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Description
김만중의 <구운몽>이 오늘날까지 읽히고 많은 공감을 얻는 것은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후대에 많은 작품들이 <구운몽>의 모티브를 빌려오거나 작품의 발상이나 구조를 패러디해왔던 것을 보면, 이 소설이 갖는 호소력과 발상이 그만큼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구운몽>이 단순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유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시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적 텍스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구운몽>을 읽는 이유이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의 고전문학으로 젊은이들에게 필독할 것을 권장한다.
저자

김만중 지음, 김영찬 옮김

본관 광산(光山). 자 중숙(重叔). 호 서포(西浦). 시호 문효(文孝). 1637년(인조 15년)에 병자호란으로 피난 가던 배에서 출생하였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충렬공 김익겸(金益兼)의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 씨 슬하에서 자라났다. 1665년(현종 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 하였고, 1671년(현종 12년)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었다. 이듬해 겸문학(兼文學)과 헌납(獻納)을 역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작고하여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했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1679년(숙종 5년) 예조참의, 1683년(숙종 9년) 공조판서에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7년에는 김수항(金壽恒)의 아들 창협(昌協)의 비위(非違)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으나 1688년 풀려났다. 이듬해인 1689년(숙종 15년)에 박진규(朴鎭圭), 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여기서 [구운몽(九雲夢)]을 집필한 뒤 병사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구운몽],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고시선(古詩選)]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일러두기

제1부 구운몽(上)
1장
2장
3장
4장
5장

제2부 구운몽(下)
6장
7장
8장
9장
10장

해제
구운몽을 읽는 방법
작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