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는곧세계다!”
매체를통해자신의시대와세계를치열하게사유하는‘매체철학’으로의초대!
‘저기’가없어졌다.‘저기’에있던모든장소가‘지금’‘여기’가되었다.(「머리말」중에서)
세계가매체를통해손안으로들어온오늘날,거의모든변화들이매체로부터비롯된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태블릿PC로대표되는디지털매체는모든것을‘지금,여기’로만드는방식으로시공간을재편하는한편,시각을비롯한감각을무한히확장시켜인간을이전과는다른존재로만들었다.그런가하면우리의사유방식자체를완전히바꿔놓기도하는데,예컨대오늘날디지털세대들은활자세대와는다르게마치이미지로소통하고이미지로사유하는듯보인다.이같은변화들에비추어보았을때,우리는매체를통해우리를둘러싼모든것들을‘사유’해볼수있지않을까?
여기,매체를통해자신의시대와세계를치열하게사유한철학자들이있다.이책?20세기의매체철학?은벤야민,아도르노에서보드리야르,비릴리오에이르기까지,당대의매체현상을심도있게연구한매체철학자10인의사유를소개하고있는책이다.주되게관심을두고분석한매체나연대는각기다르지만,이들은공통적으로매체를단순한도구나수단이아니라세계그자체로인식하고있다.또한개별매체에대한분석을넘어서매체가가져온‘소통방식’과‘존재방식’의변화에대해‘사유’하려한다.그렇기에이들은‘매체이론가’와는구별되는‘매체철학자’로서다루어지고있다.
2000년대초반까지만해도국내에아직생소했던‘매체철학’을꾸준히연구하고강의해온저자심혜련은매체철학분야에서중요한분기점을만들어온철학자들의이론을이책한권으로정리했다.저자는철학자들각각의이론과사유를분석하는데에그치지않고,이들간의유사점과대별점을일목요연하게정리하고있으며,오늘날의매체상황과연결시킬수있는지점들을부단히찾고있다.또한각장에서전면화하고있는주제들(예컨대실재와가상의문제,시공간의재편문제,감각의확장문제등)은그간매체를둘러싸고벌어졌던중요한논쟁점들을짚어준다.숱한매체변화속에서도반복되고있는주요한주제와키워드들은앞으로의매체환경에서어떤점들이또우리에게문제로다가올것인가를예견케한다.
하루가멀다하고쏟아져나오는새로운매체들에만관심을갖는것은겉으로드러나는매체현상그자체에만집착하는것에지나지않을것이다.21세기의매체에대해깊이있게알기위해서는20세기,아니그보다도훨씬이전의매체들과변화들에도관심을두어야한다.그리고그러한변화가담지하고있는현상이면의욕망에대해서도관심을기울여야할것이다.21세기의매체환경에서우리가20세기의매체철학을읽어야하는이유가바로여기에있다.
도시문화,대중의감각을깨우다:아날로그매체의시대
대도시에서의대중의등장은산업혁명이후나타난새로운사회현상이다.대중의등장은단지사회적인변화만을의미하는것이아니라,하나의새로운문화적현상을의미했다.대중은기술재생산시대에대량으로생산되는새로운예술의관객을의미한다.대중은대중문학과화보의독자이고,영화의관객이며,그리고라디오방송의청취자이다.도시를배회하는대중은전통적예술작품의수용자처럼특정한계급의사람들이결코아니며,다양한계층이뒤섞인불특정다수이다.(본문65쪽)
20세기에등장하기시작한아날로그매체는도시공간을중심으로본격적인대중문화의시대를열었다.기존의예술체험과구별되는대중문화체험은많은철학자들의관심사로급부상했으며,예술개념과대중을어떻게바라보는가에따라그평가가엇갈렸다.한편,사진,영화,텔레비전과같은시각매체들은문자문화에서이미지중심인시각문화로의전환을이끌어냈으며,철학자들은이러한감각의변화에도주목하였다.
발터벤야민은예술작품이복제되는과정에서아우라가몰락하고,기존의예술개념이해체되는것을긍정적으로바라보았다.그는대중을적극적인비판과수용의주체로서인식했다.반면,테오도어아도르노는사회비판적계기를가진예술을주창하며,대중의욕구를조작ㆍ기만하는문화산업을철저히비판했다.예술과대중을바라보는관점에있어서극명하게차이를보이는두철학자의이론은지금까지도꾸준히비교연구의대상이되고있다.
텔레비전은세계를나의사적인공간으로가져왔다는점에서다른어떤매체보다도일상에획기적인변화를가져온매체였다.귄터안더스는이러한텔레비전을중심으로실재와가상의문제를다루었던철학자이다.안더스는텔레비전이대중들을탈문자적인문맹자로만들고,실제세계가아닌(팬텀화된)가상세계만을받아들이게한다고주장하는데,이는그가(아도르노와마찬가지로)대중을수동적인행위자에지나지않다고전제했기때문이다.
매체를분석함에있어서내용보다는형식에중점을두어야한다고주장했던마셜맥루언은매체형식과감각간의관계에주목한다.그는하나의특정한감각이다른감각들보다우세하게작용하는것에대해비판하는데,지극히시각중심적이었던‘구텐베르크은하계’(인쇄문화)의몰락이후,감각들간의상호작용이증대함에따라‘인간의확장’이시작되었다고분석한다.
