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 같은 삶 (식민지 조선 최고의 아이돌에서 항공독립운동까지)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 같은 삶 (식민지 조선 최고의 아이돌에서 항공독립운동까지)

$17.00
Description
그 누구보다 강렬했지만 짧았던
비행사 안창남의 불꽃같은 삶을 추적하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임시정부는 수립 초기 항공전력 강화를 꾀했다. 비행기를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전단을 국내에 뿌리고 여러 독립운동단체와 신속히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임시정부의 자금난으로 실패했다. 이 책은 그 무렵 독립의 꿈을 안고 임시정부를 찾았던 비행사 안창남과 임시정부, 그리고 그 주변의 이야기를 담았다.
1922년 12월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서울 하늘을 비행한 ‘천재 비행사’ 안창남은 당시 언론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이었고, 조선에 비행학교를 세워 후배를 양성하고 항공독립운동을 꿈꾼 ‘독립운동가’였다. 하지만 서른이라는 나이에 안타까운 비행기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의 꿈은 불꽃같이 짧게 타올랐다가 꺼지고 말았다.
아직까지 안창남을 다룬 책은 거의 없었다. 이 책은 이러한 안창남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다룬 평전이자, 턱없이 부족한 자료를 찾아 얼개를 맞춘 저자가 끈기와 열정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저자

길윤형

1977년서울출생.대일외고를거쳐서강대학교에서정치외교학을전공했다.2001년11월《한겨레》에입사해경제부,사회부등을거쳤고,2013년9월부터2017년4월까지도쿄특파원을지냈다.이어《한겨레21》편집장을거쳐현재《한겨레》국제부에서일하고있다.
아베정권이후본격화된반동의흐름속에서일본군‘위안부’문제,미일동맹강화를비롯한일본의안보정책변
화등과관련한여러기사를썼다.삼성언론상(2003),임종국상(2007),관훈언론상(2015)등을받았다.
지은책으로는《나는조선인가미카제다》,《아베는누구인가》가있고,옮긴책으로는《나는날조기자가아니다》,《아베삼대》가있다.《아베삼대》의옮긴이소개에“안창남에대한책을쓰려고5년째고민중”이라고적었는데,그고민을해결해한없이기쁘다.다음엔1945년8월해방정국을둘러싼책을써볼까궁리중이다.

