접만나고왕래하면서동서독의교류를이어갔다.이를종합해볼때동독이탈주민은분단이장기화되는상황에서동서독이단절되지않도록이어주는징검다리의역할을했다.독일분단극복이1970년대동서독관계정상화와동서독교류를촉진한정치적차원의노력에힘입은바도크지만동서진영간,동서독간의정치적부침에도일상의영역에서아래로부터부단히지속된이러한교류와소통이갖는의미역시과소평가해서는안될것이다.

동독이탈주민은실향민답게다양한정치,문화활동을통해동서독이하나의민족임을널리알리고,통일의지를일깨우려고노력했다.이를위해향우회,동향단,중부독일인연맹과같은이탈주민단체는서독정부와정치인들을직접만나거나이들에게편지,성명서등을보내통일이현안에서멀어지지않도록압력을가했다.또한자신들을1700만동독인의대변자로인식하고동독정권의탄압에고통받는동독인,혹은베를린장벽을넘어탈출을시도하는동독인에대한발포로인한사망등동독인의인권문제도이슈화했다.

분단시기내내지속된동독이탈행렬은독일분단사에적지않은영향을미쳤다.이는베를린장벽의수립,베를린장벽의붕괴의중요동인으로작용했다.또한수백만명에달하는동독이탈주민은분단상황에서동서독이단절되지않도록양국을잇는가교역할을했다.이렇게볼때동독이탈주민의역사는독일분단사의한장으로기록될의미가충분히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