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시선, 민중의 목소리로 문화대혁명을 이해한다!”
-조반파 노동자가 직접 체험한 문화대혁명 회고록
2008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인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행사였다. 30년간 실시해 온 개혁개방 정책으로 어떻게 중국이 달라졌는지를 세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리였으며, 이제까지 후진국이나 제3세계로 평가받고 있던 중국이 선진국 대열에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음을 과시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화려한 변신 속에는 티베트 독립 운동의 무력 진압 같은 폭력적인 모습이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심한 소득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안 요소도 함께 내재되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중국 내부에서, 중국의 노동자들은 현재에 만족하기보다는 40년 전의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그리워하고 있다. 문혁의 상징인 마오쩌둥을 다시 등장시키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는데, 특히 노동자들은 국유기업 민영화 과정에 항의하며,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높이 들고 당시의 구호들을 외치며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살 권리를 주장하는 이런 시위와 그들이 외치는 구호의 근거를 살펴보면, 그 밑엔 문화대혁명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명 중국 내부에서는 잊혀져야 할 시간,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로 굳어져 버린 문혁이 왜 지금 평범한 중국 인민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는 끝나 버린 문혁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문혁에 대한 관방의 기억과 인민의 기억 사이에는 어떠한 틈이 있는 것일까?
이 책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 어느 조반파의 노동자의 문혁 10년』은 지은이 천이난(陳益南)이 장장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노동자의 신분으로 조반(造反;‘혁명을 받든다, 혁명적’이라는 의미)운동에 참가하면서 경험한 일을 서술한 회고록이다. 따라서 저자는 혁명의 한가운데서 직접 체험한, 문혁의 발생 과정과 조반파가 우위를 차지하게 된 상황, 또한 중앙에 의해 숙정(肅正)당하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조반파 노동자조직은 문혁 연구의 중요한 과제임에도 아직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문혁 관련 작품들은 지식인의 입장에서 구성되거나, 상층부의 권력 투쟁의 결과라는 관점에서만 다루어졌고, 문혁 시기를 살아가던 평범한 민중들의 경우 그저 혁명의 흐름에 휩쓸려 피폐한 일상을 꾸려가는 존재로만 비춰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담론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홍위병 출신 지식인들이 그들의 문혁 경험을 다양하게 재생산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노동자들은 그들의 문혁 경험을 알릴 통로가 마땅하지 않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노동자가 자신의 문혁 경험을 써 내려간 이 책은, 독자들에게 문혁의 다층적인 면모를 알려 주는 것은 물론, 노동자의 시선으로 관방에 의해 통제되지 못하는 문혁의 다른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에게 문화대혁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노동자가 바라본 문화대혁명
문혁이 시작될 때 이제 막 사회로 나가게 된 견습공에게 현실이 가르쳐 준 첫번째 수업은, 바로 혁명 계승자의 신분으로 몇 명의 무고한 보통 군중과 소간부들이 문혁운동의 피해자가 된 것을 목도한 것이다. (본문 27쪽)
▶ 동정심에서 시작된 문혁
평범한 민중들에게 문혁은 그렇게 가벼운 사건이 아니었다. 마오쩌둥의 지지자와 반대자가 언론을 통해 서로를 비판하고 있었을 때, 당시 중국 인민들은 반당분자 색출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에서나, 공장에서나 어느 곳을 가든 직장 내의 반당분자 색출이 주요 과제였다. 홍오류(紅五類; 빈농, 노동자, 혁명간부, 군인, 혁명 유가족. 문화대혁명 당시 계급적 배경이 좋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 계급이 아니라면, 언제 반당분자로 지목당할지 몰라 타인을 경계하고 믿지 않았다. 저자의 문화대혁명 참여도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당시 저자가 일하던 공장에는 다양한 계급들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공산당 통치 아래 모두가 같은 인민이라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계급은 그들을 같은 곳에 두질 않았다. 예전에 자본가 계급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자의 친구가 ‘소삼가촌’(小三家忖; 반당분자)으로 지목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저자는 그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 차례 복권 운동이 벌어지고 모두 일터로 돌아갔지만, 문혁은 쉽게 그들에게 반당분자의 혐의를 벗겨주지 않았다. 정세가 조금만 변화되면 이전의 소삼가촌들을 다시 색출하여 괴롭히는 사람들로 인해, 저자는 전격적으로 조반 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의 관점에서 문혁은 중앙의 잘못된 지시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복권시키는 운동이었고, 노동자들을 위한 혁명이었다.
