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세계를 보는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다!
‘모든 존재자는 서로 의존해서 발생한다’는 연기(緣起)법을 기반으로 해서 발생한 공 개념은 실체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의 극복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 불교에서 시작된 개념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렇게 ‘불교’와 ‘철학’이라는 이름에 눌려 혹시라도 그냥 간과해 버려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공이라는 개념은 삶을 개척하겠다는 불교인들의 불굴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어떤 사건을 마주했을 때 감각이 과장되어 감정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딱 그 사건 만큼만 볼 것을 주장하는 삶의 방식이자 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수도 없이 겪게 되는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감정이 어떤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삶을 떠받치는 하나의 형식이고, 그것이 반드시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허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나가르주나(용수)의 “사물이 공하다”는 주장은 그런 허구에 계속해서 다치고 상처받지 말고 사물과 사건을 있는 만큼 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물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사물이 변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이란 것은 ‘사물이 다 껍데기’라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물이 변하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실체(본질)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세상에 영원하거나 제1원인에 해당할 만한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것을 불교에서는 ‘자유’라고 한다. 견디기 힘든 큰일을 당했을 때,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그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모든 사건을 정면에서 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보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 사물을 철저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길이며, 일상에서 ‘공’ 개념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개념어총서 WHAT 001 채운 지음 ‘재현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사는 것만이 재현에 대한 저항이다!”
사는 게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나는 남들처럼 살지 못하나, 왜 나는 남들처럼 행복하지 못한가…등등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스트레스 상황으로 밀어넣는다. 왜 그럴까? 우리가 정말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까? 우리의 삶이 정말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개념어총서 WHAT>의 첫번째 책 ‘재현이란 무엇인가’(채운 지음)는 이런 갑갑함이 바로, 우리 삶 전반에 퍼져 있는 ‘재현적 사고’ 때문이라고 말한다. 척도가 되는 이상적인 삶이 하나 있고, 나머지 다양하고 이질적인 삶은 모두 그 원본을 재현(再?現)하며 사는 거라는 생각. 따라서 지금-여기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부정하고, 보다 완벽한 삶을 꿈꾸는 것이 행복이고 희망이라는 생각.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좀더 완벽한 직장, 사랑, 가정을 꿈꾸며 계속 행복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재현-표상-리프리젠테이션? 철학개념이 아니라, 일상개념이다!
그런데 재현적 사고가 뭐 그렇게까지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사실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이 ‘다시-드러냄’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는 현상에 대한 부정, 그리고 현상 뒤의 어떤 실체나 본질에 대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다. 원본과 모사물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또 하나. 재현(Vorstellung)의 또 다른 번역어는 ‘표상’이다. ‘앞에vor-세움stellung’이라는 뜻. 주체는 대상을 자신 앞으로 호출하고 그에 대응하는 어떤 상을 대리인으로 내세운다(表?象)는 말이다. 실재 이미지와 카피 이미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재현’과 마찬가지로 ‘표상’ 역시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지울 수 없는 거리를 상정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리프리젠테이션’이라는 개념으로 세계를 보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고 우리 삶과 인식과의 괴리에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재현은 단순히 어려운 철학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틀과 일상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삶속의 개념이고, 따라서 평소 일상에서 전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투쟁의 대상이다.
재현을 향한 최고의 저항, 호모 파베르(Homo faber)!
재현의 세계는 움직이지 않는 고체의 세계다. 하나의 척도를 기준으로 줄지어 서 있고, 모델로서의 원본 이외에 나머지 것들은 다 가짜고, 정해진 틀을 이탈하면 안 되고, 표준이어야 하고 평균이어야 한다. 따라서 재현의 세계 혹은 사고라는 것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묵살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가둔다. ‘재현이란 무엇인가’는 푸코, 마그리트, 들뢰즈, 클레를 넘나들며 이런 파시즘과 다를 바 없는 재현적 세계에 대한 저항을, 그리하여 새롭게 좀 살아볼 것을 부추기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재현에 대한 최고의 저항으로 저자가 내놓은 것은 바로 ‘호모 파베르’이다. 즉, 끊임없이 제작하고 만들어 내면서 그와 더불어 스스로 변화하고 다른 삶의 방식/비전을 주조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물론 재현의 세계를 넘어선다는 건, 그에 맞서는 더 견고한 세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현실화하는 것이고 끊임없는 ‘-되기’를 통해 사는 것이며, 이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개념, 또 다른 자신을 창안하는 것이다. 호모 파베르는, 그렇게 ‘새로운 자신’은 물론이고 ‘새로운 세계’를 마땅히 구성해 나갈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당신의 개념이 당신의 삶이고, 세계다!!”
