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출판사 ‘철학의 정원’ 5번째 책. 미국의 저명한 철학사가 프레더릭 바이저가 초기 독일낭만주의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깨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독일낭만주의는 보수적인 문학운동으로만 알려져 왔다. 이런 선입견을 비판하면서 저자는 ‘초기낭만주의’가 일관된 철학이자 세계관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인 운동이었음을 밝힌다.
저자는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 프리드리히 셸링 등 초기 독일낭만주의자들의 사유가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ㆍ윤리학ㆍ정치학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의 텍스트를 면밀하게 읽으면서 그들이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회를 꿈꾼 과정과 철학적으로는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이성과 감성을 통일하려 한 시도들을 전체적으로 고찰한다.
누가 낭만주의를 보수적인 문학 운동이라 말하는가!
현실을 바꿔 나가려 한 철학적 사상으로서 초기낭만주의 읽기!!
오늘날 ‘낭만주의’라는 표현은 대부분 무언가를 풍자하거나 조롱할 때 사용된다. 현실도피적인 경향, 외적ㆍ내적 조건들을 무시한 공상적인 사변 등을 지칭할 때 우리는 ‘낭만주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낭만주의’에 관해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런 통념들을 제외하면, 낭만주의자들의 사유와 언어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린비출판사는 미국의 철학자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C. Beiser)의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초기 독일낭만주의 연구』(The Romantic Imperative: The Concept of Early German Romanticism)를 ‘철학의 정원’ 5번째 도서로 출간했다. 이 책에서 바이저는 18세기 초에 꽃피었던 초기 독일낭만주의(Early German Romanticism)에 관한 편견을 깨고, 그것이 지녔던 다양한 면모들을 보다 폭넓은 맥락 속에서 재구성한다.
우리가 낭만주의, 특히 초기낭만주의에 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것이 철학보다는 감성을 중요시한 문학 운동이었고,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수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에서 바이저는 이런 편견을 거부하고, 초기낭만주의가 일관된 철학ㆍ세계관이었으며, 나아가 당대의 현실을 개혁하려 한 정치적 운동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의 저자 프레더릭 바이저는 현재 시러큐스(Syracuse)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성의 운명: 칸트에서 피히테까지 독일철학』(1987), 『계몽, 혁명 그리고 낭만주의: 1790~1800 근대 독일의 정치 사유의 탄생』(1992), 『독일관념론: 주관주의에 대한 투쟁. 1781~1801』(2002), 『헤겔』(2005) 등의 저서를 집필한 계몽주의ㆍ독일낭만주의ㆍ독일관념론 연구의 권위자이며,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2003)는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그의 저서이다. 바이저의 방대한 문헌연구, 치밀하고 객관적인 분석, 명료한 서술 스타일을 통해 우리는 초기 독일낭만주의에 대해 그간 갖고 있었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며,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사유가 현재에 던져 주는 의미까지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편견을 깨기: 보수적 문학 운동에서 개혁적 정치 사상으로
서구의 근대 지성사에서 ‘독일낭만주의’는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낭만주의가 당대의 반동적ㆍ보수적 흐름을 대표했고, 나치 시기에는 파시즘의 주도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로 최근 들어 낭만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영감을 준 사조로 이해되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프레더릭 바이저는 낭만주의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 모두가 일면적이라고 비판한다.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의 목표는 이 두 해석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가지 오해를 교정하는 것이다. 그 오해는 낭만주의, 더 정확하게는 초기 독일낭만주의가 하나의 ‘문학’ 사조였으며, 나아가 사회정치적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 ‘보수적’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저가 보기에 이런 평가는 후기낭만주의(1815~1830)의 성격을 초기낭만주의(1797~1802)에까지 확장 적용해 부당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그는 이런 오해에 맞서 초기 독일낭만주의가 하나의 철학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개혁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바이저는 지금껏 알려져 온 낭만주의의 상(象)을 깨고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사유를 ‘그들이 직면한 문제, 그들의 언어 그 자체’를 통해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낭만주의자들의 철학적ㆍ정치적 문제의식,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 그들 사상의 의의와 한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계를 낭만화하라!: 초기낭만주의의 급진적 명령