당시 ‘리이저’ 대자보(「사회주의 민주와 법제에 관하여 마오 주석과 4기 인민대표회의에 바침」이라는 글로 당시 문화대혁명이 마오쩌둥의 독재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비판했다)로 인해 우리 일부 청년 조반파 핵심분자들은 일정 정도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문혁 이후 일들에 대해 처음으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고, 더 이상 과거의 ‘파벌’ 관점에 국한되지 않았다. (본문 746쪽)
▶ 정치 주체로 성장하다
문화대혁명은 지식인들의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중국 정치인들이 ‘인민들의 배는 무겁게, 머리는 가볍게’라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그들의 정치 원칙으로 삼았다면, 문화대혁명은 그런 구도를 해체하는 혁명이었다. 혁명은 억압과 지시로 진행되지 않았다. 관방은 어떠한 힘도 조반파 노동자들에게 쓸 수 없었다. 노동자를 우위에 두는 마오쩌둥의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의 권한은 그들을 뛰어넘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오의 정책은 더 많은 참여 기회만큼이나 더 많은 정신적 각성을 요구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세상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비록 끈질긴 보수파와 관료들이 잔존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중앙의 지시와 조반 운동으로 인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숙명처럼 느껴졌던 신분관계를 뒤집고,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가치를 세상에 적용시키는 일은 저자를 생각 없는 대중에서 의식 있는 정치 주체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동정심에서 시작했던 조반 운동을 시작했던 어린 청년은 마오의 사상에 매료되어 곧 적극적인 행동 분자로 변모한다. 지은이는 곧장 공장을 관할하는 서기에게 달려가 직업 조반파가 되겠다고 요구한다. 직업 조반파는 적은 임금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문화대혁명 운동을 하며 마오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문혁을 통해 중국 사회를 바라보다
이런 혁명에 대한 열정은 조반파와 보수파들 간의 무장 투쟁(이하 무투)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이런 무투는 그들의 비장한 시작에 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전쟁 경험이 없다 보니, 적에게 총을 맞은 사람보다 같은 조직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참호에 수류탄을 던진 아군 병사나 뒤에서 쏜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조반파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문혁 시기 동안 무투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희생시켰는지 전해 준다. 저자는 문혁이 정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무투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반당분자로 몰린다. 당시 보수파나 조반파 모두 무투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문혁 이후 다시 보수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 폭력은 보수파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시작이 어땠는가에 상관없이 보수파들이 승리로 끝난 문혁의 결과가 바로 조반파들을 문혁의 폭력 주체들로 몰고 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조반파조직이 중앙의 지지를 받을 때, 저자는 혁명위원회의 부주임자리까지 올라간다. 이전에는 가담하지 못했던 회사 행정 일로 인해 바빠지기도 하고, 후난성의 감옥 경비와 치안 업무를 맡아 보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은 저자에게 자신이 당과 국가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기록이 담겨 있어, 공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는 당안(?f案) 제도, 관방에 의해 통제된 언론사들의 상황 등, 저자는 당시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알게 된다. 마오쩌둥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지은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을 점점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노동자가 중심에 섰던 문화대혁명
문혁 초기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한 인간의 계급적 위치였다. 특히 흑오류(黑五類; 지주계급, 부농분자, 반혁명분자, 악질분자, 우파분자를 의미) 같은 자본 계급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혁명에 참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홍오류들은 그 당시 영도계급으로 인정받아, 문화대혁명에 직접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자의 문혁 참가는 당시 대약진 운동 기간(1958년~1960년대 초) 동안 자본주의 노선과 사회주의 노선의 첨예한 갈등 시기, 지배 계층들이 관료화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중앙의 의도를 넘어서, 문화대혁명 시기 동안 노동자들은 영도계급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직장 단위 내에서 자본가들을 뛰어넘는 조직을 건설한다. 이들은 당위원회의 권력을 탈각시키고,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탈권위원회(奪權委員會)를 조직한다. 그 탈권위원회 안에서는 당 서기가 아니라 조반파 노동자들이 책임을 맡았고, 직접 그 공장의 주인으로서 조직을 경영했다.
특히 후난성에서 활동했던 지은이는 조반파 노동자조직이 단위 지역이나 공장 내에서만 움직이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공장 내에서의 탈권이 수위를 벗어나자, 중앙에서는 그들의 권력을 넘어서려 하는 조반파 노동자들에게 보황파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가 문혁의 주인이라는 대원칙을 되새기며, 중앙에 대해서까지 조반을 일으킨다. 결국 후난에서 벌어진 조반파 노동자조직의 복권 사건은 오히려 중앙의 지시를 뒤엎고, 중앙조직에 자신들이 진정한 혁명 주체임을 인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군 대표·성 기관 대표·