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독립운동

낙서 독립운동

$11.31
저자

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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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달빛
물위에쓴글자
꿈을찾아
경성의봄
조선일들이여,보라!
벽에새긴독립운동
지워지지않은글자
글쓴이의말_달리는소년,김용창

출판사 서평

잊혀진그이름을역사에불러내다
여러분은우리역사에서김용창이라는분에대해들어본적있나요?아마낯선이름일거예요.김용창은만으로열아홉살이되기전에꽃망울도틔우지못하고사라진소년이거든요.칠흑같이어둡고참혹했던일제강점기를살다가,해방을불과몇달앞두고목숨을빼앗겼지요.길거리와건물들담벼락에남모르게낙서를했다는게이유랍니다.낙서란마음내키는대로아무데나휘갈겨쓰는글자들을가리키잖아요.그런데일본이힘으로우리를억누르던시대에는이런것조차불가능했나봅니다.소년은담벼락에무어라고썼을까요?‘조선독립만세!’라고썼답니다.자신이태어나고자란나라의독립을소망하는것은너무도당연한일인데,이마저도금지되었던거지요.이책은온마음으로뜨겁게독립을외쳤던소년김용창의생애를담았습니다.기록과취재를통해사실에가깝게가려노력했지만,작가가무엇보다애썼던것은여리고순수했던소년의그마음을온전히그려내는일이었습니다.안타깝도록짧았던소년의삶을아주조심스럽게역사에새기는일이었습니다.상투적이고진부한여느위인전의틀에서벗어나기위해편집과구성에서도과감하고새로운시도를했습니다.

●<낙서독립운동>의구성과특징
이책은아주독특합니다.사실에충실한인물이야기이기도하고,문학성높은동화이기도하니까요.이야기는소년의일인칭시점으로진행됩니다.이젠기억하는이가거의없기때문이겠지요.오래전에세상을떠난소년이자신의삶을직접들러줍니다.일곱마디로엮은이야기이지만,풀어놓는시간대와형식으로보면크게세부분으로나뉩니다.
첫부분은대전형무소에갇혀있는장면입니다.일본경찰에게받은고문으로몸은만신창이가되어있지만,정신은오히려또렷하지요.떠나온고향집의정경과보고싶은가족들이아련히떠오릅니다.그리고이런상황에서도손에쥔몽당연필로담벼락에쓰고있는자신의모습을떠올립니다.
그다음은이야기의줄기를이루는부분입니다.어린소년이냇가에쪼그리고앉아우리글로숫자를쓰는첫장면이인상적입니다.물론작가의상상력이빚어낸장면이지요.우리말과글을못쓰게하던숨막히는상황을상징적으로그려냈습니다.이장면은또한소년이이후낮에는일하고밤에는공부하는고단한생활을하면서도,왜피맺힌심정으로거리의담벼락에글을쓰게되었는지에대한심리적배경을보여줍니다.이나라의내로라하는작가들마저헌신짝내던지듯우리글을버리고일본왕에대한충성을외치는데말이지요.결국소년은일본경찰에붙잡혀온갖고문을당하고,경성지방법원에서징역을선고받아대전형무소에갇힙니다.

마지막부분은소년의죽음이후를다룹니다.그런데혼이불려나오기라도한듯,이이야기를들려주는사람이소년자신입니다.이부분은두장면으로나뉩니다.앞장면은죽음직후의상황입니다.일본경찰은소년이죽은다음에야집으로통지서를보냅니다.소년이나라에큰죄를지어감옥살이를하다가병에걸려죽었다고요.아버지는이웃몰래소년을동네밖야산에묻고,그아픔을가슴속에서만삭이다가불과열흘뒤자식의뒤를따르게됩니다.소년은이렇게사람들의기억에서지워집니다.하지만50년이지난뒤,경성지방법원판결문에서소년의이름이발견됩니다.반세기가지나비로소그이름이알려진것이지요.마지막은독립된우리나라에서소년이가슴을펴고걸어가는장면입니다.예쁜꽃들이다투어피어있는둑길을소년이걸어갑니다.이장면은차라리한편의시입니다.슬프고아름답게가슴에스며드는독백입니다.오래도록외로웠을소년의마음과결연한그뜻을이제우리가이어받아야합니다.우리나라의완전하고영원한독립을바라던그의소망을요.

●우리가기억해야할우리역사
역사는보통두가지뜻으로사용됩니다.과거에있었던사건들이나,그것에대한기록을일컫지요.이둘은다른듯하면서도긴밀하게결합되어있습니다.기록하지않으면아무리의미있던사건도아무리소중했던사람도잊히고마니까요.어떤진실도우리가기억하고또기록하지못하면잊혀집니다.그래서역사는기억하는자의몫이라는말도생겨났나봅니다.돌이켜보면,온갖어려움과고통속에서도우리역사가면면히이어진것은이름없이스러져간수많은분들의헌신과희생덕분일것입니다.소년김용창은무기를들고싸우거나역사에화려하게기록될만한행동을했던것은아닙니다.하지만배울만큼배우고제법시를쓴다는이름난사람들마저겨레의현실에등돌리던그시절에소년은묵묵히담벼락에진실을새겼던것입니다.이책이소년김용창을영웅처럼미화하거나과장하지않으면서도그의삶을온전히기억하고자하는까닭입니다.마침올해는3·1운동100주년이되는해입니다.

●김용창선생의발자취
-1926년8월3일,경기도화성시향남읍상두리에서태어나다.
-향남보통학교를졸업하고집안일을돕다가,4년뒤경성(지금의서울)으로올라오다.
-경성제국대학청소부로일하다가체신국보험관리소사환으로일자리를옮기고,밤에는경성덕수공립상업학교야간부에서공부하다
-직장에서일본인들이행하는차별과일본총독부의노골적인식민지정책에분노하다.혼자서조선역사를공부하면서민족의식에눈뜨다.
-1944년5월,종로거리와건물들의담벼락에조선독립의정당성을알리는글을쓰다가일본경찰에체포되어심한고문을받다.
-1944년12월,경성지방법원에서국가보안법위반과일본천황모독죄로징역1년6개월을선고받다.
-1945년4월3일,대전형무소에서복역중세상을뜨다.
-1995년,대한민국정부로부터건국훈장애국장을받고독립지사로인정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