목차

머리말

01소년,비행기에반하다
늦둥이아들|처음본비행기|3·1운동의열풍

02비행사의꿈을이루다
오구리비행학교|비행사면허취득|현상우편비행대회

*최초의조선인비행사

03조선의하늘을날다
고국방문비행|안창남열풍|여의도비행장

04대지진이발생하다
고물비행기|간토대지진|안창남의생사|총독부의입막음

*간토대지진과조선인학살

05일본을탈출하다
학살이후|잇따르는망명설|혼돈의중국대륙|테러와잠적|상하이임시정부|임시정부의분열

*임시정부와비행기

06조선독립과중국혁명의소용돌이에갇히다
권기옥의한숨,안창남의한숨|여운형|조선독립과중국혁명|궈쑹링반란

07타이위안으로가다
옌시산|장제스의북벌

08대한독립공명단을조직하다
마석고개차량탈취|2차신문|3차신문|세동지|안혁명

09영원히하늘로떠나다
죽음의비보|사망원인|옌시산과반장연합|이자해의분노|타이위안에세워진묘비

*안창남과비행사고

10안창남을기억하다

감사의말

부록1_안창남연보
부록2_안창남이쓴글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조선의하늘을최초로비행한조선인‘천재비행사’
“치여다보면안창남이요,나려다보면엄복동일세”라는노래가사로유명한안창남은1901년서울에서태어났다.미동공립보통학교를졸업하고휘문고등보통학교에입학했지만,비행사의꿈을이루기위해학교를그만둔다.안창남은학창시절일본인비행사의비행과미국인비행사의비행을목격하고비행사가되기로마음먹었다.그꿈을이루기위해학교를그만두고일본에가기로결심한것이다.게다가1919년전국을휩쓴3·1운동을목격한이후안창남은그결심을실행에옮긴다.
하지만안창남이처음부터비행을배운것은아니다.안창남은처음에는오사카자동차학교에서자동차관련기술을배우고귀국해잠시운수업을하기도했다.그러나이후운수업을접고본격적으로비행사가되기위해다시일본으로향한다.1919년8월도쿄아카바네비행기제작소에들어갔고,약1년뒤도쿄오구리비행학교에입학했다.비행학교에서3개월간교육을받은안창남은이후일본에서몇번의비행기사고를당하기도하지만,큰사고없이비행사로서활약한다.1921년4월오구리비행학교의교관이되고,5월에는3등비행사시험에합격한다.그리고1922년11월에는5회현상우편비행대회에참가해,성능이떨어지는비행기를몰고서도당당히완주에성공한다.이런안창남의활약상은《동아일보》를비롯한언론들을통해수시로전해졌고,이를바탕으로‘천재비행사’안창남의‘고국방문비행’을위한후원회도만들어졌다.그결과안창남은1922년12월10일과13일두차례에걸쳐여의도비행장에서꿈에그리던고국방문비행에성공한다.조선인비행사로는처음으로조선의하늘을난것이다.

매스컴이만들어낸최초이자최고의‘아이돌’
안창남이일본에서비행사로활약할때부터언론들은그의일거수일투족을신속히보도했다.마치지금의손흥민이나방탄소년단의활약을전하는언론의모습과비슷했다.그러한언론덕분에조선에서안창남의인기는‘안창남열풍’이라불릴만큼뜨거웠다.
안창남이고국방문비행을위해남대문역에도착했을때,남대문역앞마당에는수많은인파가몰려아수라장이었다.특히,고국방문비행행사가열린당일여의도비행장에는5만여명이비행을보기위해몰려들었다.당시서울인구의6분의1이었다.조선총독부는관람객들을위해특별열차를준비했고,경성전기는경성시내전차운행횟수를크게늘려야했다.
이런인기와언론의주목이오보로이어지기도했다.1923년9월일본간토지방을덮친‘간토대지진’이발생하고,뒤이어조선인학살이이어졌을때,안창남도도쿄에서죽었다는기사가나온것이다.하지만안창남은지진과학살에서살아남았고,그처참한사건을계기로‘독립운동’이라는새로운꿈을꾸게된다.비행학교설립등자신의비행기술을독립운동에바치기로결심한것이다.

항공독립운동을꿈꾼‘독립운동가’
간토대지진이후안창남은잠시조선으로돌아왔다.이때안창남이중국으로망명할것이란소문이돌았지만,안창남은이를딱잡아뗐다.그런데1924년12월이후안창남은조선에서홀연히자취를감춘다.
조선을벗어난안창남이찾은곳은독립운동의근거지인상하이임시정부였다.하지만당시임시정부는독립운동의방법을둘러싼내분등으로사분오열된상태였다.이에안창남은상하이대한인거류민단장이자독립운동가인여운형에게도움을받아중국산시성군벌옌시산의항공대비행교관으로들어가게되고,4년여동안그곳에서활동한다.
이후안창남은대동단계독립운동가인최양옥,김정련등과산시성타이위안에서‘대한독립공명단’을결성해독립군건설을위한군자금모집을시도하기도하지만실패하고만다.그리고얼마지나지않은1930년4월2일안창남은옌시산의특별기를시험비행하다불의의비행기사고로목숨을잃고만다.
그런데안창남이중국에서벌인활동과죽음에이르는과정을파악하기란쉽지않다.중국망명이후안창남과관련된언론보도가풍문을바탕으로한경우가많기때문이다.하지만이책에서저자는부족한자료들과당시복잡했던중국내부상황을입체적으로파악해,안창남의중국에서의활약과죽음까지를면밀히다루었다.또한이책에는안창남이언론에기고했던글들을함께실어,저자가정리한안창남의일대기뿐아니라당시안창남이가졌을생각을함께엿볼수있다.

지금이세상에항공기의필요가얼마나절절한지더구나지금또장래의우리에게그것이있어야할필요에대해서는쓸데없이다시말하지않겠습니다.다만이제라도국외곳곳의남의틈에섞여비행술을연구하는사람이있음을기뻐해주십시오.
_<안창남이쓴글>중에서

이책은조선독립에헌신한서른살청년의무덤앞에놓은한송이국화꽃이다.간토대지진조선인학살의희생자들에대한레퀴엠이기도하다.
_임경석(성균관대학교사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