―뭔가 다른 인문학 공부? ‘개념’이 답이다! <개념어총서 WHAT>!
“개념은 한마디로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다. 만약 당신이 자본주의를 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해 당신이 형성한 개념을 통해서다. 만약 당신이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먼저 당신이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당신은 당신이 형성한 개념에 따라 만족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개념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고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니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꿀벌은 자신의 집을 밀랍으로 짓지만, 인간은 자기 세계를 개념으로 짓는다고.” (고병권, ‘개념어총서 가이드북’, 10쪽)
인문학, 그거 나도 한번 해보자
나의 인문학 공부 파트너, 개념어 총서 WHAT
‘권력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이수영은 인터뷰에서 인문학으로 삶을 바꿔나가는 W-ing의 여성들 이야기를 길게 했다(‘개념어총서 가이드북’, 37쪽 참고). 인문학 공부는커녕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그 집단의 여성들은 이름도 생전 처음 듣는 ‘니체’ 강의를 듣고서 감동을 받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피폐해진 여성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돈도, 집도, 직업도 아닌 자신들의 삶과 내면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른바 ‘현장인문학’은 학문의 틀에 매이지 않은 새로운 공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정말로, 인문학은 인생을 바꾼다는 깨달음. 바로 이것이 “나를 바꾸는 책, 세상을 바꾸는 책”을 모토로 하고 있는 그린비의 출판철학과 통하는 지점이었다.
인문학이 위기이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무작정 인문학을 좀 공부하자고만 해서는 밑도 끝도 없이 공허하기만 하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무려 인생을 바꾼다고 하는 그 좋은 인문학을 보다 많은 사람이 할 수 있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인문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그 결과 사람들이 인문학에 접근하는 데 가장 큰 장벽 중 하나가 바로 ‘개념’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처음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늘 벽과 같았던 개념. 일상어와는 용법이 달라도 너무 다른 개념어들은 사람들의 삶에서 인문학 공부를 쉽게 떼어 놓았다. 이 책에서는 이런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가 또 다른 책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 같고…, 뭔가 하나로 꿰어지지 않는 개념어의 헷갈리는 용법들은 인문학 초보들을 공부의 문턱에서 마냥 서성이게 했다. 모르는 개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해가 되기는커녕 연이어 또 다른 사전, 웹사이트, 참고서적을 뒤져야 했던 것. 물론 모든 개념을 다 알아야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념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개념을 이해하고 그 작동방식을 파악해야만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여러 텍스트들을 보다 즐겁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때문에 푸코, 들뢰즈, 베르그손같이 이름부터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책을 읽고, 그들의 사상에 빠져드는 것도 바로, 개념에 대한 충실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개념에 대해 이해를 하고 좀더 즐겁게 인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린비 출판사는 ①단순히 개념사(史)가 아니라, 실제로 개념의 쓰임과 용법을 밝혀 누구라도 그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게 할 것. ②국내의 인문환경과 독자를 고려해 집필할 수 있는 국내 필자들의 저작일 것. 이 2가지 대원칙을 가지고 인문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사회학?정치학 등의 개념어들을 골라 그 개념어들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5권을 선보이게 된 <개념어총서 WHAT>은 바로 그렇게 인문학으로 세상을 한번 바꿔보겠다는 저자와 출판사가 만들어 낸 신개념 인문학 입문서이다. 시작부터 포부가 남달랐던 만큼, <개념어총서 WHAT>은 대한민국 모두의 인문학이 즐거워질 때까지 20권이고, 30권이고 계속될 것이다.
인문학이 어렵다 해도, 사는 것보다 어려우랴
인문학에는 배울 ‘학’(學)자가 들어간다. 어려서부터 기피대상 1호가 공부였던 대다수 우리들에게 이름부터 부담스럽고 어려운 인문학. 그러나 인문학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쉽다. 연애가 안 풀릴 때는 만사가 짜증나고 심통이 나고, 정치인들이 정신줄 놓은 말과 행동을 일삼을 때는 비단 애국자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나오는 건 한숨뿐, 입으로 들어가는 건 술뿐이다. “사는 게 왜 이러냐”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