초기 독일낭만주의의 주도적 사상가들-프리드리히 슐레겔,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프리드리히 셸링, 노발리스 등-의 핵심 개념은 낭만시(romantische Poesie)였다. 이들은 낭만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았고, 이 때문에 낭만주의에 대한 기존 연구도 낭만시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낭만시 개념이 문자 그대로 ‘시’(poetry)로만 받아들여진 탓에, 낭만주의가 철학과 정치학보다는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바이저는 낭만주의자들의 텍스트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낭만시’ 개념이 ‘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들에게 포에지(Poesie)란 “모든 창조적 활동”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낭만시’는 낭만주의자들이 문학뿐 아니라 이 세계 전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한 개념이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낭만시 개념을 통해 자신들의 형이상학ㆍ정치학ㆍ윤리학을 확립하려 했다. 초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칸트의 정언명령에 버금가는 낭만주의의 명령으로서 “세계를 낭만화해야 한다”라고 선언했고, 또 다른 핵심적인 낭만주의자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바이저는 ‘낭만시’라는 용어와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라는 명령을 정치와 윤리, 철학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세계를 문학의 영역으로 축소하라는 유미주의적 선언이 아니며, ‘낭만화’라는 그들의 이상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렇게 보면, 낭만주의가 단순한 문학 운동이었다는 가설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낭만시 개념을 이렇게 철학적ㆍ정치적ㆍ윤리적으로 확장할 때, 비로소 낭만주의자들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이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낭만화’란 무엇인가? 이 용어를 통해서 낭만주의자들은 무엇과 대결했고, 어떤 이상을 제시한 것인가?
계몽의 계몽: 개인의 완성과 유기체적 국가를 위하여
통념에 따르면, 낭만주의자들은 ‘근대’를 비판하고 ‘과거’(중세)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낭만주의자들은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녔다고 비판받는다. 그들이 근대를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바이저에 따르면, 이들이 무조건적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통념과는 반대로 낭만주의자들은 과거와 현재를 종합하고자 했다. 그들은 ‘계몽’과 ‘사회계약론’으로 대표되는 근대 사회가 소외, 원자주의, 아노미를 낳았다고 생각했고, 근대성의 이 병리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들 고유의 윤리학ㆍ정치학ㆍ형이상학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계몽의 ‘비판 정신’에 공감했다. 하지만 이성만을 강조한 계몽은 끝없는 회의주의와 공동체 감각의 상실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은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 삶의 마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지향했다. 이러한 인간성은 문화(Bildung)를 통해 형성되며, 그 결과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의 통일, 자기-실현,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윤리학은 초기낭만주의의 정치학과 직결된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국가와 개인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국가를 꿈꾸었다. 그들에게 유기체적 공동체국가는 문화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였다. 이 국가에서는 전체와 부분이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의 성장이 나머지의 성장의 조건이 된다. 후대의 사상가들은 낭만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으며, 그들의 국가관이 전체주의의 시조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이저에 따르면 이는 큰 오해다. 낭만주의자들은 열렬하게 프랑스 혁명을 옹호했으며, 공동체적ㆍ유기체적 국가관을 내세운 것도 혁명이 변질되어 더 이상 국가가 개인의 자기-실현을 도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기체적 이상은 초기낭만주의자들의 형이상학ㆍ자연철학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히테와 칸트를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당시 경직되어 있던 데카르트적 기계론을 스피노자적 일원론으로 대체한 그들 특유의 자연관을 내세웠다. 그들이 상정한 자연에서는 정신과 육체, 전체와 부분이 분리되지 않는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개인과 사회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삶의 거대한 자연적 체계 역시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윤리학과 정치학에 걸맞은 유기체적 자연철학을 확립한 것이다.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라는 초기낭만주의자들의 명령은 개인과 사회, 자연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을 집약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낭만화’는 현실과 무관한 공상 속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표현이 아니다. 바이저가 밝혔듯이, 이들은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한 유기체적 국가 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초기낭만주의가 단순히 문학 운동에 불과한 것도, 보수적인 운동도 아니었다고 바이저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히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계몽의 비판 정신이 지닌 회의주의적 경향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