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루쉰(魯迅, 1881.9.25~1936.10.19)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일찍이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한 그는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아Q정전」, 「고향」 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ㆍ18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역자 유세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서 루쉰 산문시집 『들풀』의 상징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2008), 『화엄의 세계와 혁명: 동아시아의 루쉰과 한용운』(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들풀』(1996), 『루쉰전』(공역, 2007) 등이 있다.
ㆍ1934년 1월~11월 사이의 잡문 61편이 수록된 『꽃테문학』 주로 신문ㆍ잡지에 기고한 짧은 단편을 가리켜 잡문(雜文)이라 일컫는데, 루쉰은 잡문집을 살아생전 14개나 편찬할 정도로 잡문을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활용했다.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할 때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렇게 평생을 함께한 잡문을 가리켜 전기작가 왕스징은 “어둠 속에서 전투의 빛을 발하는 비수”였다고 말한다. 짧지만 강렬한 은유와 풍자성을 띠고 있는 그의 잡문들은 지식인들에게는 논쟁적이었고, 당대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민중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1934년에 집필한 『꽃테문학』 또한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제목 ‘꽃테문학’이란 루쉰의 글이 ‘꽃테를 두른 문체’라는 뜻으로, 당시 린모라는 루쉰과 같은 진영에 있는 청년이 루쉰이 다른 필명으로 쓴 글을 두고, 이래저래 치장을 했으나 결국엔 매판적이고 반민족적이라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루쉰은 이 잡문집을 펴내며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데, 이것은 루쉰이 짐짓 너스레를 떨며 자신을 낯추며 활자화하였음을, 그리고 몇 겹의 비틀기를 통해 하기 힘든 비판을 돌려 말했음을 드러내 준다. 당시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거세져 장성의 관문 산하이관(山海關)이 함락되고, 일본이 리턴보고서를 무시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여 정세가 매우 급박한 때였다. 그럼에도 국민당 정권은 나라 밖에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투항하며 나라 안에서는 민중들을 탄압하는 기만적인 정책을 폈으니, 루쉰은 수사적 방법을 동원하여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당시 루쉰은 60여 개의 필명을 사용하며 쉬지 않고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데, 많은 글에서 일부를 삭제당해 골기(骨氣)가 사라진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아예 게재되지 못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언론 탄압이 거세져 『자유담』의 편집인이 사직당하고 『선바오』의 사장이 암살당하는 위기까지 맞이하지만, 작법을 고치고 다른 사람에게 베끼게 하는 방법까지 써 가며 지금 절박하게 요구되는 사안을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인 루쉰! 『역문』(譯文)의 정간에 화가 난 젊은 작가에게 그는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네. 그런데, 우린 계속 싸워 나가야 할 것인가? 물론일세. 계속 싸워 나가야지!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말일세.”
추천의 글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우두머리 장수였다. 위대한 문학가였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였으며, 위대한 혁명가였다. 루쉰의 정신은 굽힐 줄 몰랐으며, 노예근성과 아첨하는 태도가 조금도 없었다. 이 점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민중에게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품성이다. 루쉰은 문화 전선에서 전체 민족을 대표하여 적진을 향해 돌진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용감하며 가장 견결하고 가장 충직하고 가장 정열적인 절세의 민족 영웅이었다. 루쉰이 나아간 방향이 바로 중화민족이 새로운 문화를 세워 나갈 방향이다.”_마오쩌둥 “루쉰은 중국의 현대 작가 중에서 유일하게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기이함과 보기 드문 품격을 지닌 사람이다. 중국에는 재능과 능력을 갖춘 작가들이 매우 많지만 루쉰은 유일한 천재 작가다. 작가로서, 붓을 든 투사로서 그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재능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집요함이다.”_아그네스 스메들리(『프랑크푸르터 차이퉁』 중국특파원) “루쉰은 이미 인류의 고전이다. 그 없이 중국의 5ㆍ4를 논할 수 없고 중국 현대혁명사와 문학사와 학술사를 논할 수 없다. 그는 사회주의혁명 30년 동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존재했으나 동시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금구를 타파하는 데에 돌파구가 되었다. 루쉰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대결했다. 그의 ‘필사적인 싸움’의 근저에는 생명과 평등을 향한 인본주의적 신념과 평민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혁명인으로서 루쉰의 삶이다.”_루쉰전집번역위원회
꽃테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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