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b>서명응徐命膺</b> 1716(숙종 42)~1787(정조 11). 자는 군수君受, 호는 보만재保晩齋․담옹澹翁. 역리와 성리학설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이용후생의 학문방법을 강조함으로써 북학파의 비조가 되었다. 저서로 『보만재집』, 『보만재총서』, 『보만재잉간保晩齋剩簡』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역주자> <b>조민환</b>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교수로 있다. 주요 저술로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 『중국철학과 예술정신』, 『노장철학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읽는다』 등이 있다.
<b>장원목</b>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역사상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성리학 본체론의 형성에 관한 연구 ― 張載의 본체론과 二程의 비판을 중심으로」, 「조선전기 성리학 전통에서의 리와 기」, 「북한의 花潭哲學 해석에 대한 반성 ― 太虛 개념을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b>김경수</b> 경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山東師範大學 외국인교수를 지냈으며 성균관대학교에 출강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노자의 부정의 사상 연구」(박사학위논문), 「『도덕지귀』를 통해서 본 서명응의 『도덕경』 이해」 등이 있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다. 당연하게도 노자의 사상은 조선시대 내내 유교의 벽이단의식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발붙일 곳을 찾기 힘들었다. 물론 이단의 사상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연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문난적의 굴레가 혹독했던 조선시대에 노자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조선 유학자들의 노자 이해는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면이 강했다. 때로는 노자의 사상에도 제법 기특한 면이 있다고 보는 시혜적 입장의 해석이었고, 때로는 적의 창으로 적을 찌르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접근이었다. 그러나 서명응의 이해는 달랐다. 영․정조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은 소론의 영수로서 당시의 유교 학술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서명응은 노자의 사상에서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동력을 찾고자 했다. 그가 살았던 영․정조 시대는 바야흐로 격변의 시기였다. 자유정신의 발양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문체들이 일어나 정조의 문체반정과 갈등을 야기하고, 천주교를 위시한 서양 문물이 유입되어 기존의 가치관과 충돌을 빚는 시기였다. 진리관 역시 성리학 성립기의 진리관이나 조선 전기의 진리관과 판이하게 변모해 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서명응은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정신을 온전하게 담아 낼 수 있는 새로운 진리관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도덕지귀』는 시대상에 걸맞은 새로운 진리관을 모색하였던 성리학자 서명응의 고심을 담고 있는 역작이다. 조선시대 내내 이단의 사상으로 배척당하기만 했던 『노자도덕경』에 대한 재해석, 서명응의 『도덕지귀』는 ‘인위’의 학문 유학의, 특히 성리학의 닫힌 세계관에 대한 반성과 활로의 모색이었다. 이 책의 역주자들은 특별히 ‘교감 및 주해’ 부분을 통해 왕필본, 하상공본 등의 현행본들에 있는 다양한 주석들을 소개하면서 서명응이 보여 주는 해석상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흔히들 『노자』를 해석할 때 도가의 입장의 주석가들은 ‘절성기지絶聖棄智’(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림), ‘절학무우絶學無憂’(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어짐) 등의 구절을 예로 들면서 노자가 유가를 부정하였다고 보고, 유가의 입장에서는 노자의 이론이 현실을 도외시한 채 고원한 도나 덕에만 주목하는 공허한 논의일 뿐이라고 본다. 서명응의 해석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두 관점을 지양하고 유가적 ‘인위’의 폐단을 도가적 ‘무위’로써 극복하려는 열린 시야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도덕지귀 (성리학자 서명응의 열린 노자 읽기 | 양장본 Hardcover)
$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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