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18.00
Description
이중섭을 읽는다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이중섭. 만으로 40세의 삶을 살았다. 길지 않았던 그의 생애는 우리 고통의 근대사 시기와 맞물려 있으나, 치열한 예술혼으로 시대의 고난과 개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우뚝 섰다. 그의 작품은 힘차고 대담한 붓놀림, 역동적이나 단순한 형태, 선명한 원색이 특징이며, 전통적인 감수성과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감은 잊히지 않는 깊은 인상을 만들어 낸다.
저자

엄광용

저자:엄광용
1954년경기도여주에서태어나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1990년한국문학신인상을,1994년삼성문예상을수상했다.지은책으로는《암각화에서이중섭까지》《이중섭과세발자전거타는아이》《징비록:역사에서길을찾다》《꿈의벽저쪽》《사라진금오신화》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6

소에미친소년9
동방의루오41
부산피난민수용소와서귀포93
고독속에서불타오른예술혼149
마지막날들211

작가의말248
연보250

출판사 서평

이중섭의삶과예술

중섭은우리나라사람들이가장좋아하는화가로손꼽는화가이다.하지만예술가로서그가거둔성과는극한의절망과고독속에서이룩된것이었다.그의삶의출발점은순탄했다.다섯살때아버지가세상을떠났지만,부농집안에서태어났기에그는별다른경제적어려움을모르고학업을마칠수있었다.하지만일제식민지의현실은역으로청년기의이중섭에게우리의전통과문화에대한뜨거운자각과애정을일깨웠다.특히오산학교시절에받았던민족주의성향의교육은이후그가펼쳐나갈예술세계의확고한의식적기반이되었다.그무렵에벌써이중섭은한글의자모를가지고구성한그림을그리기도했으며,평생동안자신의작품에다한글로만서명했다.

1935년에일본에유학한이중섭은학풍이자유로운예술전문과정분카가쿠인에입학하여본격적인그림공부를했다.이후그는여러전시전에작품들을출품하여입선하면서평단으로부터좋은평가를받았다.이시기에있었던무엇보다도중요한사건은야마모토마사코라는여인을만난일이다.뒷날이름을이남덕으로바꾼이여인은태평양전쟁이한창일때위험을무릅쓰고원산으로건너와이중섭의부인이되었다.

해방을맞으면서오히려이중섭의삶은신산해진다.이듬해에첫아들을얻었으나곧죽었다.이중섭은아이의관에복숭아와어린이를그린그림몇점을넣었다.한국전쟁발발직전에형이중석이행방불명되고,이중섭은그해12월6일가족과함께월남하여부산으로내려왔다.춥고배고팠던그의피난지생활에서제주도서귀포에서보낸반년남짓한생활은잠시끼어든행복의막간극같은것이었다.이시기에그는아이들과바닷가에나가서게를잡기도하고,아이들이뛰노는모습이나서귀포의풍경등을그림에담아냈다.그러나아내와두아들은일본으로떠나게되고,이후이중섭은부산,대구,통영,진주등을떠돌다가서울로올라오게되었다.

삶의마지막불꽃을태우듯,그의마지막날들은무서울정도로집요한창작에대한열정과처절한고통사이에서빚어진대결의장같은것이었다.헤어진가족에대한견디기힘든그리움,끝없는절망과체념,병으로무너져내리는육체…,하지만이모든간난속에서도그의예술은마지막정점을향하여가파르게올라갔다.〈달과까마귀〉〈흰소〉〈길떠나는가족〉등의그림들은이시기에생산된걸작들이다.이중섭은극도의영양실조와급성간염으로고통받다가쓸쓸히세상을떠났다.

소설의기법을활용한평전

《이중섭_고독한예술혼》은병실에서이중섭이눈을감기직전의장면을프롤로그로배치했다.아무도보는이없는데,이중섭이열에들떠중얼거리고있다.창밖의까만하늘에노란달을보며혼잣말을하고있는것이다.“이거야!바로이거야!”그가노란달을통해보고있는것은바로평생동안그려오던황소의커다란눈이었다.이중섭은황소의눈속으로빨려들면서,거기에서한소년을찾아낸다.그건바로열심히황소를데생하고있는어린시절자신의모습이다.

다분히소설적인구성이다.작가는이책에서평전의틀을유지하면서소설의기법을충분히활용했다.이를위해작가는최근에새롭게연구된결과들을꼼꼼하게검토하고섭렵했으며,그바탕위에서독자들에게접근할수있는상상력의통로를만들었다.흔히역사를일컬어‘새로쓰는현대사’라고하듯,인물평전또한시대속에서‘새롭게쓰는인물이야기’가되어야한다는생각때문이었다.이중섭의삶을좀더알고싶고,그의그림들을더욱뜨겁게사랑하고픈새로운독자들을위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