프리드리히키틀러는축음기,영화,타자기와같은기록매체와라캉의정신분석학을연결시켜사유한다.그에따르면축음기는실재계에,영화는상상계에,그리고타자기는상징계에연결되는데,이는기록매체가무엇을기록하는가에따라우리의사유방식이어떻게변화하는가에주목한것이었다.
가상과이미지로서존재하다:디지털매체의시대
디지털매체시대에서는현실과실재에대한이해그리고가상에대한이해도변화한다.이제무엇이실재이고가상인지분명히선을긋는것자체가무의미해지기까지했다.존재했으나보이지않았던것들을가시화시키는단계를넘어,이제아예존재하지않았던것들이가시화되고있으며,현실또한가상으로구현되기에이르렀다.(본문206쪽)
유비쿼터스세계에서중요한것은오히려‘속도’다.얼마나빨리접속해서자연적시공간으로부터벗어날수있는지가훨씬중요해졌다.그렇기에이구조안에서는‘지금’이라는시간적제약과‘여기’라는공간적제약이전혀문제가되지않는다.……원격현전이야말로유비쿼터스시대에디지털노마드가살아가는전형적인존재방식이되었다.(본문255쪽)
디지털매체는우리의존재방식과사유방식을획기적으로바꾸어놓았고,디지털매체철학자들은바로이러한변화에주목하고있다.예컨대유비쿼터스인프라는시공간의제약을뛰어넘어존재할수있는가능성을마련해주었으며,사이버스페이스는우리가존재할수있는공간적범위를한층더넓혀주었다.한편,갈수록커져가는가상이미지의영향력으로인해실재와가상의위계는점차사라져가고있으며,오히려우리가실재라고믿었던것의가상성이폭로되는경우도존재한다.이렇듯디지털시대의삶은기존의시공간이재편되고,실재와가상등기존의위계가재편되는것을둘러싸고펼쳐진다고볼수있다.
장보드리야르는복제된이미지가원본보다도더큰영향력을발휘하는‘시뮬라크르의시대’가되었음을역설한다(이를테면콜라광고속의흰곰이미지가실제북극곰보다도더큰영향력을발휘하는시대가온것이다).그는실재와가상간의위계를무너뜨리고,‘하이퍼리얼’이라는개념을통해실재의가상성을폭로하기에이른다.빌렘플루서역시디지털시대의이미지에대해언급하고있는데,개념과텍스트가내재된의미복합체로서의이미지를분석함으로써가상,이미지자체에대해긍정적으로재평가한다(보드리야르가실재의가상성을폭로하며허무주의적태도를보인것과는상반되게말이다).이미지를자꾸만실체와연관지어생각함으로써평가절하하는것에대해플루서는강력히비판하는것이다.
폴비릴리오와괴츠그로스클라우스는모두디지털시대의‘공간’의문제를다루고있다.비릴리오의경우‘질주학’이라는새로운학문을제시하면서속도에의해공간이소멸되고인간의신체가해체될것을우려했다.그에반해그로스클라우스는가치평가를배제한채‘사회적공간’및‘매체적시공간’의재편만을논했으며,이시공간에서우리가어떤방식으로존재할수있는가그자체에관심을두고있다.
노르베르트볼츠는디지털매체가전통예술의종말을초래했으며,이는곧새로운예술의확대이기도함을역설한다.아도르노를비롯한철학자들이사회비판적계기를갖고있는‘진정한예술’의역할을강조했던것과는상반되게,볼츠는‘삶의자극소’,‘유흥’의의미를가진‘새로운예술’의역할을강조한다.
매체가곧세계가된21세기,매체철학과철학의운명
매체철학은급변하는매체상황속에서발빠르게자신을갱신해나가야하는운명속에놓여왔다.또구체적으로는어떤현상에초점을맞추어분석할것인지순간순간선택해야했다.20세기의매체철학자10인의사유가오늘날우리에게던져주는참조점은이렇듯당대의매체상황에천착해,유보없이치열하고도깊이있는사유를펼쳤다는점일것이다.이책의저자는20세기의매체철학이21세기의매체상황에적용가능한가를비판적으로검토하는작업보다,이들의문제의식을계승하는것이더중요하다고거듭역설한다.
앞서말했듯매체는오늘날삶의많은부분들을결정하고있다.그렇기에비단‘매체철학’뿐아니라,세계를분석하고사유할의무가있는여타의철학분과들역시매체를다루어야만하는운명에놓이게되었다.실제로많은사회참여적인철학들이매체로인한사회변화들을주된주제로서다루고있기도하다.예컨대아랍의민주주의혁명을이야기할때민주정에대한철학적사유못지않게,SNS의소통방식과그파급효과에대한철학적사유역시중요했다.이뿐만이아니다.사이버공간을매개로한연대와공동체의문제,현대인의심리적고립감문제,사이버감시문제등오늘날벌어지고있는거의모든문제가매체를둘러싼문제이며,매체철학적사유가필요한문제라해도과언이아니다.이처럼매체가곧세계인21세기를사유하는철학적여정에이책?20세기의매체철학?이한권의길라잡이가될수있기를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