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9세기 말, 조선이 봉건사회에서 근대로 전환하던 시기는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중요한 격변의 시기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이후 조선은 서양의 침략 세력과는 화친和親할 수 없다는 결의를 새겨 넣은 ‘척화비斥和碑’를 전국 각지에 세웠다. 하지만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결국 외세에 굴복한 조선은 마침내 문호를 개방하였고, 이후 서구 열강들과 잇달아 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며 개화기로 접어들었다. 조선의 개화는 단계를 밟아 충분한 준비를 갖추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제국주의적 침탈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따라서 개항을 전후하여 조선은 나라 안팎으로 혼란과 위기에 직면했는데, 안으로는 사회적 동요가 민중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이 잇따랐으니, 그 양상이 급박하고 다양하였다.
사상사에서 볼 때 근대로의 전이는 곧 지배적 가치관과 세계관이었던 유학의 지위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학적 가치의 강고화, 전면적 부정, 부분적 변용 등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저자가 본 한국 근대전환기의 사상사는 ‘공자 이래 2500여 년간 전개된 유학이 분화와 해체로 나아간 시기’였다. 유학의 분화와 해체는 이른바 서세동점의 외재적 충격에 의해 촉발된 사상적 대응의 결과로, 그 전개 양상은 맹자에 의해 주창되고 북송대 성리학의 대두와 더불어 구체화된 내성적 도덕중심주의의 내재적 분화와 외재적 극복으로 나타났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이후 조선은 서양의 침략 세력과는 화친和親할 수 없다는 결의를 새겨 넣은 ‘척화비斥和碑’를 전국 각지에 세웠다. 하지만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결국 외세에 굴복한 조선은 마침내 문호를 개방하였고, 이후 서구 열강들과 잇달아 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며 개화기로 접어들었다. 조선의 개화는 단계를 밟아 충분한 준비를 갖추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제국주의적 침탈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따라서 개항을 전후하여 조선은 나라 안팎으로 혼란과 위기에 직면했는데, 안으로는 사회적 동요가 민중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이 잇따랐으니, 그 양상이 급박하고 다양하였다.
사상사에서 볼 때 근대로의 전이는 곧 지배적 가치관과 세계관이었던 유학의 지위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학적 가치의 강고화, 전면적 부정, 부분적 변용 등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저자가 본 한국 근대전환기의 사상사는 ‘공자 이래 2500여 년간 전개된 유학이 분화와 해체로 나아간 시기’였다. 유학의 분화와 해체는 이른바 서세동점의 외재적 충격에 의해 촉발된 사상적 대응의 결과로, 그 전개 양상은 맹자에 의해 주창되고 북송대 성리학의 대두와 더불어 구체화된 내성적 도덕중심주의의 내재적 분화와 외재적 극복으로 나타났다.
한국 근대전환기의 사상 지형 (유학적 도덕중심주의의 분화)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